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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매묵]2018년 7월 5일 목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은이성지 김가항 성당 3장

오늘 전례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또는 [백] 성 안토니오 마리아 즈카르야 사제

입당송

시편 47(46),2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본기도

하느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지만 주님께 붙잡혔다며,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에게, 죄를 용서받았으니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0-17
그 무렵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9(18),8.9.10.11(◎ 10ㄷㄹ)
◎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

복음 환호송

2코린 5,19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 알렐루야.

복음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하느님,
이 신비를 거행하는 저희에게 구원을 베푸시니
이 성찬례가
하느님께 올리는 합당한 제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3(102),1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또는>

요한 17,20-2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위하여 비오니, 이들이 우리 안에 하나가 되게 하시고, 아버지가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봉헌하고 받아 모신 성체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저희가 사랑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길이 남을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중풍 병자는 혼자서 자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병에 걸려 손발을 쓸 수 없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지 알게 됩니다.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살던 사람은 병에 걸린 자신보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자존심의 상처를 더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병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중풍 병자는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손가락질할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예언자라고 해도 병을 낫게 해 주실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병의 치유보다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회심을 먼저 일으켜 주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병으로 마음과 몸이 옹졸해진 중풍 병자는 치유를 받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법을 가장 잘 안다는 율법 학자는 병의 치유라는 하느님의 능력을 눈앞에서 보고도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며 예수님을 의심합니다. 죄의 용서가 하느님께 유보된 권한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던 율법 학자의 눈에 예수님은 신성 모독을 저지르는 불경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자신들의 기준에 가두어 두려던 율법 학자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치유가 오히려 병자에게서는 일어납니다. “일어나 ……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본향, 곧 하느님께 돌아가려면 내 몸과 마음을 가두고 있는 죄를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보여 줍니다. 우리도 중풍 병자처럼 죄를 용서받아 치유를 얻고 일어나 이웃을 향해 걸어갈 날을 기다립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생각의 틀에 가두어 두려던 그들 앞에서 죄를 용서하는 행위가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라는 예수님의 치유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 능력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우리가 쓰는 말에는 하느님의 능력이 담기기도 하지만, 악의 권세를 퍼뜨리는 도구가 될 수도. 참된 치유는 육체적 치유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까지 바꿀 수 있는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일 게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를 살리시는 하느님 능력의 도구가 되는 것임을 늘 상기하자. (박윤식)

2.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선종하지는 않았지만, 순교로서 신앙을 지켰고, 성인이 되셔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가 되셨습니다. 사제들은 선종을 위한 기도를 하기 전에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교의 삶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유한 것보다 가난한 것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건강한 것보다 아픈 것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선종했던 분들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목숨을 바쳐서 신앙을 지켜온 순교자들에 의해서 오늘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한 교우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부님들은 결혼하지 않아서 그렇지 직업으로 치면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존경받지요, 먹고 살 걱정하지 않지요, 여행도 편하게 다니지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신자들의 눈에 사제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 생각을 했습니다. 단적인 예지만, 사제들이 겸손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사제들이 가난하게 살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사제들이 자신들의 직무에 헌신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순교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지금도 편안하고 쉬운 길보다는 어렵고 힘든 길 그러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길은 때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줍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그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키워주고 그러한 끈기는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희망을 낳습니다. 또한, 그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 걸어가신 신앙의 길, 희생의 길, 순교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겠습니다.(조재형 신부)

3.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각 사제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능력을 먼저 베드로에게 주셨고 또 부활하셔서는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사도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 이후 가톨릭교회는 꾸준히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행사해 왔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녔다고 말을 해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당시 이스라엘 상황에서 성령을 받고 한 무리가 모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녔다고 말하며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힘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에게만 주어집니다. 다른 종교들은 감히 인간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정도만 성령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 모든 것을 주셨다면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조금만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하늘나라의 열쇠, 즉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데 죄가 용서받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모습이 여러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주지 않으셨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 교회가 성령을 받았다면 하느님의 모든 권한을 받은 것입니다. (요셉신부)

4. 심신의, 영육의 치유와 건강에 필수전제조건이 믿음이요 주님을 만나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죄의 용서-영육의 치유-참 자기인식의 건강’의 순서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5. 운전 중이던 할아버지는 차를 세우고 그를 따로 불러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말을 해 주었다.
“제프, 똑똑하기보다
친절하기가 훨씬 어렵단다.” 그는 이 경험을 언급하며 말했다. “똑똑함은 재능이지만 친절함은 선택입니다. 재능은 쉽습니다. 주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선택은 어렵습니다.
당신이 조심하지 않으면 재능에 도취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편한 삶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모험을 택하겠습니까? 당신은 비판에 지칠 건가요? 아니면 신념을 좇겠습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겠습니까? 아니면 친절히 대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선택의 결과물입니다.”(빠다킹신부)

2018년 7월 5일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복음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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