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2월 22일 금요일[(자) 12월 22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본기도
죽음에 떨어진 인간을 굽어살피시고
저희를 구원하시려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구세주의 강생을 경축하며
마침내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24-28
그 무렵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 주님 안에서 제 마음이 기뻐 뛰고,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 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 ◎
○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아이 못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
○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
○ 주님은 비천한 이를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가난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높이시어, 존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
복음 환호송
○ 민족들의 임금님, 교회의 모퉁잇돌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흙으로 빚으신 사람을 구원하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거룩한 제대에 제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가리켜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에게 힘을 주시어
저희가 믿음을 증언하는 삶으로 구세주를 기쁘게 맞이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대림 12월22일
‘투자와 투기’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개념입니다. 투자는 불확실한 면이 있지만 더 낳은 미래를 예측하고 시간과 노력과 자본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는 ‘전기과’를 많이 선택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전자과’를 많이 선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이 전기에서 전자로 발전하였기 때문입니다. 동창들 중에도 ‘전자과’를 선택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의 학생들은 ‘인공지능, 생명공학, 유전공학’과 같은 과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런 과목들이 미래에 대한 수요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험, 증권, 은행은 더 많은 수익을 예상하면서 고객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고객들은 100% 안전하지 않다는 설명을 듣고, 원금에 손실이 갈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듣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투자합니다. 반면에 투기는 100%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과 자본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경우입니다. 개발정보를 미리 알거나,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 정보를 미리 알면 부동산을 사거나, 주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권력과 정보를 독점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습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먼저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서 투기를 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투명한 사회, 선진국에서는 이런 ‘투기’를 하지 않고, 할 수 없습니다. 투기는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결국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투자와 투기와는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문득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무엇일까?’ 요한복음은 그 목적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정보를 아시고, 모든 권력을 가지셨지만 ‘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투자’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미리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이사야 예언자는 투자의 위험성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주님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투기’가 아닙니다. 신앙은 ‘투자’입니다. 때로 고난의 가시밭길이 있고, 때로 캄캄한 어둠이 앞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주님의 길을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수고의 열매를 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성모님의 마음은 저의 무딘 마음을 깨우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의 성탄을 기억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왜 우리는 신앙인이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이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성탄을 기다리면서 성모님은 마리아의 노래를 준비하였듯이, 우리들 각자의 노래를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2.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대림 12월22일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221. 12월 21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오늘 <말씀전례>는 ‘오시는 분’에 대한 고대와 기다림과 간절함으로 마음 설레어 있고, ‘오신 분’에 대한 기쁨과 반가움으로 벅차올라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아가는 노래합니다.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아가 2,8)
또 <복음 환호송>에서는 “어서 오소서. 주 하느님”하고 환호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루카 1,44) 하고, ‘이미 오신 그분’을 맞이하여 뱃속에서 즐거워 뛰는 아기와 함께 기쁨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마리아의 “행복”을 선언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이는 “말씀” 안에 행복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 안에 행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말씀을 믿는 것’ 안에 행복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말씀이 왜 행복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말씀이 구원을 이루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이 구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복된 일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복됨을 노래합니다. “당신의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
그러니 마리아가 복된 것은 그녀의 태중의 아기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 아기가 구세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 모두를 믿으셨으니 ‘행복’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 안에서 이미 ‘행복’이 충만했습니다.
이를 두고 성 암브오시오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엘리사벳은 잉태한 후에 성령으로 충만했고, 마리아는 잉태하기 전에 충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을 믿고 품으면, 진정 ‘복’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어머니”(루카 1,43)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얼마나 벅찬 일인지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먼저 찾아오신 ‘말씀의 방문’으로부터 말미암은 일입니다. 마리아 태중의 ‘아기의 방문’으로부터 발생한 일입니다. ‘건너오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잉태되면, 뱃속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오히려 품고 있는 우리를 양육할 것입니다. 우리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산골을 찾아가는 ‘노고’가 되고, ‘섬김’이 되고, ‘사랑’이 되어 피어오를 것입니다. 우리의 노래가 되고, 기도가 되고, 삶이 되어 탄생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십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가 1,45)
주님!
