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5월 19일 주일[(홍) 성령 강림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의 영은 온 세상을 채우시고 만물을 살리시며 온갖 말을 다 아시네. 알렐루야.
<대영광송>
<또는>
로마 5,5; 8,11 참조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이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네.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오늘 이 축제의 신비로
모든 민족들과 나라에 세우신 하느님의 온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니
성령의 선물을 온 세상에 내려 주시고
복음이 처음 선포될 때 베푸신 그 큰 은혜를
이제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1-11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1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또는
◎ 알렐루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시옵니다. 주님, 당신 업적 얼마나 많사옵니까! 온 세상은 당신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하옵니다. ◎
○ 당신이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당신이 숨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온 누리의 얼굴이 새로워지나이다. ◎
○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리라. 주님은 당신이 이루신 일을 기뻐하시리라. 내 노래 그분 마음에 들었으면! 나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3ㄷ-7.12-13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성령의 열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6ㄴ-25
형제 여러분, 16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속가
가난한이 아버지, 오소서 은총주님, 오소서 마음의빛.
가장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손님 저희생기 돋우소서.
일할때에 휴식을 무더위에 시원함을 슬플때에 위로를.
영원하신 행복의빛 저희마음 깊은곳을 가득하게 채우소서.
주님도움 없으시면 저희삶의 그모든것 해로운것 뿐이리라.
허물들은 씻어주고 메마른땅 물주시고 병든것을 고치소서.
굳은마음 풀어주고 차디찬맘 데우시고 빗나간길 바루소서.
성령님을 굳게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 성령칠은 베푸소서.
덕행공로 쌓게하고 구원의문 활짝열어 영원복락 주옵소서.
복음 환호송
○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또는>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6-27;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지혜의 샘이신 주님, 교육 주간을 맞는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형제애 가득한 자유와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데 모범이 되는 교육을 실현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2.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평화의 샘이신 주님, 갖가지 시련을 겪어 온 이 나라를 굽어보시어, 국민이 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잘 지켜 가며,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도록 도와주소서.
3.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인도자이신 주님, 가정 또는 사회 안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로하시고 살펴 주시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며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사랑이신 주님, 생명의 보금자리인 저희 가정들에 강복하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으로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겨 내며, 삶의 모범으로 이웃과 세상을 성화하는 작은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물기도
성자의 약속대로
성령께서 이 제사의 신비를 풍요롭게 드러내시어
저희가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저희를 외아드님과 결합시키시어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오늘 성령을 가득히 내려 주셨으며
성령께서는 새로 세워진 교회와 모든 민족들에게
천상 지혜를 넣어 주시어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신앙을 고백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위업을 선포하였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의 교회에 너그러이 베푸신 천상 은총을 지켜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성령의 은혜를 간직하고
이 영혼의 양식으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파견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령 강림 대축일
전임 사목회장님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가장 연장이신 분이 87세 이었습니다. 가장 젊으신 분이 77세 이었습니다. 77세 회장님이 막내로서 역할을 다 해 주었습니다. 음식도 주문하고, 술도 주문해 주었습니다. 77세면 어디 가서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인데, 그날은 형님들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저는 전임 회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갔습니다. 경험과 연륜이 높으신 회장님들은 제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경청의 자리였지만, 어찌 보면 제가 면접을 보는 것도 같았습니다. 회장님들은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이 가지고 있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저는 단기, 중기, 장기의 플랜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질문도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이곳에 희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희망이 없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 신앙인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교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와 관계가 좋기 때문에 서울대교구에서 멋진 사제들을 보내 주셨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와 부주임 신부님은 서울대교구에서 최상급의 사제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본당 교우들의 전체 세대수를 파악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구역미사를 함께 하고, 다음에는 가정 방문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성당을 지켜 오신 분들에게 새로 온 신자들이 조금을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성지순례도 가고, 본당 체육대회도 하고, 전 신자 여름 캠프도 가고, 송년모임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본당 신자들의 주소록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본당 사제로 있을 때는 ‘신자수첩’을 만들었습니다. 신자수쳡에는 본당의 사목방침을 수록했습니다. 본당의 조직도를 넣었습니다. 기도문을 수록하였습니다. 본당 신자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넣었습니다. 전임 사목회장님들과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한 것이었습니다. 87세의 연세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은 20대의 청년과 같았습니다.
