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9월 7일 목요일[(녹) 연중 제22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
본기도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1,9-14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 관한 9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10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11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이 제사로 거행하는 구원의 신비가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
<또는>
마태 5,9-10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의 식탁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성사의 힘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주 제22주간 목요일
저는 1982년에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당시 입학생 대부분은 저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군대도 마친 후에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한두 살 차이가 나면 ‘형’이라고 부르지만 대부분 저보다 7살은 많았고, 그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분은 저보다 15살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제일 나이가 많은 형님은 1948년생이었고, 그 다음은 1952년생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직업도 다양했었습니다. 어떤 형님은 학원 강사를 하였고, 어떤 형님은 보험회사를 다녔고, 어떤 형님은 장교였고, 어떤 형님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였습니다. 가수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처럼 형님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세상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신학교로 왔습니다. 반듯한 직장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온 형님, 모든 사람이 알아주는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기꺼이 신학교에 들어온 형님들을 보니 신학교에는 분명 세상의 것들보다 더 좋은 것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신학교에 들어온 저와는 생각의 폭과 깊이가 많이 달랐습니다. 그 형님들과 군대에 갈 때까지 4년을 함께 지냈습니다. 군대 갈 때는 형님들이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마지못해서 하는 일들을 형님들은 기쁘게 하였습니다. 성소주일이나 축제를 마치면 청소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저는 일의 요령도 잘 모르고, 힘들어 하는데 형님들은 군대를 다녀와서인지 삽질을 잘하였고, 기쁜 마음으로 청소하였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면 졸리기도 하고, 집중이 잘 안되었습니다. 외출하고 한 잔 한날은 몸은 성당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세상의 것들에 있었습니다. 형님들은 기도 시간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형님은 더운 여름날에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어려움을 이기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도 그랬습니다. 저는 다른 책을 읽은 적도 있고, 늦게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형님들은 나이가 많아서 배움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구도자의 자세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장학금은 수녀님과 형님이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다. 농부가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팔아서 밭을 산다.”고 하셨습니다. 형님들은 신학교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발견하였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신학교로 들어왔으니 그 기쁨이 충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을 보면 어린 나이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온 첫 번째 제자들은 어부였습니다. 베드로는 장모가 있었으니 결혼도 했었습니다. 바오로는 유대교의 정통파 바리사이였습니다. 당대의 스승인 가말리엘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런 베드로와 바오로도 총 맞은 것처럼 예수님께 사로잡혀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마니교를 신봉했었습니다. 방탕한 생활도 했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상을 받았던 프란치스코 성인도 방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분들도 예수님께 사로잡혀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직업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던 많은 동기들도 이제는 서품 32년이 되었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적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보다 더 많이 감사할 것이다.” 저 역시도 많은 빚을 탕감 받았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의 무게가 쌓이면서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면 됩니다. 다른 것들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방법으로 채워 주심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강론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5,1-11: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라
회당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은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배에 앉으시어 가르치신다.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배를 빌어 육지에서 배를 조금 떼어 그 배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신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4절)
베드로는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5절)
베드로는 자기 일생을 고기 잡는 일로 잔뼈가 굵었고, 고기 잡는 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 앞에 모든 오만을 버리고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절)
베드로는 전능하신 분의 말씀을 따랐다.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고 하였다.
고기 잡는 일에 그렇게 경력이 있고 능력 있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른 결과는 지금까지
자기 생애에 보지 못했던 엄청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예수께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8절)
베드로는 자신의 모습이 주님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느낀다. 자신의 죄를 생각할 때, 불결한 인간으로서
순결한 분을 감히 모실 수 없다고 생각하여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10절) 하셨을 때,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신다. 베드로가 자신의 오랜 경험 등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을 때, 커다란 체험을 하였듯이, 때로는 우리도 우리 자신의 고집을 버려야 할 때가 많다.
더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우리 자신을 비워야 하는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우리 안에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항상 말씀이 강생하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말씀을 강생시키는 삶,
여기에서 근본적인 우리의 변화를 가질 수 있다.
