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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묵]2023년 3월 17일 금요일[(자) 사순 제3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3월 17일 금요일[(자) 사순 제3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86(85),8.10
주님, 신들 가운데 당신 같은 이 없나이다. 당신은 위대하시며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당신 홀로 하느님이시옵니다.

본기도

주님,
주님의 은총을 저희에게 인자로이 내려 주시어
언제나 저희가 지나친 욕망을 끊고
주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1(80),6ㄷ-8ㄱ.8ㄴㄷ-9.10-11ㄱㄴ.14와 17(◎ 11ㄱ과 9ㄴ 참조)
◎ 나는 주님, 너의 하느님이니 너는 내 말을 들어라.
○ 전에는 모르던 말씀을 나는 들었네.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풀어 주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내려 주었다. 곤경 속에서 부르짖자 나는 너를 구하였다.” ◎
○ 천둥 치는 구름 속에서 너에게 대답하였으며, 므리바의 샘에서 너를 시험하였다. 들어라, 내 백성아, 내가 너희에게 타이른다. 이스라엘아, 부디 내 말을 들어라. ◎
○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 올렸다. ◎
○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이 내 길을 걷기만 한다면, 내 백성에게 나는 기름진 참밀을 먹이고, 바위틈의 석청으로 배부르게 하리라. ◎

복음 환호송

마태 4,17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감사드리며 바치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에게 언제나 구원의 제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마르 12,33 참조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희생 제물보다 낫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권능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오늘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가 충만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이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언제나 주님의 자애에 의지하며
어디서나 주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LA 신문홍보 마지막 날은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한인성당으로 미사를 갔습니다. 프란치스코 성당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신부님이 사목하는 성당입니다. 미사 전에 신부님은 수녀님과 함께 성무일도를 하였습니다. 교우 분들도 함께 하였습니다. 운율에 맞추어서 성무일도를 하는데 마치 천상의 소리 같았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성무일도를 하는데 교우 분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고급 음식점에서 본 음식을 먹기 전에 전식을 먹듯이 미사 전에 성무일도를 하니 미사의 분위기가 더 그윽하게 느껴졌습니다. 미사 전에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교우들이 함께 성무일도를 한다면 신앙생활의 멋과 맛이 더욱 깊어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왜 이 거친 광야로 왔느냐? 화려한 것들은 궁궐에 있지 않느냐?”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거친 광야를 포기하고 화려한 궁궐에 머물 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미사 전에 하는 성무일도에서 광야를 보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아시리아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것은 부, 권력, 명예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양다리를 걸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나의 희생과 나의 봉사는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해지기 보다는 행복해지기를 먼저 원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택하여야 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밤새 울어도 짜증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엘 가야 할 때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먼 길 바래다주면서 기분나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씩 공항 대합실에서 출장 갔다 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는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고 해서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다림은 설렘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이 가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예전에 즐겨 들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오늘은 그 노래를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온 마음과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가 전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입니다.


2. ♣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모세는 시나이 사막의 여정을 마치고 모압 평야에 이릅니다.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가까이 올수록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사항을 일러줍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 6,4-5)

사막의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미래의 백성들에게도 전해야 하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 6,6-9)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들의 신앙과 그곳 토속신앙과 충돌이 있었으리라 예측합니다.
예언자들이 소리 높여 이방인의 신들을 섬기지 말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내용만 보아도 충분히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점차적으로 율법실천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율법학자들이 그렇게 많은 율법들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를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유대교에는 613 조항의 계명이 있는데, 248개는 시행 명령의 내용이고 365개는 금지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꼽으신 것은 신명기 6,4-5이고 두 번째로 꼽으신 것은 레위기 19,18의 율법이었던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올바르게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33절)

주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권위가 있으시다는 뜻으로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34ㄴ)라고 덧붙여 설명합니다.

예수님께 율법학자를 긍정적으로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이방 문화와 종교에 매음 빼앗기고 흐트러졌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하느님으로 돌아오게하려고 율법실천을 강조한 예언자들, 바빌론 이후에는 예언자에서 점차 바뀐 율법교사들의 역할도 큰 것입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빗나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호세 14,2)라고 외칩니다.
브에르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호쉐아 벤 브에리 הושֵעַ בֶן-בְאֵרִי’라고 불리는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한 북부 이스라엘의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서 음란을 피우는 고메르와 결혼을 해서 다신교에 빠진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이스라엘이 하느님에게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는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과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하느님의 법에서 벗어나 가나안이 토속신들을 숭배하도록 종용했던 것입니다. 그밖에 백성들은 윤리적인 문란으로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호세아는 주님의 눈 밖에 난 백성들이 앗시리아로 끌려 갈 것을 예고(9,3; 13,3)하기도 했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며 주님의 이 말씀을 전합니다.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9절)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말씀은 여러 역사를 거치며 그 뜻 해석이 여럿으로 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한 율법학자가 감탄할 정도로 그 많을 율법조항들 중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핵심적으로 꼽으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웃사랑, 특히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실천을 이 사순절에 묵상하며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변함없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 우리의 마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며 오늘 만나는 이웃을 또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복된 날이며 주님의 날, 거룩한 날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316. 사순 제3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의 완고한 마음에 경종을 울립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약하게 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전해주며,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 오히려 적대하며 악담을 퍼붓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두 개의 중심이 되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말을 들어라” 라고 할 때 “들어라”라는 동사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을 온전히 걸어라” 라고 할 때 “걸어라” 라는 동사입니다. 이 두 동사의 표본, 곧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걷는 것의 표본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양 떼”입니다. 곧 양은 목자의 말을 알아듣고 그의 말을 따라 걷는 이의 표상입니다.
 
