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5월 19일 월요일[(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교육 주간)]/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5월 19일 월요일[(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교육 주간)]/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본기도
주님의 오른팔로 주님의 가족을 영원토록 감싸 주시어
외아드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저희가
어떤 죄악에도 물들지 않고 천상 은총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4,5-18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5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8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9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10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13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14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15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18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저희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또는
◎ 알렐루야.
○ 저희가 아니라, 주님, 저희에게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옵니다.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민족들이 이렇게 말해서야 되리이까? ◎
○ 우리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저들의 우상은 은과 금, 사람 손이 만든 것이라네. ◎
○ 너희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하늘은 주님의 하늘, 땅은 사람에게 주셨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물과 함께 바치는 저희 기도를 받아들이시고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신 이 큰 사랑의 성사에
언제나 맞갖은 삶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믿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열렸나이다.
주님의 죽음으로써 저희가 죽음에서 구원받았고,
주님의 부활로써 모든 이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그리스도의 부활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찾아 주시니
구원을 이루는 이 양식의 힘으로
파스카 신비의 은혜를 저희 안에 가득 채워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5주간 월요일(교육주간)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 “다 된 밥에 재 뿌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지만, 초심을 잃어버리고 욕심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시작했을 때는 겸손했지만 지위가 높아지고 업적이 쌓이면서 교만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했을 때는 그렇게 고마웠던 아내의 헌신과 내조가 성공하고 나니 초라해 보이고, 다른 여인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청렴한 공직자로 명성이 높았는데 자녀를 위한다는 이유로 뇌물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초심을 잃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루스드라에 이르러 병든 사람을 고치자, 사람들이 신이라고 추앙합니다. 그러자 사도 바오로가 단호하게 외칩니다.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기 위치’를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총이 자신 때문이 아님을,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하느님의 말씀’이지 ‘자신의 말’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겸손함, 이 자기 성찰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초심입니다.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의 자세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백성이 배고픈지, 아픈지, 억울한 일이 없는지 직접 보고, 함께 아파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청렴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순간, 백성은 고통받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청렴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능해도 소용없다고 했습니다. 백성보다 먼저 일어나고, 늦게 자는 마음입니다. 목민관은 아침부터 늦게까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목민관은 백성보다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자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고 정약용 선생은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능력만을 보지만, 정약용은 사람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순간, 그 권위는 백성에게 고통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권력을 가진 이들이 초심을 잃고 오만에 빠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 결과는 개인의 몰락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기곤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권력을 남용하였고, 이는 국회의 탄핵 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헌재는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였으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권력의 오만이 얼마나 큰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도자가 초심을 잃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할 때,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민심은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과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갈리어서 국론이 분열되었습니다. 법원 판사의 결정을 불복하여 법원을 침탈하는 만행이 있었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공백은 심각한 경제적인 불안을 가져왔습니다. 환율의 폭등으로 기업은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하겠다고 했던 대통령, 공정과 상식을 펼치겠다고 했던 대통령이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느님의 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외적인 성공을 이루었는지보다, 얼마나 초심을 지키며 사랑을 실천했는지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겸손한 사람에게, 초심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님은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가진 것이 많고 명예가 높은 이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함께하십니다. 부활의 시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초심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이 있다면, 그 안에 주님의 계명이 있습니까? 그 탑이 겸손과 사랑, 정직과 정의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더 가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더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오만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작은 권력이나 위치에서 오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초심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 전삼용 요셉 신부
2025년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요한 14,21-26
성령께서 오시면 깨닫게 되는 진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하십니다.
반면 세상에는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여기에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십니다. 성령께서 당신이 선택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계명을 지키면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일까요?
우선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자녀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전에 중국 길거리에서 찍힌 어떤 사진에서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엄마가 사주지 않자
엄마의 목을 조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어머니의 참모습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 뜻을 어머니에게 강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만약 계속 그렇게 자란다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모습이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 욕구만 강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어떤 면에서 어머니에게 성령을 받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머니의 참모습, 참마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어머니의 자녀를 위해 흘린
피입니다. 이 피를 받을 때 보이는 게 있고 그 피를 주신 분이 바로 보이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요나’ 예언자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려는 이에게 성령께서 어떻게
당신의 참모습을 드러내시는지 잘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그 성읍을 향하여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요나 1,2)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당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주님 앞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요나 1,3)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거센 풍랑과 큰 물고기 배 속에서의 사흘 밤낮은 요나로
하여금 자신의 뜻을 완전히 꺾고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마련하시어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 2,1)
절망 속에서 요나는 비로소 “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제물을 바치고 제가 서원한 것을
채우렵니다. 구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요나 2,10) 하고 부르짖으며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기로 합니다.
