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5월 29일 목요일[(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5. 5. 29. 12:02

[매묵]2025년 5월 29일 목요일[(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 복자들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124위 복자들은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순교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각 지역에서 현양되던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이다.
대표 순교자인 윤지충 복자의 순교일은 12월 8일이지만, 이날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는 그가 속한 전주교구의 순교자들이 많이 순교한 5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하고 순교자 현양을 위하여 성대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한편 교구장의 재량에 따라 성 바오로 6세 교황 기념일도 선택하여 거행할 수 있게 하였다(주교회의 2019년 추계 정기 총회).

입당송

마태 25,34 참조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영광스럽게 고백하도록 부르셨으니
그들의 모범과 전구로
저희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복음의 명령에 언제나 충실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12,10-12ㄱ
나 요한은
10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 사는 이들아, 즐거워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4-5.6-7.8-9(◎ 5ㄴ 참조)
◎ 주님은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복음 환호송

야고 1,12
◎ 알렐루야.
○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고귀한 목숨을 바친 의인들을 기리며
모든 순교의 원천인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바치오니
이 제사를 기꺼이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순교자 감사송 1 : 순교자들의 증거와 모범>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복된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주님을 현양하려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피를 흘려 주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었나이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을 증언할 강한 힘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며 끝없이 외치나이다.

영성체송

묵시 2,7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잔치로
복된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천상 승리를 경축하며 비오니
지상에서 생명의 양식을 받아 모신 저희가 모든 악을 이기고
마침내 천상 낙원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 김형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가끔 축성을 부탁받습니다. 얼마 전에는 도넛 가게를 축성했고, 또 다른 날에는 헤어스파를 축복했습니다.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그 사업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도넛 가게는 새벽같이 문을 열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땀 흘리는 이민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입니다. 도넛 하나에도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를 축복하셨듯이 말입니다. 또 다른 곳은 새로 시작한 헤어스파였습니다. 문을 열자,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지친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그 공간을 찾는 이들이 단지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쉬어 갈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세상에서의 성공만 기억하려 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기억하지만, 은메달리스트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꽃밭을 가보면 다릅니다. 모든 꽃은 1등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색깔을 내며 피어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넘어졌던 이도, 낙오자도, 슬퍼하던 이도, 모두를 품는 것이 신앙입니다. 저도 흔들렸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서품받고 나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IMF로 대출을 받기도 했고,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지금 꽃이 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열매 맺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흔들리면서, 비에 젖으면서 피어나는 꽃. 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선교사가 없이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는 100년 동안 50년은 사제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가 있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박해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순교자도 있었지만, 배교자도 있었고, 밀고자도 있었습니다.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와 숭고한 신앙이 열매 맺었고, 오늘 한국 천주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꽃이었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피어난 꽃이요, 비에 젖으며 드러난 향기였습니다. 윤지충 복자는 조선시대 양반 출신으로, 유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를 접하면서 그는 전통 제사를 거부했고, 자신의 어머니 장례에서 신앙을 지켰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함께 순교한 권상연 복자도 그의 동료였습니다. 당시엔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가 거대한 바람이고, 믿음을 시험하는 장대비였습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를 영웅처럼 여기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고민하고 흔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과 충성 사이에서, 부모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전통과 진리 사이에서 그들도 아팠을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이 말씀처럼,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심은 것입니다. 그들의 피는 씨앗이 되었고, 그 씨앗에서 우리는 지금 한국 교회의 믿음이라는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바람이 있고, 비가 있습니다. 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꺾이지 않고, 흔들리면서도 살아내는 신앙인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순교의 향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리는 윤지충 바오로 복자와 동료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처럼 생명을 내어놓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하루 작은 선택 하나라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무례한 말 한마디를 참는 인내, 상대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연민, 그리고 기도 속에서 묵묵히 하느님을 기다리는 믿음.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도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됩니다. 그러니 조금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 시험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요한 12,24-26

 

천주교는 사교(邪敎)가 아닙니다. 진정한 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여러 측면에서 대단한 나라가 분명합니다.

최단기간에 개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했습니다.

