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1월 16일 목요일[(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본기도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3,7-14
형제 여러분, 7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
○ 사십 년 그 세대에 나는 진저리가 나서 말하였다.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화가 치밀어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지 못하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또는>
요한 10,1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주간 목요일
‘현재(現在)’라는 말은 영어로 ‘Present’라고 합니다. Present는 ‘선물(膳物)’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선물’입니다. 제가 매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새벽에 일어나 ‘묵상’하는 겁니다. 하루하루 쌓여서 어느덧 3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30년을 하려고 했으면 포기했을 겁니다. 하루는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30년이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걷는 겁니다. 맑은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걸었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 폰과 갤럭시 워치에 걷는 발걸음이 표시됩니다. 1달이면 9십만 보가 됩니다. 9십만 보를 작정하고 걸었으면 포기했을 겁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90만 보가 되었습니다. 쇼팽의 ‘왈츠’를 연습했습니다. 처음에는 연결이 안 되었고, 많이 틀렸습니다. 매일 연습하니 어느덧 6개월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연결이 되고, 틀리는 부분도 적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려 했으면 포기했을 겁니다. 매일 꾸준히 하니 부족하지만, 결실을 보았습니다.
오늘이 과거가 되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미래가 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믿음은 질곡과 같았던 과거를 깨끗한 오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은 ‘믿음’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하혈하던 여인은 믿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죽었던 회당장의 딸은 믿음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건 가을이면 곡식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박해와 시련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세상의 삶이 마쳐지면 새로운 삶으로 옮겨 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여명의 눈동자와 같습니다.
오늘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라는 현상에 머물렀습니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잊어버렸습니다. 홍해 바다를 건넜던 놀라운 기적을 잊어버렸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잊어버렸습니다. 광야라는 현상에 머물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잊어버렸습니다. 광야는 거칠고 황량한 땅입니다. 마실 물도 귀하고 밤에는 추운 곳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나쁜 관습을 버리는 정화의 땅입니다. 광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거룩한 땅입니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오듯이, 광야를 거쳐야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감사와 찬미의 마음이 있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육체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나병환자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우리도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복음: 마르 1,40-45
‘오늘’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은혜롭고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첫 번째 독서 히브리서를 봉독하고 묵상하던 중 오늘따라 ‘오늘’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은혜롭고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오늘이 그저 그런 하루,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영양가 없는 하루가 될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서 오늘이 일생일대 가장 큰 축복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부끄럽게도 오랜 세월, 수많은 ‘오늘’을 그냥 허송세월하며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금쪽같은 오늘인데, 그 소중한 오늘을 즐기지도 만끽하지도 못하고 소모시켜 왔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이라는 표현에 얼마나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베트남 공산화 이후 공산당 정권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간 구엔 반 투안 대주교님은 구속 영장도,
그 어떤 절차도 없이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장장 13년 세월 동안 옥고를 치룹니다.
첫해가 지나가면서 대주교님은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고, 무슨 방법이 있겠지. 마냥 이 음습한 독방에 갇혀있지는 않겠지.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주겠지. 조만간 풀려나겠지. 무슨 방법이 있겠지.
그러나 2년, 3년, 5년, 10년이 지나도 그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 중에 대주교님은 마침내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보리라.”
그러나 어떻게? 그 뒤로 대주교님은 독방을 주교좌 성당으로 여겼습니다.
자신을 담당한 교도관을 예수님으로 섬겼습니다.
사이공 대교구 주교로서 자신이 담 밖의 교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거룩한 미사를
정성껏 봉헌했습니다.
물론 독방에서 혼자서, 양손 바닥 위에 작은 빵조각 하나, 포도주 한 방울을 올려놓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 말씀처럼 오늘이 구원의 날이니, 오늘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오늘,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웃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는 하루로
엮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내 입에 나오는 말 한마디, 손짓 한번, 전화 한 통화, 결정 하나 하나가 나의 삶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일 매 순간이 기적입니다.
살아온 날이 기적이고, 살아갈 날이 기적이며,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이 기적입니다.
너무나 큰 죄인이고 큰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어제의 나를 거두어가시고,
어제의 내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는 가장 뚜렷한 표징인 새로운 하루 앞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1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단순한 치유 받은 한 나병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치유 받은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나를 치유하신 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는 일이고, ‘그분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사실 구약의 율법 규정(레위 13,45-46 참조)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공공장소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타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는 접촉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서, 혹시 누군가가 다가오면 ‘자신이 불결한 자’라고 외치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의 차이를 극렬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곧 구약의 율법은 나병환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규정을 제시할 뿐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에서는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피해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고 불결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병들었고 죄인이기에, 감싸주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예컨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서도 이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한 여인이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이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용서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이처럼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호의를 제시해줍니다.
한편, 나병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르 1,40)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바람이 아니라, '스승님의 바람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의탁’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바람에 대해 하느님께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바람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에 대한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하신 것처럼,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는 ‘주인께 속한 이로서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동시에 당신의 치유의 능력, 곧 권능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의 행사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있기에, ‘주님의 처분에 온전히 의탁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주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탁하며, 주님의 원의에 순명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희망을 하느님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로 자신을 내어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마르 1,41)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이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죄인이기에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주님, 당신께서 원하신 바를 이루소서.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제게서 이루소서.
당신이 원하니까 저도 원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15.연중 제1주간 수요일 히브2,14-18 마르1,29-39
하루하루 삶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
어제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하루하루가 좋은 날입니다.
역시 일기쓰듯 하는 강론입니다.
