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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성지·순교자·성인

분당 요한성당

본당설정배경

태동기 : 1991-1992

1846 9 16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를 하셨다. 그때 나이 26세였다. 그의 시체는 모래사장에 가매장되었는데 이민식 빈첸시오가 몰래 김신부님

  의 머리는 수의에 곱게 싸서 가슴에 품고 동체는 걸방하여 짊어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검은돌(黑石洞)을 지나 동작리(銅雀洞) 뒷산을 타고 남태령을 넘어 청계산 골짜

  기에 이르니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어두워질 때까지 유체를 다래 넝쿨에 숨겼다가 다시 길을 재촉하여 하우고개(鶴峴)를 돌아 묘론이 고개, 너더리(지금의 판교)를 거

  쳐 분당골(지금의 분당요한성당 부근) 태재고개를 넘어 김신부님이 순교하신 지 40일 후 미리내에 안장을 하게 된다.

1989 4 2

  이렇게 김신부님의 시신이 지나가신 지 143년 후 정부에서는 이 지역에 분당 새 주택도시 건설 계획 발표와 함께 성남시 분당지구에 대규모 도시 건설 계획을 착수하였

  다.

1989 5 4

  택지 예정지구를 지정하고 7 30일에는 택지 개발 계획 구상 안을 확정 발표하였다. 인구 39만 명에 97,500세대 규모에 종교부지 26개를 지정하고 택지 분양을 시작하

  였다.

  천주교 수원교구에서는 종교부지 #14(분당동<장안동> 132번지) 김신부님의 시신이 지나가신 바로 그 길인 태재고개 바로 밑에 있는 땅을 평당 182 6천원에 1,198.7

  을 22 3 2836560(백미 22,049가마 상당액)을 주었고(1992.7.11. 잔금 지불) #17(정자동 78번지)을 평당 280 2천원에 505평을 14 1 500만원(백미 14,150

  가마 상당액)을 주고 (1993.2.28. 잔금지불) 가까스로 분양 받을 수 있었다.

1992 8

  분당 신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여 1991 9월부터 입주가 시작되자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교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교구에서는 분당에 인접한 성남시 성남

  동 본당 최충렬(崔忠烈 마태오)신부에게 분당지역 입주 신자들을 우선 관리하도록 했고, 후임으로부임한 서명석(徐明錫 안드레아) 신부는 최중인(崔重仁 아우구스티

  노) 보좌신부와 함께 분당 새본당 준비를 계속했다. 모든 미사는 성남동 성당에서 참례하였으며 노약자들을 위해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서현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토요

  특전미사와 주일미사 한 대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1992 10 11

  분당 성전 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장에 염형민(廉炯敏 토마스)을 추대하였다. 성전 건립 추진 위원회는 우선 교우들이 모일 수 있는 가건물이라도 만들어 보기

  로 하고 관계 기관들과 협의를 했으나 철저한 계획도시인 분당지역에는 가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2 10 8

  분당지역 입주 교우들의 구역 반 편성을 하고 교우들의 결집을 시작했다.

1992 12 30

  천주교 수원교구 공문(사무처 89-92. 1992.12.30)에 의하여 1993 1 7일부로 분당본당 설정이 공포되었다. 당시 교적상의 신자 수는 1,362세대에 4,440명이었다. 

 

분당요한성당은 엄·이 종합건축사사무소의 서상하(徐尙夏 모데스토)씨와 이각표 라우렌시오의 설계로 삼양건설산업주식회사 이진기(안드레아)씨가 연 건평 6,142, 지하 5층 지상 5층의 화강석 붙임 현대식에 로마네스크식을 가미한 웅장한 성당을 건축하였다.
대성당 수용 인원은 유아실을 포함해 3,000석이며 500여석의 소성당이 있고 교실과 사제관, 수녀원, 영안실, 식당 등 각종 편의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분당 요한성당 성모상

성모상

작품 규격 :  H 450㎝ 좌대 140, 본체 300

소장 위치 : 성당 앞 정원

분당요한성당 정원에 모셔진 이 성모상의 이름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상이다. 파리의 뤼뒤박에 있는 성 빈첸시오의 사랑의 딸회 수녀원 수련자였던 카타리나 라부레에게 1831년 발현하신 성모님이 만들어 보급하라고 하신 소위 "기적의 패"에 있는 성모상이다.

이 성모상은 레지오마리애 회의 때 모시고 회합을 하는 성모상이며 은혜의 성모상이라고도 하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성모상인데 아마도 국내에 있는 성모상 중에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모상이 아닐까 한다. 이 성모상은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남다른 한봉애 바울라 할머니가 우리 성당에 봉헌했다.

성모상은 2001 5 26 <성모의 밤>에 축복되었다. 이태리 토스카나의 삐에뜨라 산따에 있는 성물 전문 메이커 체르비에띠 프랑꼬(Cervietti Franco & C.)회사에서 만들었다.

완전 백색 대리석으로 높이가 3m이다. 좌대는 1.4m 로 좌대와 성모상을 합쳐서 4.5m 높이이다.

