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13일(금) 오늘의 글 2개]
박완서님의 소설 '사람의 일기' 이라는 단편소설 중에 저를 붙잡는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완서님의 글은 우리들의 동감을 많이 이끌어내고 있지요. 기도에 대한 많은 두려움과 동시에 올바른 기도에 대한 의구심, 이 글에서도 아프게 찌르는 날카로움에 통증을 느끼면서 조금 요약을 하여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소설가이도 한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타인 보다는 자신의 가족에게만 온통 마음을 쓰며 살고 있는... 도덕적인 결백증도 심하여 나의 잘못 보다는 남의 잘못을 더 잘 꽤뚫어 보는데 더 눈이 밝았다. 결혼을 앞둔 예쁘기만 한 막내딸이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딸은 머리와 이마 부분이 도끼로 맞은 듯이 함몰된 심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내가 도데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 너무나 끔직한 딸의 모습에 비통하여 곧 딸이 죽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울며 몸부림치는 그녀를 큰 딸이 얼싸 안으며 "어머니, 왜 이러세요. 진정하세요. 어머니, 기도하세요. 어머니는 기도할 자격이 있잖아요. 저기 저 사람 좀 보세요. 어머니도 저렇게 할 수 있잖아요. " 기도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너무 적절해서 생금스러웠다! 나에게도 희망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다행이 작년에 입교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나는 주기도문 정도만 겨우 외우는 수준의 기도에 약한 신자였다. 입교 후 성경을 읽으면서 소설가인 나는 그동안 나보다 못난 사람들 학대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다루었지만 그동안 나는 그들에게 관심만 있고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왜 이제 느닷없이 깨닫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는 하나 자신이 없었다. 본받을 분으로 영접했는지 주님으로 영접했는지... 나는 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늦은 밤 응급실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가족들이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그 중에 그 웅성거림과는 무관하게 어느 부인이 양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고뇌에 찬 모습이었으나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분위기로 둘레의 분위기로 부터 홀로 초연하게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기도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열성적인 기도 일수록 더했다. 기도합시다! 기도해 주세요! 하는 소리는 마치 푸닥거리의 효염을 비는 주술소리 같아서 오히려 내가 기도를 잘 안하는 것을 떳떳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부인의 기도하는 모습은 아무리 엄청난 재난 속에서도 가장 품위있고 겸손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무너지듯이 주저 앉아 간절히 두 손을 모았다. 더 바라지 않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딸 대신 죽겠다는 간절한 기도는 초월적인 힘과 신비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딸은 의식이 회복되었으나 기쁨에 넘친 나와는 달리 가족들은 근심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리의 심한 골절은 후유증으로 정신장애, 기능장애가 있을 지도 모르는 뇌 수술과 외모를 복구하기 위한 여러번의 성형 수술까지 수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딸의 머리는 홀랑 깎아서 더 처참한 모습을 하고 엄마를 알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아까같은 난동은 부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도할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제발 뇌 손상이 없이 정신 장애가 없기를... 주님이 응답을 안할 수 없을 만큼 내 기도는 마음 속 깊이 울어나 주님께 미치고 있다는 것을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 몸이 텅 비고 기도의 기쁨만이 충만해 있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셨다. 하려만 들면 못하실 것이 없은 분이셨다. 나는 그분을 움직일 수 있는 기도의 비결을 알고 있었다. 성령이 내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짜릿하고 환상적이 기쁨이 온몸에 충만했다. 하품을 하며 시신을 싣고 가는 간호사 뒤를 슬피 울며 따라가는 가족들을 보며 성호를 그으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나만이 주님의 은총을 더 넉넉히 받았다는 넘치는 기쁨이 그런 여유를 갖게 해주었다. 기도를 통해 얻은 확신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심한 골절상에 이마뼈가 나갔는데도 뇌에는 별 손상이 없어서 그냥 소독과 봉합으로만 끝났다고 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에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강 같은 기쁨이 내려왔다 기도가 이다지도 영겁하고 아다지도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줄이야. 그동안 기도를 무시해 온 나의 교만과 온전치 못한 신앙을 꾸짖는 사랑의 벌로 그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짐작은 곧 확신으로 변해서 절절히 뉘우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부터는 부러진 뼈들을 이식하는 성형수술이 남아 있었고 앞으로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앞 얼굴과 앞 이마를 만들고 있는 모든 뼈들이 골절, 함몰. 결손되어 얼굴 모양이 말이 아니었다. 골반과 다리도 골절이 되어 꼼짝도 못하게 되었지만 다 완치될 수 있는 골절상이고... 딸의 상태는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환자로 들끓는 정형 성형 외과병동에서는 기적처럼 보였다. 다리를 잘린 젊은 엄마, 손목을 잘린 처녀, 옥상에서 떨어져 상처 없이도 정신이 어린아이로 변한 학생, 척추마비, 끔찍한 화상, 매일 환자들은 들어왔다가 죽어서도 나가고 나아서도 나갔다. 그런 환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딸의 완치될 수있는 부상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매일 매일 열심히 기도하고 또 기도마다 응답을 받았다. 젊은 딸은 매일매일 좋아지고 있었다. 비뚤어진 얼굴이 제 자리로 돌아온 날 나는 엉엉 울며 주님을 찬양했다. 딸의 병동은 주님의 은총에 특별히 충만했고 나의 하루하루가 곧 간증거리였다. 문병을 온 사람들에게도 "저는 딸이 다치기 전보다도 더 기쁘답니다. 딸이 다치지 않았으면 어찌 이런 기쁨을 알았겠습니까?" 그들은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만 갸우뚱하고는 물러 갔다. 