제가 행복한 것은
믿고 사랑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당신의 희망 때문입니다.
늘 저보다 먼저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더 믿고 더 희망하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사라질 수도, 빼앗겨 질 수도, 멈춤도 없는 당신의 희망이
바로 오늘 제가 진정 행복한 이유입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대림 12월 21일.
-주님과 사랑의 여정-
“오 샛별이여,
찬란한 광채이시오, 정의의 태양이시오,
오시어 죽음의 땅과 어둠속에 앉아있는 우리를 비추소서.”
대림2부 다섯째 날, 12월21일 ‘O후렴’도 마음 설레게 합니다. 당신의 애인인 우리가 보고 싶어 우리를 찾아오시는 우리의 영원한 연인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이자 이런 주님이 속히 오십사 애절한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당신의 연인인 우리를 일편단심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 사랑의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과연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 사랑의 여정인지요? 요즘 간간히 내리는 흰눈을 보며 오래전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불현듯 우리에게 전해지는 주님의 연서(戀書)같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쓴 시입니다.
“계속 쏟아지는
흰 눈발들
임 보내시는
천상 편지
하얀 그리움
가득 담겨 있는
임의 편지
잔잔히 물결치는 마음
글씨 보이지 않아도
다 알아 보겠네”-2001.1.28.
더불어 떠오른 ‘환한 사랑 둥근 달 하나 낳았구나’라는 시입니다.
“푸르른 밤하늘
휘영청
밝은 달 하나
온 누리 환히 밝힌다
푸르른 고독이
푸르른 사랑이
휘영청
환한 사랑 둥근 달 하나
낳았구나!
오,
푸르른 고독이!
푸르는 사랑이!”-2001.2.11
22년전 2001년도 유난히도 참 많은 시를 썼던 해입니다. 주님의 푸르른 하늘 사랑에서 태어난 ‘환한 사랑 둥근 달 하나’ 같은 존재가 주님의 영원한 연인인 우리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 아가서의 배치도 이채롭고 적절합니다. 교회전통에서 한결같이 신비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중의 노래(the Song of Songs)”, 최고의 노래가 아가(雅歌)입니다.
“그대, 내 사랑,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비둘기 같은 눈동자”(아가1,5)
연인들끼리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이지만 동시에 교회의 신비가들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신부인 교회에 대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또 우리 영혼에 대한 주님 사랑의 고백으로 읽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당신의 연인인 우리 영혼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아가서의 감미로운 고백을 들어 보세요.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 넘어 오잖아요. 나의 연인은 노루나 젊은 사슴같답니다...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하는 계절이 다가 왔다오.’...‘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벌써 대림시기를 지나 꽃피는 부활시기가 온 느낌도 드는 오늘의 아가입니다. 그대로 연인이신 주님의 사랑의 방문에 황홀해 하는 우리 영혼을 상징합니다. 다음 아가서(아가, 안소근 번역, 가톨릭 출판가, 2014, 11-12쪽) 설명에 공감합니다.
