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9월 3일 화요일[(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9. 3. 06:54

[매묵]2024년 9월 3일 화요일[(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께서는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나셨다. 법학을 비롯한 고등 교육을 받으시고 로마의 고위 공직을 지내셨지만, 수도 생활을 시작하시어 부제로 서품되시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황 사절의 임무를 수행하셨다. 590년 교황으로 뽑히신 성인께서는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하신 최초의 교황이시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그분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그레고리오 교황께서는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도덕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기시고, 604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입당송

복된 그레고리오는 베드로 좌에 올라, 언제나 주님의 얼굴을 찾고, 주님 사랑의 신비를 기리며 살았네.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 백성을 자비로이 돌보시며 사랑으로 다스리시니
복된 그레고리오 교황의 전구를 들으시고
교회의 목자들에게 지혜의 성령을 내리시어
그들이 백성을 올바로 가르치고 거룩해지도록 이끌며
자라나는 그 양들을 보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2,10ㄴ-16
형제 여러분,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8-9.10-11.12-13ㄱㄴ.13ㄷㄹ-14(◎ 17ㄱ)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네.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 ◎

복음 환호송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코린 4,1-2.5-7)와 복음(루카 22,24-3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성자의 희생 제사로 온 세상의 죄를 씻어 주셨으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복된 그레고리오 교황을 기리며 바치는 이 제사가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살아 있는 빵이신 그리스도의 성체로 저희의 힘을 북돋아 주시니
복된 그레고리오를 기리는 저희가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사랑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로 간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너희에게 협조자이신 진리의 영이 함께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말씀과 표징으로 복음을 전하시고,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께는 새로운 계획이 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에서 육체의 옷을 입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영인 협조자이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에게 더욱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강림의 생생한 현장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성령과 함께 하면서 제자들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면서 제자들은 굳셈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면서 제자들은 지혜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면서 제자들은 말씀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저도 성령의 은사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1992년입니다. 새벽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우분이 아프다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병자성사를 준비해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자매님은 하혈을 많이 하셨고, 의사 선생님은 힘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병자성사를 드리면서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뜨거운 기운을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자매님은 사랑하는 딸의 첫 영성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32년이 지났지만, 저는 그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1994년입니다. 패혈증으로 입원한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병자성사를 드리기 전에 저는 형제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형제님의 가슴에는 패혈증 보다 더 심각한 원망과 분노가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원망과 분노도 사라졌습니다. 용서와 사랑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병자성사를 드리면서 뜨거운 기운을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형제님은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 주일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부족한 제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도, 허물 많은 제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도 모두 성령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주변을 보면 성령과 함께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생각이 바른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봉성체를 하려고 나서는데 자매님 두 분이 제게 부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장 투석하는 어르신이 있는데 함께 가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이 생일이라,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봉성체 가는 어르신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마음이 통하니, 뜻도 통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르신에게 같이 갔습니다. 저는 성체를 모셔 드렸고, 자매님들은 어르신의 생일잔치를 해 드렸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병원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교우들이 따뜻한 마음을 모았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간병하는 자매님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해서 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병원비를 돕고 싶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작은 정성을 모아서 전달해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틀을 뛰어넘는 협조자이신 성령은 따듯한 사람들의 마음에 함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면, 내가 양심의 부끄러움을 알고 뉘우치고 있다면,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고 있다면, 사람의 일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성령께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4,31-37

 

가난하고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선사하던 사랑스러운 교황님!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얼마나 탁월하고 출중한 인물이었던지

이름 앞에 대(大)자를 붙입니다.

성인 중의 대 성인, 교황님 중에 대 교황님으로 불릴 만큼 교회사 안에 그분이 남긴 족적이 정말 탁월합니다.

그는 얼마나 명석했던지 서방교회 4대 교부 가운데 한분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540년경 로마에서 출생합니다.

그의 가문은 정말 대단한 귀족가문인 동시에 부유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혈통만 훌륭한 귀족가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 측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훌륭한 가문이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었던지 교황님을 두 명(펠리체 3세 교황, 아가피토 교황)이나 배출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일찌감치 법학공부를 시작한 그레고리오는 572년 공부를 끝내고

서른 살도 되기 전에 로마 총독으로 부임합니다.

당시 시국은 어수선하기가 극에 달했고 수많은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로마 총독 시절 그레고리오가 직면했던 수많은 현실적 문제들,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극복해나가기 위해 흘렸던 땀은 그가 나중에 교황직을 수행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로마 총독이라는 직책은 그레고리오를 결코 만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첼리오의 성 안드레아 수도원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레고리오가 체험했던 짧은 수도생활은 그의 인생 여정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깊은 묵상 중에 선물로 받았던 소중한 하느님 체험,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던 가운데 얻었던

충만한 기쁨과 희열, 열정적인 기도 분위기는 그가 나중에 수많은 사목적 걱정거리들을 껴안고 살아야 했던

교황 시절 영원한 향수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꿈결같이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였습니다.