베드로와 같이 자기 생각이나, 고집, 고정관념을 주님의 말씀 앞에 모두 버렸을 때, 기적을 체험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체험케 하고 하느님 안에 자녀로서의 기쁨과 구원을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 안에 강생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을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
3.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지도자는 새벽마다 삼고초려 하듯 기도해야!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길을, 희망을, 빛을, 진리를, 중심을 잃은 병든 사회”
-답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뿐이다-
"내 마음은 주님 안에서 기뻐 춤추며,
나의 힘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높혀지는도다."(사무 상2,1)
한 밤중 기상하여 수도원 자비의 집 숙소를 나서면서 우선 바라보는 수도원 배경의 하늘과 불암산입니다. 그리고 집무실 안에 들어서면 십자고상과 그 바로 아래 태극기를 바라보며 성호경과 영광송을 바친후 만세오창, 기도를 합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속히 안정되어 만세오창도 그만뒀으면 좋겠지만 전망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하늘과 산을 바라볼 때 마다, 주님과의 관계가 날로 깊어지기를 바라며 읊는 제가 아끼는 대표적 자작시 “하늘과 산”입니다. 늘 인용해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예나 이제나 반복되는 인간 무지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나라입니까?” 현수막 글씨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나라대신 무엇을 다 넣어도 통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것이 가정입니까? 이것이 교회입니까? 이것이 사회입니까? 이것이 학교입니까? 이것이 수도원입니까? 이것이 사람입니까? 정의롭지 못한, 공정하지 못한, 평화롭지 못한 현실을, 공동체를, 개인을 암시한, 참으로 회개를 촉구하는 말마디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같은 사람도 곳곳에 넘칩니다. 주님을 떠나면 바로 그 자리가 지옥이요 괴물의 출현입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시작전 자신의 사명을 만천하에 선언한 장엄한 출사표같은 이사야서를 인용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어지는 오늘 복음은 이 말씀의 실현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시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을 만날 때 무지의 어둠으로부터 해방이요 희년의 실현이자 자유인으로서 참삶의 실현입니다. 비단 예수님뿐 아니라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또 하나의 예수님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답은 예수님뿐입니다. 마음 깊이에서는 예외없이 길을 찾는, 빛을 찾는, 희망을 찾는, 진리를 찾는, 중심을 찾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길을 잃은, 빛을 잃은, 희망을 잃은, 진리를 잃은, 중심을 잃은 병든 사람, 병든 사회, 병든 세상, 병든 지구입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지구든 곳곳에서 병든 징후가 드러납니다. 어제 소개된 신문에서 읽은 에세이집,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란 말마디가 충격이었습니다.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풍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서울 강남은 명실상부 ‘욕망1번지’다. 거리에는 집 한 채 값에 달하는 외제차가 즐비하고, 자정이 넘어서도 클럽과 유흥주점의 네온사인이 불을 밝힌다. 대치동 학원가에는 ‘내 새끼는 명문대에 가야 한다’는 부모들의 맹목적인 신념으로 지친 아이들이 ‘학원 순례길'을 걷는다.”
얼마나 깊이 병든 사회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대로 지옥도의 풍경 묘사같습니다. 이래서 거대한 정신병동이라 하는 겁니다. 아니 강남만 그렇습니까? 정도의 차이일뿐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며칠전 몽골 사목 방문후 기내 회견중 교황은 교회내 세상내 이념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영어 말마디 이데올르기가 이념입니다. 이념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우리의 현실에 주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88세 노령의 교황의 총명함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문화의 전파는 결코 제국주의적이 아니다. 결코. 그것은 언제나 대화다. 그들의 이념들을 주입하고 싶어하는 것이 제국주의다. 문화가 증류될 때 이념들이 될 때, 그것은 독이다. 문화는 소비되고 이념으로 증류된다. 우리는 어떤 철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서 나타나는 이념들로부터 사람들의 문화를 구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교회에게나 말한다. 교회내에도 종종 뿌리로부터, 위로부터 분리시키는 이념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를 성령의 영향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념은 육화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이념일뿐이다. 이념이 자배하고 정책이 될 때, 그것은 독재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대화에, 문화들로 나가는데 무능력하게 된다. 제국주의가 이것을 한다. 제국주의는 언제나 이념으로부터 출발하여 굳혀버린다.
