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4월 25일 금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5. 4. 25. 05:49

[매묵]2025년 4월 25일 금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78(77),53 참조
주님은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이끄시고, 그 적들을 바다에 빠뜨리셨네.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로 인류와 화해의 새 계약을 맺으셨으니
저희가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1-12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8(117),1-2와 4.22-24.25-27ㄱㄴ(◎ 22)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 주님,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주님, 번영을 이루어 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너희에게 축복하노라.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시편 118(117),24
◎ 알렐루야.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파스카 예물로 거룩한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저희가 세상의 온갖 욕망에서 벗어나 하늘의 기쁨을 찾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21,12-13 참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와서 먹어라.” 하시며,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파견

<부제 또는 사제가 백성을 향하여 말한다.>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오늘 아침 산책을 하면서 저는 참 많은 걸 느꼈습니다. 그동안은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연한 연둣빛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참 밝고, 참 생기 있게 울려 퍼지는 걸 듣습니다. , 이게 바로 자연이 부활하신 주님을 축하하는 방식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일기예보를 보고, 아침 산책의 옷차림을 정합니다. 기온이 50도 아래면 따뜻하게 입고, 60도 이상이면 가볍게 옷을 입습니다. 비가 온다고 하면 우비를 챙기고, 신발도 방수되는 걸 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을 보고 날씨를 예측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표는 읽지 못하느냐?" 날씨는 그렇게 잘 읽으면서, 정작 하느님의 움직임, 주님의 현존, 그리고 부활의 기쁨은 왜 못 느끼냐는 말씀입니다. 부부의 관계에도 배우자는 끊임없이 상대에게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서로 그 마음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부부의 관계는 화목해지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사실 부활이라는 것은 신약에서 갑자기 생긴 개념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도 하느님은 계속해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는 출애굽 사건, 그것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부활의 상징입니다. 홍해를 건넌 그 길은, 어찌 보면 세례를 예고하는 부활의 길이었고, 광야 40년의 여정은 죽은 듯한 시간을 지나 약속된 땅이라는 새 생명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또한, 에제키엘서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 환시가 있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 움직이고 다시 군대처럼 일어섰다." 하느님의 숨결, ‘루아흐가 불어오자 죽음이 생명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징표입니다. 절망을 넘어선 희망, 그것이 구약이 말하는 부활의 예고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부활의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그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라.”

 

이런 부활의 징표는 단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 속에서도 인간은 죽음에서 삶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이야기들을 써왔습니다. 예를 들면,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는 과거에 죄를 지은 한 귀족 남성이 양심의 소리에 따라 삶을 돌이키고, 한 여인을 통하여 자신을 정화해 갑니다. 그의 변화가 바로 부활입니다. 죄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아서는 것. 회개의 삶이 부활입니다. 또한 단테의 신곡에서도 지옥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출발해, 연옥을 지나 천국에 이르는 여정은 어찌 보면 영혼의 부활입니다.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여정,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겪는 부활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첫 문장처럼, “그레고르는,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끔찍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문장이지만, 그 이야기의 깊은 곳엔 오히려 내면의 부활이 숨어 있습니다.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한 이후, 가족에게 버림받고, 방에 갇혀 점점 말라가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죽음 이후, 그의 가족은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희망을 품기 시작합니다. 부활은 육체적인 변화보다도, 관계의 회복, 사랑의 눈뜨임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배의 왼쪽은 성공, 명예, 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쪽으로 그물을 던지면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공, 명예, 권력을 향해 그물을 던지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쪽에서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물이 찢기고, 자칫 배가 침몰하기도 합니다. 배의 오른쪽은 헌신, 나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쪽으로 그물을 던지면 많은 것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를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희망과 믿음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질 때 우리 신앙의 등급은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물을 배 왼쪽으로 던질 때 우리 신앙의 등급은 낮아질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부활은 2000년 전 어느 무덤에서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삶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기적입니다. 우리는 그 징표를 읽고, 느끼고,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밖으로 나가 작은 징표들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그 속에서 주님이 어떻게 살아계시는지, 어떻게 나를 살려내시는지를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이들의 삶입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복음요한 21,1-14 

 

예수님, 편히 앉으세요! 여기, 제 몸과 마음을 당신의 집이라 여기세요!

 

시성을 앞둔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의 생애와 영성이 참으로 특별합니다.

그는 불과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깊은 성체 신심을 소유한 청소년 성인으로서

또래 청소년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카를로에게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하자고 초대했습니다. 저 같았으면, 이게 왠 떡이냐, 하며

기뻐했을 텐데, 그는 이렇게 대답하며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밀라노에 머무르는 것이 좋겠어요. 왜냐하면 성당에 가면 감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데, 굳이 예루살렘까지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거든요.”

