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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30220 글/시]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따뜻한 하루[35])/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 어디로 갈까? / 따뜻한 하루[34]

[2023년 2월20일(월) 연중 제7주간 월요 , 오늘의 글/시]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 따뜻한 하루[35]

  

 

우리 주위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일에 대해 미리 염려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이들은 자주 "어휴, 이 일을 언제 다해? 이제 난 죽었다." 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미리 염려하며 탄식하다 보면 일 때문이 아니라 염려 때문에 먼저 지칩니다.

프랑스 속담에 '풀을 베는 농부는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가 들판에서 "저 많은 들의 풀을 언제 다 베지?" 라는 푸념만 하다 보면

결국 그 끝을 보는 순간 풀 베려는 의욕을 잃어 일을 끝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망상, 집착, 한계, 게으름, 불신, 인생에 하나도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다섯을 '염려'의 얼굴이라고 '걱정 버리기 연습'의 저자는 말합니다.

 

이렇게 '염려하기'와 준비하기'는 분명 다릅니다.

들판의 끝을 보며 풀을 베는 데 걱정할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끔 염려와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염려는 믿음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고,

그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사라진답니다.

 

걱정과 염려에 대한 성경 내용입니다(마태 6,31-34; 루카 12,29-32 참조).

예수님께서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고 염려하지를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가 먼저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을 찾으면 이것도 곁들여 받는다.

그러므로 내일 걱정은 내일하고, 그날 고생은 그날로도 충분하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먹은 계획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렇기에 '염려' '준비'를 언제나 동시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하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 어디로 갈까? / 따뜻한 하루[34] 

늦은 오후 한 청년이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공원을 청소하던 관리인은 넋을 잃은 듯 앉아있는

청년이 조금 수상해서 말을 걸었습니다.

"이보시오, 젊은이, 당신 누구요?"

 

"글쎄요. 내가 누군지를 몰라서 생각하는 중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관리인이 다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 집이 어디요? 어디서 왔어요?"

 

"그것도 잘 몰라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관리인은 조금 강경한 어조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계속 여기 있을 거요? 어디 갈 데 없어요?"

 

"글쎄요 그것을 알았으면 벌써 여기를 떠나지 않았겠습니까?"

 

관리인은 엉뚱한 대답만 던지는 이 청년이 더욱 수상하게 여겨졌지만,

청년은 관리인의 물음에는 전혀 모르는 채 받았던 질문만 골몰했습니다.

 

이 청년은 근대 합리주의 철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제자들의 의견까지 듣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렇습니다.

방향이 좀 다르기는 했지만,

공원 관리인이 대수롭지 않게 던진 이 질문 내용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도 중대한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데카르트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