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1월 20일 수요일[(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1월 20일 수요일[(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본기도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4,1-11
나 요한이 1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7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8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9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 거룩한 성소에서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웅대한 창공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위대한 일 이루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크시오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뿔 나팔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손북 치고 춤추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거문고 뜯고 피리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
○ 바라 소리 낭랑하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라 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양하여라.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어
저희가 오롯이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성자께서 당신 자신을 기억하여 거행하라 명하신 이 성사로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4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아이를 위한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아이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위한 중환자 병원에서 4달 동안 지내야 했습니다. 사고 직후 저는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기도를 마치면서 보니, 아이의 발가락이 조금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3번 더 병원을 찾았고, 아이의 모습은 조금씩 좋아 보였습니다. 가족들은 병원에서 퇴원한 아이를 위해서 세례성사를 청하였습니다. 세례를 주기 위해 아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저와 봉사자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아직 아이가 말은 하지 못하지만,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조금씩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겨우 발가락만 움직일 수 있었던 아이가 눈을 떴고, 웃을 줄 알았고, 손을 내밀면 꼭 잡을 수 있었습니다. 세례식을 진행하는 동안 아이의 부모는 물론, 봉사자도 모두 울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정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요셉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앞으로 요셉이 큰 시련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앞으로 요셉이 나자렛의 성 요셉처럼 가정을 보호하는 우산이 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기적처럼 좋은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기도와 도움이 있었습니다. 교우들은 아이의 병원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성 어린 나눔을 하였습니다.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간호해야 했던 아이의 엄마를 위해서 음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이의 할머니는 한국에서 와서 아이와 함께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았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아이 엄마의 회사에서는 아이 엄마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매주 주보에 아이를 위한 기도를 공지하였고, 교우들은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아이의 부모에게 ‘성탄 미사’에 아이와 함께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부모도 성탄 미사에 함께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세례식을 준비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를 살리셨던 표징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는 죽지 않고, 자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탈리타쿰(일어나라.)’ 소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일어났습니다. 저도 아이를 위해서 ‘탈리타쿰’이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아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요즘 우리는 묵시록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재물과 권력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길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손이 둘인 것은 하나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남을 돕는 데 사용하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 발이 둘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눈이 둘인 것은 하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아름답게 보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 귀가 둘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어려움을 들어 주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재능과 능력은 본인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지만 그 반은 남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고, 손해 보는 일이 아님을 나무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뭇잎이 그렇게 가을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 인생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져야 하는 나뭇잎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떨어지는 걸 슬퍼하기보다 떨어지기 전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떨어지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이 참된 삶입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부활의 태양은 떠오르고 새봄 새잎이 또 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밤하늘은 별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들의 선행과 우리들의 봉사가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희망의 별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19,11-28
주님께서 그대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자주 지난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때로 주님 앞에 송구스러운 부끄럽고 초라한 인생이라는 자괴감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제 인생 여정 안에 스스로도 놀랄만한 반전과 성장도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가끔 신학교에서 동고동락했던 신부님들을 30년 40년 만에 만날 때가 있는데,
너무나 변해버린 제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젊은 시절 저는 마치 꿔다 논 보리 자루 마냥 존재감이 단 일도없이 지냈습니다.
누가 말을 붙여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늘 여기저기 아프고 비실비실하다 보니 관계 안에서나 공동체 안에서도 영향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완전 바뀌어버렸습니다.
약장수 저리 가라할정도로 말빨도 쎄졌습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적극성으로 똘똘 무장하고 있습니다.
제게 주어진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많았습니다.
비록 늦게 발견했지만, 죽기 살기로 계발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해보니,
부족하지만 참 좋은 결과물들을 얻었습니다.
사실 한 인간 존재가 환골탈태한다든지 개과천선한다는 것 벼락 맞는 일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원판을 완전히 바뀌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오는 은총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주님께서 큰 은총과 자비를 제게 베푸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다양한 유형의 고통과 시련, 셀 수도 없이 잦았던 바닥체험, 굽이굽이 지난했던
우여곡절을 겪게 하심으로 저를 부단히 거듭나게 하시고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눈물나게 감사한 고통의 신비입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 한결같이 변함없는 것도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게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의미의 한결같음이 아니라면 진지하고 심각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와 흡사한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열매 맺는 삶, 성장하는 삶의 소중함을 강조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의 선물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데,
우리는 그것들을 얼마나 귀히 여기고, 더 성장시키고, 주님과 이웃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고 있는지
잘 한번 살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믿는 이’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불신한 이’는 불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겨울의 길목입니다.