마침내 요나가 니네베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자, 놀랍게도 임금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요나 3,10)
이 모습을 본 요나는 “몹시 못마땅하여 화가 났습니다.” (요나 4,1)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기대 속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박넝쿨 하나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룻밤 사이에 자라나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박넝쿨이 벌레 먹어 시들자 요나는 또다시 화를 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박넝쿨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네베를, 왼손과 오른손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여 명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는 이 니네베를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 (요나 4,9.11)
요나는 이 박넝쿨 사건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의 마음, 그 끝없는 자비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박넝쿨처럼, 하느님께서는 니네베의 수많은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는 요나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계명에 자신을 내어 맡겼을 때
비로소 체험하게 된 하느님의 참모습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고래에게 먹히는 것도 성령의 체험이고 박나무의 체험도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 마음을 볼 의지가 살아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실 때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순간 이제 나의 욕구가 아닌 그분의 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될까요?”라고 묻게 되었고 그렇게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다. 그냥 내게 붙어있어라.”라고 하시며 당신을, 곧 당신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있기 전에 저는 예수님의 계명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사제가 되라는 뜻에 저를 맡긴
것입니다. 그랬더니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그리스도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신다는 뜻은 자신의 뜻보다 그분의 뜻에
관심을 쏟게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 계명에 순종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할이 있습니다. 도움의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 마음을 보게 하시는 성령이 계십니다. 이 은총이 생명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이 두 성령의 은총을 통해서 주님 마음을 닮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당신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은 전부”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마음은 진정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라 하는 계명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서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보는 것이 기도에서는 ‘관상’입니다.
관상기도는 그래서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본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그 사람은 길을 잃는 일이 없습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3. 이영근 신부
2025년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요한 14,21-26
<'말과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그렇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이가 아니라, 설령 알아듣지 못해도 그 말을 받아들이는 이가 그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넘어 그를(그의 인격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그 말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받아들인 그 말을 지키는 이, 곧 실행하는 이가 진정 그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버리고 그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곧 그를 믿고 신뢰하고 마음으로 결속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사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라는 말씀은 뒤에 나오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 14,23)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말씀과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우선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사랑과 신의로 맺어진 예수님과의 결속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래 '지키다'라는 동사는 '간직하다', '새기다' 혹은 '신경 써서 돌보다'라는 뜻으로, 마음이 담긴 행동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과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곧 내적 일치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이 전제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행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혹은 그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표현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요한 14,23)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저 자신보다 주님을 앞세울 것입니다.
설령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신뢰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지킬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빛이 되어 오소서.
저를 사르는 빛으로 오소서.
함께 살며, 불살라 태우소서.
저를 태워 세상을 밝히소서.
제가 빛이 되고 사랑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주님!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그렇게 제 자신보다 당신을 앞세우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믿고 신뢰하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지키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받아 지키고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5.18.부활 제5주일
사도14,21ㄴ-27 묵시21,1-5ㄴ 요한13,31-33ㄱ.34-35
참 아름다운 삶
“꿈꾸라, 사랑하라, 복음을 선포하라”
오늘 5월18일은 부활 제5주일이자,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일입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이들이 주님의 자비로 부활하심을 믿으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말할 것은 많아도 말해선 안되고, 내적치열한 싸움중에 있어도 겉은 평온해야 하는 노년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해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 것이 노년의 지혜요 사랑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품위있는 노년의 삶입니다.
새 책을 받았을 때의 설레는 행복의 느낌처럼, 새로움으로 늘 설레는 하루를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두 권의 새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는 김근수 편역의 <프란치스코 교황 어록>이고 하나는 신경림의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입니다.
책 소개글도 이 책 제목이 유래가 된 시도 참 아름다워 나눕니다.
“그에게 삶은 그대로 시였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다정했으며 남녀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대의 한국인 누구나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시의 거의 유일한 작자가
신경림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결같이 곧은 자세 낮은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했다.
앞으로 이와같은 민중시인, 국민시인이 다시 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염무웅>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란 시의 마지막 연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병고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시같습니다.
“붉은 노을 동무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머지않아 까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더불어 연상되는 제 자작시 <살아 있는 것들만 꿈꾼다>입니다.