전 세계는 국민의 힘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치러야했던 엄청난 눈물과 희생이 있었고,

그것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특별한 측면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가톨릭 신앙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한 유일무이한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교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자발적으로 교리를 공부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스스로 선교사가 되어 포교활동에 전념했으며 성직자 영입 운동까지 전개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00여년에 불과한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지만 103명이나 되는 성인성녀들,

그리고 123위의 복자들, 그 뒤로 더 많은 성인성녀 후보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성인성녀 강대국입니다.

이는 세계 성인성녀 수의 10%에 육박하는 숫자이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숫자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 성인성녀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보니

그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사를 빛낸 대성인들의 영성에 매료되고 그 길을 따르는 것도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 안에도 이토록 많은 성인성녀들이 있다는 것, 늘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분들에 대한 보다 많은 연구와 현양 작업, 존경과 애정, 순교영성에 대한 공유가 필요합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4위 동료 순교자 기념일에 다블뤼 주교님께서 쓰신

복자(福者) 윤지충 바오로(1759~1797) 대한 약전을 읽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는 현재 충남 금산군에 위치해 있는 진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산은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 그곳에 가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기념하는

진산성지(대전교구 관할)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의 가문은 여러 정관계 인사들을 배출한 명가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예의바르고 총명했으며 학문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25세 되던 1783년 과거에 응시해서 진사(進士)를 취득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물론 가문의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도 컸습니다.

 

그런 윤지충 바오로가 1784년 겨울 경성에 머물렀을 때,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 놀러갔다가

운명 같은 책을 두 권 발견합니다.

그 유명한 ‘천주실의’와 ‘칠극’입니다.

 

순식간에 두 권의 책을 읽은 윤지충 바오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됩니다.

두 권의 책을 사본으로 만들어 계속 탐독하였습니다.

그의 내면에서 시작된 하느님과 진리에 대한 갈증은 그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 있는 여러 가톨릭 관련 서적들을 읽은 그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좋은 교리교사로부터 예비자 교리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가톨릭 관련 서적을 스스로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선포한 윤지충 바오로의 신앙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느님과 진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그 자발성, 그 적극성 앞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지충 바오로의 하느님과 진리, 새로운 세계와의 달콤했던 순간들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조정은 조상제사 문제, 신주 문제를 이유로 가톨릭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그는 즉시 관아로 자진 출두했습니다.

 

진산 군수와 윤지충 바오로 사이에 이루어진 심문 기록이 아직도 정확히 남아있습니다.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탁월한 신앙인이었으며,

그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군수: “소문이 매우 심각한데, 근거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네가 사교(邪敎)에 빠져 있다는 게 사실이냐?”

 

윤지충 바오로: “저는 전혀 사교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천주의 종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군수: “그것이 사교가 아니냐?”

윤지충 바오로: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길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진산 군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윤지충 바오로를 잘 설득해서 배교시키려고

안간힘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군수는 탄식을 터트리며 그를 전주 감영으로 이송시켰습니다.

전주 감영의 감사가 또 다시 묻습니다.

 

감사: “왜 사교에 빠져 방황하느냐?”

윤지충 바오로: “저는 조금도 사교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감사: “그렇다면 천주의 종교가 사교가 아니더냐?”

윤지충 바오로: “하느님은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요

위대한 아버지이신데, 그분을 섬기는 것을 사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감사: “너는 죽게 되더라도 이 종교를 버리지 못하겠느냐?”

윤지충 바오로: “만약 제가 높으신 아버지를 부인하게 된다면,

살아서든 죽어서든 어디로 제가 갈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 때문에,

견고한 가톨릭 신앙 때문에,

임금 앞에는 반역자, 부모 앞에는 불효자, 친구들 앞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윤지충 바오로는 단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과 의연함을 드러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에 대한 사형은 신속히 이루어졌습니다.

30대의 곤장을 맞고 난 그에게는 효수형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형벌)이

언도되었습니다.

1791년 12월 8일 그는 33세의 나이로 순교자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요한 12,24-26

 

<'섬김'이야말로 곧 '순교'입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오늘은 그들 중 5위(이일언, 신태보, 이태권, 정태봉, 김대권)가 1839년 전라도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날입니다. 

 

이들은 한국 초기 교회의 순교자들로서, 시대로는 오히려 103위 성인보다도 앞서 사셨던 분들입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병인박해 순교자 103위를 시성했으나,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교회를 일궈낸 이들이 누락되었다가,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에 의해 신해박해(1791)부터 병인박해(1866)까지의 124위 순교자들이 시복된 것입니다. 

