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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집 맛난 얘기] 평양식 불고기와 평양냉면이 짝을 만나다 /메밀꽃 3장

[맛난 집 맛난 얘기] 평양식 불고기와 평양냉면이 짝을 만나다

입력 : 2012.10.05 09:11

 

 

냉면 귀신인 어느 냉면 마니아는 절대로 더운 여름에 냉면집에 가질 않는다. 아무리 최고의 냉면을 만드는 전문점이라고 해도 한여름에는 제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반죽하고, 면 뽑고, 삶는 시간이 단축될 수 밖에 없고 육수도 대량으로 만들다 보면 원래의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야 그 미세한 맛의 차이를 느끼기가 어렵지만 ‘선수’들은 금방 알아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냉면 맛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시간이다. 선수들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할 시기다. 최근 선수들 사이에 새로운 평양냉면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곳이 있다. 판교에 있는 <능라>.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혜성처럼 나타난 또 하나의 평양냉면, 알고 보니 주인장이…

평양냉면은 몇몇 유명 업소를 중심으로 진입장벽이 무척 높은 음식이다. 수십 년 이어온 냉면 맛의 전통을 고수하며 단단하게 마니아 층을 다져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양냉면 전문점을 개업한다는 것은 외식업 내공을 쌓은 업계 고수이거나 업계 사정을 잘 모르는 무모한 경우, 둘 중 하나다.

이 집 주인장인 김영철(54) 씨는 이른바 명문 고교와 명문대학을 나왔다.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그 분야의 사업을 하다가 냉면 집을 차린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뼛속부터 평양냉면 전문가였다.

김씨의 부친은 평양의 명문, 평양고등보통학교를 33회로 졸업한 평양 토박이였다. 1.4 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 동향의 배우자를 만나 혼인했다. 평남 용강 출신 모친의 음식을 먹으며 자란 김영철 씨는 어렸을 적부터 부친과 함께 <우래옥>을 비롯한 평양냉면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우래옥> 주인이 부친의 평양고보 선배라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었다. 그러면서 김씨는 온 몸으로 그 맛을 각인시켰다.

당시 그의 부친은 인텔리 계층으로서는 드물게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부산 피난시절에 구입한 냉면 제면기로 가끔씩 냉면을 뽑아 가족들과 즐기기도 했다. 김씨는 아버지의 평양냉면에 차츰 입맛을 들였다. 부친은 평양냉면의 사업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 보다 평양냉면의 본디 맛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2000년 부친이 작고했다. 김씨는 유품을 정리하다가 앨범 갈피에서 빛 바랜 메모장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선친이 정리해 놓은 평양냉면 육수 레시피였다. 그때 김씨는 살아생전 아버지의 평양냉면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깨달았다. 이후 평양냉면 전문점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소명처럼 자리잡았다고 한다.

오래된 전설, 순안불고기와 평양냉면의 조합

이 집의 옥호인 ‘능라’는 평양 대동강의 섬 이름이다. 서울 한강에 여의도가 있다면 평양에는 능라도가 있다. 여의도는 버려진 섬 취급을 받았지만, 능라도는 경치가 빼어나 평양 사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이름처럼 비단 같이 아름다운 섬이어서 모란봉, 을밀대와 함께 평양의 명소였다. 타관의 평양사람에겐 그리움의 대상이자 애향심의 모체다.

김영철 씨의 선조들은 능라도를 품고 있는 평양을 중심으로 평양의 북부 지역에서 주로 생업에 종사했다. 김씨의 선친이 냉면에 관심이 컸던 것은 아마도 어머니 즉, 김씨 조모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조모는 예전 평양 인근의 평성시장에서 순안불고기를 파셨다고 한다. 순안은 과거 평남 평원군에 속한 땅으로 평야지대여서 소를 많이 길렀다. 순안은 평양의 관문인 순안국제공항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평성과 순안 모두 평양의 북쪽에 나란히 인접한 고장이다.

