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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2월 7일 수요일[(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2월 7일 수요일[(녹)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95(94),6-7 참조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본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았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0,1-10
그 무렵 1 스바 여왕이 주님의 이름 덕분에 유명해진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찾아왔다.
2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
3 솔로몬은 여왕의 물음에 다 대답하였다.
그가 몰라서 여왕에게 답변하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4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을 보았다.
5 또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신하들이 앉은 모습,
시종들이 시중드는 모습과 그들의 복장, 헌작 시종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드리는 번제물을 보고 넋을 잃었다.
6 여왕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내가 임금님의 업적과 지혜에 관하여
내 나라에서 들은 소문은 과연 사실이군요.
7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 직접 보니, 내가 들은 이야기는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지혜와 영화는 내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8 임금님의 부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언제나 임금님 앞에 서서 임금님의 지혜를 듣는
이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9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 마음에 드시어
임금님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려놓으셨으니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임금님을 왕으로 세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여왕은
금 백이십 탈렌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임금에게 주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준 것만큼 많은 향료는 다시 들어온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7(36),5-6.30-31.39-40(◎ 30ㄱ)
◎ 의인의 입은 지혜를 자아낸다.
○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빛처럼 네 정의를 빛내시고,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
○ 의인의 입은 지혜를 자아내고, 그의 혀는 올바른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가르침 그 마음에 있으니, 걸음걸음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7,1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7(106),8-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5주간 수요일

 

- 마음의 작동 원리를 알면 무슨 죄에서든 벗어날 수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들만 우리를 더럽힐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오염의 원천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오산성당에 있을 때 성수가 계속 더러워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 원인을 밖에서 찾았습니다.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수가 항아리에서 줄어들자 그 안에 박으로 만든 바가지가 엎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가지에서 옻칠이 벗겨지며 성수를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나를 더럽히는 것은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사람에게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서 욕망이 시작됩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악의도 그렇고 불륜을 저지르거나 남의 것을 탐내고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그렇습니다. 위 여러 우리를 더럽히는 죄들은 ‘내가 ~을 하고 싶다’에 다 들어갑니다. 그러니 나의 마음에서 모든 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단순해집니다. 모든 죄의 원인인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마음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마음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살’ 45화에 최면으로 금연을 하게 된 사례가 나옵니다. 이남현 씨는 담배를 17년 정도 피웠습니다. 지금은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 없었는데 최면으로 금연 성공 5년 차가 됩니다. 편안히 눈을 감고 왼쪽 손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 담배 피울 때의 장소, 느낌, 상황들을 다 담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을 담습니다. 싫어하는 사람, 무서운 것, 혐오스러운 것들을 담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오른손에 있는 이미지를 왼손에 있는 이미지에 마구 섞어 비벼줍니다. 내가 싫어하는 이미지가 담배 속으로 다 스며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 부정적인 이미지와 섞인 담배의 이미지를 가슴속으로 깊게 밀어 넣어줍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효과가 더욱 좋다고 합니다. 이남현 씨는 마음의 작동 원리를 이용하여 금연을 한 사례입니다. 

 

