[매묵]2024년 8월 18일 주일[(녹) 연중 제20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8월 18일 주일[(녹) 연중 제20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잠언의 말씀입니다.9,1-6
1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깎아 자기 집을 지었다.
2 짐승을 잡고 술에 향료를 섞고 상을 차렸다.
3 이제 시녀들을 보내어 성읍 언덕 위에서 외치게 한다.
4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지혜가 말한다.
5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
○ 아이들아, 어서 와 내 말을 들어라. 주님 경외를 가르쳐 주리라. 삶을 즐기고 복을 누리려, 장수를 바라는 이 누구인가? ◎
○ 네 혀는 악을 조심하고, 네 입술은 거짓을 삼가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찾아라.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5,15-20
형제 여러분, 15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17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18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19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20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51-5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이신 주님, 교회에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시어,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지혜를 좇아 살아가며, 주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통치자이신 주님, 이 땅의 정치인들을 살피시어,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존엄과 권리 실현을 위한 정책들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3.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경제 발전과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굶주리는 아이들을 굽어보시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샘이신 주님, 지역 사회의 일터에서 일하는 모든 이를 굽어보시어, 저마다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서로 존중하고 화목하게 하시고, 특별히 약자가 배려받을 수 있게 하소서.
예물기도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계절이 갈마들게 마련하셨나이다. 그리고 사람을 주님의 모습 따라 지으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모두 맡기시어, 주님 대신에 다스리게 하시고,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언제나 찬양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0주일
깨와 소금이 만나면 ‘깨소금’이라고 합니다. 깨와 설탕이 만나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깨달음’이라고 하네요. 설탕이 달기 때문에 ‘달음’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운명처럼 만나서 세상을 변화 시킨 인연이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원효는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신 후에 ‘일체유심조’라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이순신과 유성룡이 만나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을 구하였습니다.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만유인력’이이라는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만나서 ‘스마트폰’이라는 혁신을 만들었습니다. 2024년 저는 댈러스로 와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남길곳이라고 이름 지은 창고를 만들었습니다. 그 창고에 아름다운 벽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7기 사목회가 시작되었습니다. 27기 사목회는 신명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27기 사목회는 말씀과 친교가 넘쳐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27기 사목회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준비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지혜와 용기를 청합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삶과 죽음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이 먼저고, 죽음이 나중이니 삶과 죽음은 순서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가치의 문제입니다. 삶과 죽음은 그래서 함께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사고락, 생사를 함께한 전우, 생사여탈, 생사확인’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음과 삶을 이야기한 말도 있습니다. ‘사생관, 사생결단’과 같은 말입니다. 삶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면 우리의 삶은 자칫 허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슬픈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기게 됩니다. 생물학적으로 죽음은 흙이 되는 과정입니다. 사회학적으로 죽음은 관계의 단절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한줌의 흙이 되는 것도 아니고, 관계의 단절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를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입니다. 삶은 그 이정표를 향해서 떠나는 순례입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자영업자들에게 해 주는 ‘조언’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말은 믿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이곳에 투자하면 많은 수익이 나고, 성공할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수익이 나고, 성공할 거라면 본인이 하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업은 경쟁자가 많아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영업자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수고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기술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수고와 헌신이 없는 성공과 재물은 마치 사막에서 보이는 ‘신기루’와 같습니다. 신기루는 허상일 뿐입니다. 회개와 십자가 없이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뿌리지 않고 열매 맺는다는 신앙도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과정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수고와 헌신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빵을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육신을 배부르게 하는, 그래서 또 다시 배고프게 하는 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선과 악을 식별하는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용기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을 먹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언제나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0주일
복음: 요한 6,51-58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충만한 의미로 가득한 시간!
오늘 우리는 참으로 은혜로운 주님 말씀을 접합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찾고 갈구하던 주님께서 멀리 다른 하늘 아래 계시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주 가까이 지척에 현존하신답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 주님께서 계신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6)
더 은혜로운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이 언제나 우리 안에 머물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 너무나 쉽다는 것입니다.
엄청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미사에 참석하면 됩니다.
지극정성으로 영성체를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로 인해 나는 주님 안에 있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체성사에 참여하긴 하는데, 도통 주님 현존 체험보다는
부재 체험으로 기우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관건은 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저 의무요 습관처럼, 후딱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성체성사를 대한다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마치 돼지 목에 걸린 진주 목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는 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한 좋은 제안을 몇 가지 건네십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시간을 잘 쓰랍니다.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충만한 의미로 가득한 금쪽같은 시간을 잘 사용하랍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미사 입당송의 한 말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오늘 우리의 매 시간들이 하릴없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 뜨락에서 지내는
거룩한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권고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우리의 하루 하루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놀라운 업적과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찬미가로
표현되어야 마땅합니다.