바퀴를 달고 달아나는 가을의 뒷모습이 을씨년스럽고, 길가에 군데군데 몰아다 놓은 가을의 노고, 가을의 땀방울이 쓸쓸합니다.
그런데 잎이 떨어지고 꽃도 떨어지고 벌거숭이로 알몸이 되면, 그 나무가 속이 꽉 찬 나무인지 속 텅 빈 나무인지가 훤히 드러나 보입니다.
이 초겨울 우리의 몸을 치장하고 있던 가식과 허영의 옷들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인 '미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에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선물이요 은총임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과업과 소명이 주어집니다.
선물인 ‘미나’는 주인이 ‘벌이를 하라고 맡긴 것’(루카 19,13 참조)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주인은 돌아오면 그 소명을 실현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심판을 하게 됩니다.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으러 먼 고장으로 떠난 어떤 귀족’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시 돌아옴’은 재림과 종말을 암시해줍니다.
이 비유는 겉보기에는 마치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결과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핵심은 결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결심을 많이 맺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결실을 내는 나무’가 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곧 결실을 통해서 나무의 본질을 보는 데 있습니다.
결국 어떤 나무가 결실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열매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착한 종’은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성실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악한 종’은 주인에 대해서 '냉혹한 분이어서 가져다놓지 않는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는 것을 거두어 가시는 분'(루카 19,23)으로 여겼기에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낳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과 맺는 관계성’에 있습니다.
곧 주인에 대한 믿음과 순명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믿는 이’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불신한 이’는 불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가꾸어야 하고, 우리의 행실을 ‘순명’으로 채워나가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선물’을 악용하거나 혹은 자신의 안정과 보존에만 머물지 말고, 선으로 활용하고 충실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선물’(미나)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간직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에 충실하고 있는지,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활동하신 분의 힘을 믿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순명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루카 19,13)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19.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묵시3,1-6.14-22 루카19,1-10
행복하여라
주님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
우리를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사랑의 하느님!
오늘은 이런저런 감동스런 일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일어나는 감동스런 사건을 발견합니다.
너무나 감동을 잊고,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감동도 능력입니다.
정말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이, 사랑의 사람들이 감동합니다.
무엇보다 찾고 키워야 할 감동의 능력입니다.
“수사님! 여자 손님 화장실이 크게 막혀 엉망입니다!
가능한 속히 손봐줘야 하겠습니다! 너무 불편하고 혐오스럽습니다! 속히 급합니다!”
끝기도후 화장실에 들리자 마자 수도형제에게 긴급 메시지를 발송했고 새벽 잠깨어 열어보니 오후8:30,
“되었습니다!”
답신 메시지가 도착했었고 신속한 조치에 감동했습니다.
늘 감동을 선사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수도형제입니다.
제 주변에는 감동을 선사하는 좋은 분들이 참 많습니다.
순수할 때 아름답고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우리를 정화합니다.
없는 돈, 없는 시간을 내어 꽃을 사들고 허리에 파스를 붙인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바람같이 수도원에 들려
꽃꽂이를 한 자매 역시 멧시지와 더불어 은은한 향기같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세상사 복잡하여 오늘 꽃시장에 들려 꽃을 삽니다. 마음이 험악하여 지기전에 다스려봅니다.”
옛 어른의 지혜도 우리에게 깨달음과 더불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살아가는데 급급해진다.
그러니 삶이 사납게 닥쳐올수록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다산>
다산 정약용 역시 감동의 현자입니다.
생각하는대로 살지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정말 깊이 공부하고 생각하여 스스로 분별의 지혜를,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굶주린 자는 달게 먹고, 목마른 자는 달게 마신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본래 맛을 가리기 때문이다.”<맹자>
진리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진정 행복합니다. 진리이신 주님맛을 비로소 알겠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5)란
주님 말씀이 귓전에 생생합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연중33주간 동안의 수도원 연피정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만추의 단풍과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고요와 침묵의 분위기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어제는 온종일 ‘감동’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만 생각하다가 후에 소스라친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바로 우리를 끊임없이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하느님을 잊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복음의 아름다운 예수님을 통해 얼마나 우리를 감동시키는지요!
감동의 하느님을 닮을수록 우리 또한 감동의 사람이 됩니다.
