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성당 뒷 이야기 - 1
명동 성당은 우리 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서울 대교구 주교좌 성당이다. 본당이 설정된 것은 1882년경으로 이곳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784년의 일이다. 이해 수표교의 이벽의 집에서 영세식이 있었고 다음해 명동 역관 김범우 (도마스)의 집 대청마루에
모인 이승훈(베드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와 권철신, 권일신 등의 대학자들이 이벽의 지도를 받으며
종교집회를 가짐으로써 조선에 교회를 창설하였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종교 신앙의 자유를
얻 게 되여, 제7대 교구장 블랑 (Blanc 白圭三) 주교는 땅을 물색해 성당 건립을 추진하던 중 기지 분쟁이
생겨 성당 건립은 지연되 었다. 1892년 남대문 밖에다 약현성당 (중림동성당)를 불리시켰 다. 이후 한때 종현성당
(명동성당) 은 문안성당, 약현성당은 문 밖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신자 수는 곗속 증가하였다.
코스트
(Eugene Coste, 高宜善) 신부가 건축 설계를 맡았고, 또 공사를 손수 지휘 감독하였다. 그러던 중 코스트신부가
선종하 고, 프와넬 (Poisne, 朴道行) 신부가 본당을 맡아 보면서 성당 건축을 마무리지었다.
1898년 5월 29일 명동성당 축성식과 함께 "원죄없이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1900년 9월
10일 병인 박해때 순교한 순교자들의 유해를 용산신하교에서 옮겨와 지하묘지에 안장하였다.
1925년 방인 사제로는 처음으로 박일규 (朴一圭 안드레아)신부 를 보좌신부로 맞이하였다. 1926년 3월, 3대 본당
주임신부로 비에모 (Villemot, 禹一謨)신부가 부임했다. 우신부는 엄하고 무서 워서 신자들은 우딱딱신부라고
하였다.
오늘은 2013년 5월 29일이다. 115년전 오늘 곧 1898년 5월 29일 명동성당이 탄생했다.
명당성당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성당이며, 본당이며 조선교구의 유일한 교구였다.
이날을 기쁘게 맞이하며 하느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 를 주님의 도움으로 마무리하도록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