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양미술산책·성화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86] 르네상스 화가 조토의 혁신/ '돌아온 탕자' 2장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86] 르네상스 화가 조토의 혁신

조선일보/오피니언/김영나 서울대교수 서양미술사 

입력 : 2010.12.28 22:14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약 40km 떨어진 작은 도시 파도바의 아레나 예배당에는 서양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명한 벽화<사진>가 있다. 1300년경에 활약한 조토(Giotto di Bondone·1267~ 1337)의 그림이다. 파도바에서 가장 부유했던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위촉한 이 벽화에는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생애의 장면들과,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장면에는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제자들과 천사들이 중세의 일률적이고 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인물들은 모두 강한 명암의 대조에 의해 입체적인데, 조토는 강렬한 표정이나 슬퍼하는 다양한 동작을 통해 각자의 심리적인 반응을 느끼게 한다. 하늘도 더 이상 황금색 배경이 아니라 파란 색채로 그려져 자연 묘사에서 시각적 관찰을 바탕으로 하는 사실주의가 대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토의 이러한 그림은 장식적이고 이야기 전달이 중심이었던 고딕과 비잔틴 미술을 르네상스 미술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스크로베니의 아버지 레지나르도는 고리대금업자로 시인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에 떨어진 것으로 묘사된 인물이었다. 아마도 아들 스크로베니가 이 작품을 의뢰한 목적은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한편, 속죄의 의미를 담은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이 아레나 예배당의 '최후의 심판' 벽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구원받은 자로 그리게 했다.

조토는 당대에도 명성이 드높아 미술가들을 경시하던 단테조차 그를 훌륭한 기술과 정신을 지닌 우수한 화가라고 칭찬했으며, 여러 도시에서 그림 주문이 쇄도했다. 조토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별로 없지만 여러 이야기가 전해온다. 16세기에 '미술가 열전'을 쓴 바자리에 의하면 조토는 원래 양을 치던 소년이었다고 한다. 조토가 바위에 그려놓은 양의 그림을 지나가다 본 당대의 유명한 화가 치마부에가 그의 뛰어난 재능에 탄복하여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의 사후 크게 발전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은 사실상 조토의 예술적 성과 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빠야1300년경에 활약한 조토(Giotto di Bondone·1267~ 1337)의 그림으로 이탈리아 아레나 예배당에 유명한 벽화<사진>가 있다....^-^

 

조토의 이러한 그림은 장식적이고 이야기 전달이 중심이었던 고딕과 비잔틴 미술을 르네상스 미술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조토의 사후 크게 발전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은 사실상 조토의 예술적 성과 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1월26일 토요일...수산나 -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기반을 이룬 조토(Giotto di Bondone·1267~ 1337)가 살았을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은 무엇인가?

      1270년(충렬왕)부터 1356년(공민왕)까지 원나라에 복속된 원 간섭기(86년간)의 전반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ㅎㅎㅎ...^-^

 

원 간섭기는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던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 초기까지를 일컫는다....고려(918~1392년)는 후기인 1270년부터 1356년까지 원나라에 86년간 복속되었다....원나라가 고려를 복속하기까지는 1231년 제1차여몽전쟁에서 1270년 고려조정이 강화도에서 개성으로 환도할때까지 39년이나 걸렸다...복속후 영토문제-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된 이후 원나라는 쌍성총관부,제주도 등 고려 영토의 일부를 탈취하여 자국 영토로 병합한다....복속후 내정간섭여부-원나라는 고려를 복속한후 고려국왕의 즉위,폐위,복위를 반복하여 고려에 대하여 심한 내정간섭을 하였다....복속후 왕실사이의 통혼-원나라가 고려를 복속한후 원나라황실과 고려왕실사이에 통혼이 잦아 양국의 황실과 왕실은 사돈이 된다...복속후 조공의 여부와 볼모의 지속성-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된 이후 원나라는 고려에 많은 양의 조공을 바치게 하여 고려는 원나라에 바칠 조공에 매우 시달리게 되고 볼모도 지속적으로 보내야 했다....복속에서 벗어나는 과정-고려는 공민왕이 1356년에 쌍성총관부를 정벌하여 되찾아 원나라의 복속에서 자력으로 벗어난다

 

1298년 충렬왕 태상왕(太上王)이 되고, 충선왕(忠宣王) 즉위.

1308년 원이 충선왕을 심양왕(瀋陽王)에 봉함. 충렬왕 죽고(1236~), 충선왕 다시 복위. 서운관(書雲觀) 창설.

1309년 각염법 제정.

1310년 원에서 충선왕을 심왕(瀋王)에 봉함.

1313년 충선왕, 충숙왕에게 전위(傳位), 조카 연안군(延安君) 호를 심양왕(충선왕)의 세자로 함.

1316년 상왕(上王), 심왕의 위(位)를 세자 호에게 전하고 태위왕(太尉王)이라 칭함.

1318년 윤번(輪番)으로 근무하던 진변별초제도(鎭邊別抄制度)를 복구.

1320년 원, 상왕 충선왕을 토번(吐蕃)으로 귀양보냄.

1325년 상왕 충선왕 원에서 죽음(1275~).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

1332년 상왕 충숙왕 복위하고, 충혜왕은 원나라로 감.

1340년 충혜왕 복위. 원나라의 문제, 고려인 기씨(奇氏)를 제3황후에 봉함.

 

 

분당 요한성당 그림액자 '돌아온 탕자'

 

분당 요한성당 그림액자 '돌아온 탕자' 안내문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년-1669년)은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이다. 일반적으로 그는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이기도 하다.곰브리치(Gombrich), p. 420. 예술 분야에서, 그의 기여는 역사가들이 소위 네덜란드 황금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불러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