한편, 그 반대의 표상에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벙어리 마귀”가 있습니다. 벙어리 마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여,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말씀을 따라 걷지 못하게 하고, 말씀의 실현을 훼방하는 방해꾼입니다. 이 방해꾼은 <제1독서>에서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 그리고 <화답송>에서의 “무딘 마음”의 표상입니다. 곧 이들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말, 곧 자신의 생각이라는 우상을 따라 걷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곧 말씀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놀라워하면서도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예수님께,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악담으로 대적하면서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순을 반박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이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낸 사실이 단지 하나의 기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 곧 하느님 권능의 임재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하늘나라의 실현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말씀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 안에서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아직 “하느님 나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말씀을 듣고도 따라 걷지 못하게 하는 완고한 무딘 마음이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이 있어 주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말이나 생각을 듣고 따라 걷고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말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양 떼”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에서 시편작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이로세”(시편 95,7).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하느님 중심의 삶

-“경청과 겸손, 순종의 삶”-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시편95,7ㄹ과 8ㄴ)

 

지난 주일과 똑같은 화답송 후렴이 오늘 말씀을 요약합니다. 무지의 병에 귀기울여 잘 듣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역시 경청의 훈련입니다. 저절로 잘 듣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경청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의 뜻밖의 전화에 대한 제 답변에 만족했습니다.

 

“성인들은 고통을 청하라 했다는데 고통을 청해도 됩니까?”

“천만에요. 절대 고통을 청하지 마세요. 지금 현재의 고통도 감당하기 벅찰텐데 왜 고통을 청합니까? 그냥 현재 주어진 어려움을 잘 감당만하셔도 충분합니다.”

 

이 또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지금 주어진 고통만 잘 감당해도 충분합니다. 무지의 병이요 무지의 죄입니다. 이어 제가 보내준 “파스카의 꽃”이라는 말마디에 은혜 받았다 하기에 그 자매와 주고 받은 메시지를 확인해 봤습니다.

 

“봄꽃같이 겸손한 사랑이 답입니다. 봄꽃처럼 파스카의 꽃으로 사세요!”

“겸손한 사랑, 파스카의 꽃 너무 감사드립니다. 축복 많이 받으세요!”

 

파스카의 꽃, 참 멋진 말마디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 죽을 때까지 날마다 부단히 새롭게 폈다지는 주님의 파스카의 꽃으로 삽니다. 예전 써놓은 시도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

 끊임없이

 그만의 색깔, 향기, 크기, 모양으로

 

평생

세상 떠날 그날까지

날마다

새롭게 폈다 지는 

 

사람은 

꽃이다

사랑의 꽃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2022.6.9

 

무지의 악, 무지의 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일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 한 형제와 주고 받은 전화도 생각납니다.

 

“신부님, 괜찮습니까? 지난 밤 신부님이 꿈에 나타나서 궁금해 전화 걸었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매일 강론 올리면 건강하다, 문제없다 생각하셔요.”

 

그렇습니다. 웬만한 꿈은 지나쳐 버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참으로 깨어 있는 영혼들은 꿈에 매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언제나 오늘 지금 여기 깨어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삽니다.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는 죽비같은 말씀입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보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아, 그대로 오늘 무지한 사람들의 실상을 보는 듯 합니다. ‘그들이’ 지칭하는 바 무지한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무디어진 마음에 뻣뻣한 목, 그대로 무지한 사람들의 상징적 모습입니다. 특히 제1독서 마지막 구절,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라는 말씀은 현대인들을 지칭하는듯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입니다. 참 무지가 얼마나 심각한 병이요 죄인지, 그리하여 경청의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 수행인지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구마이적에 시비를 걸고 나오는 이들 역시 무지한 이들의 전형입니다. 복음 서두 말씀이 평범한 진술같으나 은혜롭습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 하였다.’

 

주님이 계셔야 할 중심 자리에 있던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이 자리 잡으니 비로소 온전한 삶의 회복입니다. 이에 대한 반응이 구구각색입니다. 무지에 눈이 가리니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냈다 말하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주님 자체가 하늘에서 내려온 표징인데 표징을 보여달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사탄이 얼마나 영악한테 스스로 분열하여 망하는 길을 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어 주님만이 사탄에 대한 유일한 대책임을 말해줍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경청하며 순종하며 사는 길이 유일한 처방임을 말해 줍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참으로 힘센 분, 모든 마귀들을 제압할 수 있는 분, 주님을 모시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하느님의 나라를 살라는 것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하느님의 나라를, 하느님 중심의 삶을, 경청과 겸손, 순종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서 주님은 다시 당신을 선택할 것을 촉구합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이다.”

 

주님과 함께 할 때 일치입니다. 주님을 떠날 때 분열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 일치라면 악마가 하는 일은 분열입니다. 주님을 선택하여 주님 편에 서서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일치의 삶을, 하느님 중심의 경청과 겸손,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도움을 청합시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7). 아멘.

 


[3/17(금) 사순 제3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온 마음과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가 전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입니다.(조명연 신부)

 

2. 세상에서 우리는 변함없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 우리의 마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며 오늘 만나는 이웃을 또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정인준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삶은 선택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하느님의 나라를, 하느님 중심의 삶을, 경청과 겸손, 순종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3/17(금)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제 83일 기도]

 

하느님!

온 마음과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제 영혼이 하느님의 성전이오니,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 2023년 3월17일(금) 8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