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3 글/시]자존심만 버리면(최영배 신부)/오늘 하루의 길 위에서(이해인 수녀)
2025년 5월3일(토) 오늘의 글/시
자존심만 버리면
내일 아침부터 웃을 수 있나이다
- 최영배 비오 신부님
사랑하는 님이시여
썩지 않는 씨앗이 꽃을 피울수 없듯이
자존심의 포기 없이는
생의 꽃봉오리를 맺을 수 없나이다
분명 이세상은 자존심도 지키고
목적도 달성하는
그런 어리석은 공간이 아니나이다
밤의 어둠을 지나야
아침의 찬란함이 찾아오고
여름의 장마를 지나야
가을의 들판으로 나설 수 있나이다.
부디 자신 안에 있는 자존심을 꺾으소서
자존심만 포기하면
흙과 태양과 비와 바람이
저절로 원하는 꽃을 가꾸어 갈 것이나이다
그러하오니 님이시여
옳고 그름이 분명할 때에도 부디 침묵하소서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똑똑함 보다
옳고 그른 것 모두를 포용하는 어리석음이
오히려 훌륭한 거름이 되나이다
내 잘못도 내 탓이고
당신 잘못도 내 탓이며
세상 잘못도 내 탓으로 돌리소서
진심으로 자존심을 포기하는
지혜로운 한 사람의 죄인이
주변의 사람들을
행복의 좁은 길로 초대하나이다.
자존심만 버리면
내일 아침부터 웃을 수 있나이다
님이시여,
부디 행복하소서...
- 들꽃처럼 살으리라 중에서
오늘 하루의 길 위에서
- 이해인 수녀님
오늘 하루의 길 위에서 제가 더러는 오해를 받고
가장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쓸쓸함에 눈물 흘리게 되더라도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길을 가는 인내로운 여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제게 맡겨진 시간의 옷감들을
자투리까지도 아껴쓰는
알뜰한 재단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슬기를 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 밖에는 없는 것 처럼
투신하는 아름다운 열정이 제 안에 항상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제가 다른 이에 대한 말을 할 때는
"사랑의 거울" 앞에
저를 다시 비추어 보게 하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느라
갈 길을 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오늘을 묶어 두지 않게 하소서
몹시 바쁜 때일수록 잠깐이라도 비켜서서
하늘을 보게 하시고
고독의 층계를 높이 올라
해면이 더욱 자유롭고 풍요로운
흰옷의 구도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극히 조그만 것이라도 다 기억하되
제가 남에게 베푼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것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건망증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