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3월 6일 목요일[(자)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5. 3. 6. 05:59

[매묵]2025년 3월 6일 목요일[(자)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55(54),17-20.23 참조
주님께 부르짖으면, 그분은 내 목소리 들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대적하여도 나를 구하시리라. 너의 근심 걱정 주님께 맡겨라.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본기도

주님,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치고 도와주시어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마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신명 11,26)>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30,15-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20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마태 4,17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거룩한 제대에 봉헌하는 이 제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 제물이 주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51(50),12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천상 선물을 받고 간절히 비오니
이 선물이 언제나 저희에게 용서와 구원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백성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알려 주시니
그 길을 통하여 불멸의 빛이신 하느님께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오늘은 죄와 벌이라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이 주제는 성경에서도 깊이 다루고 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먼저, 죄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는 죄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그리고 인간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행위라고 가르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순간, 두려움과 수치심 속에 숨어버립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죄는 우리를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게 만들고, 우리 안에 불안을 심어 놓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도 죄의 본질과 그 결과가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가난한 노파를 살해합니다. 그는 자신이 위대한 인간이라면 법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살인을 저지른 후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이 법적 처벌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과 내면의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우리를 절망에 빠뜨린다는 사실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끝내 자신의 죄를 숨기고 싶어 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소냐를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소냐는 그에게 십자가를 건네며 이렇게 말합니다.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회개하세요. 그러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돌로 치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고 떠나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시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절대로 쉽지는 않습니다. 라스콜니코프 역시 쉽게 자백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자기 합리화를 하며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법적 처벌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도 때때로 라스콜니코프처럼 죄를 짓고, 후회하고, 숨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정한 회개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이 있지는 않은가요? 혹시 하느님 앞에서 숨고 싶었던 순간이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십니다. 죄는 우리를 짓누르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가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회개의 길로 나아가고,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년 다해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루카 9,22-25

 

순교는 십자가의 크기가 아닌 꾸준함에 있다 

 

하퍼 리(Harper Lee)는 젊은 나이에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라는 위대한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작품은 1960년에 출판되어, 그해 퓰리처상을 받으며

문학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약 50년 동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하퍼 리가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된 이유는

그녀 자신이 그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부담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퍼 리는 그녀의 출판사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앵무새 죽이기’로 인생의 목표를

이룬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거릿 미첼(Sherman Mitchell)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라는 역사적인 소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 책은 1936년에 발표되어,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첼의 첫 번째 소설은 결국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녀는 문학계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도 역시 그 이후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완벽주의는 열등감에서 옵니다.

더는 좌절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최고의 위치에서 또 다른 책을 썼다가 평이 좋지 않고

팔리지 않으면 자기 위치를 잃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 자존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반드시” 고난을 겪고 죽은 후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단지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함께 따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저도 사제가 되라는 주님의 뜻이 있었지만, 따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결혼 안 하고

산다는 게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자매와 산 정자에 앉았을 때 오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 말씀으로 십자가가 나에게 불가능한 무엇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무엇으로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바로 “매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평생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힘들지만,

하루하루로 생각하면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여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이 느끼는 신혼부부라도 어떤 한 사람이 여행 가서

일주일 떨어져 있는다고 상사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순교 또한 내가 얼마나 큰 크기의 십자가를 지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오늘 하루만 버틸 수 있느냐로 다다를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고문과 박해를 생각하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산입니다.

그러나 한 발짝씩 올라간다면 언젠가는 그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명작을 낸 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후속작을 쓴 대표적인 작가로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와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등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로 1939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 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써 나갔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영감을 받았다기보다는

매일 글쓰는 습관과 끈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타인벡은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글쓰기는 ‘영감’이 떠오를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과 일관성에서 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말 중 하나는 “영감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앉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쓸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떠오른다.”라고 했습니다. ‘분노의 포도’는 1939년 작품이고

‘에덴의 동쪽’은 1952년 작품입니다. 이 밖에도 그의 작품은 10권이 넘습니다. 

 

장사와 요리의 한국 대표적 전문가인 백종원 대표도 많은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수익은 빽다방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10개 중 1개만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자세입니다. 

