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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교황강론

[교황님 미사 강론]프란치스코 교황의 아랍에미리트 사목 방문 미사[2019년 2월 5일 화요일(설) / 참조팝나무 3장

정진영 [jjwriter] 쪽지 캡슐

2019-02-14 ㅣ No.127591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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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925일 화요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민수기 6,22-27

화답송 : 시편 96(95),1-2.2-3.7-8.10(◎ 3 참조)

2독서 : 야고보서 4,13-15

복음 : 루카 복음 12,35-40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0016&gomonth=2019-02-05&missatype=DA

* 이날 교황님 강론 당일 말씀 전례의 독서와 복음 말씀이 한국 교회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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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방문

아랍에미리트

(2019 2 3-5)

 

거룩한 미사

 

교황 성하의 강론

 

자이드 스포츠시티(아부다비)

2019 2 5일 화요일

 

행복하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시작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박아 놓으시는 듯이 그분께서 반복하는 말씀이고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다면, 당신께서 그 시대에 제자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분의 말씀 듣기를 사랑한다면, 매일  당신이 이 말씀을 살아 내려고 노력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합니다. 당신은 행복해 질 것이다(will be)’가 아니라 당신은 행복합니다(are)’. 이것이 당신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깨닫는 첫 번째 진실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능적인 외면적인 처방들의 목록이나 알아야 하는 일련의 교리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무엇보다 더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행복의 기쁨을 살아 내는 것을 의미하고 하나의 러브스토리 하느님과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와 친교 안에 있으시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우리 기쁨의 이유, 세상의 누구도 우리 삶의 어떤 상황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의 이유입니다. 그것은 고통 가운데에서도 평화를 주는 기쁨이고 이미 우리를 저 영원한 우리를 기다리는 행복에 참여하게 만드는 기쁨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당신을 만나는 기쁨 안에서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러 온 말입니다. 행복하여라!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제자들에게 행복하다고 부르시는 바로 그 순간에 벌써 우리는 각각 참행복들의 이유들에 감동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한 부자들과 권력자들 성공한 사람들과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 사람들에 따르는 저 통속적인 생각이 뒤집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는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나쁜 상황에서 나타나는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머무르는 사람들, 박해 받는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봅시다. 즉 물질에서는 가난하시고 사랑에서는 부유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너무나 많은 삶들을 치유하셨지만 당신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위대함은 갖는 것 안에 없고 오히려 주는 것 안에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의롭고 온유하시어 그분께서는 저항하지 않으셨고 그분 자신이 부당하게 심판되도록 놓아두셨습니다. 이 방법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가져다 주셨습니다. 오로지 이 방법으로만 그분께서는 죽음과 죄와 두려움과 그리고 세속성까지도 이기셨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오늘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의 매력, 그분을 본받고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찾는 것을 매력을 재발견하는 은총을 함께 간구합시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과의 친교 안에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 안에.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나는 또한 여러분들이 우리가 들은 복음을 사는 방식에 대해 여러분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위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쓰여진 복음과 살아지는 복음의 차이가 쓰여진 음악과 연주되는 음악의 차이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은 복음의 선율을 알고 있고 여러분은 열정적으로 그 리듬을 따릅니다. 여러분은 많은 나라와 언어와 전례들로 구성된 합창단입니다. 성령께서 사랑하시고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기 위해 항상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시는 다양성. 이 믿음의 기쁜 다양성음악이 여러분이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증언이고 교회를 세우는 증언입니다. 힌더 주교님이 한번은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그 주교님은 자기 자신이 여러분의 목자일 뿐만 아니라 자주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범으로 주교님께 목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살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사는 것은, 하지만, 언제나 즐겁기만 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 불의함으로 고통 받는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정을 그리워하면서 그리고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아마도 느끼면서 집을 떠나 산다는 것은 가장 분명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진실하시고 그분의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사막 수도생활의 위대한 창시자 성 안토니오 아빠스 삶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떠났고 자기 자신을 사막에 두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그는 그에게 아무런 평화도 주지 않는 힘든 영적인 싸움에 몰두했습니다. , 그는 의심과 어둠의 공격 그리고 향수와 그의 과거 시절에 대한 후회에 굴복하게 만들려는 유혹의 공격까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를 위로하셨고 그리고 안토니오 성인을 그분께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왜 당신은 내 고통에서 나를 자유롭게하기 위해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러나 그때 그는 분명히 예수님의 대답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었다, 안토니오”(성 아타나시우스, 안토니오의 생애, 10). 주님께서는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한 일은 새로운 슬픔이나 어려운 시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혼자라고 생각할 때, 우리가 주님과 함께 지내왔던 그 모든 시간들이 지난 후조차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즉시 개입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순간들에 그분께서는 우리 옆에서 걷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하시는 데는 전문가이시기 때문입니다. , 그분께서는 사막에서 길을 내는 일까지도 하실 수 있습니다.(이사야서 43,19 참고)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참행복을 살아가는 것은 극적인 몸짓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아무 것도 써서 남기지 않으셨고 눈길을 끄는 아무것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세우라고 하시지 않으셨고 또는 특별한 제스처로 자기에게 눈길을 끌도록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단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인생입니다. 참행복은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위한 길 안내서입니다. 참행복은 초인적인 행동들이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매일의 삶 안에서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요구합니다. 참행복은 우리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도록 그리고 온유함과 정의를 실천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자비롭도록,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고통을 살아 내도록 초대합니다. 이것이 일상적인 삶의 거룩함입니다. 기적이 필요하지도 않고 특별한 표징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니다. 참행복은 슈퍼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도전과 시련들을 마주 대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참행복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씻어 깨끗이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에서도 매일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산소를 돌려주는 한 그루 나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예수님 안에서 이렇게 되는 것 그래서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할 준비가 되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여러분의 공동체들이 평화의 오아시스가 되게 해 주시기를.