    마음은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그동안 마음이 담배가 행복한 것이라 믿고 바라고 사랑해왔습니다. 머리는 그저 마음을 따를 뿐입니다. 머리로 아무리 담배에서 벗어나려 해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바로 마음이 담배가 행복이라 믿지 못하게 만들어 바라지도 사랑하지도 않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남현 씨는 최면으로 그렇게 담배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가미함으로써 담배가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마음이 믿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계속 가슴에 밀어 넣은 것입니다. 그러니 담배를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덜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끊기가 쉬워집니다. 마음의 작동 원리만 알면 못 할 게 없는 것입니다. 최면이어도 담배를 끊으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앨라배마에서 자란 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약 15년 전, 학교의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불량배가 싸움을 걸어오더니 주먹으로 때려 그를 기절 시켰습니다. 이 소년은 정신을 차린 뒤, 그 불량배를 죽이겠다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22구경 권총을 집어 들고 그 불량배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그 불량배가 사정권에 들어왔고, 소년이 권총을 쏘기만 하면 그 불량배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러고는 마음속에 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자기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판가름 날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이 감옥에 가는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뚜렷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감옥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통은 복수를 하겠다는 기대감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결국 그는 목표물을 바꿔 나무에 총을 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보 잭슨(Bo Jackson)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감옥을 연상함으로써 받는 고통이 복수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소년을 죽이는 만족감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훨씬 더 강력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마음의 초점을 바꾸고 고통과 기쁨 중에서 하나를 결정함으로써 이 소년은 미래가 없을 뻔했던 삶 대신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운동선수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내가 행복이라고 믿는 것을 희망하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여 그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바꾸려면 행복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정체성에서 옵니다. 개는 네 발로 걷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고 사람은 두 발로 걷는 게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두 발로 걷는 개도 있고 네 발로 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욕망은 자신이 누구냐고 믿는 정체성에서 그 정체성에 있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바라는 마음입니다. 욕망으로 사람이 타락하기도 하고 거룩해지기도 합니다. 

 

    피조물은 좋은 것을 욕망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창조자와 하나가 되었다고 믿을 때 죄가 아닌 사랑이 행복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마치 아이였다가 갑자기 부모가 된 사람처럼. 보 잭슨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것이 더 행복이라고 여겼기에 사람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늘 나라에 사는 존재라고 믿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보스턴 한인 성당엘 다녀왔습니다. 17년 동안 사목하던 신부님의 은퇴미사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성당 주보에 신부님을 떠나보내는 교우의 글이 있었습니다. 교우는 이렇게 신부님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신부님과의 이별이 눈앞에 와 있네요. 우리의 인생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지만, 신부님과의 헤어짐을 생각하니 텅 빈 가슴에 슬픔과 아쉬움 쌓여 하얘짐을 느낍니다. 그동안 신부님과 같이 만들어낸 많은 시간과 추억들 그리고 어떤 저울로도 잴 수 없는 신부님의 깊은 사랑이 마치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신 그 깊고 크신 아버지의 사랑을 어찌 짧은 글로 표한 할 수 있을는지요. 목자 잃은 양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도미니코 사제를 우리들의 아버지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때 만남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갑자기 오셔서, 모든 것이 생소 하시고, 힘드셨을 텐데도 목자 없이 굶주렸던 저희들에게 믿음과 성령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신부님이 본당신부님이라고 많이 부러워함을 들을 때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신부님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오빠처럼, 때로는 형님처럼 저희들의 아버지로서 저희들과 함께 17년을 보내셨습니다. 17년이라 함은 아기가 태어나서 거의 성인이 되어가고 있는 나이입니다. 저희 신자들의 믿음의 나이도, 신부님께서 좋은 양식을 골고루 많이 주신 덕분에 영적으로 골격과 살이 붙어 성장하였습니다. 이제는 저희 스스로 조금은 서 있을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는 본당 신자분들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실 때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슬픔을 같이하며 우셨고, 아픔과 여러 가지 고통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양떼들을 볼 때마다 너무나 가슴 아파하셨고, 병마로 희망을 잃은 양들에게 손을 잡고 같이 아파하시는 모습에서 저희들은 하느님의 모습을 뵐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갑자기 닥쳐온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삼년 동안 고통과 절망에 잠겨 있는 신자들의 영적인 아버지로서 헤아릴 수 없는 애를 쓰셨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쏟아 부어 주신 깊은 아버지의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이 저희들의 가슴에 닿아 옴을 느낍니다. 신부님과 저희들이 같이 만들어낸 한순간 한순간들은 저희 보스턴 한인성당의 역사가 되어 많은 장을 장식하며 모든 신자분들의 영적인 가슴속에 영원히 머무르고 있겠지요. 신부님께서는 저희들의 영적인 아버지로서, 끝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모든 신자분들이 영적으로 많이 성장하여 미국 보스턴에서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이민교회로 우뚝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다져주신 튼튼한 저희들의 신앙을 새로 오시는 신부님의 아들 신부님이신 크리스 신부님을 공경하며 잘 모시고 도와 드리면서 튼튼한 신앙생활을 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신부님께서도 저희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희들도 신부님의 건강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 올려 드리겠습니다. 많이 기뻐하시고, 많이 웃으시는 신부님의 하루하루가 되시길 저희 모두 두 손 모아 온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도미니코 신부님을 저희들의 영적인 아버지로 보내주시어 저희들에게 한없는 당신의 사랑을 베풀어주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나게 해 주신 사랑의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저는 신부님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적은 글을 읽으면서 새삼 신부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아들 신부님은 전도가 양양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MIT를 졸업하였고, 큰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듯이, 그 청년은 보스턴에서 신부님을 만났고, 회심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영적인 사랑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던 한 청년의 마음을 성령의 뜨거운 불길로 인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지혜는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랑을 주었던 신부님은 참된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도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32년 미국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신부님께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3. 송영진 모세 신부 강론