제게 성령강림은 하늘에서 성령의 은사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성령강림은 전임 사목회장님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서 성령 7은의 은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60을 갓 넘은 사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있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서 지켜왔던 본당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으려는 희망과 믿음을 보았습니다. 오랜 이민 생활에서 축적된 삶의 지혜와 용기를 보았습니다. 77세 막내 회장님께서 이런 모임을 자주 갖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동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부부동반으로 만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은 굳이 저녁시간이 아니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배의 장소가 굳이 예루살렘이 아니어도 되듯이, 만남의 시간이 굳이 저녁이 아니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의 장소와 시간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만남을 통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의 진정한 의미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성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성자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성령강림의 커다란 의미는 ‘하나 됨’이라 생각합니다. 분열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것, 신분과 지역의 벽을 허무는 것,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 바로 이것이 성령 강림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은 이것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사도들의 이야기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일이 가능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시며,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나는 나의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 관계가 분노와 미움, 욕심과 질투입니까? 아니면 평화와 기쁨, 용서와 사랑입니까?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성령 강림 대축일
복음: 요한 20,19-23
그 숨은 성령의 숨이요 생명의 숨, 구원과 영생의 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잔뜩 사로잡힌 나머지 문까지 닫아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보여주신 일련의 행동들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제가 스승이었다면 가장 필요한 순간 줄행랑을 놓은 제자들을 보자마자 치밀어오르는 배신감에,
너희들이 대체 불벼락을 내렸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인간의 탈을 쓰고 그게 할짓이냐? 그러고도 어떻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조목조목 잘못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늘 그러하셨듯이 먼저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유다인들의 관습에 따른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샬롬!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어서 아직도 굵은 못자국이 선명한 당신의 두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아직도 당신 부활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긴가민가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이 참된 것임을
확증시켜주신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그 숨은 우리 인간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런 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 숨은 성령의 숨이요 생명의 숨, 구원과 영생의 숨입니다.
그 숨으로 인해 살아있기는 하나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던 제자들은 참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 숨으로 인해 제자들은 존재의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은 이 땅 위에 살면서도 자신의 내면 안에 영생과 구원의 씨앗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은 주님을 전하는 일이라면 목숨조차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극복 못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로 건너가는 사다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에 우리 가운데 항상 현존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도 제자들처럼 새로 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청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강론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을 받아라.”>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갖가지 모습으로 저희에게 오시고 함께 현존하시며 동행하시지만, 특별히 오늘 말씀 전례에서는 성령께서 오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놀라운 모습’, 곧 하늘에서 세찬 바람의 소리와 불과 혀의 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고요한 모습’, 곧 닫혀진 문을 뚫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러운 숨결로 들어오십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늘 문을 열거나, 땅의 문을 열거나, 모두 ‘닫힌 문’을 열면서 벌어집니다.
곧 성령의 활동은 ‘문을 여는 일’을 통해 드러납니다.
곧 성령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닫혀진 문을 부수고, 가려진 장막의 휘장을 찢고, 죽음에 갇힌 무덤을 풀며, 우리의 굳은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묘한 것은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열리고, 닫힌 문은 마음에서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열리는 자리는 바로 우리네 삶의 자리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고, 그러기에 다른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이 베풀어졌고, 우리는 이미 그분 신비체의 몸입니다.
제2독서에서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신비체’는 지체로 이루어진 ‘한 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몸은 바로 성령에 의해 지탱되고 존속됩니다.
그 지체를 서로 결합시키고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평화'를 주시는 장면과 성령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협력자’이시요 우리의 ‘협력자’이신 ‘성령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새 백성이 탄생되고, 새 시대가 열리고,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인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닫혀진 문’을 열고 들어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닫혀진 문’ 뒤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문을 잠가 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혀진 문’을 뚫고 들어오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니다.
팔레스티나에서 보통으로 표현하던 이 인사는 이제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인사가 됩니다.
이제 이 평화는 주님의 축복이요, 선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방황이요 두려움이라면, 예수님의 현존이 곧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현존으로 이제 공포는 기쁨으로 바뀌고, 혼란스러운 무질서는 질서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공포와 두려움에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고서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평화의 전령’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20,21-22)
이제 제자들은 평화의 도구,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이 평화를 서로 나누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 이 평화를 건설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 5,9)
그런데 이 ‘평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는 우리가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이루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협조자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고 할 때,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의 원어의 번역은 ‘숨을 건네주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생명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모두 용서하시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건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를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은 너희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주며, 그러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용서’를 통해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용서’할 때 ‘평화’는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먼저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롭게 하십니다.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평화를 주시고,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오늘 이 감격스런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승복하고, 하느님의 현존에 푹 젖는 성령강림절이 되길 바랍니다.