 

그들 중 124위 중 최연소자는 12세로 이봉금 순교자이며, 최고령자는 75세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의 증조부인 김진후 순교자입니다.

이들 가운데,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이종사촌입니다. 

전라도 진산 출신으로 1790년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 제사 금지령이 내리자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가 체포령을 내려지자 자수했습니다. 

그는 1791년 12월 8일에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첫 성직자입니다. 

구베아 주교의 파견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1794년에 입국했습니다. 

 

강완숙 집에 숨어 지내면서 성사를 집전해 6년 만에 조선교회 신자 수를 1만 명으로 늘리는 데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신유박해 때 귀국을 결심했다가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했고,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의 아버지인데, 형 약전에게 교리를 배우고 가톨릭에 입교했습니다.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해 주문모 신부의 인가를 얻어 교우들에게 보급했고, 평신도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내다 1801년 순교했습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첫 기념일을 앞두고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 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님은 특별담화문에서, 그들은 “신분 차별과 불평등, 가난이 일상화되었던 시대에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보여주었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복자들에게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우리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고 권고하였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에서, 윤지충 바오로를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진산 군수가 “네가 사교(邪敎)에 빠져 있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저는 전혀 사교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천주의 종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길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다른 곳에 이송되어서도 “왜 사교에 빠져 방황하느냐?”고 문책하자, “저는 조금도 사교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요 위대한 아버지신데, 그분을 섬기는 것을 사교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고 전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 12,26)는 말씀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곧 목숨을 바쳐 섬기는 순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이야말로 곧 '순교'입니다. 

 

'섬김'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섬김의 순교'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형제를 존중하게 하소서!

형제를 섬김으로 당신을 증거하게 하소서.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를 떠받들어 사랑으로 순교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5.28.부활 제6주간 수요일                                               

사도17,15.22-18,1 요한16,12-15

 

진리의 성령

“성령은 교회의 살아 있는 기억이자 사랑의 멘토이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 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강조하고 싶은 성령입니다.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인 성령입니다.

참으로 성령에 따라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옛 현자의 충고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침묵보다 더 힘든 것이 말 잘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말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사람들 사이를 해친다.

허물을 지적하는 말은 나의 잘못을 고백하듯 조심스럽게 해야 겨우 상대에게 닿는다.”<다산>

 

“임금에게 자주 간언하면 치욕을 당하고, 친구에게 자주 충고하면 사이가 멀어진다.”<논어>

 

이런 말 잘하는 분별의 지혜도 성령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성령께 귀기울이는 삶이 참 절실합니다.

 

레오14세 교황의 인품도 대하면 대할수록 매력적입니다.

경청과 겸손, 기도와 성령의 사람이 레오 교황입니다.

지난 5월23일 유럽주교단을 접견했을 때 어느 주교의 감탄과 더불어 교황님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레오 교황과의 접견은 실로 놀라운 선물이자 영감이었다. 교황은 말하기 보다 듣기를 즐겨하셨다.”

교황님이 대화에 앞서 이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많은 대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한분 한분의 말에 주의를 다하여 경청했습니다. 

 

성모성월 5월, 성가 244장도 아름답지만 245장도 아름답습니다.

어제 미사후 퇴장성가중 245장 1절이 참 감미로웠습니다.

 

“맑은 하늘 오월은 성모님의 달, 

 촛불들고 모여와서 찬미드리세.

 마리아 우리 어머니 이 맑고 푸른 계절에, 

 하늘같은 주의 사랑 우리에게 주소서.”

 

성령의 사람,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일수록 성모신심을 깊이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5월25일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묻힌 성모경당 지하묘소를 찾았던 레오 교황의 “마리아에 대한 우리의 신심을

새로이 합시다.”라는 강론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 앞에서 그분께 감사하는 고백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여기 계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오후 이 경당에 올 수 있음에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녁 우리 로마 교구 신자들과 함께 우리는 새 주교의 현존을 축하했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와 함께 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마음 깊이에서’(from the bottom of my heart)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수님의 복음 말씀도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새삼 성령에 귀기울이며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 하시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 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점진적인 과정을 거칩니다.

