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4월 26일 토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5. 4. 26. 07:06

[매묵]2025년 4월 26일 토요일[(백)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05(104),43 참조
주님이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뽑힌 이들을 환호 속에 이끌어 내셨네.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풍성한 은총을 베푸시어 믿는 이들이 불어나게 하시니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 백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세례성사로 새로 난 저희가 불사불멸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13-21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8(117),1과 14-15ㄱㄴ.16-18.19-21(◎ 21ㄱㄷ 참조)
◎ 주님, 제게 응답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네. 의인들의 천막에서 울려 퍼지는 기쁨과 구원의 환호 소리. ◎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주님은 나를 벌하고 벌하셨어도, 죽음에 넘기지는 않으셨네. ◎
○ 정의의 문을 열어라. 그리로 들어가 나는 주님을 찬송하리라. 이것은 주님의 문, 의인들이 들어가리라. 당신이 제게 응답하시고, 구원이 되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시편 118(117),24
◎ 알렐루야.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갈라 3,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너희는 다 그리스도를 입었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파스카 신비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부활로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파견

<부제 또는 사제가 백성을 향하여 말한다.>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진설명: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2024 12 3일입니다. 저는 당시 시노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시노드에 참석한 신부님들이 제게 한국의 비상계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뉴스를 검색하니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하였고, 비상계엄은 선포한 지 5시간이 안 되어서 해제되었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위헌, 위법한 행위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결의하였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그렇게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4 4일 헌법재판소의 선고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군의 통수권자로서, 경제와 외교를 책임지는 대통령일지라도 위헌하고, 위법한 행동을 하면 그 직무가 정지되고, 파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정의와 국민의 양심을 거슬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한 히브리스(hybris)’, 곧 신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과도 닮았습니다. 그 결과는 항상 네메시스, 곧 파멸로 이어졌습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도 쾌락과 권력에 취해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불태우고, 그 죄를 그리스도인에게 뒤집어씌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무너졌지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진리는 살아남았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말했습니다. “정의를 잃은 도시는 결국 무너진다.” 그게 민주주의든, 제국이든, 교회든 마찬가지입니다. 정의가 없는 곳엔 부활의 기쁨도, 하느님의 나라에도 이를 수 없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력은 권력으로만 제어된다.” 누구나 선할 수는 없어서, 견제와 균형, 그리고 헌법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거짓이라는 덫에 걸릴 일도 없습니다.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앞에 놓인 진실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커다란 걸림돌 또한 욕심과 욕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꼴찌가 되어야 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고난과 죽음을 겪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 그렇습니다. 욕심과 욕망에 빠지면 꽃은 보지만 땅속에 있는 뿌리를 보지 못합니다. 욕심과 욕망에 빠지면 십자가 없는 부활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욕심과 욕망을 버리면 십자가는 부활을 향해 가는 이정표가 됩니다. 우리가 욕심과 욕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또다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성령의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 앞에 서 있는가? 내 욕망을 따르고 있는가? 이 질문이 우리 양심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가 담대히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부활 신앙의 핵심입니다. 진리를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것,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헛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느끼고 믿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외면하는 권력은 무너지고,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년 다해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사도행전 4,13-21      마르코 16,9-15

 

신앙체험 나눔은 교만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사명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 이전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였지만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였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어차피 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해져야 하기에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그렇게 당신 자신을 보여주면 되지 굳이 다른 증인들을

보내셔서 증언하게 하셨을까요?

 

본래 교회 공동체가 당신을 굳이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여러 증언을 통해 형성된 믿음으로도

복음을 전할 근거가 충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의 약점 중의 하나가 신앙체험을 나누기를 장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나의 신앙체험을 말하는 것이 교만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개신교 신앙체험 간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가톨릭 신앙 간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신앙 간증이 많지 않아서 신앙체험이 많지 않은 것인지, 신앙체험이 많지 않아서 간증이

많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복음에 따르면 분명히 각자가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이 교회 내에서

공유되기가 장려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증의 힘은 잘난 척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당신도 나와 다를 바가 없어요.

내가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그도 하고, 그녀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해?”라는 영어로 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 내에서 신앙체험 나눔이 장려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국에서 한 거지가 동냥하며 앉아있었습니다. 동냥을 받고 연필 한 자루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업가가 다른 사람들처럼 1달러를 주고 남들처럼 연필을 가져가지 않고 그냥 지나쳐갔습니다.

그러다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며 이렇게 말합니다.

“1달러를 냈으니 연필을 가져가야죠. 왜 가져가라 하지 않죠?”

 

거지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듯 여러 개의 연필을 들어 보였습니다.

