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28일 수요일[(홍)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가 없었네. 그는 나와 함께 평화롭고 바르게 걸으며, 많은 이를 악에서 돌아서게 하였네.
본기도
복된 이레네오 주교가 진리를 가르치며
교회의 평화를 이루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믿음과 사랑으로 새롭게 되어
일치와 화목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5,1-12.17-18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1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
○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티모 2,22ㄴ-26)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복된 이레네오 주교의 천상 탄일을 맞이하여
기쁜 마음으로 이 찬미의 제사를 드리오니
저희가 진리를 사랑하여 신앙을 온전히 수호하고
완전한 교회의 일치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고 비오니
주님의 자비로 저희의 믿음을 굳건히 하시어
복된 이레네오 주교가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 영광스럽게 되었듯이
그 신앙을 참되게 따르는 저희도 의롭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신부 묵상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예전에 사목국에 있을 때입니다. 11월에는 교구장님의 ‘사목교서’ 설명회가 있었습니다. 본당의 사목회장님, 기획분과장님, 총무님이 주로 오셨습니다. 교구장님의 사목교서를 발표한 후에 교구의 각 부서의 다음연도 행사의 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사목국의 교육담당 신부였기 때문에 주로 교육일정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총구역장 피정, 구역장, 반장 교육, 사목위원 교육, 지구연수와 같은 일정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냥 이야기만 하면 지루하기 때문에 가끔 양념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시에 기억나는 이야기 중에 ‘성직자와 조폭의 닮은 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다닌다. 자기 지갑을 열어 돈을 내는 법이 없다. 서열이 확실하다. 남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조직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일면 비슷한 점이 있기에 당시에 ‘소화제’처럼 웃음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꾸르실료 간부들과 식사를 하면서 제가 지갑을 열어 계산했습니다. 그랬더니 형제님 한 분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신부님이 계산한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성직자가 가난하기 때문에 계산을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만큼 대접 받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터키 순례 중에 ‘카파도키아’의 오래된 동굴 성당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시작되면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동굴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세상의 것들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사랑에 더 깊이 머물고자 하였습니다. 은수자들은 동굴에서 살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 이런 은수자들의 삶이 수도원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수도원과 교도소의 공통점을 생각해 봅니다. “세상과 고립되어 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합니다. 음식이 거칠고 부족합니다.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도원과 교도소는 차임점이 분명이 있습니다. 수도원은 자발적으로 들어갑니다. 교도소는 강제로 들어갑니다. 수도원의 문은 열려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 있습니다. 교도소의 문은 닫혀있습니다. 형기를 마쳐야만 나갈 수 있습니다. 수도원과 교도소의 결정적인 차이는 ‘감사와 불평’입니다. 수도원은 모든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교도소는 불평과 불만이 넘쳐납니다. 스스로 원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수도원처럼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찾아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타인을 위한 봉사와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면 으레 뒷자리를 찾아갑니다. 뒷자리는 때로 멀미를 하고, 내릴 때도 늦게 내리지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짐을 내릴 때도 버스 트렁크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이웃의 짐을 내려 줍니다. 허리가 아프지만 그것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본인의 간식은 물론 이웃의 간식까지 챙겨서 나누어줍니다. 그분들은 나눔의 기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교도소처럼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편하고 쉬운 일만 찾아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고 늘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제삿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순례를 여행처럼 생각합니다. 이웃의 순례와 묵상을 방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을 수도원처럼 살고 있는지, 교도소처럼 살고 있는지 내가 지나온 삶의 발자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사와 찬미,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바로 수도원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27.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중요한 세 가지의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가르침이요, <둘째>는 “너희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는 가르침이요, <셋째>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입니다.