“살아 있는 것들만 꿈꾼다.
죽어 있는 것들은 꿈꾸지 못한다.
연초록 나뭇잎으로
화사한 꽃들로 피어나는
봄꿈의 나무들!
살아 있는 것들만 꿈꾼다.”<2009.5. >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늘 평생 꿈꾸며 아름답고 품위있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합니다.
“한 사람을 기르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눈앞의 아이에게서 다가올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다산>
“일년의 계획은 곡식을,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관자>
살아 있는 그날까지, 멈춤이 없이 내적성장과 성숙의 아름다운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부활 제5주일 말씀이 이런 아름다운 삶을 위한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첫째, “꿈꾸라!”
꿈꾸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묵시록의 사도요한의 꿈은 바로 우리의 꿈이자 비전이자 희망이 됩니다.
이런 꿈에서 샘솟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요 살아 있는 삶, 아름다운 삶입니다.
꿈을 잃으면 살아 있어도 죽은 삶입니다.
세상 유혹에 빠지기도 쉽고 품위 상실에 부패로 변질되기도 쉽습니다.
늘 빛나는 영원한 청춘으로 살게 하는 천상의 꿈, 비전입니다.
요한이 보여주는 다음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이, 비전이, 희망이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힘을 줍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바로 이런 아름답고 신비로운 천상의 꿈을 앞당겨 실현시켜 주는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은총입니다.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최고의 선물이 미사전례입니다.
둘째, “사랑하라!”
사랑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동일한 저자 사도요한의 복음말씀입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이 삶의 유일한 목표라 할만큼 하느님을 사랑한 예수님이심이 다음 고백을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예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 뿐이다.”
이어지는 말씀이 흡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유언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해서 살아 있다 할 수 있고, 사랑해서 비로소 사람입니다.
사랑-삶-사람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이런 아가페 사랑뿐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바로 주님의 아가페 사랑이 판단의 잣대입니다.
이기적 불순한 사랑이 아니라, 참으로 이타적 초연한 깨끗한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아가페 사랑이요,
이런 사랑이 주님의 제자임을 증거합니다.
셋째, “복음을 선포하라!”
복음을 선포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천상의 꿈은 마르지 않는, 샘솟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원천이 되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넘쳐 흐르기 마련이니
바로 제자들의 복음 선포의 선교활동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다음 묘사가 참으로 눈부시고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선교활동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의탁하였다...
그들은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복음 선포의 사람이자, 하느님의 사람,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
그리고 교회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삼중신원은 우리 수도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의 공통적 신원입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밖으로의 복음 선포만 있는 게 아니라 제자리 꽃자리도 존재론적 복음선포의 현장이 됩니다.
환대를 통해 복음선포를 지향하는 우리 정주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삶이 그 좋은 증거가 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보라”, “와서 보라” 초대하는 여기 성 요셉 수도원입니다.
주님 함께 하시기에 살만한 세상입니다.
주님은 오늘 아름다운 삶을 위한 구체적 방침을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꿈꾸는 삶, 사랑하는 삶, 복음을 선포하는 삶이요,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5/19(월) [(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교육 주간)], 되새김 구절
1. 부활의 시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초심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이 있다면, 그 안에 주님의 계명이 있습니까? 그 탑이 겸손과 사랑, 정직과 정의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더 가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더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오만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작은 권력이나 위치에서 오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초심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조재형 신부)
2. 요나는 이 박넝쿨 사건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의 마음, 그 끝없는 자비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박넝쿨처럼, 하느님께서는 니네베의 수많은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는 요나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계명에 자신을 내어 맡겼을 때
비로소 체험하게 된 하느님의 참모습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고래에게 먹히는 것도 성령의 체험이고 박나무의 체험도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 마음을 볼 의지가 살아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주님!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그렇게 제 자신보다 당신을 앞세우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믿고 신뢰하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지키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받아 지키고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밖으로의 복음 선포만 있는 게 아니라 제자리 꽃자리도 존재론적 복음선포의 현장이 됩니다.
환대를 통해 복음선포를 지향하는 우리 정주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삶이 그 좋은 증거가 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보라”, “와서 보라” 초대하는 여기 성 요셉 수도원입니다. (이수철 신부)
5/19(월) [(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교육 주간)], 오늘의 기도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주님!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그렇게 제 자신보다 당신을 앞세우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믿고 신뢰하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지키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받아 지키고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5월19일(월) 6시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