바로 오늘이 ‘용서와 평화의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성령이시여!
제 안에 흐르소서!
흐르는 골골에 찌든 때를 벗기시고, 반역과 죄를 몰아내소서!
아픔과 상처 어루만지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멍들고 굳어진 마음 문지르시고, 접히고 구겨진 마음 펼치소서!
막히고 닫힌 마음 열치시어, 당신 숨결 흐르게 하소서!
새로워지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5.18.부활 제7주간 토요일 사도28,16-20.30-31 요한21,20-25
축제인생
<구원의 꽃자리>
“주님은 당신 성전에서, 하늘의 어좌에서,
세상을 굽어보시노라,
당신 눈은 인생을 살피시느니라.”(시편11,4)
계속되는 5월 성모성월, 파스카 축제시기이고 내일은 대망의 성령강림대축일로
부활 파스카 축제시기도 끝납니다.
일년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신록의 기쁨 충만하고 끊임없이 피어나는 다양한 꽃들입니다.
말그대로 파스카의 봄꽃들입니다.
파스카의 꽃처럼 살라고 부단히 피어나는 온갖 꽃들입니다.
거룩하게 살았던 성인들은 하늘의 별들로 떠오르고, 착하게 살았던 신자들은
매해 끊임없이 꽃들로 피어나나 봅니다.
‘땅의 행복’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땅의 행복은
밤마다 누워 하늘 바라보며
별들 가득 담아 두었다가
꽃들로 피어내는 것이다.”-2001.8.20.
눈만 열리면 어디나 구원의 꽃자리이며 펼쳐지는 축제인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꽃자리에서 행복한 축제인생을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 권리가 있습니다.
이래서 만세칠창으로 시작하는 하루요, 마감하는 하루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 수도원 만세!”
또 이어 떠오르는 ‘구원의 꽃자리’라는 시입니다.
“자리 탓하지 않는다
자리 찾지 않는다
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구원의 꽃자리이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보랏빛
파스카의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 축제인생이다
찬미와 감사다
절망은 없다”-2001.4.18.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요즘 저의 기쁨이자 행복은 면담고백성사후
집무실 옆 꽃길에서 사진을 찍어나누는 일입니다.
사진과 더불어 주고 나눈 메시지입니다
“사진처럼 예쁘고 행복하게 사세요.”
“신부님을 뵌 것이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한길만을 걸어오신 삶이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나누고 싶습니다.
“한 사람을 기르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눈앞의 아이에게서 다가올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다산>
“일년의 계획은 곡식을,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관자>
모 정치인의 “궤멸적 저출생, 패싸움만 할 것인가?” 언급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정치의 양극화, 이념의 양극화, 정서적 양극화. 빈부의 양극화등 풀어야할 산적한 양극화가 끝이 없습니다.
성령이 희망입니다.
성령에 의한 내적혁명, 영적혁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저녀녁기도 찬미가는 성령강림청원 찬미가였습니다.
7절까지 내용이 참 풍부합니다만 2절만 나눕니다.
“우리들의 위로자며 천주주신 선물이라,
온갖샘의 근원이며 타는사랑 주시도다”
성령의 희망, 성령의 기쁨, 성령의 위로...성령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끝이 없습니다.
교회를 풍요롭고 충만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은총이요 제가 매일 강론을 쓸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은총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전통의 달인 수제자 베드로, 선교의 달인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
사랑의 달인 애제자로 이뤄진 교회의 풍요로움을 묵상합니다.
모두가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몫입니다.
오늘로서 끝나는 부활시기, 복음의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와의 대조가 흥미롭습니다.
머지 않아 순교의 죽음을 맞이할 베드로입니다.
애제자가 어떻게 될 것인가 묻는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전통의 달인이자 활동가인 수제자 베드로에게 본연의 일에 충실하며 애오라지 주님만을 따르라 하십니다.
불필요한 관심에 대해 마음을 접고, 마음을 닫고 네 본연의 섬김의 책무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익명의 애제자입니다.
수제자 베드로와 꼭 함께 등장하는 익명의 애제자 사랑의 달인입니다.