재활병동에서는 더 비참하고 걷기에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그 중 제일 빨리 걷게 된 딸이 자랑스러웠으며 처음부터 일등만 하는 아이 엄마처럼 여유있는 미소를 띠웠다. 매일매일이 기도와 감사로 살았고 마침내 얼굴의 성형 만을 남기고 퇴원을 하였다. 얼마나 기다리던 퇴원이었는가? 퇴원을 하고 나니 가발을 쓰기 싫어하는 딸하고 자주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뇌수술도 안할 걸 머리부터 깎아버린 병원 당국이 슬그머니 원망스러웠고 컴퓨터 촬영은 폼으로 했나? 처녀의 머리카락을 절대적인 필요성 없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버린 병원측의 경솔에 대해 늦게 나마 싸움을 걸어 볼까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딸을 흠이라고는 없이 고이고이 길러 자랑스럽게 넘겨주고 싶었던 나는 밤잠을 못 이루고 속에서 지글지글 울화가 치밀어 중앙선을 침범해 내 딸이 탄 택시와 충돌했다는 가해자를 찾아가 내 딸을 고스란히 물어내라고 격렬한 싸움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병원에서의 기도와 기쁨에 충만했던 날이 먼 먼 옛날같았다. 아무리 주여! 주여! 불러 보아도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고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기도가 건성이니 기쁨과 평화가 우러 나올리 없었다. 날이 점점 더워지자 젊은 이들은 몸을 드러내는 얇은 옷차림과 건강미를 드러내 보였고 아무도 내 딸같은 흠을 이마에 붙이고 있지 않았다. 가발이 아닌 제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워서 가슴이 졸리었다. 내 딸이 아닌 흠없고 건강한 이들이 부럽고 질투가 나서 꼴도 보기가 싫었다. 기도를 잃어버린 지도 오래 되었다. 원망과 불안감에 쌓여 나는 고통으로 곧 죽을 것같았다.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주님이 옆에 계셔도 들어줄 것같지 않았지만 마지막 비명처럼. 그러면서 홀연히 내가 한 번도 주를 가까히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서 그동안 내가 매일매일 기뻐했던 것은 주님을 가까이 해서가 아니라 우리보다 못하고 우리보다 불행한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처지를 그들의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쁨이 그분으로부터의 은총이었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우리보다 못한 사람의 불행을 야비하게 즐긴데 지나지 않았다. 내 이웃의 고통이 나에게 그렇게 맛이 있었단 말인가! 내 딸이 병원에서 피투성이의 처참한 모습으로 엑스레이실로 컴퓨터 촬영실로 수술실로 실려다닐 때 복도에 있는 서성이던 사람들은 비켜주기는 커녕 큰 구경거리처럼 몰려들어 내 딸을 들여다보고 동정을 표시했다. 내 딸의 불행이 그들의 불행에 위안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원수처럼 그들을 노려 보았고 나는 내심 불같은 증오심을 불태웠었다. 그러나 내가 내 딸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보고 느낀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신앙과 구원의 기쁨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주님은 쉬운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야만 했다. 유순하고 단순한 사람에게는 쉽게 오셔도 나 같이 복잡하게 꼬인 사람에게는 어렵게 오시는게 아닐까? 나에게 그분은 어렵다 못해 가혹했다. 나의 메마른 작가 정신을 그리스도교의 휴머니즘에서 생기와 가능성을 찾으려 한 것은 퍽 그럴듯한 몸짓이었다. 주님은 나의 인간과 문학에 막다른 골목에서 구원처럼 나타났다가 다시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부치고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내 딸에게 닥친 재난을 통해 주님의 은총을 깨달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문학 속 이웃사랑의 허위를 폭로 당한 것이었다. 배신감을 느꼈다. 다시는 주님을 안 부르려고 마음을 먹었다. 신은 죽었다! 참 근사한 말이다. 결국. 이제 마지막 성형수술이다. 코뼈를 이식하고 이마에 흉터를 지우고 24살의 어린 처녀의 얼굴로... 혹시 잘못된 경우를 생각하니 몹씨 두려웠다. 처음엔 무엇이 두려운지 몰랐는데 내가 등을 돌린 그분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분께로 돌아서면서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다시 모았다. "주여! 제 딸의 얼굴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님보시기에 좋도록만 돌이켜 주소서! 주여 이 에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
헨리 나웬 신부님(1932.1.24-1996.9.21)의오! 그리고 늘! 8월 13일
<친밀함을 나누는 숨겨진 자리>
Hiddenness, a Place of Intimacy
숨겨있는 건 영성 생활의 고갱이입니다. 고독, 침묵, 일상의 일들, 큰 계획 없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자고 먹고 일하며 노는 것 등 이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는 남들과 다름없이 히시며 사셨으며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청하십니다. 바로 이 숨겨진 데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루카 2,51) 갈 수 있는 겁니다. 또 우리가 하느님과 참으로 가까이 할 수 있고 남들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도 바로 이 숨겨진 데인 겁니다.
공생활을 활발하게 하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숨겨진 곳으로 가셔 홀로 하느님과 함께 하셨던 겁니다. 우리에게 하느님과 함께 하는 숨겨진 삶이 없다면 하느님을 위해 남들에게 내놓고 하는 삶에는 열매가 맺힐 수 없을 겁니다.
Hiddenness, a Place of Intimacy
AUGUST 13
Hiddenness is an essential quality of the spiritual life. Solitude, silence, ordinary tasks, being with people without great agendas, sleeping, eating, working, playing … all of that without being different from others, that is the life that Jesus lived and the life he asks us to live. It is in hiddenness that we, like Jesus, can increase “in wisdom, in stature, and in favour with God and with people” (Luke 2:51). It is in hiddenness that we can find a true intimacy with God and a true love for people.
Even during his active ministry, Jesus continued to return to hidden places to be alone with God. If we don’t have a hidden life with God, our public life for God cannot bear fr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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