 

인도에 아내의 죽음 때문에 평생 산을 깨서 길을 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삶이 영화로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사순을 시작하는 지금 그분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술과 담배를 끊겠어?’,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단것을

먹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나 오늘 하루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안 되면 한 시간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광야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사셨을 것이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40일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도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활’의 희망으로 합니다.

그런데 하루만이라도 십자가를 지고 나면 부활의 기쁨이 마지막 때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십자가에도 부활의 기쁨이 벌써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책을 한 줄 썼을 때 이미 완성된 명작의 희망이 주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그다음 날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평생 지어야 할 십자가는 잠시만 보고

오늘 당장 지어야 할 십자가만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3. 이영근 신부님

 

2025년 다해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생명의 길>

 

오늘, ‘재의 수요일’ 후 첫 번째 날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 수난을 예고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 곧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루카 9,22)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일어날 일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반드시'(<이백주년성서>; '마땅히')라는 단어는 이 모든 것이 필연성이나 당위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많은 고난을 겪는' 일이요, '배척을 받아 죽는' 일이요,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수동형으로 표현되어 하느님의 권능이 개입할 것임을 시사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당신을 따르는 길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만, 세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곧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과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과 이를 '날마다' 지속적으로 지는 일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의 ‘제 십자가 지고’에 대해서만 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곧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떠올리는 ‘신약의 십자가’ 이전에 있었던 ‘십자가’, 곧 ‘구약의 십자가’란 대체 무엇을 말할까요? 

구약에서 ‘십자가’(타브)는 ‘계약의 표’로서 소유, 선택을 나타내는 동시에, ‘구원의 표’로 주어졌으며
(에제 9,4.6.), 주님을 따르는 ‘하느님의 종’과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에게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레위기>(25,55)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종들’이라 칭하며, <탈출기>(19,6)에서는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또 하느님의 제사장으로서, ‘계약’을 ‘구원의 표시’로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계약'을 지키는 것이며, 하느님의 소유로 선택되어 거룩한 백성의 삶을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당신을 따르는 이’는 ‘계약’을 짊어지고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 됩니다.

곧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카 9,24)

이러한 결단은 제1독서에서 생명의 길로 이렇게 제시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신명 30,20)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사랑으로 그분께 매달려 있고, 생명의 길을 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루카 9,22)

 

주님!

배척을 받는 고통을 받을 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로부터도 배척받을 줄을 알게 하소서.

몰이해와 곡해, 오해를 받아 견딜 줄 알게 하소서.

마침내는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도 받아들일 줄을 알게 하소서.

순명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야하는 길이기에, 사랑으로 흔연히 배척받을 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5.재의 수요일                                                        요엘2,12-18 2코린5,20-6,2 마태6,1-6.16-18

 

                                               사순절동안 해야 할 일

                                                   “회개, 화해, 재계”

 

“하느님, 

 자비하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시오니 내 죄를 없이하소서.”(시편51,3)

 

오늘 재의 수요일부터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삶을 재정비하여 심신을 새롭게 하는 특별한 영적수행의 시기가 참 고맙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사순절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여 당신의 수도승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줍니다.

 

“사순절 동안에 모든 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들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통회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자는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자기에게 정해진 분량 이상의 어떤 것을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바칠 것이다.

즉,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

 

절대로 우울하고 어둔 분위기에서 사순절을 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수행생활에 힘쓰고, 영적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리며 사순절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규칙서에 ‘기쁨(gaudio;joy)’이란 말마디도 오직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라는 제49장에서 단 2회 나옴이

주목됩니다.

 

어제 참 기쁘게도 1989년 1월27일 부제품을 받고 이어 2월8일, 그러니까 36년전 재의 수요일에

최초로 한 강론을 찾아 냈습니다.

1989년 다해 재의 수요일은 오늘 3월5일보다 거의 한달 앞섬이 참 신기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강론중 서두 부분을, 그리고 끝에서는 마지막 부분을 인용합니다.

 

“어느 수도승이 평생동안 하느님을 찾았지만,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야 비로소 그는 줄곧 하느님이

그를 찾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흔히 수도승을 일컬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라 하는데 ‘사람을 찾는 하느님’을 잊을 때

위 수도승처럼 죽을 때까지 하느님을 찾다가 인생 마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의 하느님은 철저히 사람을 찾아 나서시는, 돌아오라 목메어 부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여기까지 첫부분입니다.