순안불고기는 이 지방에서 난 소고기의 앞다리 살을 주로 썼다. 추운 지방이어서인지 각종 채소를 넣지 않았다. 과일의 과즙을 넣고 평양냉면 육수에 적셔서 구워먹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소고기 국물을 내서 냉면 육수로 먹고 불고기 육수로도 썼던 것이다. 이 사실은 불고기와 평양냉면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순안불고기를 먹고 평양냉면을 먹는 형태의 전통이 이미 1920~40년대쯤에 평양지방에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츰 세월이 흐르고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등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김씨도 이 부분을 못내 아쉬워한다.

1995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어느 재미 교수가 평양의 <칠성옥>에서 불고기와 평양냉면을 먹었는데 ‘이것이 진짜 평양냉면이구나’할 만큼 감칠맛이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김씨가 북한에 몇 번 가서 먹어본 평양의 불고기+평양냉면은 부모님이 만들어준 순안불고기+평양냉면의 그 맛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에 불고기+평양냉면이 뚜렷한 한 흐름을 보였지만 지금 불고기와 냉면 조합을 구현한 전문점은 거의 찾기 힘들다. 김씨는 <능라>가 그 전통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담담하고 맑은 육수의 평양냉면과 순안불고기 재현

김영철 씨는 선친의 유지에 따라 제대로 된 평양냉면과 순안불고기를 재현하기로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익히 먹어오고 배운 자신의 평양냉면 체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부친과 친분이 있던 몇몇 평양냉면 전문점에서 조리 실무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조언도 들었다. 탈북자로서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북한음식전문가 이애란 씨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6년 동안 평양냉면과 순안불고기를 연구하고 재현하려는 노력 끝에 2011년 5월에 <능라>의 문을 열었다.

김씨는 최대한 평양의 맛, 순안의 맛을 내고자 애쓴다. 이 집 평양냉면(1만원)과 불고기(200g 2만6000원)는 남한 땅에 정착한 평양 토박이 2세대에 걸친 냉면 사랑의 결실이다. 소문을 듣고 고향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특히 한 달에 한 번씩 선친의 모교인 평양고보 38회 동문회도 여기서 열린다. 그런 까닭에 식재료와 음식의 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냉면 육수는 1++ 등급 한우를 쓴다. 양지, 사태, 설깃살을 서너 시간 끓여서 육수를 낸다. 예전 평양냉면의 맛과 식감에 가장 근접한 맛을 내기 위해 메밀 함량은 계절에 따라 조절한다. 대체로 여름철에는 6:4, 요즘 같은 가을에는 7:3 정도를 유지한다. 식감도 중요하지만 메밀 향이 유지되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쓴다. 이를 위해 올 해 안에 자체 메밀 제분기를 들여놓을 예정이다.

최고의 재료만을 엄선하고 공을 들인 평양냉면 면발은 역시 메밀 향이 은은했다. 육수는 맑고 깊은 담담함을 유지했다. 고명으로 얹은 소고기는 고소함과 씹는 맛으로 담담한 육수와 메밀 면발에 액센트를 찍어준다. 양도 큰 그릇이 꽉 찰 만큼 푸짐하다. 예전 평양 사람들은 이런 냉면과 함께 불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능라>의 불고기는 순안불고기를 본으로 삼는다. 순안불고기처럼 소의 전각 생고기를 칼로 두드려서 부드럽게 만든다. 이어 배, 사과, 매실 즙과 함께 간장을 넣어 4시간 정도 고기를 숙성시킨다. 그러나 여타 지방 불고기와 달리 채소는 넣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불고기는 자연스런 단맛과 연하게 씹히는 적당한 저작감이 좋다. 서울식불고기처럼 국물이 많아 밥과 함께 먹어도 훌륭하다. 물론 평양냉면과 짝을 이룰 때 그 진미가 발휘된다.

능라도 버들 늘어진 봄날, 대동강에 배를 띄우고 순안불고기에 평양냉면 먹는 꿈을 꾸어본다. 좋은 벗 한 둘 함께하면 냉면 맛도 더 나겠지. 아마 평안감사 부럽지 않을 것이다.

<능라>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문의 031-781-3989

기고= 글 사진 이정훈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밥먹자냉면을 좋아하긴 하는데...소문만 무성한 것 아닌지...걱~정 되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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