이웃을 향한 험담과 불평불만을 멈춰야 하겠습니다.
지난 시절 어두웠던 상처는 자비하신 주님께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
내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도 모두 섭리의 손길에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
그저 오늘 주님 현존 안에 기쁨의 찬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20주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생명을 우리에게 선사하십니다>
오늘은 연중 20주일입니다.
지난 세 주일에 이어, 이번 주일에도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예지의 길을 걸으라는 <잠언>의 외침을 들었고,
제2독서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느님의 사랑을 찬미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몸과 피가 어떻게 우리의 음식이 되는지를 말씀해주시는데,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참으로 어마어마한 말마디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줄 빵'이라고 하시면서, 그 빵은 '당신의 살'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이 이 빵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빵을 먹었을 때의 일입니다.
곧 '그 빵을 먹으면' 그렇게 되겠지만, 먹지 않으면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 빵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 6,53)
예수님께서는 마치 어머니들이 건강에 꼭 필요한 음식이나 약을 자녀들에게 먹일 때에 으름장을 놓으며 먹도록 위협하거나 그럴싸한 약속으로 어르고 꼬이듯이, ‘당신의 살’인 이 빵을 우리에게 먹이기 위해 으름장을 놓으며 위협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최상의 약속으로 우리를 어르고 꽤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요한 6,54)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라는 말씀은 세 가지 의미를 밝혀줍니다.
첫째는 당신께서 우리의 밥이요, 양식이며, 그 양식은 우리의 육체적 생명을 살리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잠언 9,5)
사실 우리는 오늘도 물과 피를 섞어 마십니다.
미사 중 <예물준비기도> 때 사제는 포도주가 담긴 성작에 물을 조금 섞으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가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그리고 '평화의 인사'를 한 후, 사제는 축성된 빵 조각을 포도주가 든 성작에 넣으며 혼자 기도합니다.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이처럼 오늘도 우리는 섞어 그리스도의 신성을 음료로 먹고 마시며, 신적생명에 참여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과 사귐을 말합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기리는 찬양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와의 사귐이요,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의 사귐이 아니겠습니까?”
(1코린 10,16)
유대인들에게 있어 ‘몸’은 ‘인간관계’를 말하며, 곧 ‘사랑의 사귐과 친교’를 말합니다.
그리고 ‘피’는 ‘생명’을 말하며, 곧 ‘일치와 유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몸’에서 친교와 사귐으로 사랑의 관계를 배우고, ‘예수님의 피’에서 유대와 일치를 이루는 사랑을 배웁니다.
셋째,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무름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는 사람 ‘안에 머물며’, 당신의 신적 생명을 우리에게 선사하십니다.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증여하십니다.
당신의 살은 우리의 살이 되고, 당신의 피는 우리의 피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아멘”이라는 응답과 함께 예수님의 몸과 피를 영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살겠다’는 응답입니다.
곧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사랑의 관계를 가지겠다는 응답이요,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살겠다는 응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요한 6,57)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주님!
당신은 제 안에 머무르되 저를 장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먹혀 사라짐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당신 안에 저를 허용하시되 저를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숨결에 태워 드높게 날게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믐달처럼 자신을 감추신 그 오묘함과 놀라움으로,
오늘 제가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
그 가볍고 그윽한 당신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17.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에제18,1-10ㄱ.13ㄴ.30-32 마태19,13-15
어린이와 같이 되라
“회개의 여정”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어제 저녁식사중 찐 계란이 담긴 작은 잔마다 깨알같이 작은 영문 글자가 있어 자세히 읽어봤고 반가워
옆 수도형제와 나눴습니다.
“Happiness is enjoying the little things in life”
(행복은 삶에서 작은 것들을 즐기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바로 이것이 어린이같은 단순함의 특징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에서도 어린이같은 단순함이 빛납니다.
“공자의 진정한 뜻은 문장과 글자가 아니라 일을 이룸에 있다.”<다산>
“‘아름다운 옥이 여기에 있다면 간직하겠습니까, 아니면 팔겠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논어>
이런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단순함 역시 어린이같음의 특징입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천진무구天眞無垢, 마음의 순수는, 어린이다움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진리 추구의 열정에 있음을 봅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아이들에 대하여”도 어제 결혼에 대한 잠언처럼
통찰과 지혜가 가득합니다.