어제 하루는 19년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생각을 하며 많이 감동하고 회개한 날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평생 일상이 감동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서야 깨닫고 감동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한번도 매든 적 없고, 한번도 화낸 적 없고, 한번도 아버지와 싸우거나 다투거나 하는 것을
본 적도 없습니다.
삶이 고단한 탓이었던지 어머니 얼굴에 웃음은 거의 없었고 삶자체가 고요한 순종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쩌다 아버지와 다툴 때 보면 어머니는 안방에서 아버지는 윗방에서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싸웠습니다.
험악하게 다투거나 싸우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가정폭력은 한번도 목격하지 못한 두분은 참 지혜롭고 인내심 많고 젊잖은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부족했어도 어머니는 절대 아버지에 대해 늘 두둔하셨지 부정적으로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지금 생각하건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며 신뢰했던 것입니다.
간혹 제가 아버지에 대해 불평하면 “네가 아버지없이 어디서 나왔느냐?”한 마디로 저의 입을 닫았습니다.
지금서야 어머니의 한없이 강인하며 부드럽고 깊고 고요한 마음을, 사랑과 지혜를 깨닫고 감동합니다.
성경은 주님을 감동시킨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의 일화로 가득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가난한 과부의 기도가 주님을 감동시켰고, 어제는 눈먼 걸인의 간절한 갈망이,
오늘 복음에서는 자캐오의 기발한 행동의 연속이 주님은 물론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습니다.
이런 감동이 저절로 회개로 이끕니다.
참으로 주님은 물론 우리를 즐겁고 행복한 감동에 젖게 하는 자캐오입니다.
복음의 정수요 요약같은 오늘 주님과 자캐오의 만남입니다.
자캐오뿐 아니라 예수님의 아름다운 사랑도 우리를 감동하게 합니다.
사실 시편들은 거의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에 감동한 시인들이 들려준 노래들입니다.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 사랑에 감동을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은혜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것도 배우고 훈련하고 습관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넘어 자캐오의 순수한 아름다운 행위에 감동한 주님은
돌무화과나무위에서 자기를 보고 있는 자캐오를 쳐다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정말 전무후무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정말 이심전심 두분간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마음과 마음의, 눈길과 눈빛의 만남입니다.
이어지는 두 분간의 대화는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이니 환대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이런 자캐오처럼 기쁘게 환대의 사랑으로 미사중 주님을 마음 깊이 모셔야 함을 배웁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 군.” 투덜 거리는 참 딱한 철부지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한 자캐오는 환대의 사랑에 이어 재산을 아낌없이 나눌 것을 선언하니
회개의 진정성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의 회개에 감동한 주님의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엄한 구원의 선언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자캐오는 물론 예수님이,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이 우리에게 끝없는, 한량없는 기쁨의 감동을,
아름다운 감동을, 구원의 감동을 선사합니다.
자캐오에 감동한 예수님이요 예수님께 감동한 자캐오입니다.
주님께 참으로 본능적으로 기민하게 응답한 자캐오는 참 행복한 은총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묵시록의 주님의 초대에 참으로 멋지게 응답한 자캐오요 우리 모두 자캐오처럼 회개의 응답으로 실현되는
축복의 미사잔치임을 깨닫습니다.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바꿔주는 주님의 참 아름다운 감동의 미사잔치 은총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3,20). 아멘.
11/20(수) [(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낙엽이 떨어지는 걸 슬퍼하기보다 떨어지기 전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떨어지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이 참된 삶입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부활의 태양은 떠오르고 새봄 새잎이 또 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밤하늘은 별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들의 선행과 우리들의 봉사가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희망의 별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와 흡사한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열매 맺는 삶, 성장하는 삶의 소중함을 강조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의 선물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데,
우리는 그것들을 얼마나 귀히 여기고, 더 성장시키고, 주님과 이웃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고 있는지
잘 한번 살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선물’(미나)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간직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에 충실하고 있는지,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활동하신 분의 힘을 믿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순명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루카 19,13)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이니 환대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이런 자캐오처럼 기쁘게 환대의 사랑으로 미사중 주님을 마음 깊이 모셔야 함을 배웁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 군.” 투덜 거리는 참 딱한 철부지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한 자캐오는 환대의 사랑에 이어 재산을 아낌없이 나눌 것을 선언하니
회개의 진정성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의 회개에 감동한 주님의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엄한 구원의 선언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이수철 신부)
11/20(수) [(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 152-22 기도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루카 19,13)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20일(수) 7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