 

보십시오. 이 깊은 카를로의 성체 신심을. 그는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2000년 전의 군중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며 찾아야 했지만, 우리는 집 근처 성당에 내려가기만 하면

성체성사 안에 실제로 계신 에수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카를로는 신자들이 성체성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많이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미사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만약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성체와 성혈로 내어 주셨다는 이 엄청난 축복을 깨닫는다면,

매일 성당에 가서 이 거룩한 희생 제사에 참여하고, 불필요한 많은 것을 기꺼이 포기하게 될 것이에요.”

 

카를로는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편히 앉으세요! 여기, 제 몸과 마음을 당신의 집이라 여기세요!”

 

그리고 카를로는 성체성사에 대한 자신의 영성을 딱 한 마디로 간결하게 요약했습니다.

 

“매일 성체성사에 참여하면 우리는 바로 천국으로 향합니다.

제게 있어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입니다.”(이진옥, ‘내 친구 카를로 아쿠티스, 살레시오 가족, 참조)

 

부활 팔부 축제 기간 내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새로운 현존 방식으로 나타나십니다.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했던 특별한 부활 사건이었기에,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의구심은 여전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예수님은 두 번 세 번 계속 발현하셔서, 당신 부활이 뜬 소문이나 가짜 뉴스가 아니라

실제임을 보여주십니다.

직접 제자들을 향한 아침 식탁을 차리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도 잡수시며,

부활 후에도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임을 확증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어디서 만나뵐 수 있을까요?

복자 카를로 청소년의 영성에 따르면 너무나 쉽습니다. 바로 매일의 성체성사입니다.

매일 미사 안에 우리는 부활 예수님을 만나뵐 수 있습니다.

미사 안에서 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미사를 통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멀리 있지 않고, 늘 우리 안에 굳건히 현존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른 것은 와서 ‘사랑을 받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셨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그물을 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번씩이나 발현하셨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절망에 빠져있고, 과거의 생업이었던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절망과 실의에 빠져 엉뚱한 곳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제자들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시어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

(요한 21,6)

그들이 그렇게 하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그들이 제자들이 되기 전에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던 그들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신 주님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알아본 이는 요한이었지만, 그분께 먼저 달려간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요한은 관조적이고 베드로는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한은 사랑을 받은 이가 되고, 베드로는 일을 맡은 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날 아침을 열치시고 오시어,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서 식사를 준비하시고 부르십니다. 

어디서 났는지 숯불 위에는 이미 ‘물고기’도 있고 ‘빵’도 있었습니다.

 

‘숯불에 구운 물고기’는 수난 받으신 당신의 몸을, ‘빵’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바수어진 당신의 몸을, 곧 당신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요한 21,10)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른 것은 와서 시중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와서 ‘시중을 받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게 하고 깨우쳐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그리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지만, 당신께서는 그들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렇습니다. 

당신 자신을 바쳐 부활생명을 담은 사랑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당신의 밥상을 받아먹는 일입니다. 

그것은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시중을 받는 일,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숯불에 구운 물고기’가 되고, ‘찢어지고 바수어진 빵’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당신의 향기를 뿜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신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이요, 당신의 사랑을 아는 일이요, 그리고 그 사랑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그 사랑을 증거하고 부활생명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당신께 상을 차려 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형제를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의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고,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과 내맡김의 생선을 구워, 우리의 삶으로 상을 차려 올리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고 자란 제가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형제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4.24.부활 축제 목요일                                                          

사도3,11-26 루카24,35-48

 

주님 부활의 증인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는 삶”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늘 위 높다랗게 엄위를 떨치셨나이다.“(시편8,1)

 

주님 부활의 증인들은 예수님 당대의 사도들만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유구한 전통속에

지금도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참 좋은 주님 부활의 증인들을 만났습니다.

우선 4.21일 아버지의 집으로의 영원한 엠마오 산보길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님(1936.12.17.-2025.4.21.)의

복된 선종입니다.

가톨릭교회를 넘어 온 세상의 성인처럼 요즘 뉴스 1면에 회자되고 있는 부활의 증인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성자, 평화 새기고 떠나다.”

“전쟁을 중단하고, 굶주린 이들을 도우라.”

“바티칸 밖, 성당 비문엔 ‘Franciscus’ 이름만 새겨 묻어달라.”

“남긴 유산은 고작 100달라”

 

4.22일 두 일간지 사설 첫째,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압축한 제목도 좋았습니다.