무리하지 않고 하루하루 날마다 성령에 따라 겸손히 경청하며 순종하는 삶이 절실하다 생각됩니다. 

진리의 영, 성령께서 깨우쳐 주실 때 점차 무지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지혜로워지고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성령의 은총에 의한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성령의 인도 따라 계속될 진리탐구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성령의 역할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날로 진리자체이신 주님을 깊이 깨달아 가면서 알아 갈 수 있음도 성령의 은총이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날로 깊어가는 일치도 다리 역할을 하는 성령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사람은 경청과 겸손, 기도와 순종의 사람이요 그 빛나는 모범이 성모님이요

오늘 사도행전의 사도 바오로이고 신임 레오 교황도 많이 닮았다 싶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사도 바오로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여기 머무는 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행함은 없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만 찾는 것은 바로 무지의 소치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남이 없이 영적 목마름이나 굶주림을 해소할 길은 요원합니다.

바오로의 심금을 울리는 성령충만한 강론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 일부만 인용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살아 존재한다는 자체가 하느님 증명입니다.

참으로 회개를 통해 이런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이 무지에 대한 첩경의 지름길이요 회개의 깨달음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의 회개가 없이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파스카 신비는 물론 무지의 완고함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싶습니다. 바로 아테네 시민이 그러했습니다. 

 

비단 종교뿐만이 아닙니다. 요즘 국내 상황을 보면 좌우의 대립이 정말 극단적이요 심리적 내전상태를 방불케 합니다.

너무나 굳어있고 적대적이고 완고합니다. 종교인들까지 예외가 아닙니다.

좌우의 대립이기 보다는 상식과 비상식, 정의와 불의, 진리와 거짓, 공정과 불공정,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보고 싶습니다.

성령에 따라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로 상식과 정의, 진리와 빛의 편이 되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레오 교황은 신자들에게 믿음과 기도는 소금과 같아 삶의 맛을 낸다 했습니다.

참으로 성령에 따른 믿음과 기도의 삶이 절실하다 싶습니다.

결국 아테네에서의 선교는 실패로 끝났고 바오로는 코린토에 갑니다.

이 또한 성령의 탓이기 보다는 하느님 섭리요, 아테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고린토요,

코린토에서는 바오로의 선교활동도 참 왕성했습니다.

바로 코린토서간에서 바오로의 다음 고백은 그의 체험을 반영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1,22-25)

 

깨달음의 절정에, 진리의 절정에 있는 성령 충만한 성령의 사도, 바오로의 고백이 참 고맙고 반갑고 귀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진리, 하느님의 힘,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가면서

비로소 무지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섬김의 삶에 전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령에 따른 진리탐구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의인들아, 주 안에서 기뻐들 하라.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양들 하라."(시편9712).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5/29(목)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되새김 구절

 

1. 오늘 우리가 기리는 윤지충 바오로 복자와 동료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처럼 생명을 내어놓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하루 작은 선택 하나라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무례한 말 한마디를 참는 인내, 상대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연민, 그리고 기도 속에서 묵묵히 하느님을 기다리는 믿음.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도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됩니다. 그러니 조금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흔들리며 피는 꽃을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조재형 신부)

 

2.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 때문에,

견고한 가톨릭 신앙 때문에,

임금 앞에는 반역자, 부모 앞에는 불효자, 친구들 앞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윤지충 바오로는 단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과 의연함을 드러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에 대한 사형은 신속히 이루어졌습니다.

30대의 곤장을 맞고 난 그에게는 효수형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형벌)이

언도되었습니다.

1791년 12월 8일 그는 33세의 나이로 순교자의 영예를 얻었습니다.(양승국 신부)

 

3. '섬김'이야말로 곧 '순교'입니다. 

'섬김'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섬김의 순교'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형제를 존중하게 하소서!

형제를 섬김으로 당신을 증거하게 하소서.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를 떠받들어 사랑으로 순교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바오로의 심금을 울리는 성령충만한 강론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 일부만 인용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살아 존재한다는 자체가 하느님 증명입니다.(이수철 신부)

 

 

5/29(목)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오늘의 기도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형제를 존중하게 하소서!

형제를 섬김으로 당신을 증거하게 하소서.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를 떠받들어 사랑으로 순교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5월29일(목) 11시5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