제가 50년전 20대 후반 초등학교 교사시절 함석헌 선생님이 번역한 <예언자>를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공부하는 마음, 배우는 마음으로 독수리 타법으로 “아이들에 대하여” 일부를 옮겨 봅니다.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뿐 너희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너희와 함께 있을 지라도 너희의 소유가 아니니라
너희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라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아이들의 영혼은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 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음으로
너희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마라
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비단 어린이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이런 경외의 마음으로 대할 때 어린이같은 아름다운 겸손한 영혼입니다.
분명코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은 어린이같음의 최정상에 있는 분이라 단언합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했을 때 사람들을 꾸짖은
제자들의 완고함은 꼰대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과연 달랐습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같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단순성, 개방성, 배움의 정신, 편견으로부터 자유, 변화와 적용에 준비되어 있는 유연성일 것입니다.
오직 이런 이들이 온전히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어린이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손을 얹어 어린이들을 축복하신 다음,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유유히 떠나시니 뒷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즉시 연상되는 앞서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18,4)
하느님 앞에 회개와 겸손은 함께 갑니다.
역시 기도와 회개도 함께 갑니다.
끊임없는 기도에 끊임없는 회개요 어린이같음의 순수와 진실, 그리고 겸손입니다.
어제 교황님은 기도와 평화의 복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기도는 변형의 시작이다.
기도는 역사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오늘날은 어느때 보다 인류는 평화의 복음을 필요로 한다.
모든 신자는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고 나누라 불림 받고 있다.”
평화의 복음 선포에 앞서 기도와 회개가 전제되어야 함을 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은 회개의 구체적 내용을 적시합니다.
공정과 정의의 의로운 사람들이요 어린이와 같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줍니다.
1.산 위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이스라엘 집안의 우상들에게 눈을 들어 올리지 않으며,
2.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않고 달거리하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3.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빚 담보로 받은 것을 돌려주며
4.강도짓을 하지 않고, 굶주린 이에게 빵을 주며,
5.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주고,
6.변리를 받으려고 돈을 내놓지 않으며,
7.이자를 받지 않고 불의에서 손을 떼며,
8.사람들 사이에서 진실한 판결을 내리면서,
9.주님의 규정들을 따르고 법규들을 준수하여 진실하게 지키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니 반드시 살 것이다.
이런 삶의 현장에서 회개의 구체적 실천에 충실한 자들이야말로 어린이와 같은 좋은 심성의 사람들입니다.
죄지은 자만 죽습니다. 위에서처럼 역겨운 짓을 한 이들은 살지 못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가 죽은 책임은자신에게 있습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회개와 선행의 선택과 훈련, 습관화가 어린이와 같은 삶에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요!
기도와 회개를 일상화하는 “기도와 회개의 시스템” 같은 수도원 일과표가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충고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깨우침이 됩니다.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생 영을 갖추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느냐?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회개의 여정과 어린이와 같은 삶은 함께 갑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와 더불어 날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주소서.”(시편51,14). 아멘.
8/18(일) [(녹) 연중 제20주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선과 악을 식별하는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용기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을 먹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언제나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 미사 입당송의 한 말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오늘 우리의 매 시간들이 하릴없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 뜨락에서 지내는
거룩한 시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권고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우리의 하루 하루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놀라운 업적과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찬미가로
표현되어야 마땅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주님!
당신은 제 안에 머무르되 저를 장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먹혀 사라짐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당신 안에 저를 허용하시되 저를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숨결에 태워 드높게 날게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믐달처럼 자신을 감추신 그 오묘함과 놀라움으로,
오늘 제가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
그 가볍고 그윽한 당신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같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단순성, 개방성, 배움의 정신, 편견으로부터 자유, 변화와 적용에 준비되어 있는 유연성일 것입니다.
오직 이런 이들이 온전히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어린이같은 사람들입니다.
(이수철 신부)
8/18(일) [(녹) 연중 제20주일], 58일차 기도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주님!
당신은 제 안에 머무르되 저를 장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먹혀 사라짐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당신 안에 저를 허용하시되 저를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숨결에 태워 드높게 날게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믐달처럼 자신을 감추신 그 오묘함과 놀라움으로,
오늘 제가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
그 가볍고 그윽한 당신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8월18일(일) 5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