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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모임

[삼화회]창경궁 탐방 (2019.5.21.화)

[삼화회]창경궁 탐방 

집합 일시: 2019년 5월21일 화요일 10시20분

 집합 장소: 창경궁 홍화문(정문) 안쪽 옥천교

참가자: 14명


일정:

1.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창경궁 탐방

2. 점심식사: 올반 대학로점



창경궁 안내도

동궐도를 참고하면, 100여개의 전각이 소실되고 1/10 남아 있는 상태


동궐도 (국보 제249호)

창덕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궁궐도. 창경궁도 함께 그려져 있다. 제작시기는 순조 26년~30년(1826~30년) 추정


동궐도 (국보 제249호)....창경궁 부분 클로즈업


창경궁은 본래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면서 자신이 거처할 궁궐로 지은 수강궁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1484년(성종 15) 이 수강궁 자리에 새로이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세조의 비 정희왕후(성종의 할머니), 덕종의 비 소혜왕후(성종의 모친), 예종의 비 안순왕후(성종의 작은어머니), 세 분 대비를 모시기 위해 건립했다.


광정문 / 문화해설사


광정문 현판


명정전(국보 제226호)

조선 왕조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다시 세웠다.

2단의 높은 월대 위에 서 있는 정전. 남쪽을 향하고 있는 다른 궁의 정전과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음.


명정전(국보 제226호)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가례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명정전(국보 제226호)

정면 월대 앞으로는 봉황을 조각한 면석을 놓은 어계가 있고 그 앞으로 어도(御道)가 명정문까지 뻗어 있다.

 어도의 좌우에는 문무백관이 조하 때 품계에 맞추어 늘어섰던 품계석들이 있다.


명정전(국보 제226호) 내부

바닥은 전을 깔았으며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특히 보개천장(寶蓋天障)을 만들고 봉황 1쌍을 목조로 깎아 걸어두었다.

어칸의 안쪽에는 어좌를 만들고 어좌 뒤쪽으로 일월오악병풍을 둘러쳤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자리, ‘어좌’에 있는데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높은 천장 중심부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봉황 한 쌍이 금박으로 장식돼 있었습니다.

봉황은 각각 다른 모양으로, 총 두 쌍이 오색구름과 함께 날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명정전 어좌 / 일월오악병풍 / 보개천장(寶蓋天障)의 봉황 한쌍과 오색구름


명정전 내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라는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인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했습니다.

따라서  보개천장(寶蓋天障)은 네모난 사각형 안에 둥근 원을 놓았고, 봉황은 하늘을 뜻하는 원 안에 있습니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자리, ‘어좌’에 있는데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문정전 앞 숲속에 관천대 석대가 있다고 했는데 촬영이 안 되었네요...ㅠㅠ...^^

숙종 14년(1688)에 만든 것으로, 화강암 석대 위에 간의를 설치하여 천체를 관측하였다. 현재는 석대만 남아 있다. 보물 제851호.


문정전(文政殿) 현판 :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던 편전으로 남향.


문정전(文政殿) 내부...일월오봉도 병풍과 어좌


문정전(文政殿)

제21대 영조 때는 문정전 앞마당에서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서 요절한 비극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숭문당(崇文堂) : 임금이 독서하거나 신하들과 국사를 의논하던 곳.


숭문당(崇文堂)


숭문당(崇文堂) ...아궁이


숭문당 / 행랑(월랑)


창경궁 함인정 보수중


창경궁의 내전.....경춘전(景春殿) / 환경전(歡慶殿)   

경춘전과 환경전 사이에 전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창경궁에는 총 6동의 침전(경춘전, 환경전, 통명전, 양화당, 영춘헌, 집복헌)이 남아있습니다.         


환경전(歡慶殿) :

임금이 늘 거처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함.


경춘전(景春殿) :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

경춘전에서 1752년 정조가 태어났습니다. 정조를 낳을 때 흑룡의 꿈을 꾸어 벽에 흑룡을 그렸다고 합니다. 경춘전 뒤쪽에 화계가 꾸며져 있어요.


창경궁...불탑 1

유교가 국시인 조선에서 왕의 침전(환경전) 앞에 불탑을 세워놓고 감상했을까. 무언가 이상하다.
불탑의 이름은 ‘창경궁오층석탑’. 일제강점기에 어디선가 옮겨진 고려시대 석탑이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창경궁...불탑 2

일제는 “순종을 위로하고 인민의 지식을 계발한다”는 이유로 1908년 창경궁 전각들을 허물고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을 세웠다.