사업가는 그중 제일 좋은 것으로 보이는 것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거지가 아닙니다. 당신은 사업가입니다.” 거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거지가 아니고 사업가라고?’ 이 말이 머리에서 가시지 않았고 불과 몇 년 만에 사업가가 되어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업가가 나를 사업가로 불러주었기에 내가 사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출처: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말 한마디’, 유튜브 채널, ‘최불꽃TV’]

 

간증은 바로 이러한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고는 베드로만 물 위를 걸을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보면 많은 이가 물 위를 걸을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 할 수 있다면 더 힘을 얻을 수 있기에 신앙체험 나눔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1마일을 4분 안에 뛸 수 없고, 설령 성공하더라도 심장이 터질 것이다.”

이것은 당시 육상에서 통용되는 말이었고 누구도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54년 5월, 의사 지망생으로 수련의 과정을 밟던 로저 배니스터가 1마일을

3분 59초4 만에 주파했습니다. 배니스터 경이 3분대 기록을 쓴 날 이후 1년 동안에는 37명이

기록을 세웠고 2년 동안에는 300여 명의 선수가 4분 벽을 돌파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스포츠 학자들은 “배니스터 효과”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분명 예수님은 당신을 만난 이들이 교회 안에서 증언하라고 시켰고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신앙체험 소통의 장이어야 하고 그래서 “저 사람이 했다면, 나는 왜 안돼?”

라는 생각으로 서로 자극을 주어야 하며,

또한 이런 체험들이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감독 거스 히딩크는 축구 선수들 간에도 선후배 문화로 소통이

되지 않음을 인식하고 선후배 간에 분리해서 앉던 습관을 바꿔

자신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끊임없이 대화하게 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4강까지 갈 수 있었고, 이것을 이어받은 홍명보 감독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같은 방법으로 동메달을 따게 했습니다.

 

소통이 안 되는 팀은 망할 수밖에 없지만,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 팀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체험 나눔은 교만이 아닙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기 위해 교회 공동체가 그런 체험들을

모으는 그릇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공동체 모임에서 그러한 체험들을 나누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저의 유튜브 채널 ‘함께 고민해요’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습니다.

많은 신앙인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체험 나눔을 통해 신앙도 커지고 자극도 받습니다.

 

우리 소공동체에서 비록 큰 체험이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만난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각자 세상에 나가 뿌릴 복음의 씨앗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3.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보고 들은 것을 ”
 
사도 베드로의 삶을 보면 신앙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이상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하고 협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과 더불어 사도 베드로는 당당하게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설명하였지만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신분이 율법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무식하고 평범한데 어디서 그 놀라운 언변과 용기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랍비에게 공부를 하려면 그 경비도 만만치 않아서 서민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서민은 ‘율법도 모르는 족속’으로 무시 취급을 받았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의미에서 파격적이었습니다. 서민에게 무상으로 하느님 나라와 율법의 정신을 가르치셨고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쉽게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주님 곁에 있던 제자들은 따로 스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경우가 많아서 성경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정신을 공부를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주님 죽음과 부활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깨닫지도 못한 그들이 변해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변한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변화가 왔는지 놀랍기만 한데, 그것은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살아 계실 때 몇 차례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에 대해서 말씀하신대로 사도들에게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어떻게 겁도 많은 제자들이 어두움을 박차고 군중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 부활의 사건이 있은 후 시골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당신 부활을 일러주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앙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사도들은 내놓으라고 하는 학벌도 없고 재산도 아니면 세상이 말하는 직책도 없는 사람들이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대놓고 ‘무식한 사람들’로 규정짓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부족함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마귀를 쫒아 내는 권한과 병자를 고치는 능력도 주십니다.

그러한 그들은 그들의 한계와 연약함에 머무르지 않고 용감하게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치며 주님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들을 본받아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을 증언해야 하겠습니다.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4.25.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사도4,1-12 요한21,1-14

 

“와서 아침을 먹어라.”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의 초대

 

“이 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118,24)

 

잠시 옛 현자의 지혜를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나이테는 어떤 재주로도 흉내낼 수 없다.

사람들은 그의 성과에 감탄하지만 그의 노력은 따라 하지 않는다.”<다산>

“중간에 그만두지 않으면 쇠와 돌에도 무늬를 새길 수 있다.”<순자>

 

삶에도 항구하고 한결같아야 함을 배웁니다. 나무들에는 필시 나이테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루하루 삶과 더불어 이뤄지는 내 삶의 나이테, 내 영혼의 나이테입니다.

과연 내 삶의 나이테는, 내 영혼의 나이테는 어떤 상태일런지요?

살아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나이테입니다.

 

새삼 2025.4.21일 ‘주님 부활 대축일’ 다음날 88세로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전날 2022.12.31. 95세로 선종하신 베네딕도 교황이 생각납니다.

베네딕도 교황은 사임하신후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10년 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12년동안 끝까지 사명을 수행하시다가 선종하셨으며 두분 다 아름답고 깊은 성인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두분의 삶의 나이테, 영혼의 나이테도 참 독특하고 깊고 아름다우셨을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부록과 같은 부활하신 주님의 세 번째 발현을 소개하는 내용은 상징하는 바 아주 풍부합니다.