말그대로 활동과 관상의 조화를 상징하는 두 제자입니다.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있는 익명의 애제자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 애제자가 상징하는 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교회의 심장처럼, 교회의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사랑의 관상가라 합니다.
애제자들은 언제 어디에나 교회의 중심부에 익명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드러나는 지도자 베드로가 전통과 활동의 상징이라면 이런 애제자는 관상과 사랑의 상징입니다.
어느 저명한 신학자의 통찰이 고맙습니다.
“실제적 인간으로서, 사랑받던 제자는 어느 시점에 죽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킴으로 예수님에 의해 사랑을 받았던 모든 이들을 상징하는
완전한 제자로서 그는 예수님이 내림시까지 머물러 있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그 애제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The Church must never be without him)’”
잘 보십시오. 멀리 갈 것 없이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잘 들여다보면 이런 애제자를 발견할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이 바로 애제자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교회의 심장같은 사랑의 달인이자 관상가인 애제자들이 있어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전통의 장상을 상징하는 수제자 베드로 역할이 익명의 숨겨진 사랑의 관상가 애제자와 같을 수 없습니다.
서로 보완하므로 풍요롭고 충만한 교회공동체입니다.
여기에 선교의 달인 바오로가 추가되니 얼마나 풍요로운지요!
순교의 죽음을 목전에 둔 바오로는 세계의 중심부 로마에서 복음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미미하게 시작되지만 유럽대륙을 산불처럼 휩쓸 복음의 불이 될 것입니다.
비록 쇠사슬에 매어있는 수인 바오로이지만 말씀을 묶어둘 수 없습니다.
구원의 꽃자리에서 복음 선포에 전념한 선교의 달인이요 그 모습이 참 자유롭고 아름답습니다.
구원의 주님은 늘 그와 함께 하셨음을 봅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년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을 환대하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어디에서나 구원의 꽃자리로 삼아 복음 선포에 전념하며 축제인생을 살았던
이런 선교의 달인 바오로와 전통의 달인 수제자 베드로, 그리고 애제자 사랑의 달인이 잘 조화된 교회는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감탄하게 됩니다.
날마다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각자 구원의 꽃자리에서 사랑의 달인 애제자가 되어
축제인생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의로우신 주님이기, 정의를 즐기시나니,
올바른 자, 당신 얼굴을 뵈옵게 되리라.”(시편11,7). 아멘,
5/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성령강림의 커다란 의미는 ‘하나 됨’이라 생각합니다. 분열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것, 신분과 지역의 벽을 허무는 것,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 바로 이것이 성령 강림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은 이것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사도들의 이야기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일이 가능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조목조목 잘못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늘 그러하셨듯이 먼저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유다인들의 관습에 따른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샬롬! 평화가 너희와 함께!(양승국 신부)
3.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오늘의 말·샘 기도>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성령이시여!
제 안에 흐르소서!
흐르는 골골에 찌든 때를 벗기시고, 반역과 죄를 몰아내소서!
아픔과 상처 어루만지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멍들고 굳어진 마음 문지르시고, 접히고 구겨진 마음 펼치소서!
막히고 닫힌 마음 열치시어, 당신 숨결 흐르게 하소서!
새로워지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어디에서나 구원의 꽃자리로 삼아 복음 선포에 전념하며 축제인생을 살았던
이런 선교의 달인 바오로와 전통의 달인 수제자 베드로, 그리고 애제자 사랑의 달인이 잘 조화된 교회는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감탄하게 됩니다.
날마다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각자 구원의 꽃자리에서 사랑의 달인 애제자가 되어
축제인생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이수철 신부)
5/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512(142)일 기도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오늘의 말·샘 기도>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성령이시여!
제 안에 흐르소서!
흐르는 골골에 찌든 때를 벗기시고, 반역과 죄를 몰아내소서!
아픔과 상처 어루만지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멍들고 굳어진 마음 문지르시고, 접히고 구겨진 마음 펼치소서!
막히고 닫힌 마음 열치시어, 당신 숨결 흐르게 하소서!
새로워지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생각하도록 제 안에서 숨 쉬게 하소서.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행하도록 제 마음을 움직이소서.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사랑하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보호하도록 저를 강하게 해주소서.
성령이여, 제가 결코 거룩함을 잃지 않도록 저를 보호 하소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기도)
- 2024년 5월19일(일) 5시3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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