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2월 26일 주일[(자) 사순 제1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원조들의 불순종으로 세상에 죄와 죽음이 들어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생명의 은총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며 죄를 멀리하는 새로운 삶을 다짐합시다.
입당송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오래오래 살도록 그에게 복을 내리리라.
본기도
해마다 거룩한 성사로 사순 시기를 지내는 저희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아
회개의 삶으로 그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2,7-9; 3,1-7
7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3,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제 죄악을 제가 알고 있사오며, 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12-19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6 그리고 이 선물의 경우도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
한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왔지만,
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는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17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2.17-19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7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11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의 주님,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힘을 얻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믿음의 은혜를 세상에 증언하고 전하며, 주님을 찾는 모든 이에게 더욱 성실히 봉사하게 하소서.
2. 경제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공정의 주님, 경제 발전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진리와 정의를 생각하며, 발전의 참의미를 되새기고,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게 하소서.
3. 새 학년을 맞이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스승이신 주님, 새 생활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어, 기대 속에 새로이 만나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과 즐겁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저희 지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살펴 주시어, 희생과 절제와 사랑으로 사순 시기를 보내는 교회에서 희망을 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하소서.
예물기도
저희가 정성을 다하여 이 제물을 봉헌하오니
이 제사로 거룩한 사순 시기를 경건히 시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며
사순 시기 재계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시어
저희도 악의 세력을 물리치도록 가르치셨나이다.
이제 저희는 새로운 마음으로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며
마침내 영원한 파스카 잔치에 들어가리이다.
그러므로 천사들과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또는>
시편 91(90),4 참조
주님은 당신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리니, 너는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믿음을 기르고 희망을 더하며 사랑을 뜨겁게 하오니
저희가 살아 있는 참된 빵이신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다리며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 백성 위에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시어
고난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유혹을 받으면서도 덕행을 쌓아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2023년 02월 26일 일요일
[사순 제1주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해마다 사순 첫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유혹을 겪으신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1독서의 아담과 달리 유혹에 맞서 싸워 이기신 새 아담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새 아담이실 뿐만 아니라 새 이스라엘이시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하느님의 이끄심대로 살기를 거부하였던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그분께서는 온 삶을 하느님 손에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적어도 세 번 유혹을 받았습니다(탈출 16장; 17장; 32장).
예수님께서 맞닥뜨린 첫 번째 유혹은 돌을 빵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먹는 것’과 관련된 단어가 무려 901번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빵을 내려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만나와 함께 하느님의 말씀도 내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나를, 곧 재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또 날마다 주어지는 하느님의 섭리를 얼마나 신뢰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쌓아 놓기를 원합니다.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주님의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청하도록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두 번째 유혹은 우리가 하느님을 두고 겪는 가장 위험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악마는 예수님께 하느님께서 지켜 주실 테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지체된다고 여길 때 그분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정말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신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가 겪는 고통에 응답하시어 기적을 보여 주셔야 하지 않는가?’라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위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당신을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우리의 요구대로 바꾸어 기적을 행해 달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유혹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빛과 희망을 주시기를 청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악마는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다.”라고 하며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여러 번 유혹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으로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에 대한 오롯한 믿음으로 언제나 악마와 맞서 싸우셨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으로 군림할 것인가 봉사할 것인가?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거짓 신을 섬길 것인가?