이 창경궁 공원화는 조선왕조의 권위를 훼손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때 일제는 일종의 관상용으로 전국에 산재한 고려 석탑을 궁궐로 가져왔으며, 일부는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창경궁... 우물...일제가 만든 장식용 우물이라네요.

 

통명전(通明殿) :보물 제818호.  내전의 중심 공간으로 규모가 크다.

희빈 장씨가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숙종 비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가 사약을 받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통명전(通明殿) : 보물 제818호

〈궁궐지에 의하면 1575년(선조 8)에 이 전각에서 인순왕후(명종 비)가 승하했고,

1790년(정조 14)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34년(순조 34)에 복원했다고 한다. 현재 창경궁에 남아 있는 내전 가운데 유일하게 월대가 있는 전각이다.


통명전(通明殿) / 양화당(養和堂)


양화당(養和堂)

인조가 병자호란 이후 환궁하면서 잠시 거처하기도 했으며, 현재의 건물은 다른 창경궁 전각들과 마찬가지로 순조대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한 것이다.


창경궁...진짜 우물


창경궁... 집복헌(集福軒), 영춘헌(迎春軒)

 현존하는 영춘헌은 1834년(순조 34년)에 중건된 건물로, 화재로 소실된 영춘헌을 다시 지으면서 이전과 달리

영춘헌과 집복헌이 이어져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으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부속 건물이 된, 현재와 같은 건축 형태가 완성되었다.


창경궁... 집복헌(集福軒), 영춘헌(迎春軒)

집복헌에서 1735년(영조 11년)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1790년(정조 14년)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다.

특히 집복헌은 순조의 탄생, 돌잔치, 관례, 책례 등이 모두 이루어진 곳이다.

정조는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를 총애하여 집복헌에 자주 출입하면서 가까운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정조는 영춘헌에서 재위 24년인 1800년 6월 승하하였다.


양화당(養和堂) / 돌계단 / 집복헌(集福軒)


돌계단 2개...큰 돌계단 끝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세워진 박물관이 있었다고 한다....^^


돌계단 / 집복헌


자경전터 이정표

순종이 즉위하자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그해부터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융희 3년(1909)에 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1911년에는 궁궐의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어 궁궐이 갖는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을 격하시켰습니다.

또한 중궁전인 통명전 북쪽 언덕, 즉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이 있던 터에 일본풍의 박물관을 건립하였으며

1912년에는 지금의 율곡로 개설을 시작하여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켜놓았습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창경궁은 해방 후 1970년대까지 줄곧 서울의 대표적 유원지로 이용되었습니다.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는 공사는 1984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원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일본인이 고의적으로 심어놓았던 벚나무도 뽑아내었습니다.


남산


풍기대


풍기대와 앙부일구 안내문


해시계(앙부일구)


해시계(앙부일구) ...그림자


해시계(앙부일구) ...


해시계(앙부일구) 보는 법


해시계(앙부일구) 안내문


성종 태실 및 태실비


성종 태실비 1


성종 태실비 2


성종 태실 및 태실비 안내문

성종태실. 경기도 광주에 있던 것을 1928년에 태실비와 석물을 창경궁으로 옮겼습니다.

 태실이란 왕족의 자손이 태어나면 그 아이의 태를 묻던 석실을 말합니다.


춘당지 1


춘당지 2...안내문

춘당지(春塘池) : 큰 연못과 작은 연못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음.

 아래쪽의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內農圃)라고 부르던, 왕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정을 살피던 논이었으나

 1909년 일본인들이 이곳을 파서 연못을 만든 것을 이후 1986년에 한국식 연못으로 재조성한 것.

 춘당지 북쪽에 인접한 작은 연못이 조선시대 춘당지라 부르던 원래의 연못임.


춘당지 3. 문화해설사의 설명


춘당지 4...팔각칠층석탑(보물1119호) 보수공사중.

원래 창경궁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만주에 있던 것을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다.


춘당지 5


춘당지 북쪽에 인접한 작은 연못....조선시대 춘당지라 부르던 원래의 연못임.


창경궁...백송


올반(대학로점)....입구


올반(대학로점)....뷔페식...


올반(대학로점)...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