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4월 20일 주일[(백) 주님 부활 대축일-낮 미사/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이제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벅찬 기쁨을 노래합시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입당송
저는 다시 살아나, 여전히 당신 안에 있나이다. 알렐루야.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어 주셨나이다. 알렐루야. 당신 지혜는 놀라운 일 이루셨나이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대영광송>
<또는>
루카 24,34; 묵시 1,6 참조
주님이 참으로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주님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대영광송>
본기도
오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부활 대축제를 지내며
성령의 힘으로 새로워지고 생명의 빛을 받아 부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5,6ㄴ-8
형제 여러분, 6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속가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주님 안에서 축제를 지내세.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12
1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2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3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4 여자들이 그 일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이자 두 남자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7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8 그러자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다.
9 그리고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
10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사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
11 사도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12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난 일을 속으로 놀라워하며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자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는 교회에 성령의 빛을 비추시어, 넘치는 생명력과 열정으로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의 주님, 공직자들에게 바른 양심을 심어 주시어,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직권을 남용하지 않게 하시고, 국민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3. 장애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온유하신 주님, 선천적 후천적 장애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고, 저희와 이 사회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필요에 응답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본당 사도직 단체들에 믿음과 열성의 은총을 주시어, 지상 생활의 순례자로서 천상 것을 바라며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예물기도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그리스도 우리의 파스카 양으로 희생되셨으니, 순결과 진실의 누룩 없는 빵으로 축제를 지내세. 알렐루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의 자애로 교회를 인자로이 보호하시어
저희가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져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파견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대축일-파스카 성야
먼저 오늘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시는 새 영세자자 분들 축하합니다. 세례는 두 가지 은총을 우리에게 줍니다. 하나는 지난날 내가 범했던 모든 잘못을 용서받는 은총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모두 형제와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세례는 정화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세례는 회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례를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성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정화와 회개의 상징이었던 세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품격이 올라갔습니다. 교황님께서 우리 성당을 방문해 주면, 우리 성당의 기쁨이 더 크듯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는 죄를 용서받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활 성야를 파스카라고 이야기합니다. 파스카에는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나간다.’입니다. 이는 탈출기의 역사적인 사건에 근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파라오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이집트에 있는 모든 맏배를 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집 앞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하느님의 징벌이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인호가 새겨집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면서 주님과 함께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악의 세력이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하느님의 진노가 우리를 지나갈 것입니다. 양의 피, 주님의 성체는 백신과 같습니다.
둘째는 ‘건너간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배고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바위에 물이 샘솟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들 또한 세상의 것들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며 하느님과 멀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 뱀을 내리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셨습니다. 모세의 간청을 받아들이신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광야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는 시련의 시간이면서, 광야는 정화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모두 ‘광야’를 거쳐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건너가야 할 광야입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가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를 일으켜 줄 디딤돌입니다.
세 번째는 ‘넘어간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넘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지나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부활은 건너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부활은 넘어가는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참된 부활이 아닙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나자로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참된 부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소생입니다. 참된 부활은 넘어가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징벌과 분노가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새로운 땅으로 건너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2025년 4월 20일이 부활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도 분노에 머물고 있다면,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아직도 절망하고 있다면 부활은 전례와 형식 안에 머물게 됩니다. 오늘 희망과 담대함으로 빛을 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과 12명의 제자가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이 20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는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재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이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는 언제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신 분들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파스카 성야
루카 24,1-12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증하는 가장 뚜렷한 표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고 애달파했던 세 여인이 있었으니,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여인들은 깊은 슬픔에 긴 밤을 뜬눈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여인들은 여명이 밝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냅니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랑을 주셨던 예수님,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목숨까지 걸고 사랑했던 예수님께서 저리도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다니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이제 여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생각 한 가지는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어젯밤 서둘러 치른 매장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자신들에게 참사랑을 일깨워주신 분,
새 삶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을 위해 남아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골몰했습니다.
