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4월 15일 화요일[(자) 성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5. 4. 15. 08:18

[매묵]2025년 4월 15일 화요일[(자) 성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27(26),12 참조
주님, 박해하는 적에게 저를 넘기지 마소서. 거짓 증인들이 저를 거슬러 일어나 사악한 거짓을 내뱉나이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주님 수난의 성사에 끝까지 함께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1(70),1-2.3과 4ㄱㄷ.5-6ㄱㄴ.15ㄴㄷ과 17(◎ 15ㄴㄷ참조)
◎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저희 임금님, 경배하나이다. 당신은 아버지께 순종하셨나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시나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저희가 이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2 : 수난의 승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이 가까이 왔나이다.
옛 원수의 교만을 꺾어 승리한 구원의 성사를
새롭게 거행하는 축제가 다가왔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로마 8,32 참조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 친아드님마저 아낌없이 내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자비를 간청하오니
현세에서 저희를 길러 주는 이 성사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옛 사람이 매여 있던 온갖 올가미에서 벗어나
새사람에 어울리는 거룩함을 지니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주간 화요일

 

사도회, 목수회 형제님들과 작업을 했습니다. 작업 내용은 성당 에어컨 필터 교체와 나무 심기였습니다. 성당 옥상에는 에어컨을 가동하는 설비가 있습니다. 81개의 필터를 교체했습니다. 1년에 2번 교체해야 합니다. 작년 8월에 교체했는데, 이번에 보니 필터가 모두 검게 변했습니다. 6개월 동안 역할을 다했습니다. 눈처럼 하얀 새 필터를 갈아 주니 마음도 상쾌했습니다. 필터를 갈면서 판공성사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1년에 2번 판공성사를 통해서 마음의 필터를 교체해 줍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자비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에어컨 필터를 교체하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전기 사용료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판공성사를 보면 주님의 탄생과 부활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고, 죄를 용서받는 은총을 받으니 좋습니다. 이제 곧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아직도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에 하지라는 이유로 마음의 필터를 바꾸지 않았다면, 판공성사를 통해서 주님의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형제님들과 4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나무를 심기 위해서 먼저 땅을 팠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땅을 판 후에는 물을 담았습니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면, 나무를 심고, 거름을 주었습니다. 아직 어린나무이기에 버팀목을 해 주었습니다. 나무를 심으면서 사순시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재의 수요일부터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고통에 함께하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4가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고난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둘째는 단식입니다.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굶주리고, 지금 가난하고, 지금 헐벗은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셋째는 희생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따르는 것이 희생입니다. 화려하게 피는 꽃에는 땅속 깊이 양분을 찾아내는 뿌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넷째는 자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 주어라.” 그렇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사순시기에 우리는 기도의 땅을 파고, 단식의 물을 주고, 희생의 거름을 주고, 자선의 버팀목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누가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을까요?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는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고 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린 베로니카가 있습니다.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레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충실하게 따라갔던 이들이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유다의 삶이 전혀 달라졌음을 알게 됩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였으며 또한 희망을 버렸습니다. 희망을 버렸던 유다는 용서받을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유다는 쓸쓸하게 자신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유다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베드로는 절망을 버렸습니다. 마음 안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완벽하게, 깨끗하게 살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과 허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잘못과 허물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정화해 주시는 하느님께로 우리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또한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주간 화요일

이사야 49,1-6    요한 13,21ㄴ-33.36-38

 

서글프고 슬프기 짝이 없는 최후의 만찬!

 

성 목요일 다락방에서 거행된 최후의 만찬 석상의 광경이 참으로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합니다.

동시에 무척이나 서글프고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꿰뚫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의 종착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 결말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참하며 고독할 것인지를.

동시에 그분께서는 혼란스럽고 긴박한 상황 앞에서 제자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있었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당신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데, 그 순간 보여준 제자들의 모습이 천태만상입니다.

 

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 그는 예수님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을 향한 사랑이 컸던 만큼 그는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을 것입니다.