 

<연중 제5주간 수요일 강론>(2024. 2. 7. 수)(마르 7,14-23)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4ㄴ-15).”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마르 7,18ㄴ-19ㄱ).”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ㄴ-23).”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선한 것이다.

2) 죄는 ‘내가’ 짓는 것이다. 남 탓이나 외부 탓을 하지 마라.

 

예수님 말씀에서,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도 없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

가운데에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처음부터 ‘악한 것’으로 창조된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죄짓게

만든 사탄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사탄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원래 천사였는데 스스로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죄인으로 만든

존재가 아니라 죄를 짓도록 유혹한 존재입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 자신이 지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에게

그 유혹의 책임을 물으셨습니다(창세 3,14-15).

아담과 하와에게는 죄의 책임을 물으셨고(창세 3,16-19).

 

사람 안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말씀에 대해서, “사람도, 사람의 마음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왜 사람 안에서(마음에서) ‘악한 것들’이 나오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사람도, 사람의 마음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니,

본래 선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떻게 생긴 것인가?

 

모릅니다. ‘악’과 ‘죄’의 기원은 아직도

미스터리(신비)에 속한 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 안에는 ‘악한 것들’만 있는가?

아닙니다. ‘선한 것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악한 것들’보다 ‘선한 것들’이 더 많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루카 6,45).”

 

뜻을 생각하면 이 말씀은, “마음의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것을 내놓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된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자유의지’는

선한 사람이 될 것인지, 악한 사람이 될 것인지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입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을 보면, 내 의지가 내 생각대로(바람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 문제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18-25ㄱ).”

 

위대한 사도인 바오로 사도마저도 “나는 비참한 인간이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이 승리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싸움에서 선이 승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일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갈등과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죄는 ‘내가’ 짓는 것이다.” 라는 말은,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다.” 라는 말과 짝을 이룹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나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내가 하는 회개의 공로는 ‘나의 것’입니다.

누구든지 신앙생활을 하다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주저앉아 있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처음부터 죄를 안 짓는 것이 더 좋은 일이지만,

죄를 지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도 훌륭하고 위대한 일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2.6.성 바오로 미키(1564-1597)와 25위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1열왕8,22-23.27-30 마르7,14-23

 

                                               “하느님은 어디에서 사시는가?”

                                       -존엄한 품위의 우리 안에, 우리와 더불어-

                                                   “우리가 바로 성전입니다”

 

어제 오후 뜻밖에 선물처럼 내린 흰눈으로 나무마다 눈꽃들이 만발합니다.

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강론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숙제거리를 가득 안고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참 공부할 것이, 배울 것이 많은 하루하루입니다.

 

한 일간신문은 “가족파산-조여오는 빚, 가족의 파멸” 1면의 톱기사에 이어 두면에 걸처

상세히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각자도생의 야만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또 다른 일간신문은 “내몸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주제로 5회에 걸쳐 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별 시리즈 목차는- 1.시간이 새겨진 나이든 몸, 2.크고 아름다운 살찐 몸, 3.다름을 알려준 장애가 있는 몸,

4.이대로도 괜찮은, 아픈 몸, 5.규정을 거부하며 존재하는 몸-으로 이루어 졌으며,

어제는 4번째 항목을 다루고 있는 특집기사였습니다.