 

마지막으로 나는 잠깐 참행복 중 두 가지에 대해 묵상하고 싶습니다. 첫 째는 이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마태오 복음 5,5).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억누르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셨던 그분, 자신의 고발자들에게조차도 온유하셨던 예수님의 행동 방식을 지키는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나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의 형제들에게 사라센사람들과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침을 전할 때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에게 다툼이나 불일치를 시작하게 하지 말고 하느님 사랑에서 비롯된 모든 인간 존재에 속하게 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도록 하십시오”(Regula Non Bullata, XVI). 다툼도 아니고 불일치도 아니고 그리고 이것은 또한 사제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다툼도 아니고 불일치도 아닙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중무장을 하고 출발하고 있었을 때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로지 자신의 겸손한 믿음과 구체적인 사랑으로만 무장하고 떠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온유함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방식을 따라 세상에서 산다면 우리는 그분 현존이 지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이렇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오 복음서 5,9).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부터 시작하여 평화를 증진시킵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예수님께서 몸소 말씀하신 공동체들 중에서 하나 즉 필라델피아가 있습니다. 나는 그곳이 여러분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거의 모든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주님께서 아무것도 나무라지 않으신 교회입니다. 사실 그 교회는 그분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켰고 어려움들 속에서조차 인내했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또한 중요한 세밀한 정보도 있습니다. 즉 그 이름 필라델피아는 형제로서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형제의 사랑.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과 형제의 사랑 속에서 인내한 한 교회는 주님의 마음에 들고 열매를 맺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평화와 일치를 지키는 은총을, 일등 그리스도인도 이등 그리스도인도 없는 아름다운 형제애로 서로 돕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여러분을 행복하다고 하시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낙심하지 말고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테살로니카 1 3,12)이 충만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은총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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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 되어온 이 예식을 마무리 하기 전에 나는 참석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칼데아, 콥트, 그리스 가톨릭, 그리스 멜키트, 라틴, 마론파, 시로 가톨릭, 시로 말라바, 시로 말란카 신자 여러분에게 나의 다정한 인사를 전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이 방문의 준비와 모든 사목 일에 관해 힌더 주교에게 감사합니다. 또한 참석하신 총대주교와 대교구주교들과 다른 주교님들, 사제들, 수도자들과 자비와 봉사의 정신으로 깊이 공헌해 주신 많은 평신도 여러분들에게, 그 공동체들과 가장 가난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자이드의 집에 있는 자이드의 자녀들에게 인사하고 감사합니다.

우리의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께서 교회의 사랑 안에서 여러분의 복음에 대한 기쁨에 찬 증언 안에서 여러분을 지켜 주시기를. 부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205_omelia-emiratiarab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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