펠라지오 교황님은 그를 부제로 서품하면서 콘스탄티노플 교황대사로 파견합니다.

그곳에서 로마와는 사뭇 다른 비잔틴 문화를 이해해가면서 열정적 사목체험을 해나가던 그레고리오였는데,

그를 끔찍이도 아꼈던 교황님은 그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다시 로마로 불러들여 당신의 비서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가 모셨던 펠라지오 교황님이 당시 창궐했던 페스트에 걸려 돌아가시고 맙니다.

그러자 즉시 그레고리오를 후임 교황으로 임명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레고리오는 이리저리 도망까지 다니며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백성들의 요구를

마냥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교황직을 수락하고 590년 교황좌에 오릅니다.

 

착좌하자마자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즉시 사목에 뛰어듭니다.

사회 일이건 교회 일이건 상관하지 않고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며 수많은 일들을 척척 해나가셨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쇄신을 위해 800여 통이나 되는 사목서한을 썼습니다.

 

각 교구 주교들이나 사제들, 아빠스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수시로 전문가적 자문을 구하기 위해

그레고리오 교황님께 편지를 썼고 교황님은 매일 수많은 질문들과 산적한 고민거리들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맸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지혜로운 평화의 전도사였습니다.

당시 비잔틴 제국과 롬바르디아, 이탈리아 사이 미묘한 신경전, 실제적 국지전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그들을 착한 목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 사이에 형제적 친교, 평온한 동거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의 회개, 여러 유럽 국가들, 하느님을 믿지 않은 수많은 이교도 백성들은 교황님에게 있어

끊임없는 기도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사목적, 신앙적, 영적 측면에서의 아버지이기도 하셨지만

동시에 사회 변화, 사회 개혁의 주인공이셨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까 하는

걱정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지나친 일과 일상적 과로로 인해 교황님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하느님 안에 푹 잠긴 인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언제나 그의 영혼과 내면 안에 굳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힘으로 가난한 백성들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던 절망의 시대 그는 평화를 건설하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백성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선사하던 사랑스러운 교황님이셨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학자 기념일

<권위 있는 말씀>


'희년 선포'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이 전하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어촌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라 일컬어지는 시작 부분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성전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었는데, 루카복음에 나오는 21개의 이적 중 첫 번째의 이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르침’과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십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은 이미 앞에서 ‘예수님 탄생 예고 장면’(1,32.35)과 ‘세례 방면’(3,22)에서 선포되었는데, 여기서는 마귀들의 입을 통해 선포됩니다(4,34.41). 

그런데 목격자들이 놀란 것은 구마치유가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곧 그분의 말씀의 권위였습니다. 


권위 있는 한 마디 말씀, 곧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루카 4,35)라는 말씀에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 내동댕이쳤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습니다(루카 4,35).

사실 인간은 악마의 혀에 속아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악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와를 속였던 악마의 그 혀 놀림을 중지시고, 그에게서 쫓아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인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치유’는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곧 희년 선포와 마찬가지로 원죄 이전의 에덴으로의 복귀를 보여줍니다. 

사실 악마를 쫓아내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구마자들도 그러한 일은 해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것은 단지 악마를 쫓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몹시 놀랐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이 이루어지는 권능과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이 나가지 않는가?”

(루카 4,36)

'권위(exusia)'란 ‘힘’이란 뜻으로, 발설된 말씀이 말씀한대로 이루어지는 힘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힘’이 실려 있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게 됨을 말합니다.


그러니 말씀이 예수님의 신적 권능, 곧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구마자들과는 달리,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면서 당신 스스로의 '말씀'으로 명령하실 뿐, 다른 누구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바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교란시키고 분열시키는 온갖 거짓의 혀 놀림을 멈추고, 어둠을 몰아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의 힘으로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루카 4,34)


주님!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 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며 받드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진리이신 당신으로 새로 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소서.
하여, 관계 맺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빛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9.2.연중 제22주간 월요일                                                               1코린2,1-5 루카4,16-30

                                                                  참나의 발견

                                                    “예수님의 얼굴, 참나의 얼굴”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 가르침을 묵상하나이다.”(시편119,97)

 

순교자 성월 9월, 위 화답송 시편 고백처럼 살고 싶습니다. 

오늘 9월2일부터 9월13일까지 교황님은 45차 해외 사목 방문길에 오르니 참 대단한 열정입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뉴기니아, 동티모르, 그리고 싱가포르입니다.

 

어제 9월1일 순교자 성월 첫날, 선물받은 “거제도 가는 길”을 독료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처형받은 호남의 사도라 불리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티노(1756-1801)의 딸

‘유섬이(1793-1863)가 아홉 살에 완주 초남이에서 거제 송곡리에 이르기까지

320km 유배길을 따라 순례한 이야기를 적은 글입니다. 

