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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30211 글/시]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법정)/좋은 삶과 좋은 죽음은?(안젤름 그륀)

[2023년 2월11일(토)연중 제5주간 토요일(세계 병자의 날) , 오늘의 글/시]

 


💗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
 
욕구를 충촉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삶은 빈 껍질이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단지 바라보는 것은 아무 부담없이 보면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소유로 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안으로 생각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증거이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이 허술하기 때문이고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려면 가능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없이 무책임하게 타인에 대해 험담을 늘어 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전 생애의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이 참으로 얻는 것이고 잃는 것인지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잃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나그네 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마라. 사람의 허물을 보지마라. 남이 했든 말았든 상관하지 마라. 다만..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을 보라.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죄를 짓고.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눈으로 보는 것에 탐내지 말라. 속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하라.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 할 길도 없다.
 
날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날때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의 영역을 침해 하면서 욕심을 부린다면 자신도 해치고 이웃에게도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전문 지식을 익히고 그 길에 한 평생 종사하는 것도 그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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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과 좋은 죽음은?


우리는 죽는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죽을지는 모른다.
나는 죽는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리고 질문이 남는다.
만약 죽음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좋은 죽음과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삶에서
좋은 죽음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해서 죽음을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삶에서 죽음의 본질인
‘놓아버림’에 익숙하게 될 때만
좋은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무엇을 놓아야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아이의 성질을 버리고
나이가 들면 영혼의 풍요를 찾기 위해서
힘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자라도록 우리 자아를 내려놓아야하고,
하느님과 하나가되기 위해서 죽음으로
생명과 집착을 모두 내려 놓아야 한다.


죽음은 삶을 강하게 만든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에게 삶을
단 한번 있는 기회로 누리라고 초청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단 한번 밖에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삶은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그 맛이 깊어진다.
따라서 삶은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강해지고 깊어진다.
이러한 의식적인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참고한 글 “인생을 이야기 하다”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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