사순절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드러납니다.

 

첫째, “회개하라!”입니다.

요엘 예언자의 외침이 참 간절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그대로 사순절을 시작하며 재의 수요일 미사집회에 참석한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습니다.

사순절이야말로 회개의 시기입니다.

아니 그리스도교야 말로 ‘회개의 종교’라해도 무방합니다.

평생 ‘회개의 여정’중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회개와 함께가는 겸손과 지혜의 삶입니다.

 

둘째, “화해하라!”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화해하라는 권고가 교회 어른들의 말씀처럼 참 간절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사순절 하루하루 오늘 지금이 바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매우 은혜로운 때이자,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세계적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음과 화해하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회개와 더불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할 때 모두와 화해할 수 있는 사랑도 힘도 주어집니다.

 

셋째, “재계(齋戒)하라!”입니다.

부정한 일을 멀리하고 심신을 깨끗이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이 여기에 해당되겠지만 교회는 전통적으로 자선과 기도, 단식을 권합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은 아침 단식이 있고 십자가의 길 기도도 있습니다.

셋 모두가 자발적 사랑과 자유, 비움과 소통의 표현입니다. 

 

인위적 과시나 자기자랑이 없는, 하느님 중심의 모두에게 숨겨진,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는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겸손한 재계이자 수행인 자선, 기도, 단식입니다.

자선을 통해 이웃과의 소통과 나눔이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소통과 나눔, 그리고 단식을 통해

이기적 나를 비워 나와의 소통이요 나눔입니다.

모두가 회개의 열매이자 화해의 증거입니다. 

 

이런 자발적 사랑과 자유의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봉헌이요 전통적 재계인 이들은

회개와 화해의 진정성을 보장합니다.

주님은 매 수행의 재계마다 못을 박듯이 후렴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바로 이런 주님과 내적일치를 이루는 순수하고 한결같은 믿음이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겸손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이어 36년전 재의 수요일 미사시 첫 강론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강론후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사제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인생무상이 아닌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나약한 인간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 안에서 “나에게 돌아오라.”는 주님의 호소를 들어야 합니다.

 

사순절은 주님께 돌아와 화해하는 시기이자, 부활의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축일에 우리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와 화해, 재계의 삶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사순절 동안 내내 마음에 담고 사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6,2). 아멘.


3/6(목) [(자)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죄는 우리를 짓누르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가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회개의 길로 나아가고,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조재형 신부)

 

2. 인도에 아내의 죽음 때문에 평생 산을 깨서 길을 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삶이 영화로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사순을 시작하는 지금 그분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술과 담배를 끊겠어?’,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단것을

먹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나 오늘 하루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안 되면 한 시간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광야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사셨을 것이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40일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도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활’의 희망으로 합니다.

그런데 하루만이라도 십자가를 지고 나면 부활의 기쁨이 마지막 때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십자가에도 부활의 기쁨이 벌써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루카 9,22)

 

주님!

배척을 받는 고통을 받을 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로부터도 배척받을 줄을 알게 하소서.

몰이해와 곡해, 오해를 받아 견딜 줄 알게 하소서.

마침내는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도 받아들일 줄을 알게 하소서.

순명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야하는 길이기에, 사랑으로 흔연히 배척받을 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겸손한 재계이자 수행인 자선, 기도, 단식입니다.

자선을 통해 이웃과의 소통과 나눔이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소통과 나눔, 그리고 단식을 통해

이기적 나를 비워 나와의 소통이요 나눔입니다.

모두가 회개의 열매이자 화해의 증거입니다. (이수철 신부)

 

3/6(목) [(자)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루카 9,22)

 

주님!

배척을 받는 고통을 받을 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로부터도 배척받을 줄을 알게 하소서.

몰이해와 곡해, 오해를 받아 견딜 줄 알게 하소서.

마침내는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도 받아들일 줄을 알게 하소서.

순명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야하는 길이기에, 사랑으로 흔연히 배척받을 줄 알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6일(목) 5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