 

“평화, 약자 보듬고 종교 역할 일깨운 ‘프란치스코의 유산’”<경향>

“평화 꿈꾼 교황 뜻 이어받아 ‘전쟁없는 세계’실현해야”<한겨레>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교황님의 참 좋은 사례들입니다.

어제 오랜만에 수도원을 방문한 참 반가운 손님, 일루미나 원장 수녀와 동행했던 김금자 클라릿다 수녀,

우간다에 33년 선교사로 계시다가 잠시 휴가중 방문한 베네딕타 수녀 역시 주님 부활의 증인들로

손색이 없는 경이로운 분들이었습니다. 

 

특히 클라릿다 86세 수녀는 은퇴가 없는 ‘영원한 현역’으로 성가지도에 미사전례시 올갠 반주까지 한다 합니다.

세분이 함께 고운 목소리로 불러 준,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클라릿다 수녀가 친히 작사, 작곡한 성가에 감동했고

행복했고 은혜로웠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여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시도다.

 

 놀라운 사랑의 구원이 이루신 하느님,

 영광과 찬미드리니 기뻐하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영원한 우리의 희망

 감사드릴뿐이외다.”

 

이분들뿐 아니라 제 주변엔 그리스도의 별처럼, 그리스도의 향기처럼,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분들이

참 많으니 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다음 옛 현자들이 소개하는 삶도 주님 부활의 증인들이 입증하는 삶입니다.

 

“즐기는 것은 만 번을 반복하는 애정이며, 앞으로 만 번을 더 반복할 것이라는 긍지다.”<다산>

“아는 것(知)은 좋아하는 것(好)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樂)만 못하다.”<논어>

 

좋아함을 넘어 사랑하고 즐기고 기뻐하는 삶일 때 참으로 완벽한 주님 부활의 증인들로서의 삶일 것입니다.

어제 읽은 글귀도 잊지 못합니다. 

 

“영양 상태가 좋아 뽀송뽀송한 피부를 유지한다고 하여 곧 수려한 얼굴이 아닙니다.

모든 시각적 체험에 중요한 것은 ‘빛’입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누구에게나 어떤 빛이 깃들게 마련이고, 그 빛이야말로 그 사람의 후천적 얼굴을 완성합니다.

아름다운 얼굴빛은 유복한 생활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적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은 ‘공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부활의 증인들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주님 파스카의 고귀한 빛이며, 저 또한 자주 목격하는 얼굴빛들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주님 부활의 증인들로 가득합니다.

우선적인 조건으로 이들은 공통적으로 주님을 열렬히 항구히 사랑하며 찾았던 갈망의 사람들이자

끊임없는 회심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을 친히 찾아와 만나 주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혼자가 아닌 당신을 사랑하는 제자들의 공동체에 나타나 친히 평화를 선물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새삼 부활의 증인들에게 사랑과 더불어 성경 공부가 필수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사명을 일깨우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호응한 참 좋은 본보기가 제1독서 사도행전의 베드로 사도입니다.

솔로몬 주랑에서 불을 뿜는 듯한 주님 부활의 증인, 사도 베드로의 열렬한 설교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의 우리를 움직여 회개와 더불어 부활의 증인들로 만듭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이제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오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회개를 필요로 하는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마음의 고질적 질병인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만날 때 회개와 더불어 치유되는 무지의 병이요, 곧 이어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

복음 선포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백절불굴의 ‘주님의 전사’가,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며, 영적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시편8,5ㄱ-6).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4/25(금) [(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가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질 때 우리 신앙의 등급은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물을 배 왼쪽으로 던질 때 우리 신앙의 등급은 낮아질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부활은 2000년 전 어느 무덤에서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 삶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기적입니다. 우리는 그 징표를 읽고, 느끼고,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밖으로 나가 작은 징표들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그 속에서 주님이 어떻게 살아계시는지, 어떻게 나를 살려내시는지를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이들의 삶입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어디서 만나뵐 수 있을까요?

복자 카를로 청소년의 영성에 따르면 너무나 쉽습니다. 바로 매일의 성체성사입니다.

매일 미사 안에 우리는 부활 예수님을 만나뵐 수 있습니다.

미사 안에서 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미사를 통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멀리 있지 않고, 늘 우리 안에 굳건히 현존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고 자란 제가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형제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호응한 참 좋은 본보기가 제1독서 사도행전의 베드로 사도입니다.

솔로몬 주랑에서 불을 뿜는 듯한 주님 부활의 증인, 사도 베드로의 열렬한 설교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의 우리를 움직여 회개와 더불어 부활의 증인들로 만듭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이제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오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이수철 신부)

 

4/25(금) [(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고 자란 제가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형제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4월25일(금) 5시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