한폭의 살아 있는 그림처럼 깊고 아름답습니다.

장소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 전 그들의 고기잡이 일터였던 티베리아 호수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후에 실의에 빠진 듯 합니다. 

 

일곱의 제자공동체인데 일곱 숫자는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 제자들 공동체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발현하신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를 찾아 오시는 파스카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의 주인공은 수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베드로이며 그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나는 고기 잡으로 가네.”

수제자였던 시몬 베드로가 말하자 남은 동료들도 호응합니다.

“우리도 함께 가겠소.”

 

그들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칠흑같은 밤처럼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주일미사후 낮기도 대신 바치는 시편 다음 대목이 연상됩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이른 새벽 일어나 자리에 드는 것도, 

 수고의 빵을 먹는 것도 너희에게 헛되리니,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그 잘 때에 은혜를 베푸심이로다.”(시편127,1-2)

 

주님 사랑의 은혜가, 은총이 있어야 걷히는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의 묘사가 참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제자들의 배경에는 동터오는 희망의 태양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물끄러미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 깨달을 바, 절망의 그 삶의 자리 뒤편에 동터오는 희망의 태양이신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허무 가득한 어둔 내면을 환히 들여다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주님 친히 주도권을 잡으시고 다정히 접근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자나깨나 노심초사 당신 제자들을 챙기시는 자비하신 주님의 면모가 약여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신임 총재 아빠스 하비에르 아파르시오의 좌우명 시편도 생각납니다.

“주님,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계시나이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그러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합니다.

전광석화, 바로 그 순간 주님의 사랑을 받던 애제자는 즉시, “주님이십니다!” 고백했고,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자 겉옷을 두른 채 호수로 뛰어듭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감격적이요 충격적 사랑의 만남입니다.

여기 함께 했던 제자들 역시 잊지 못할, 영원히 기억될 주님 사랑의 체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수제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고, 그 안에는 무려 큰 고기가 153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으며,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합니다.

역시 153마리 숫자는 일곱제자의 입곱 숫자처럼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충만한 삶이요, 결코 찢어짐의 분열이 없는 견고한 일치의

교회공동체임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오늘 발현사화의 절정으로, 아침 식사에 제자들을 초대하신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빵과 함께 고기를 주시니

그대로 공동체의 아침 미사를 연상케 하는 은혜로운 장면입니다.

아침 미사나 식사때 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신 주님의 다정하고 사랑에 넘친 이 말씀을 늘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수제자 베드로의 대활약을 보여줍니다.

담대하기가 예전의 베드로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물고기를 잡았던 상징적인 장면이 그대로 실현되어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게 된 이들이 무려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명이 되었다 합니다.

최고의회에서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들 앞에서 성령에 가득 차 증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이 예수님께서는

‘집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물론 사도들에게, 특히 성 프란치스코를 닮았던 얼마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영원한 화두는 ‘예수’였음을 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생 “마음에도, 입에도, 귀에도, 눈에도, 손에도, 다른 지체에도 늘 예수님을 품고

모시고 다녔다”<1첼라노,115>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숨쉴 때 마다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님!”(요한묵22,20) 말마디를 호흡에 맞춰 기도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29).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4/26(토) [(백)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의 뜻 앞에 서 있는가? 내 욕망을 따르고 있는가? 이 질문이 우리 양심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가 담대히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부활 신앙의 핵심입니다. 진리를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것,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헛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느끼고 믿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외면하는 권력은 무너지고,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선포하여라.”(조재형 신부)

 

2. 소통이 안 되는 팀은 망할 수밖에 없지만,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 팀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체험 나눔은 교만이 아닙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기 위해 교회 공동체가 그런 체험들을

모으는 그릇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공동체 모임에서 그러한 체험들을 나누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전삼용 신부)

 

3.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사도들은 내놓으라고 하는 학벌도 없고 재산도 아니면 세상이 말하는 직책도 없는 사람들이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대놓고 ‘무식한 사람들’로 규정짓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부족함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마귀를 쫒아 내는 권한과 병자를 고치는 능력도 주십니다.

그러한 그들은 그들의 한계와 연약함에 머무르지 않고 용감하게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치며 주님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들을 본받아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을 증언해야 하겠습니다.(정인준 신부)

 

4.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생 “마음에도, 입에도, 귀에도, 눈에도, 손에도, 다른 지체에도 늘 예수님을 품고

모시고 다녔다”<1첼라노,115>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숨쉴 때 마다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님!”(요한묵22,20) 말마디를 호흡에 맞춰 기도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29). 아멘(이수철 신부)

 

4/26(토) [(백)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가 담대히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부활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느님의 뜻 앞에 서 있는가? 내 욕망을 따르고 있는가? 이 질문이 우리 양심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것,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헛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느끼고 믿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외면하는 권력은 무너지고,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아멘.

 

- 2025년 4월26일(토) 6시5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