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11일(화) 오늘의 글/시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18) 후덕한 안방마님 첩에게서 아들 얻은 최참봉 씨 뿌린 자는 따로 있었으니 최 참봉은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벌써 배가 동산만 하게 부풀어 오르고 턱은 없어졌으며 걸음은 뒤뚱거렸다. 천석꾼 부자 최 참봉네 집은 안채와 사랑채 사이를 꽃담이 갈라놓고 왕래할 수 있게 조그만 중문을 달았다. 사랑채에서 굿판을 벌여도 중문을 잠가놓으면 안채의 안방마님은 몰랐다. 아니, 모르는 척했다. 최 참봉이 상스러운 잡놈인 데 반해 안방마님은 열두폭 병풍에 둘러싸여 조용히 사군자나 치는 후덕하고 조신한 대갓집 안주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최 참봉이 중문을 열고 안채 안방으로 들어왔다. “조부님 제삿날이 다가오는데 조상 볼 면목이 없소.” 술상 위 청주를 한잔 들이켠 최 참봉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안방마님은 고개를 숙였다. 천석꾼 집안에 자식이 없어 대가 끊어질 판이었다. 최 참봉은 허리춤에서 곳간 열쇠를 풀어 술상 위에 놨다. 안방마님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자신은 첩을 들일 테니 부인은 곳간을 차지하라는 뜻이었다. 며칠 후 아직 귓불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새파란 처녀가 안방마님에게 인사를 올리고 아무 말도 못하고 꿇어앉아 눈물만 떨궜다. “나리를 잘 모시고 대를 이을 아들이나 낳아다오.” 소작농 임 서방의 셋째딸은 그렇게 최 참봉의 첩이 돼 사랑채에 기거하게 됐다. 인물이 빼어나고 예절도 바르고 착했다. 막실에서 왔다고 막실댁이 됐다. 사랑채에는 조그만 부엌도 딸려 있어 중문을 걸어 잠가버리면 안채와 사랑채는 대문만 함께 쓸 뿐 두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최 참봉은 낮이고 밤이고 막실댁을 껴안고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구냐?” “소인 진국이옵니다.” 최 참봉이 문도 열지 않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락이 익어가니 날을 잡아 마름 노릇을 하러 가야 합니다.” 최 참봉이 “곳간 열쇠를 네 마님한테 줬으니 마님 모시고 다녀오너라”라고 말했다. 진국은 최 참봉네 집사로, 글을 깨쳤고 영리하고 정직해 6년째 이 집 살림을 한치 어긋남 없이 꾸려가고 있다. 처서가 지나자 아침저녁 옷깃을 여밀 만큼 서늘했고 들판은 황금색으로 출렁거렸다. 곳간 열쇠를 찬 안방마님과 집사 진국이 이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안방마님은 치맛단을 올리고 부지런히 집사 뒤를 따랐다. 고개를 오를 땐 진국이 안방마님의 허리를 밀어주고 개울을 건널 땐 안방마님을 등에 업었다. 늦은 점심 나절 두 사람은 막실에 다다랐다. 소작농 다섯이 마을 어귀에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 ‘마름은 평안감사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마름이 할 일은 소작농을 실사하며 작황을 보고 지주에게 들여놓을 나락 수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막실에 도착해 끌려간 집은 천 서방네다. 서너평 되는 대청에 상다리가 부러져라 씨암탉 백숙을 차려놓았다. 쫄쫄 굶으며 사십리를 산 넘고 물 건너 걸어온 안방마님은 허겁지겁 닭백숙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아랫목에 쓰러졌다. 안방마님이 깜빡 잠에 들었다 깼을 때 옆집 소작농 임 서방 내외가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찾아와 안방마님 앞에 꿇어앉았다. 임 서방댁이 흐느끼며 “마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했다. 최 참봉이 논 세마지기를 주고 첩으로 들여온 열여섯살 처녀의 부모가 바로 임 서방 내외다. 보자기를 풀어보니 솔잎에 싼 송이버섯이 향을 뿜었다. 막실 서른여섯마지기의 마름 노릇을 후하게 하고 나니 짧은 해가 떨어지고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천 서방네 식구들은 뿔뿔이 이웃집으로 흩어지고 천 서방집 안방은 마님이 차지하고 건넛방은 집사 진국이 차지했다. 송이버섯·닭·산적에 머루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안방마님이 배를 붙이고 눕자 진국은 윗옷을 벗은 채 마님의 다리를 주물렀다. 마님의 숨이 가빠졌다.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막실을 시작으로 이곳저곳 마름 노릇은 보름이나 걸려 끝났다. 몇달 후 막실댁이 아들을 낳았다. 최 참봉은 뛸 듯이 기뻐하며 아들을 품고 살더니 중풍으로 쓰러져 석달 만에 이승을 하직했다. * * * * * 일년상을 치르고 안방에서 혼례식이 올려졌다. 안방마님이 주례, 집사 진국이 새신랑, 어린 과부 막실댁이 새신부였다. 최 참봉의 대를 이은 아들은 사실 안방마님의 주선으로 집사 진국이 뿌린 씨앗이었다. 이튿날 안방마님은 삭발하고 입산했다. |
내가 늙지 않는 세 가지 방법
(일, 여행, 사랑)
내 친구 안병욱은
80이 되었을 때 늙지 않는 방법
세 가지를 권하곤 했다.
공부하라,
여행을 즐겨라,
열심히 연애하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 한다.
나는 안선생 보다 10년이 더 지난 뒤인 90부터 안선생의
일상적인 가르침을 철학적인 관념으로 보충해보곤 했다.
공부도 정신적인 일이다.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누가 늙지 않는가.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내 나이 100을 넘었다.
그래도 일하고 싶다.
일이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내 주변을 봐도 100세까지 젊게 지내며
행복한 삶을 누린 사람들은
모두가 일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게으른 사람은 빨리 늙는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안겨주는 축복이 많다.
나는 지금도 '적당한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건강은 일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젊게 살고 있다.
여행은 새로운 삶을 위한 호기심과 도전이다.
신체 늙어가지만 정신은 계속 성숙하기 마련이고 그 성숙이
곧 성장을 동반하기 때문에 젊음을 뒷받침해 준다.
나는 교회에서 자랐다.
교회가 나를 젊게 해주었다.
인간적 성장을 주었으니까.
그러나 교회 생활에 안주하면 안 된다.
신앙을 진리와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이면서 한없는
희망과 창조력으로 터득하며 산다.
신앙은 사명감과 더불어 항상 새로 태어나게 해준다.
참신앙인은 늙을 수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고귀하고 영원한 것을 사랑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값있는 인생을 산다.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는
진실을 깨닫는다면 좋겠다.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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