 

분당 요한 성당 성 가정상

 

천주교 분당 성요한 성당 외관

 

천주교 분당 성요한 성당 외관

 

천주교 분당 성요한 성당 외관 우측

 

천주교 분당 성요한 성당 외관 우측

 

천주교 분당 성요한 성당 외관 좌측 출입구 안으로 들어서서...

 

천주교 분당 성요한 성당 외관 좌측(후면)

 

천주교 분당 성요한 성당 외관 좌측(후면)

 

분당 요한 성당 주출입문

 

분당 요한 성당 머릿돌

 

분당 요한 성당 주출입문

 

분당 요한 성당 주출입문

 

분당 요한 성당 부출입문

 

분당 요한성당 층별 안내문

 

분당 요한성당 피에타상

피에타(Pieta)

피에타란 이태리 말의 Pieta에서 온 말인데 영어에서도 피에타라고 한다. 이 피에타란 그리스도의 시신을 표현한 예술 작품 전반에 적용되는 표현으로 라틴어의 Pietas(삐에따스=의무, 겸허, 효애)라는 말에서 기원된 말이다. 통례적으로 성모 마리아 상이 포함된다. 13세기 독일에서 발단되어 문예부흥기 이태리에서 절정에 달한다. 피에타를 표현한 거장으로는 벨 리니, 보티첼리, 안젤리코, 무릴료스, 라파엘로, 루벤스, 티티안, 반다이크 등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바티칸의 성 베드 로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미켈란젤로가 1494∼1495년에 만든 작품이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의 시신을 성모 마리아 가 무릎에 안고 있는 모습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우리 성당에 있는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가 사용한 이태리 토스카나의 삐에뜨라 산따에서 원석을 채취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것과 똑 같은 175㎝의 크기로 이태리 <프랑코 에 체르비에띠> 회사에서 복제되어 미국과 대만에 이어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안치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성당 1층 홀에 안치되어 있다.

 

분당 요한성당 피에타상 안내문

 

분당 요한성당 벽화 1

 

분당 요한성당 벽화 2

 

분당 요한성당 벽화 3

 

분당 요한성당 벽화 4

 

분당 요한성당 벽화 5

 

분당 요한성당 벽화 6

 

분당 요한성당 벽화 7

 

분당 요한성당 벽화 8

 

분당 요한성당 벽화 9

 

분당 요한성당 벽화 10

 

분당 요한성당 벽화 11

 

분당 요한성당 벽화 12

 

분당 요한성당 벽화 13

 

분당 요한성당 벽화 14

 

분당 요한성당 벽화 15

 

분당 요한성당 벽화 16

 

분당 요한성당 벽화 17

 

분당 요한성당 벽화 18

 

분당 요한성당 벽화 19

 

분당 요한성당 벽화 20

 

분당 요한성당 벽화 21

 

분당 요한성당 벽화 22

 

분당 요한성당 벽화 23

 

분당 요한성당 벽화 24

 

분당 요한성당 벽화 25

 

분당 요한성당 벽화 26

 

분당 요한성당 벽화 27

 

분당 요한성당 벽화 28

작가 : 변승훈

규격 : 1000cm × 350cm

대성당 입구 우측에 있는 "미리내의 아침"이라는 제목의 이 벽화는 폭 10m, 높이 3.5m의 자기 모자이크 벽화로써 변승훈씨의 작품이다.

분당 요한성당 대성전 앞 스텐인드 글라스

 

분당 요한성당 대성전 출입문

 

분당 요한성당 내부 착한 목자 예수상

 

분당 요한성당 내부 '돌아온 탕자' 그림액자

 

분당 요한성당 내부 '돌아온 탕자' 그림액자 안내문

 

분당 요한성당 수호성인 사도 성 요한 상

 

분당 요한성당 수호성인 사도 성 요한 상 안내석

 

분당 요한성당 수호성인 사도 성 요한 상 - 작가 싸인- 장세일 체칠리아 作

 

사도 성 요한

작가          :  장세일 체칠리아

작품 규격  :  H 2400㎝, 좌대 105 X 70㎝ 좌대 H 100

재료         :  청동 450

소장 위치 : 성당 앞 녹지 공원

분당요한성당의 수호성인 상입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았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그 얼굴이 사람 같았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다.(요한 묵시록 4,7)

리용의 주교였던 교부 이레네오는 이 네 생물을 네 복음사가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교회 미술이나 조각에서 네 복음사가의 상징으로 이를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깊고 높은 진리를 간파했다 하여 독수리로 표현합니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라떼란대성당(요한 대성당) 기둥의 요한 사도 상()에도 까밀로 루스꼬니는 성서를 들고 있는 요한 사도 옆에 독수리를 조각해 놓았고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돔 내부 벽에 요한 사도의 모자익 벽화에도 독수리와 함께 그렸습니다. 그래서 분당요한성당 수호성인 상을 성당 앞 정원에 모셨습니다. 이 상은 장세일(체칠리아)가 어머니 구옥자(안나)의 도움을 받아 1 6개월에 걸쳐 제작하여 봉헌한 것으로 동() 450㎏이 들어갔습니다. 높이 2,4m 입상이며 좌대는 105 X 70㎝이며 화강석 좌대 높이 1m 위에 안치했습니다.

1997 12 28일 주일 11시 대미사 후에 축복식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