하느님을 닮을 것인가 악마를 닮을 것인가?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되었던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강력한 힘으로 전 세계를 떨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홍보와 강의는 저의 원의와는 상관없이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교회도 문을 닫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비 오는 날 저녁 바티칸 광장에서 홀로 기도하였습니다. 물질 만능주의에 푹 빠져서 하느님을 멀리했던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될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저의 모친도 2020년 9월 10일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한국에 가지 못하고, 뉴욕에 머물면서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With Corona'라는 말을 할 정도로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었고, 치료약도 나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에 한 번씩은 걸렸기에 면역력도 생겼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초창기에 한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했습니다. '드라이브 스루우(Drive Through)'라는 신속하고 안전한 검사를 개발했습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자발적으로 코로나 확진지역으로 찾아가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한국은 ‘검사(Test), 추적(Trace), 치료(Treat)'라는 방식으로 코로나의 확산을 막아내는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인류는 이전에도 많은 ’역병‘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바쁘고 분주했다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오염되었던 대기가 깨끗해 졌습니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자연은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다시 오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설사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우리에게 찾아오는 ‘유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혹은 무증상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유혹은 달콤한 과일처럼 찾아오기도 하고, 유혹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찾아오기도 합니다. 마치 나방이 불 속으로 날아들 듯이 우리는 유혹이라는 강렬한 불 속으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인류에게 첫 번째로 찾아왔던 유혹을 전해 줍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하느님과 같아 질 것이라는 교만은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웃의 공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박수칠 때 떠날 줄을 모릅니다. 교만한 사람은 차별과 편견으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만의 위험성을 잘 아셨기에 언제나 ‘겸손’을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겸손을 말씀하셨습니다. 발을 씻어주시면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40일 동안 단식하셨던 예수님께 찾아온 3가지 유혹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재물에 대한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을 창고에 가득 쌓아 놓은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에 대한 유혹은 너무도 달콤하기에 우리는 스스로 그 유혹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거룩함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위선에 대한 유혹입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잉태하기 마련입니다.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했던 카인은 하느님께서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시험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가식도 비난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완장을 차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는 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교만, 재물, 위선, 권력’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225.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나를 따르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루카 5,27)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리인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과 레위의 집에서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루카 5,27)
사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발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발걸음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따라야하기 때문입니다. 곧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혹은 다람쥐처럼 몸짓으로만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화답송>에서 말해주듯이, ‘진리 안에서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 가치관, 방식에 있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죄인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불결한 이들과의 접촉은 그도 불결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십니다.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것은 서로 기쁨과 사랑을 나누는 행위요, 한 가족임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그들에게 보내는 신의요, 자비요, 호의입니다. 그들을 단죄한 것이 아니라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속으로 들어와 그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삼으십니다. 자신의 몸에 죄를 묻힘으로 죄인들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앞세우기보다, ‘먼저’ 용서하시고 ‘먼저’ 자비를 베푸십니다. 흔히, 우리는 죄지은 이에게 ‘먼저’ 회개하라고 강요하지만, 주님께서는 ‘먼저’ 용서하시고, ‘먼저’ 함께 식사를 하시며, 당신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루카 5,27),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2)
이는 우리가 죄인인 까닭에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죄를 짓지 않은 의인들인 것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야 하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죄인인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죄인인 까닭에, 용서해야 하는 일을 소명을 받은 죄인들입니다. 곧 이미 사랑과 자비를 입었기에, 또한 그렇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소명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라라”(루카 5,27) 하심은 우리 역시 형제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루카 5,32)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당신은 죄인인 까닭에 저를 부르셨습니다.
찾기도 전에 먼저 부르시고, 청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하셨습니다.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찾아가고 먼저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더불어(Together) 따름의 여정
-끊임없는 회개-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으오리다.”(시편86,11ㄱㄴ)
어제의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일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10월초에 피정왔던 자매가 거의 5개월만에 다시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그때는 20대 중반의 착한 아들을 잃고 왔는데 이번은 그 사이 60대 초반의 건강하고 착했던 남편을 잃고 답답하고 아픈 마음에 피정차 온 것입니다.
“죄가 너무 크고 잘못이 참 많습니다. 남편은 참 착하고 성실한 분이었고 끝까지 일하며 책임을 다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이런 저에게 남편은 개의치 않고 충실했습니다. 나를 사랑했는데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동안 냉담했는데 작년 세상 떠나던 즈음 12월에는 열심했고 2개월 동안의 시골 노동현장에서도 매일 미사에 참석했다 합니다. 건강했던 분이 12월 그 추운날 눈이 많이 오던날 야외 화장실에서 변을 보던중 그대로 운명했습니다. 바로 그 전날 친구에게 보낸 카톡 내용입니다.
‘오늘 밤 저녁미사를 봤고 미사후에는 고백성사도 봤다. 너무 기분이 좋다. 밖에는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야외 화장실에서 그 추운날 용변을 보던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착한 아들에 이어 이렇게 착하고 건강하던 남편을 잃었습니다. 죄가 너무 큽니다.”
즉시 답변을 드렸습니다.
“하루하루 보속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죽는 그날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저도 보속하는 마음, 대속하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주님을 따라 살아갑니다. 주님은 늘 함께 하시면서 용서해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구원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자매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집무실을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입니다. 길잃고 방황하거나 떠도는 삶이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주님을 따르는 삶이요 여기에 동반하는 끊임없는 회개의 삶입니다. 따름의 여정은 동시에 회개의 여정이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점차 닮아가면서 참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 부름을 받고 주님을 따라나선 레위가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주님과 세리 레위의 만남이 순전히 은총의 선물입니다. 세리의 주님을 찾는 내적 갈망과 순수를 한눈에 알아채신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다음 장면이 극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짧은 대목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을 따라 나섬으로 이제 길을 찾았고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에 오르게 됐다는 것입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평생 살아야 할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의미, 삶의 중심이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기서 주석을 잠시 인용합니다.