<첫째> 말씀은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두 가지 원리 중 하나입니다. 어제 <복음>인 앞 장면에서 우리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마태 7,1)는 이웃과의 화합의 원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이와는 대조되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 7,6)는 이웃과의 단절의 원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는 결코 남에게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분별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르기”(마태 7,6) 때문입니다. 곧 세속적이고 악한 생활로부터 영적인 분별력과 신중함을 가지라는 말씀이요, 나아가서 균형 있고, 조화 있게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분별 있는 행동을 이렇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도 <수도규칙>에서 ‘분별은 모든 덕의 어머니’(64,19)라고 강조하였으며, 요한 카시아누스 역시 분별의 귀중함에 대해서 <담화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분별의 은총 없이는 완전한 덕이 없다.”(담화 2,3)
<둘째> 말씀은 흔히 ‘황금률’이라 불리는 사랑의 원리입니다. 이는 6장 33절의 말씀과 더불어 산상설교의 2대 강령이기도 합니다. 곧 6장 33절의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말씀이 수직적인 관계의 ‘황금률’이라면, 여기 7장 12절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는 말씀은 수평적인 관계의 ‘황금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코 ‘정직은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공리주의적 금언도, ‘주는 양만큼 똑같이 받을 것’을 기대하는 합리주의적 금언도 아니며, 오히려, ‘이타적인 사랑’으로 남에게 베풀라는 말씀이요, 나아가서 겸손하게 ‘먼저’ 남에게 베풀라는 적극적인 사랑에 대한 요청입니다. 바로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마태 7,12) 입니다.
<셋째>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을 규명하는 세 가지 비유 중 첫 번째로, ‘좁은 문의 비유’입니다. 곧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7,13-14 참조)는 요청입니다. 이 ‘문’은 좁기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버려야할 것들은 버리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의 이끄심에 의탁하는 자라야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임을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 세 가지 말씀이 우리의 삶 안에서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
주님!
제 자신이 부서지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꺾이고 사라지게 하소서.
좁지만 열린 문이기에, 붙들어 주는 당신을 꼭 붙들고 들어가게 하소서. 아멘.
-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
-은총, 분별의 지혜, 황금률-
"인간이 무엇이기, 주여 마음 쓰시옵고
그 종락 무엇이기 생각해 주시나이까(시편144,3)
어찌보면 하루하루가 좁은 문의 연속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자리, 바로 거기가 생명의 좁은 문이자 구원의 좁은 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좌우명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는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해온 삶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통과해 왔고 통과하고 있고 통과해야할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입니다. 비상한 좁은 문이 아니라 평범한 공동생활 자체가 구원의 좁은 문일수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통과해야할 좁은 문이자, 첩첩산중 넘어야 할 산입니다. 하루하루 좁은 문을 통과하듯, 산을 넘듯 써온 강론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통과해야 할 좁은 문이요 마지막 가장 어려운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이 죽음입니다. 주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강력히 권고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누구나의 광야 인생 여정, 하루하루 통과해 나가야할 좁은 문의 연속입니다. 끝까지 잘 통과하면 성인이지만, 도중에 넓은 문의 유혹에 빠져 인생 좌초하여 괴물로, 폐인으로 끝나는 인생은 얼마나 많은지요! 새삼 인생은 선물이자 평생 좁은 문들 통과의 과제임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 좁은 문을 힘껏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하고자 날마다의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각각 고유의 좁은 문입니다. 한 공동체에 몸담고 살아도 각자 통과해야 할 구원의 좁은 문은 다 다릅니다. 사람 숫자만큼 좁은 문의 수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힘들어 무척이나 외롭고 고독하기도 합니다. 좁은 문에 좌절하고 절망하여 목숨을 끊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굳이 구원의 좁은문 찾아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주어진 자리가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행복은 생명의 구원은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눈만 열리면 언제 어디나 구원의 좁은 문, 구원의 꽃자리입니다.
사실 밖에서 볼 때, 몰라서 좁은 문이지 살다 보면 내적으로 점차 넓어지는 생명의 넓은 문일 수 있습니다. 연륜의 수도자들에겐 그렇습니다. 예전 50년전 초등학교 교사시절 선배 여교사의 충고가 생각납니다.
“이선생,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좀 쉽게 살아.”
“저에겐 이게 쉽게 사는 것인데요.”