“아가는 성경 전체를 위한 열쇠다. 랍비 아키바의 말이 옳았다. 실상 구약성경은 여성 앞에서 외치는 남성의 기쁨에 넘친 탄성에서 시작되고(창세2,23), 신약성경은 신랑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부의 사랑의 외침으로 끝난다(묵시22,17). 그리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한 가운데에는 아가가, 사랑의 책이, 성경의 심장이 있다.”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 아가인지요! 아가가 없었다면 성경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했을까요. 말그대로 성경의 심장같은 아가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연인이신 주님은 우리가 그리워, 보고 싶어 찾아오십니다. 대림시기는 물론 날마다의 미사전례를 통해 한결같이 끊임없이 찾아 오십니다. 오늘 복음도 이런 관점에서 보며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당신의 연인을 찾아 오듯 엘리사벳을 찾아 오신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요, 마리아의 방문에 기뻐 환호하는 엘리사벳과 태중의 아기 세례자 요한입니다. 성령에 가득차 환호하는 엘리사벳의 고백은 늘 들어도 새로운 감동입니다. 이런 엘리사벳 같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이 거룩한 대림시기 미사중 오시는 주님을 환대해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말한마디 천량빚 갚는다 했습니다. 도반간의 덕담은 이러해야 하니 그대로 성령의 은총입니다. 두분간의 주님을 중심으로 한 더불어의 영적우정이 참 깊고 순수하고 아름다워 감동적입니다. 엘리사벳의 진심 가득한 지지와 격려와 환대가 마리아에게는 큰 위로와 치유의 구원이 됐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반갑고 놀라운 것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간의 우정의 여정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태중이 주님 앞에 즐거워 뛰노는 엘리사벳 태중의 세례자 요한은 흡사 마리아 감실 안의 주님앞에서 춤추는 모습이요, 이는 주님의 궤 앞에서 덩실덩실 춤췄던 다윗(2사무6,5)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연인이신 주님께 대해 혼신의 힘을 다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의 표현인 시이자 기도이자 노래인 시편은 춤까지 이르러야 비로서 사랑의 완성이란 생각도 듭니다. 예전 써놨던 글도 생각납니다.
-“그리움
색깔로 표현하면
그림(畵)이 되고
그리움
글자로 써내면
시가(詩)가 되고
그리움
소리로 부르면
기도(祈禱)가
노래(歌)가 되고
그리움
몸으로 풀으면
춤(舞)이 됩니다.”-1998.5.5
그리움을 긴 글로 써내니 강론(講論)이 되네요. 그러니 우리의 모든 수행은 주님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자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랑의 표현인 한곁같은 수행이 우리의 영원한 연인이신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게 합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영원한 연인이신 주님과 사랑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12/22(금) 대림 12월22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주님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은 ‘투기’가 아닙니다. 신앙은 ‘투자’입니다. 때로 고난의 가시밭길이 있고, 때로 캄캄한 어둠이 앞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주님의 길을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수고의 열매를 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조재형 신부)
2.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표현할 때, “집 짓는 자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라는 시편을 인용하십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가장 천대 받고 가장 큰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하느님은 그 천대 받는 돌로 당신 나라 건설을 위한 주춧돌로 삼으셨습니다.
“행복하십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가 1,45)
주님!
제가 행복한 것은
믿고 사랑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당신의 희망 때문입니다.
늘 저보다 먼저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더 믿고 더 희망하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사라질 수도, 빼앗겨 질 수도, 멈춤도 없는 당신의 희망이
바로 오늘 제가 진정 행복한 이유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아가가 없었다면 성경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했을까요. 말그대로 성경의 심장같은 아가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연인이신 주님은 우리가 그리워, 보고 싶어 찾아오십니다. 대림시기는 물론 날마다의 미사전례를 통해 한결같이 끊임없이 찾아 오십니다.
당신의 연인을 찾아 오듯 엘리사벳을 찾아 오신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요, 마리아의 방문에 기뻐 환호하는 엘리사벳과 태중의 아기 세례자 요한입니다. 성령에 가득차 환호하는 엘리사벳의 고백은 늘 들어도 새로운 감동입니다. 이런 엘리사벳 같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이 거룩한 대림시기 미사중 오시는 주님을 환대해야 하겠습니다.(이수철 신부)
12/22(금) 대림 12월22일, 제363기도일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버려진 돌을 머릿돌로 만드는 것을 즐기십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성모 찬송을 듣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처지를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시고 계심에 감사합니다.
- 2023년 12월22일(금) 6시5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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