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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30113 글/시]언제나 하느님곁에 머물자(안젤름 그륀)/ [내 것이 아니오]

[2023년 2월13일(월)연중 제6주간 월요일, 오늘의 글/시]

 

언제나 하느님곁에 머물자


한 압바가 말했다.
“자네가 잠자고 있던지 깨어있던지
또는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하느님께서 자네의 눈앞에 계시면
원수들이 자네를 겁먹게 할 수 없네.
자네의 생각이 하느님 안에 머물면
하느님의 권능도 마찬가지로
자네 안에 머무네.”(금언집77)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
그 분 안에 있는 것,
그분과 친교를 나누는 것은,
수도승들의 가장 깊은 소망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우리의 눈앞에
모시고 있어야한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일은
두려움에서, 원수들의 위협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어떤 사람들이 내게 큰 싸움을 걸고,
계략을 꾸미거나,
나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들은
나를 해치거나 다치게 할 수 없다.


누구든 하느님 안에 있으면 두려움이나
다른 사람들의 위협에 넘겨지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 안에서 힘을 얻고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한 글/사막을 통한 생명의 길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서도역

 

 [내 것이 아니오]

 

조선시대 이 씨(李氏)는 대대로 부자였는데 증손, 현손에 이르러 가산을 탕진해,

이에 어려움을 면하기 위해 한양의 집을 자수성가한 홍 씨(洪氏)에게 팔았습니다.

평소 열심히 일한 홍 씨는 이 씨의 집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대청의 기울어진 기둥 하나를 수리 중에,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헌 기둥을 뽑아낸 곳에서 은() 3,000냥이 담긴 항아리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놀란 홍 씨는 급히 수소문하여 집의 이전 주인인 이 씨를 찾았습니다.

이 씨는 홍 씨에게 집을 팔고는 예전과 달리 검소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홍 씨는 이 씨에게 은전이 든 항아리를 주려 했지만, 이 씨는 사양했습니다.

"그 돈이 우리 것이라는 증명할만한 문서도 없으니까 그 돈은 당신 것이 맞소.

그리고 나는 그 집을 팔면서 집 기왓장이나 주춧돌까지도 몽땅 당신에게 팔았소."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홍 씨와 이 씨의 사연이 관청과 조정에 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이를 듣고는 매우 흐뭇해하면서 두 집안에다 교서를 내렸습니다.

'백성 가운데 이처럼 어진 자가 있으니, 누가 이 옛사람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그리고는 은전을 반씩 나눠가지게 한 뒤, 두 사람에게 벼슬을 내렸다 합니다.

조선조 후기 시인인 조수삼의 문집 '추재집(秋齋集)'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주운 물건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남의 물건을 가지면 나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이런 당연한 것을 어릴 적부터 배우면서도

좋은 것에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생기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그런 본성을 참으며 자신의 것이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큰 재물을,

보고도 양보하며 더 합당한 주인을 찾으려는 행동은 크게 본받아야만 하겠습니다.

 

독립선언서 초안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일컫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저마다의 정직과 성실만큼 그대를 돕는 것들은 없다.”

 

잠언에도 이런 정직과 성실에 대해 좋은 비교로 대비해 소개하고 있습니다.(잠언 11,3.6)

올곧은 이들의 의로움은 그들을 구해 주지만, 배신자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걸려들고 만다.

올곧은 이들의 흠 없음은 그들을 잘 이끌어 주지만, 배신자들의 패륜은 그들을 멸망시킨다.

 

그렇습니다.

'추재집'에 소개된 두 어르신의 훈훈한 이야기가 메마른 우리 사회에 온기를 안깁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견물생심을 오로지 온몸에 배인 정직과 성실한 삶으로,

서로에게 내 것이 아님을 내세우는 겸손과 배려의 삶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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