 

16세 이하 아이였기에 처형은 면하고 양반 신분에서 노비로 강등되어 살아 유배길에 올랐고

유배지에서 70세 동정녀로 생애를 마친 유섬이였습니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신분사회였고

천민에 속하는 노비는 30% 정도였다 합니다.

 

고종 임금때 1886.2.6. 노비제가 폐지되지 까지 계속됐던 신분제도였습니다.

제가 아끼는 세권의 평전 인물에 관한 새로운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퇴계 이황은 노비를 이용한 재태크의 달인으로 보여집니다.

360명이 훨씬 넘는 노비에 60만평이 넘는 전답을 가진 농업 경영인이었습니다.

노비 매매금지 상소를 했던 율곡 이이도 죽은 후 상속 재산 목록 분재기에 119명 노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일화도 소개합니다.

 

‘정약용(1762-1836)은 1801년 신유박해때 강진으로 유배갔습니다.

유섬이 처자가 거제도로 유배갔던 바로 그해, 나이로보면 정약용이 유섬이 부친 유항검보다

여섯 살 아래였습니다.

 

유섬이 처자는 거제도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배교했던 정약용은 18년후 해배되어

경기도 광주 마재로 돌아갔습니다.

정약용을 보살폈던 강진 여자 정씨와 딸 홍임이가 따라갔습니다.’

 

물론 이런 일화들이 세분의 위대함에 손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균형을 잃지 않고 깊은 연민과 이해와 수용의 마음으로 당시의 역사와 사회 전체를

깊이 잘 들여다 봐야 함을 배웁니다.

 

제가 볼 때 다산의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치열한 보속기간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예수님의 공생애에 앞선 출사표와도 같은 대선언이 얼마나 혁명적인지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인류의 해방자, 인류의 빛,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참나의 신원을 발견하고 확인한 예수님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전 삶이 이 말씀안에 요약, 압축되어 있음을 봅니다.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 늘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사셨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여기 오늘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의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 모두 모든 예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과 함께 복음선포의 일꾼으로,

또 참자유인으로 살게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러자 모두가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 합니다.

이어 선입견과 편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무지한 고향 사람들에게 한말씀 하시니

이또한 예나 이제나 영원한 진리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선입견,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편적 무지의 인간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엘리야, 엘리사로, 즉 모두의 구원자로 자신의 신원을 알리는 예수님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찾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빛이 되시는 주님이심을 천명합니다.

 

“재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그들 가운데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참으로 믿음으로 자신을 개방한 모든 이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시어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빛의 자녀로 살게 하시는 해방자 예수님 자체가 바로 복음임을 깨닫습니다.

역시 화가 잔뜩 난 무지한 고향사람들의 적대적인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자기의 길을 가시는

대자유인 예수님의 마지막 묘사도 참 멋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제1독서에 사도 바오로의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나에게 그리스도는 생의 전부라는 사도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만나 참나의 사명을 발견한 바오로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실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바오로 사도는 물론 우리 모두가 ‘인간의 지혜’에 바탕둔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둔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어제 읽은 성철 스님의 일화도 잊지 못합니다. 출가하려고 자기를 찾아 온 딸(불필스님)에게 내렸다는

수도팔계(修道八戒)입니다.

희생(犧牲), 절속(絶俗), 고독(孤獨), 천대(賤待), 하심(下心), 전념(專念), 노력(努力), 고행(苦行)이며,

이중 천대와 하심은 바오로의 영성과 일치합니다. 

 

바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을 부처로 보는 천대와 스스로 자기 못난줄을 아는 하심은 마음속 서운함이나

미움을 몰아내는 비결입니다.

바로 천대와 하심은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완전히 비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천대와 하심속에 발견되는 그리스도의 얼굴이요 참나의 얼굴입니다.

순교자 성월,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비움과 겸손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9/3(화)[(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시간과 공간의 틀을 뛰어넘는 협조자이신 성령은 따듯한 사람들의 마음에 함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면, 내가 양심의 부끄러움을 알고 뉘우치고 있다면,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고 있다면, 사람의 일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성령께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그레고리오 교황님은 사목적, 신앙적, 영적 측면에서의 아버지이기도 하셨지만

동시에 사회 변화, 사회 개혁의 주인공이셨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까 하는

걱정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지나친 일과 일상적 과로로 인해 교황님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루카 4,34)

주님!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 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며 받드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진리이신 당신으로 새로 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소서.
하여, 관계 맺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빛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제1독서에 사도 바오로의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나에게 그리스도는 생의 전부라는 사도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만나 참나의 사명을 발견한 바오로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실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이수철 신부)

 

 

9/3(화)[(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74일차 기도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루카 4,34)

주님!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 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며 받드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진리이신 당신으로 새로 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소서.
하여, 관계 맺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빛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9월3일(화) 6시5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