우리 역시 교회내에서 이념으로부터 교의를 구별해야 한다. 참된 교의는 결코, 결코 이념적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들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대신 이념은 실재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이탈시킨다. 답이 됐는지 모르겠다.”
이념의 우상에 미치면 광신狂信에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답이 없습니다. 이념의 악령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념을 믿는게 아니라 복음의 예수님을 믿습니다. 온갖 악령들이 발호하는 시절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예수님 하나 뿐입니다.
길이요 희망이요 빛이요 중심이요 진리이신 주님을 잃었기에 병든 개인, 병든 세상입니다. 이런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참삶의 실현이요 전존재의 힐링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어제의 마귀 축출에 이어 주님은 오늘은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쳐주시고, 병을 앓는 많은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주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장면이 있습니다. 치유받은 시몬의 장모는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합니다. 치유와 동시에 주님 중심의 공동체에서 섬김의 활동이 뒤따라야 함을 배웁니다. 참으로 영육의 온전한 치유와 건강에 섬김과 나눔의 사랑이 제일임을 깨닫습니다.
마귀들 역시 주님을 고백하며 달아납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온전한 치유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영혼치유와 건강에, 정신치유와 건강에 주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다음 장면이 우리에게는 참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날이 새자 외딴곳으로 가셔서 아버지와의 깊은 내적 친교 시간을 갖는 주님이십니다. 이어 주님은 집착하는 제자들을 단호히 내치시며 복음 선포에 전념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이런 복음 선포와 더불어 영육의 전인적 치유요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오로가 감사기도를 드리는 제1독서의 콜로새 교회 신자들입니다. 참으로 영육의 건강에 신망애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배웁니다. 콜로새 신자들의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에 감사하는 바오로입니다. 이어 바오로는 이 믿음과 사랑은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진리의 말씀 복음을 통하여 들은 희망에 근거함을 밝힙니다. 그러니 하느님 희망에 뿌리내린 믿음과 사랑의 복음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이 복음이 우리 안에 열매를 맺으며 끊임없이 성장할 때 참 자유롭고 건강한 복음적 삶의 실현입니다. 복음의 성장! 얼마나 멋진 말마디인지요. 길이자 희망이자 진리이자 빛이자 우리 삶의 중심이신 주님과의 부단한 만남과 더불어 치유되는 영혼들에 복음의 성장이요 충만한 신망애 삶의 실현입니다. 그대로 날마다 외딴곳에서 거행되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길을, 희망을, 빛을, 진리를, 중심을 잃은 병든 사회에 유일한 치유의 힐링은 예수님뿐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뿐임을 깨닫습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 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아멘.
9/7(목) 연중 제22주간 목요일...되새김 구절
1. 세상의 어려움을 이기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면 됩니다. 다른 것들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방법으로 채워 주심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조재형 신부)
2. 베드로와 같이 자기 생각이나, 고집, 고정관념을 주님의 말씀 앞에 모두 버렸을 때, 기적을 체험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체험케 하고 하느님 안에 자녀로서의 기쁨과 구원을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 안에 강생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조욱현 신부)
3. 한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는 자신보다 더 큰 힘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가 갈라지고 허물어집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 만으로 공동체를 이끌려면 공동체가 분열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분열 시켜 자기 자리를 유지하려 하기도 합니다. (전삼용 신부)
4. 날이 새자 외딴곳으로 가셔서 아버지와의 깊은 내적 친교 시간을 갖는 주님이십니다. 이어 주님은 집착하는 제자들을 단호히 내치시며 복음 선포에 전념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이수철 신부)
9/7(목) 연중 제22주간 목요일...제257일 기도
복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세상의 모든 일에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큰 힘에 의지하게 하소서.
두려워 하지 말고...
하느님의 큰 힘이 동행함을 믿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9월7일(목) 5시5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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