‘루카는 마르코나 마태오와는 달리 그리스 말의 “따르다”를 단순 과거가 아니라 반과거로 쓴다. 이로써 그는 “따름” 곧 “제자됨”이 점진적이면서 항구적인 일임을 가리킨다. 루카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레위의 행동을 회개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한두번의 따름이 아니라 날마다 일어나서 다시 새롭게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레위를 부르신 다음 당신 제자들 공동체 합류시킨후 함께 식사합니다. 말그대로 회개한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이젠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회개한 죄인들인 도반들과 더불어(Together) 주님을 따르게 된 레위입니다. 그러니 더불어 따름의 여정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주님 말씀이 복음의 절정이자 요약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과연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자 누가 있겠는지요! 우리 모두가 정도의 차이일뿐 모두가 병자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치료받아야 할 환자로 여기시고, 당신 자신을 의사에 비유하십니다. 죄인이자 동시에 병자인 우리들입니다. 회개를 통한 치유요, 이것은 평생과정입니다. 그러니 따름의 여정은 회개의 여정임과 동시에 치유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서 평생 최고의 명의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이 아니라 끊임없는 회개를 필요로 하는 회개한 죄인들의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회개해야 부패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주님을 따를 때 악취나는 부패인생이 아니라 향기로운 발효인생이 됩니다. 인생 부패를 막아주면서 발효 인생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 효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회개 은총입니다.
이래서 따름의 평생 여정에 끊임없는 회개를 습관화 해주는 평생 성사인 성체성서와 고백성사가 그렇게 고마운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평생 회개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회개의 시스템 같은, 기도와 노동과 공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중심과 질서가 확실한 하루의 일과표입니다. 이런 구체적 일과표에 따른 삶이 따름의 여정, 회개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끊임없는 쇄신과 내적혁명이 회개입니다. 바로 이런 분투의 노력의 훈련에 충실한 자들이 성인입니다. 제가 옛 한국 위인들의 평전을 읽으며 새삼 감동하는 것도 끊임없는 쇄신의 노력을 다하는 회개의 모습입니다. 이율곡 선생이 그렇고 성군이라 칭하는 세종대왕이 그렇습니다. 평생 휴식이 없는 고군분투의 모습들이요 심신이 소진될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책임을 다한 모습들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옛 훌륭한 선비들이나 임금들에 비하면 오늘의 지도자나 고위 정치가들의 수준이 난쟁이 같고 너무 미흡함을 느낍니다. 옛 조선 선비들은 인격적으로나 실력으로도 진짜 엘리트였습니다. 이런 선비사상이나 전통이 사라진 천박한 오늘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막연한 회개가 아니라 빛나는 실천을 통해 입증되는 회개의 진정성입니다. 바로 이사야서가 어제에 이어 참된 단식의 정신을, 참된 수행, 참된 회개, 참된 종교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너무 고무적인 신바람 나는 내용이라 전문을 인용합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실천과 분발을 촉구하는 명문名文입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 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참 회개 실천의 은총이 이렇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끊임없는 개선과 쇄신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 지리라.”
참으로 이렇게 참된 회개의 실천을 위해 분투의 노력을 다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세상 높은 것 위로 달리게 될 것이라니 얼마나 멋진 삶인지요! 최고의 명의이시자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더불어의 따름의 여정, 회개의 여정, 치유의 구원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끝으로 제 좌우명시 한연으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이 상징하는바 한결같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맑게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2/26(일) 사순제1주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으로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정용진 신부)
2. 하느님의 말씀으로 ‘교만, 재물, 위선, 권력’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루카 5,32)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당신은 죄인인 까닭에 저를 부르셨습니다.
찾기도 전에 먼저 부르시고, 청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하셨습니다.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찾아가고 먼저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끊임없는 쇄신과 내적혁명이 회개입니다. 바로 이런 분투의 노력의 훈련에 충실한 자들이 성인입니다. (이수철 신부)
[2/26(일) 사순제1주일, 제 64일 기도]
하느님!
사순제1주일에 회개하여...
늘상 언제 어디서나 변화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동행하시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감사합니다.
- 2023년 2월26일(일) 8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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