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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50614 글/시]자존심을 꺾어 가소서(최영배 신부)/오늘 내가 슬픔 을 넘어 기쁜이유?

2025년 6월14일(토) 오늘의 글/시

 

 

 

 

자존심을 꺾어 가소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변화는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

이웃에게 완벽을 요구하고

변화를 끊임없이 다그치나이다

 

이중성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서슴없이 감행하나이다

 

참으로 겸손하신 님이시여!

부디 모든 관계를 통하여

자존심을 꺾어가소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존심을 꺾는 사람이나이다

 

그러하오니 님이시여

아침에는 져주시고 저녁에는 이기소서

젊어서는 져주시고 늙어서는 이기소서

 

처음에는 져주시고 마지막에는 이기소서

삶에는 져주다가 임종때는 이기소서



- 최영배신부, 들꽃처럼 살으리라 

 '인간의 자존심은 자신의 악성에서 나옵니다' 중에서


아게라텀

◼️오늘 내가 슬픔 을 넘어 기쁜이유?  

리차드 위트컴 장군(Richard S. Whitcomb)과 
그의 부인 한묘숙 여사의 전설적인 실화 이야기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 그는 당시에 미군군수 사령관 이었다.

1952년 11월 27일, 
부산 역 건너편 산의 판자촌에 큰 불이 났다.

판자집도 변변히 없어노숙자에가까운 생활을 하던 피난민들은 부산 역 건물과 인근에 있는 시장점포등이 유일한 잠자리 였는데 

대화재로 오갈데가 없게 됐다.
입을 옷은 커녕 먹을것조차없었다.

이때 위트컴 장군 은 군법을 어기고
군수창고를 열어
군용 담요와 군복, 먹을 것 등을 3만 명의 피난민들에게 골고루나눠주었다.
 
이 일로 위트컴 장군은 미연방의회 의청문회에불려갔다.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책에 장군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미군은 전쟁 에서 반드시 이겨 야 하지만, 미군이 주둔하는 곳의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을 돕고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 입니다.

주둔지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이기더라도 훗날 
그 승리의 의미는 쇠퇴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 입니다"라고 답하자,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뒤 장군은 휴전이 되고도 돌아 가지 않고, 
군수기지가 있던 곳을 이승만정부에 돌려주면서 
"이곳에 반드시 대학을세워달라"
고 청하였다.
부산대학이 설립된 배경이다.

그러나 부산대 관계자도,교직원도, 졸업생도 재학생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거의 모른다.

그리고 장군은 메리놀 병원을 세웠다. 

병원기금 마련을 위해 그는 갓에 도포를 걸치고 
이 땅에 기부문화 를 조성하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은 장군이 체신없이 
왜 저러느냐'고 쑤근댔지만 개의치않았고 
온 맘과 힘을 쏟았다.

전쟁 기간 틈틈이 고아들을 도와온 위트컴 장군은 고아원을 지극 정성으로 운영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했다. 

위트컴 장군이 전쟁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연유다.

그리고 그는 부인 에게 유언을했다.

''내가 죽더라도 장진호 전투에서 미처 못 데리고 나온 미군의 유해 를 마지막한구까지 
찾아와달라''고...

부인 한묘숙 여사는그 약속을지켰다. 
북한은 장진호 부근에서  길죽길죽한 유골만 나오면 바로 한묘숙 여사 에게로 가져왔고, 

한 여사는 유골 한쪽에 300불씩 꼬박꼬박지불했다.

그렇게 북한이  
한 여사에게갖다 준 유골중에는 우리 국군의 유해 도 여럿 있었다. 

하와이를 통해 돌려 받은 우리 국군의 유해는 거의 대부분 
한 여사가 북한 으로부터 사들인 것들이다.

한 여사는 한 때 
간첩 누명까지 쓰면서도 굴하지 않고 남편의 유언 을지켰다.
남편만큼이나 강한여성이었다.

장군의 연금과 재산은 모두 이렇게 쓰였고, 
장군 부부는 끝내 이 땅에 집 한채도 소유하지 않은 채 
40년 전에 이생을 달리 했다.

부산 UN공원묘원에 묻혀 있는 유일한 장군 출신 참전 용사가 바로 위트컴 장군이다.
끝까지 그의 유언 을 실현한 부인 한묘숙 여사도 장군과 합장되어 있다.

이 땅에는  이러한 장군을 기리는 동상 하나가 없다.

부산에도, 서울에도 , 아니 부산대학교에도 메리놀병원에도 물론 없다.

그런데 오늘, 장군 이 떠난지 꼭 40년 만에 뜻있는 사람 들이 모여 위트컴 장군 조형물을 만들기로결의했다.

늦어도 너무 늦었 지만,
국가 예산 말고,
재벌 팔을 비틀지도 말고,

70여 년 전 수혜를 입었던 피난민 3만명, 딱그수만큼
1인당 1만원씩 해서 일단 3억을 마련하기로 했다.

브라보 !

민주주의의 생명은 참여다.
보은도 십시일반, 
참여해야한다고.
오늘 그 첫 결의를 했다.

1만원의 기적을 이루어보자.

70년 전, 전쟁고아들을 살뜰하게 살피던 위트컴 장군을 생각하면서, 

메리놀 병원을세워 병들고 아픈이들을 어루만지던 장군의 손길처럼 대학을 세워 이 땅 에 지식인을 키우 려던 그 철학으로, 
부하의 유골 하나 라도 끝까지 송환 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생각하며 
각자내호주머니에서 1만원씩 내보자.
딱 커피 두 잔 값씩만 내보자.

1만원의 기적이 한국병을 고칠 수도 있지않을까 ?

설마 이 땅에 1만원씩 낼 사람이 30만 명도 안 되지 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니 
또 내 마음은 두둥실, 하늘을 날 것만 같다.

그리고 정부는
장군에게 무궁화 
훈장을 추서한다는
소식이다.
너무 늦었지만 
감사한 일이다.

정말 기쁜 날이다.

팝콘이 탁탁 터지 듯이
그렇게 내 온 몸의 세포들이기쁨에 겨워 꿈틀거린다.

에스프레소 덕분 인가?
까뮈 엑스오 덕분 인가?

이제 나는 죽어도 
한묘숙 여사를 만나 웃으며 두 손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브라보 !

** 부산출생
박선영,국제대학교 교수의 페이스북 글)

 

칼리안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