이제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조금은 난감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산란한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기 위한 동작이 아니었을까, 추론해봅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②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 그는 수제자 베드로, 애제자 요한, 넘버 쓰리 야고보 사도와 함께

제자단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었던 핵심 제자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제자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고, 계산도 척척 잘 해내고,

관리 능력도 탁월한 유다를 재정 책임자로 임명하는데 다들 동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초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졌고, 더 이상 이곳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떠나기를 결심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의 속마음을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그의 자유 의지와 결정을 존중해주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회심을 기다리며 새출발의 가능성을 열어두셨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③ 시몬 베드로: 시몬 베드로는 수제자였습니다.

제자단을 이끌면서 막중한 책임감으로 인한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공약도 남발하고, 이룰 수 없는 헛된 맹세도 자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비록 순식간에 깨어질 약속이라 할지라도, 잠시나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는 수제자로서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신 사람이었으며, 가장 큰 사랑과 관심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살 떨리는 수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기 일보 직전인데,

그 누구도 당신께서 겪으셔야 할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위로와 격려를 드리기는커녕 배반하고, 엉뚱한 말을 해대고 있으니,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사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초능력자셨습니다.

마음 한번 바꿔먹으면 그 비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판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열렬한 기도와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일치 안에서 끝까지 침묵하시고 인내하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순명하시며 묵묵히 그 외롭고 슬픈 길을 천천히 걸어가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 피정센타 이야기


3. 이영근신부님 강론


성주간 화요일
이사야 49,1-6    요한 13,21ㄴ-33.36-38


<유다의 밤, 베드로의 밤>


우리는 성삼일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절망과 어둠이 더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빛으로부터 떠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밤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배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밤이요, 또 하나는 베드로의 밤입니다. 
유다의 밤은 캄캄한 어둠이 짙어져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닭이 울기 전, 새벽이 밝아져오는 밤입니다. 

유다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이 제자들을 덮치자,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놓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요한 13,21)

사실 예수님께서는 배반하는 제자를 마지막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빵을 적셔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빵을 적셔서 주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신을 배반할 제자에게 끝까지 베푸는 충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랑을 등지고서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면밀히 계획한 바를 어둠 속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할 의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순간에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닭이 울면 어둠은 밝아질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넘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넘어질 때는 가장 약할 때가 아니라 가장 강할 때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해질 것입니다(2고린 12,10). 

그렇습니다. 

유다의 밤은 어둠과 악으로부터 오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약함과 과신으로부터 오는 밤입니다. 


유다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도 더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어 멸망으로 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는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베드로같이, 유다같이 곧잘 넘어집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넘어지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일어서는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혹 넘어진 사실을 까달아 알고 뉘우치고 성사를 본다고 해도, 일어선 사람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넘어진 채로 넘어진 자신을 본 것일 뿐, 비록 용서는 받았다 할지라도 일어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일어서서 넘어졌던 자신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빛 속으로 건너와서 어둠을 바라보아야 할 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일어선 자만이 빛나는 새벽을 만날 것이요, 일어선 자만이 빛 속에 들 것입니다. 
먼저 베풀어진 그분의 사랑을 만난 자만이 그분의 빛 속을 걸을 것입니다. 

하오니, 빛이신 주님! 

저를 비추소서! 
제가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오늘 제가 비록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어 주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하여, 이제는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리이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025.4.14.성주간 월요일                                                                           

 이사42,1-7 요한12,1-11

 

사랑의 관상, 사랑의 환대

“마리아처럼 삽시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오늘 화답송 시편이 위로와 힘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음 편히 찾았던 집이 ‘베타니아의 집’입니다.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삼남매가 예수님의 각별한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듯 싶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서 예수님을 환대하는 마리아의 사랑이 참 아름다운 한 폭의그림 같습니다.

환대의 표현에서, 활동가 답게 마르타는 주님께 사랑의 시중을 들고 관상가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부음으로

절정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누구보다 주님의 진면목을 깊이 꿰뚫어 통찰한 마리아임이 분명합니다.

 

바로 성주간 월요일,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한 주님의 종, 예수님을 만납니다.

