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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성지·순교자·성인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⑫ 성 마르티노(하)황제가 마르티노에게 손수 기사복 입혀372년 투르 주교로 임명된 후 본당 사목과 말씀 전파에 헌신병자 고치고 죽은 아이도 살려

마르티노(약 336-397)가 스무 살 가량 되었을 때 오늘날의 프랑스 지역인 갈리아 지방에 이민족들이 침략해왔다. 로마제국의 황제 체사리 줄리아누스(355-360)는 출전을 앞둔 병사들에게 봉급을 주기 위해 불렀다. 황제 앞에 선 마르티노는 그러나 돈을 받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저는 군인으로서 폐하를 섬겼으나 이제 이곳을 떠나 나의 주님 그리스도를 섬기려 합니다. 봉급은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의 군인이므로 이제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너는 지금 믿음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군인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황제가 말했다.

“제 결심이 믿음이 아닌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는 내일 아침 무장해제 한 채 십자가 하나만 들고 적진으로 침투하겠습니다.”

황제는 마르티노에게 그대로 할 것을 명령했고, 다음날 적군의 사신이 항복을 알려왔다는 기적같은 전갈을 받았다. 마르티노는 싸우지 않고 단지 십자가 하나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전설 같은 사건을 끝으로 마르티노는 군인 생활을 마치고 포아티에라는 곳으로 가서 360년까지 그곳에서 수도자 생활을 했고, 후에 리구제라는 곳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마르티노의 명성을 들은 다른 수도자들이 합류하여 공동체 생활을 했으며, 그곳이 바로 프랑스 지방의 첫 수도원이 되었다고 한다.

372년 마르티노는 투르(Tours)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주교가 된 후에 주교관에서 안락하게 생활한 것이 아니라 대성당 근처 수도자들이 기거하던 골방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수도자 생활을 계속하면서 프랑스 지방에 그리스도교를 전교했다.

마르티노 주교는 병자를 고쳐주고, 죽은 아이를 살렸으며, 심지어 짐승을 감화시키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고 한다. 그는 고위 성직자임에도 걸어서 교구의 본당들을 일일이 방문하는 등 사목활동에 열심이었으며 25년 동안 투르의 주교로 활동하다가 397년 선종했다.

‘성 마르티노의 기사 착복식’이라는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1284-1344)의 이 작품은 아시시의 성 마르티노 경당에 그려진 마르티노 성인의 일대기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에 꼽힌다. 15세가 되던 해에 마르티노가 부친의 직업을 이어받아 기사가 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황제가 마르티노에게 손수 기사복을 입혀주고 있다. 한 부하는 성인의 구두끈을 매어주고 있고 황제의 뒤에는 한 병사가 군인을 상징하는 매와 마르티노가 쓰게 될 헬멧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뒤쪽에는 쌍피리와 체트라를 연주하며 축하연을 벌이고 있는 악사들도 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색상과 문양이 생생하며, 모자 또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그림 속에 동시대인의 복장이 이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 그림의 제작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인간의 모습이나 건축물 등 눈에 보이는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던 조토의 진정한 후계자였다. 이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노라면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다소 어색한 면이 없지 않으나 사물과 인물 그리고 건축물 묘사 등에서 득의양양한 화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 작품 해설 : 시모네 마르티니, 〈기사 착복식〉, 265×200cm,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성당, 성 마르티노 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