수사님들 축일이면 꽃을 마련해 꽃꽂이를 해주는 꽃같이 아름다운 분이 있습니다.
역시 어제도 축일을 맞이하는 수도형제의 꽃꽂이를 해주고 남은 꽃을 꽃꽂이해 집무실에 가져왔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꽃을 들라 하여 사진도 찍어 드렸습니다.
웃는 얼굴은 그대로 꽃같았습니다.
“올림픽에서 봉사의 꽃메달 타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또 어제는 새해 들어 코이노니아 자매회 8분의 월례 모임이 있었고, 미사전 합동세배를 받았습니다.
유우머로 새배돈을 말했지만 저는 새해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8분에게 다음과 같이 만년필로
명필같은 필체로 쓴 봉투에 소정의 새배돈을 넣어 드렸습니다.
“2025년 새해.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2025.1.14.”
이 주님의 평화의 축복이 2025년 한해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역시 모두가 행복한, 웃는 모습이 꽃같아 사진도 찍어 드렸습니다.
작년보다 젊고 건강해 보인다는 덕담도 드렸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평이하나 새롭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어떤 위대한 발상도 작은 한 걸음만 못하다.”<다산>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고 해도 걷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고, 아무리 간단한 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순자>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동사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가파르나움의 하루가 참 역동적인 사랑의 실천 동사들로 가득합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고, 기도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모두가 사랑의 실천입니다.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후,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쳐주십니다.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시자, 부인은 시중을 들기 시작합니다.
시중드는 삶, 섬기는 삶은 참으로 신자다운 아름다운 삶입니다.
예수님의 하루 전 삶도 ‘섬기는 삶’으로 요약됩니다.
섬김의 영성, 섬김의 직무, 섬김의 권위로 믿는 이들의 삶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 끝나자 예수님 앞에 쇄도하는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이요, 예수님은 지체없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이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예나 이제나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이요 형태나 양상만 다를뿐 여전히 마귀들린 이들도 많습니다.
유비무환이요 예방이 처방보다 백배 낫습니다.
그러니 파스카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일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히브리서의 고백이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우리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우리들을 도와 주실수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이런 분이요,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우리를 이런저런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참 자유인이 되어 살게 하시는 구원의 영도자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께 배워햐 할 바, 그분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외딴곳에서의 기도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셨다.’
이래서 열심한 분들이 선호하는 새벽기도입니다.
제 새벽마다 외딴곳의 기도처는 집무실이요 기도와 더불어 매일 강론을 씁니다.
여러분의 새벽 외딴곳은 언제 어디입니까?
반드시 외딴곳을 마련하여 주님과 일치의 관상시간을 마련함이 지혜입니다.
예전 성염대사님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써드린 ‘새벽’이란 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새벽 숲
온갖 새들 맑은 소리
임의 찬미에
밝아오는 아침,
물러나는 어둠, 잠깨는 숲
새로 시작되는 하루
새벽을 잃으면 하루 전부를 잃는다”<2001.5.29.>
흡사 예수님의 하루하루 삶의 여정이 흐르는 강물같습니다.
집착함이 없이 사명을 수행하면 지체없이 떠나십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하시니, 바로 기도의 효과입니다.
주님은 외딴곳에서 휴식과 더불어 하느님의 권능으로 충전시킨후 사명을 새롭게 확인하셨음이 분명합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니
진정 예수님은 복음 선포자의 모범이자 사랑의 순례자, 희망의 순례자의 모범이십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삶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 고백시 한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하게 또 격류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맑게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아멘.
1/16(목)[(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나병환자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우리도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조재형 신부)
2. 베트남 공산화 이후 공산당 정권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간 구엔 반 투안 대주교님은 구속 영장도,
그 어떤 절차도 없이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장장 13년 세월 동안 옥고를 치룹니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보리라.”
그러나 어떻게? 그 뒤로 대주교님은 독방을 주교좌 성당으로 여겼습니다.
자신을 담당한 교도관을 예수님으로 섬겼습니다.
사이공 대교구 주교로서 자신이 담 밖의 교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거룩한 미사를
정성껏 봉헌했습니다.
물론 독방에서 혼자서, 양손 바닥 위에 작은 빵조각 하나, 포도주 한 방울을 올려놓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 말씀처럼 오늘이 구원의 날이니, 오늘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오늘,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웃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는 하루로
엮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내 입에 나오는 말 한마디, 손짓 한번, 전화 한 통화, 결정 하나 하나가 나의 삶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마르 1,41)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이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죄인이기에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주님, 당신께서 원하신 바를 이루소서.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제게서 이루소서.
당신이 원하니까 저도 원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우리를 이런저런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참 자유인이 되어 살게 하시는 구원의 영도자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께 배워햐 할 바, 그분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외딴곳에서의 기도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셨다.’(이수철 신부)
1/16(목)[(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 16일차 기도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마르 1,41)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이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죄인이기에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주님, 당신께서 원하신 바를 이루소서.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제게서 이루소서.
당신이 원하니까 저도 원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16일(목) 8시-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묵]2025년 1월 18일 토요일[(녹) 연중 제1주간 토요일(일치 주간)]/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1.18 |
---|---|
[매묵]2025년 1월 17일 금요일[(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1.17 |
[매묵]2025년 1월 15일 수요일[(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1.15 |
[매묵]2025년 1월 14일 화요일[(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1) | 2025.01.14 |
[매묵]2025년 1월 13일 월요일[(녹) 연중 제1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0) | 2025.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