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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21220 글]금욕과 절제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안젤름 그륀)/<다른 이를 위해 하느님을 뵙는다는 것>/구세군 냄비 옆에서 시주 받던 스님...

[2022년 12월20일(화) 오늘의 글]

 


금욕과 절제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금욕과 절제를 즐겨라!
자신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금욕과 절제로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은
삶에서 이미 행복을 누리게 된다.

만일 당신이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내적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당신은 이미 행복한 것이다.

정신이 육체와 함께 존재하고 정신이
육체의 감각으로 사물을 받아들일 때,
당신은 비로소 듣고냄새 맡고,
맛을 보고만지는 것으로,
행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적은 것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것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충동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한다.
그는 맑은 정신은 물론
마음의 평화까지도 잃어버린 사람이다.


금욕은 삶에 이로울 뿐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를 선사하는 선물이 된다.
적절한 금욕은 우리를 진정한 기쁨과
행복으로 안내해주는 길잡이가 된다.
돈도명예도지위도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중독된 자는 결코 만족을 모른다.
어떤 욕구든 즉시 충족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지속적인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적당한 수준에서 행하는 금욕과 절제는
삶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절제를 아는 사람이 강하다.
이런 사람은 자기중심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으며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순간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에
노예가 되지 않는다.


온전한 나 자신이 되면 될수록 영혼은
더욱 고요해 진다.
그럴수록 더욱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행복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포기의 천사가 두 가지를 가르쳐준다.
주어진 선물을 향유하는 것과
포기하는 방법이다.”
포기함으로써 내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게 된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꽃향유

 

헨리 나웬  신부님(1932.1.24-1996.9.21)의오! 그리고 늘 ! 12월 20일


<다른 이를 위해 하느님을 뵙는다는 것>
Seeing God for Others

때가 찬 걸 체험한다는 건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 짜장 실제로, 느껴질만큼 가까이 계시기에 모든 이가 우리처럼 하느님을  뵙지 못한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체험으로  기도 생활이 더 깊어지고 사목 생활은 한층 더 힘을 얻게 되는 겁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면 하느님과 함께 하고 또 체험한 하느님을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겠다는 평생의 열망이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승을 떠나신지 몇 해 지나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하는 증언의 근거가 타볼 산에서 체험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2베드 1, 16-18). 우리 삶에서 가장 친밀한 순간에 하느님을 뵙는 건 바로 다른 이들을 위해 하느님을 뵙는 겁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요한1,2)

Seeing God for Others
DECEMBER 20

The experience of the fullness of time, during which God is so present, so real, so tangibly near that we can hardly believe that everyone does not see God as we do, is given to us to deepen our lives of prayer and strengthen our lives of ministry. Having experienced God in the fullness of time, we have a lifelong desire to be with God and to proclaim to others the God we experienced.

Peter, years after the death of Jesus, claims his Mount Tabor experience as the source for his witness. He says: “When we told you about the power and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we were not slavishly repeating cleverly invented myths; no, we had seen his majesty with our own eyes … when we were with him on the holy mountain” (2 Peter 1:16-18). Seeing God in the most intimate moments of our lives is seeing God for others.

"The life appeare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has appeared to us." - 1 John 1: 2 (NIV) 

 

땅나리

🙏 구세군 냄비 옆에서 시주 받던 스님...

크리스마스 이브,추운 날씨에도 변함없이 구세군은 종을 딸랑이며 온정어린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한 스님이 지나가다가 그곳에 멈춰섰다.

바지랑을 주섬주섬 풀고 구세군 냄비 옆에 주저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받기 시작했다.목탁소리와 종소리가 오묘하게(?) 울려 퍼지고, 구세군 사람들은 얼핏 당혹스러웠으나...
그저 계속 종을 흔들고 있었다.   종 소리와 목탁 소리~~~~

시간은 흐르고....
구경꾼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심리란 참 이상한 것이다.기독교와 불교 꾼들이 모여 들어 양쪽에서 소리없는 호기심 응원전(?)이 펼쳐진 것이다.

"이쪽 이겨라!"  "저쪽 이겨라!" 사람들은 응원의 뜻(?)으로 이 쪽과 저 쪽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한 명 또 한 명... 그러면서 은근 슬쩍 어느 쪽에 돈이 더 모이나 보는 것이었다.
양측 진영(?)은 경쟁적으로 기부금을 몰아넣었다. 말도 안 되게 돈은 쌓여갔다.
어이가 없었다.

한참 후, 스님은 시주를 멈추고 주위를 힐끗 쳐다 보고는 돈을 세기 시작을 했다.뭉칫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숨이 멎었다. 곧이어 스님은 짐을 이리저리 싸들고 돈을 덥석 집어 들었다.스님은 계면쩍은 듯 씨익 웃으면서 그 시줏돈을 구세군 냄비에 털석 집어 넣고는 손을 탁탁 털며 "나무아비타불" 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소리없는 아우성은 순간, 멎었고...
쳐다보던 사람들은 모두, 허탈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한 마음으로 머리에 총을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
한 해가 이렇게 좋은 일로 마무리되고,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옳으냐 네가 옳으냐는 중생의 편견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 경지에서 진리는 하나입니다.

사랑과 나눔입니다.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또 내가 가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입니다.

하느님과 부처님의 자비가 강물처럼 흐르는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