삶은 몸이라 할만큼 몸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지혜가 참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 모두가 공부의 대상입니다.

공부중의 평생 공부가 하느님 공부, 예수님 공부, 참나를 아는 공부입니다.

공부의 궁극 목표는 무지에서의 해방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참 무지한 인간입니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이나 비극은 거의 대부분이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무지의 죄, 무지의 악, 무지의 병, 동방영성에서 한없이 강조하는 인간의 무지입니다.

불가의 삼독(三毒)이라 일컫는 탐진치(貪瞋癡)도 무지의 결과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전쟁도, 기후위기의 원인도 결국은 인간 무지의 탐욕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궁극의 필생 공부는 무지에서의 해방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전쟁도 결국은 무지와의 전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자 지혜이신 예수님과 하나될 때 무지에 대한 승리입니다.

하느님 지혜의 빛, 말씀의 빛만이 무지의 어둠을 퇴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매일미사가 그리도 고마운 것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최고 처방이 이 거룩한 미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논쟁입니다.

여기서 무지와 지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예수님입니다.

조상들의 전통과 관습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무지로 인해 하느님의 계명이 덮여 버리면

완전히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현실이 되어 버립니다.

 

하느님 계명의 지혜로 분별되어야 하는 전통이요 관습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전통과 계명간 관계를 깨끗이 정리해 주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무지를 밝히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바로 인간 무지의 보편적 현실을 가리킵니다.

무지에 눈이 멀어 하느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규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코르반의 예를 들면서 하느님을 섬긴다는 구실로 교묘하게 부모 공경을 거스르는 이들의

위선과 무지를 꾸짖습니다.

무지로 인해 마음이 주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어 헛되이 주님을 섬기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니 사람되는 공부가, 지혜로운 사람되는 공부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평생공부인지 깨닫습니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진정 교회 공동체의 보물입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의 건물도, 전통좋고 자연경관 수려한 수도원도

그 안에 지혜로운 사람이 없으면 다 공허할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수도원이나 사찰을 찾든지 우선 찾아 확인해 보는 것이 참으로 깨어 있는

지혜로운 고승(高僧)입니다.

 

우리 교회나 수도원을 저는 서비스업이라 합니다.

서비스업의 삼대필수조건도 첫째도 사람이요 둘째도 사람이요 셋째가 환경입니다.

첫째 사람이 친절하고 거룩하고 좋아야 하며, 둘째 실력이 있어 유능해야하고,

셋째 안팎의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비스업에는 병원의 예가 적절합니다. 

 

이 서비스업의 세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분이, 26년 동안 제 치아를 치료해주고 있는

독실(篤實)한 믿음의 치과의사 형제입니다.

감히 명의(名醫)요 성인(聖人)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사람 좋고 실력 좋은 의사에 환경 좋으면 최상이겠지만, 사람이 친절하고 좋아도 실력이 없어

무식, 무능한 의사라면 정말 문제입니다.

무식, 무능한데다 자기를 몰라 용감하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제1독서의 솔로몬의 기도가 참 멋집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에 너무 중심을 두는 듯 솔로몬의 무지가 엿보입니다.

저는 거대한 건물의 성전을 볼때마다 믿음의 위력과 더불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땀과 피를 흘렸겠나 생각하곤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기도합니다.

유대인이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전통적 기도 자세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어찌 하느님께서 땅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갈림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옳고 마땅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건물이 아닌 땅위의 존엄한 품위의 사람들 안에 있음을 몰랐습니다.

참 거룩하고 좋은 형제들의 공동체가 바로 하느님이 거하는 집임을 몰랐습니다.

성지가 있어 성인이 아니라, 성인이 있어 성지임을 몰랐습니다.

사람이 잘 살면 묻히는 어느 곳이나 명당이라 합니다.