힘껏 정도를 따라 사는 것이 사실 저에겐 힘들어도 쉽게 사는 일이었습니다. 그후 20여년후 여기서 뜻밖에 그 선생님을 만났을 때, 참 계면쩍어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동안 영세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됐던 것입니다. 수도생활도 밖에서 볼 때 좁은 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의 수도생활도 사랑하면 점차 내적으로 넓어지는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도, 공부도, 겸손도, 가난도. 침묵도, 순종도, 정결도 하느님을 사랑하듯 그렇게 모든 수행을 사랑하여 온갖 자발적 노력을 다할 때 주님의 은총과 더불어 날로 내적으로 넓어지는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이 됩니다. 언젠가 써놨던 고백시가 생각납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자리 찾지 말자
어디든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그 어디든 뿌리내려
자리 잡아
하늘 가득 담아
하늘 사랑 활짝 꽃피어 내면
바로 거기가 구원의 꽃자리이다.”
행복기도중 한 대목도 이런 진리를 고백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도 수도생활의 좁은 문이 날로 감미로운 생명과 구원의 문으로 변모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며 성규 머리말 끝에서 우리를 격려하며 용기를 줍니다.
“좁게 시작하기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말아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니, 주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성규 머리48-50)
오늘 복음은 세 단절어로 되어 있는데 좁은 문 통과가 그 하나가 둘은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과 황금률입니다. 참 공교롭게도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 통과에 큰 도움을 주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분별의 지혜요 겸손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참으로 분별의 지혜를 지닌 이들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않고, 우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 분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 지도 모른다.”
좋은 일을 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차별이나 무시가 아니라 분별의 지혜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좋은 가르침도 때와 사람을 봐야 합니다. 이런 분별의 지혜가 좁은문 통과에 결정적 도움이 됨을 봅니다. 얼마나 많은 선의와 정의의 의인들이 개혁에 좌초하여 억울한 박해와 죽음을 당했는지요. 어제 도올 김용옥의 주역 강의중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난세다. 악랄한 선인들이 필요하다.”
하나는 황금률입니다.
동서양 공통의 지혜로운 잠언입니다. 사랑의 이중계명과 황금률을 잣대로 하면 좁은 문 통과도 수월할 수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요,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하지 않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랑, 공감과 배려, 존중의 사랑입니다. 이런 황금률의 진리대로의 삶이 좁은문 통과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바로 이런 황금률 실천의 모범이 제1독서 창세기의 아브람입니다. 어제 오늘 아브람의 여정을 보면 좁은문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좋은 믿음에 지혜로웠고 한결같았습니다. 주님의 제단을 쌓음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했습니다.
오늘도 아브람은 사심이나 욕심없는 관대한 마음으로 롯에게 선택권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롯은 자기가 택한 참 좋은 요르단 땅에 멸망할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음을 꿈에도 생각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어 하느님께 큰 축복을 받는 계기가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들의 좁은문 통과에는 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함을 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생명과 구원의 좁은문 통과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인간이란 하나의 숨결같은 것,
지나가는 그림자, 그의 날들이외다."(시편144,4). 아멘.

[6/28(수)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호두는 딱딱한 껍질에 쌓여 있습니다. 그 가녀린 새싹이 그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와 커다란 나무가 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이 신비한 과정에서 나도 놀라고 이웃도 놀랍니다. 모세가 본 불붙은 떨기 나무처럼 나무인데 꺼지지 않는 불이 붙어 있어서 놀라워야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전삼용 신부)
2. 수도원과 교도소의 결정적인 차이는 ‘감사와 불평’입니다. 수도원은 모든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교도소는 불평과 불만이 넘쳐납니다. 스스로 원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교도소처럼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편하고 쉬운 일만 찾아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고 늘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제삿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순례를 여행처럼 생각합니다. 이웃의 순례와 묵상을 방해합니다.(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
주님!
제 자신이 부서지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꺾이고 사라지게 하소서.
좁지만 열린 문이기에, 붙들어 주는 당신을 꼭 붙들고 들어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들의 좁은문 통과에는 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함을 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생명과 구원의 좁은문 통과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이수철 신부)
[6/28(수)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 186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늘상 매사 하느님과 함께 하므로...감사하게 하소서.
항상 기쁘고 즐거워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28일(수) 6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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