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23일(일) 글/시
오만함을 버리고 자비심을 / 따뜻한 하루[400]
한 수도원에 자신의 지식만 자랑하는 매우 거만한 평을 받는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원로 수도사가 정원서 흙을 고르면서 그 젊은 수도사를 불렀습니다.
"자네, 지금 시간아 난다면 이 단단한 흙 위에 물 좀 부어주겠나?"
그러자 젊은 수도사가 흙 위에다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물은 땅에 스며들지 않고 양쪽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원로 수도사는 옆에 있는 괭이를 들어 땅을 파고 흙덩어리를 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부서져 흩어진 흙을 모은 뒤 다시 한 번 더 물을 부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가 다시 물을 붓자 물이 잘 스며들며 부서진 흙이 뭉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원로 수도사가 점잖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물이 잘 스며들고 흙들이 뭉쳐지는구먼.
이렇게 해야 싹이 나고, 꽃 피워서 열매를 맺는다네.
사람도 자신만 아는 단단함보다는 이처럼 부서져야 만이,
마음에 씨가 뿌려지면서 꽃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지"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이기심에 의한 자만심은 인간이 갖고 태어난 병이랍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비참하고 나약한 것은 인간이며 동시에 가장 교만하다.’
바오로 사도도 ‘하느님의 심판’에서 그분께서는 각자의 행실대로 갚으신답니다(로마 2,6-8).
‘꾸준히 선행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기심에 잡혀 진리를 버리고 불의를 따르는 이에게는 진노와 격분을 쏟습니다.’
예수님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제와 레위인의 이기심을 다룹니다(루카 10,29-32).
그들은 강도에게 옷 벗기고 맞아 초주검된 행인을 보고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제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그냥 보고는 이기심 땜에 지나친 것은 바른 경우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행 중인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서 끝까지 돌봐줍니다.
그렇습니다.
자만은 이기적인 자아를 만들고 교만한 마음을 성장시켜 단단한 벽 속에 자신을 가둡니다.
자아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 중엔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며 최고라 여기는 오만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착한 사마리아인마냥 이기심을 버리고 자비의 사람이 되어라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한계를 극복하는 열정 / 따뜻한 하루[401]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중 예기치 못한 방해물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때 나약한 자신은 물론 어쩌면 그 한계 앞에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그 급작스런 돌발 변수가 결국 우리를 포기하게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계라는 장벽 앞에서 느끼는 감정일 수 있습니다.
두려움, 좌절 등 감정 아닌 상황만 보면, 한계의 실체가 비로소 보입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특유의 분위기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입니다.
그는 야외에서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등 직접 보고 그리는 주제의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로 작품의 주된 메시지는 바로 '행복'입니다.
그는 삶이 우울하여도 그림은 밝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자신만의 강한 철학을 가졌습니다.
때문에 빛과 그림자로 행복을 살린 그는, 생생한 표정의 여성과 아이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또한 밝은 색채를 사용해 행복을 표현하였기에 팔레트에는 늘 알록달록한 물감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밝은 팔레트처럼 늘 행복할 것 같던 그에게 류머티즘이라는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손이 뒤틀려서 붓 잡을 수 없어, 한 획 그을 때마다 온몸이 땀에 젖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하지만 이 끔찍한 병도 그의 열정을 삼킬 순 없었기에 계속해서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그에게 친구가 "자네는 왜 그렇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계속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통은 지나가 버리지만, 예술은 언제나 남는다네."하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파스카 축제 전 당신 집인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요한 2,13-17).
그분께서는 채찍으로 환전상들의 돈을 쏟으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시며 이르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얼른 치워버리고,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그렇습니다.
한계에서 더 인내하는 시간과 열정을 쏟을 때라 여기면, 넘지 못할 산이 없을 듯합니다.
당신이 걱정해야 할 유일한 한계는, 당신 열정을 가로막도록 그어놓은 그 마음입니다.
화가 르누아르는 행복 전달자가 되려는 열정으로, 아픈 병고를 끝내 인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집에 대한 열정 땜에, 장사치와 환전꾼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장거리 달리기 중 마지막 그 한 바퀴의 한계가 최후의 인내이자 열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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