 

<어린왕자>에 사막이 빛나는 것은 그 안에 샘을 품고 있기 때문이란 말도 있듯이,

명산대찰이 빛나는 것은 그 안에 고승(高僧)이 있어서 이고, 외적 건물이 성전이 빛나는 것은

그 안에 참 좋은 거룩한 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참 거룩하고 좋은 사람들이 없는 건물뿐이라면 참 공허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이점을 솔로몬은 착안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안에 있는 솔로몬입니다.

시작도 웬지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솔로몬입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사십니까?

창세기에 하느님은 당신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화려한 건물이 아닌 끊임없는 회개로 원래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한 우리들 안에,

우리들과 함께 사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하느님의 현주소입니다.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거룩한 장소나 어떤 바리사인들의 손씻는 거룩한 행위도

인간의 거룩한 품위의 존엄에 비교하면 모두 빛을 잃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지닌 이들의 공동체 성전에서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 자비와 지혜의 빛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제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에 이어 일본의 순교자들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당시 일본은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에서 박해중 예수회 회원인 성 바오로 미키는

33세에 체포되어 교토의 옥에 갇혔다가 작은 형제회 수사 6명, 예수회 수사 2명, 일본인 신자 15명 등

23명과 함께 1597년 1월3일부터 오사카를 거쳐 1월9일에는 나가사키로 출발합니다.

 

이들은 무려 한달이상 혹한속을 걸어서 2월5일, 도중에 자진하여 합류한 신자 2명과 함께

모두 26명의 신자들은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사카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합니다.

동시대의 저자가 쓴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를 보면,

이들의 순교장면시 신앙고백을 대하면 감동 그 자체입니다.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됩니다.

일본 순교자 26명의 순교성인 공동체 성전을 통해 영원히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성 바오로 미키가 포함된 순교자들 26명은 1862년 6월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안에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성인영성의 디엔에(DNA), 순교영성의 디엔에(DNA) 같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회개로 깨끗해진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당신이 머무시는

거룩한 거처로, 성전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아멘.


2/7(수)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마음의 초점을 바꾸고 고통과 기쁨 중에서 하나를 결정함으로써 이 소년은 미래가 없을 뻔했던 삶 대신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운동선수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내가 행복이라고 믿는 것을 희망하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여 그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바꾸려면 행복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전삼용 신부)

 

2.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도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32년 미국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신부님께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조재형 신부)

 

3.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자유의지’는

선한 사람이 될 것인지, 악한 사람이 될 것인지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입니다.

 

위대한 사도인 바오로 사도마저도 “나는 비참한 인간이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이 승리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싸움에서 선이 승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갈등과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죄는 ‘내가’ 짓는 것이다.” 라는 말은,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다.” 라는 말과 짝을 이룹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도 훌륭하고 위대한 일입니다.(송영진 신부)

 

4. 오늘 우리는 어제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에 이어 일본의 순교자들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당시 일본은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에서 박해중 예수회 회원인 성 바오로 미키는

33세에 체포되어 교토의 옥에 갇혔다가 작은 형제회 수사 6명, 예수회 수사 2명, 일본인 신자 15명 등

23명과 함께 1597년 1월3일부터 오사카를 거쳐 1월9일에는 나가사키로 출발합니다.

 

이들은 무려 한달이상 혹한속을 걸어서 2월5일, 도중에 자진하여 합류한 신자 2명과 함께

모두 26명의 신자들은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사카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합니다.

동시대의 저자가 쓴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를 보면,

이들의 순교장면시 신앙고백을 대하면 감동 그 자체입니다.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됩니다.

일본 순교자 26명의 순교성인 공동체 성전을 통해 영원히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성 바오로 미키가 포함된 순교자들 26명은 1862년 6월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이수철 신부)

 

2/7(수) 연중 제5주간 수요일 , 410(제40)일 기도

 

복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위대한 사도인 바오로 사도마저도 “나는 비참한 인간이다.”

라고 고백할 정도로,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이 승리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는 ‘내가’ 짓는 것이다.” 라는 말은,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다.” 라는 말과 짝을 이룹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게 하소서.

 

2024년 2월7일(수) 7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