초대 교회 신도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을 예수님으로 인식했음이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신뢰와 사랑을 온몸에 받았던 주님의 종, 예수님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이어지는 주님의 종에 대한 묘사가 그대로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들이 깊이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할 주님의 섬세하고 자비로운 관상가의 면모입니다.

시끄럽지 않고 요란하지 않은 사랑의 관상가, 주님의 종 예수님입니다.

이런 주님의 관상적 면모를 닮은 복음의 마리아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이 없이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얼마나 매력적인 관상가 예수님의 면모인지요! 복음의 마리아는 이런 주님의 면모에 깊이 감화받았기에

아낌없는 사랑을 표현합니다.

주님의 종에 대한 다음 설명이 예수님의 사명 수행을 통해 발휘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여기서 친히 말씀하시는 분은 다음과 같은 하느님입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불어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늘날의 불행은 바로 이런 하느님을 잊음에서 기인합니다. 새삼 창조주 하느님 사랑을 믿고 체험하고

배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특별 사명을 부여받은 주님의 종은 그대로 예수님입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인간 무지와 무명에 대한 궁극의 답은 이런 예수님뿐입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하느님을 떠나 무지로 인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요,

무지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무지의 감옥에서 수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무지의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같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만나, 주님 안에서 살아야 비로소 참 자유인이 됩니다. 

 

역설적으로 문명의 야만시대요 날로 내면의 어둠이 짙어지는 대혼돈의 시대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이 구원하는 희망입니다.

완전히 하느님을 잊은, 잃은 시대 같습니다. 마리아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무지에서 벗어난 빛의 관상가,

사랑의 관상가, 희망의 관상가입니다. 빛이신 주님을 환대하는 마리아의 환대의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을 측근에 모시고 있던 유다 이스카리옷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다음 환대의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의 묘사가 참 아름답습니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항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그대로 향유 냄새는 마리아의 존재의 향기, 사랑의 향기, 겸손의 향기, 영혼의 향기를 상징합니다.

미사를 봉헌하는 성전안 분위기도 우리의 이런 내면의 향기로, 봉헌의 향기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난을 선물한 어느 분께 드린 ‘난같은 당신’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당신

 존재의 향기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향기롭고

 평화로운

 난같은 당신입니다”<1998.3.31.>

 

오늘 복음의 마리아에게 드리고 싶은 헌시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주님께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됐을 마리아의 전적 사랑의 봉헌입니다.

마리아의 봉헌에 대한 유다의 반응이 그대로 유다의 생각을 반영합니다.

무엇보다 유다는 주님께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유다는 분명 인색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예수님도 어느 정도는 예감하셨을 것입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써야할 때 써야 하는 돈입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아오스팅 성인의 말도 생각납니다.

판단의 잣대는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마리아의 사랑에 감격하신 주님은 마리아를 적극 두둔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내 사랑하는 마리아를 제발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늘 곁에 있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의 사랑과 더불어, 주님의 결정적인 때를 대비하여

늘 비상용 사랑의 향유를 보관해야 함을 배웁니다.

늘 주님을 맞이할 환대의 사랑을 지니고 준비된 삶을 삽시다.

날마다 주님을 환대하는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마리아처럼 환대의 사랑,

관상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27,14).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4/15(화) [(자) 성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완벽하게, 깨끗하게 살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과 허물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잘못과 허물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정화해 주시는 하느님께로 우리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또한 민족들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조재형 신부)

 

2. 사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초능력자셨습니다.

마음 한번 바꿔먹으면 그 비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판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열렬한 기도와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일치 안에서 끝까지 침묵하시고 인내하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순명하시며 묵묵히 그 외롭고 슬픈 길을 천천히 걸어가십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어 주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하여, 이제는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리이다.
아멘.(이영근 신부)

4.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써야할 때 써야 하는 돈입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아오스팅 성인의 말도 생각납니다.

판단의 잣대는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마리아의 사랑에 감격하신 주님은 마리아를 적극 두둔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내 사랑하는 마리아를 제발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이수철 신부)

 

 

4/15(화) [(자) 성주간 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어 주소서.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하여, 이제는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아 빛을 밝히리이다.
아멘.

- 2025년 4월15일(화) 8시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