여인들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 서둘러 최고급 향료를 샀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경황없었던 어제였기에 다시금 차분하고 꼼꼼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신새벽에 무덤을 향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통상적인 유다인들의 무덤은 동굴 형에다가 개폐형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흙을 파서 관을 묻고 다시 흙을 덮는 봉분형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자신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무덤이었는데,
이 무덤은 한 마디로 동굴 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동굴방 안 바닥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입구는 큰 돌을 굴려 막았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덤이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걱정이 태산이었던 그녀는 사도들에게로 달려가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은 여인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예수님의 시신은 아마포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곳은 빈 무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빈 무덤 사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교 역사와 신앙 안에서 큰 획은 긋는 중요한 대사건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그냥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의 시신으로 그냥 무덤 안에 남아계셨더라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의미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창시자의 무덤에 대한 의미 부여가 대단합니다.
작은 조각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회당이나 법당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는 창시자 예수님의 무덤이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빌리셨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소유의 무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부활을 의미합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만왕의 왕임을 드러내는 확증입니다.
빈 무덤은 참으로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신부님
/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 피정센타 이야기
3. 이영근 신부
2025년 4월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 - 낮 미사
<부활하신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알렐루야!
부활 대축일을 축하드립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달려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한 20,2)
그렇다면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혹 여러분도 그분이 어디에 모셔졌는지 모르십니까?
진정, 부활하신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디에 모시고 계십니까?
‘부활하신 분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를 보기 위해, 먼저 ‘부활은 대체 어디에서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봅니다.
그것은 당연히 ‘무덤’에서 벌어집니다.
곧 ‘죽음’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니 죽음이 있는 곳에 부활이 있습니다.
이는 죽음 없이는 부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삶 안에서 죽음을 맞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냥 죽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으로 건너가는 죽음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대체 왜 죽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만, 우선 모든 죽음의 공통적이고 일차적인 이유는 ‘태어났음’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태어나지 않고서는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탄생이 죽음의 제1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단 한 분’ 예외가 있습니다.
부활의 신비는 바로 이 분에게서 드러납니다.
이를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의 죽음은 그분의 탄생의 결과라고 말하기보다, 그분이 죽을 수 있도록 탄생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탄생’이 발생했다는 것은 탄생이 죽음의 원인이 아니라, 죽음이 탄생의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죽음이 탄생의 원인이라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분명 이 죽음에는 탄생이 있습니다.
곧 탄생에 죽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탄생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곧 죽음이 부활의 새로운 탄생이 됩니다.
여기서는 탄생, 죽음, 부활이 하나로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이 참 생명을 인간에게 건네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이 얼마나 크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랑의 신비인지요!
이를 히에로니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고 잉태되셨다.
그리고 세상은 만들어졌다.”
그러니 ‘못 박힘’은 성령으로 날인되어 잉태됨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잉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무덤으로부터 부활한 ‘새로운 창조’를 말합니다.
그렇게 세상은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비로소 부활과 함께 새로운 생명,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살아야 합니다.
곧 우리는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를 사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사도 10,41-42)
그러니 우리에게는 부활을 삶으로 증거해야 하는 소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 봅니다.
‘이 부활’, ‘이 사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이러한 삶을 파스칼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끝 날까지 고통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고통과 죽음 가운데 부활의 생명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고통 받고 죽으면 부활을 맛볼 것입니다.
고통 받기를, 죽기를 거부하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 안에 사랑의 순교가 자리 잡으면, 곧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주면, 그 안에서 함께 죽으시면서 함께 살아계신 그분의 생명을 체험할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지금 우리의 고통, 우리의 죽음 가운데 있고, 우리의 죽음을 통하여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의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고통과 죽음의 삶 한가운데 모셔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 안에 살아계신 야훼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의 고통과 죽음 속에서 동행하시며 저희와 함께 부활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알렐루야!!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요한 20,4)
주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듯, 목동들이 구유로 달려가듯,
고귀한 경쟁에서 질세라 빨리 달리게 하소서!
무덤을 들여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비어져 나오게 하소서.
비어진 맑은 눈으로 당신 부활을 보게 하시고, 본 바를 믿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5.4.18.주님 수난 성금요일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수난중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영원한 과제는 무엇인가?”
<세 근본적 질문, 삶의 자리와 신원, 두 임종어>
참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참신자가 되고 싶습니까?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까?
참으로 빛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까? 믿는 이들 누구나의 근원적 갈망이자 소망일 것입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금요일 수난을 겪으신 주님께서 그 가르침을 주십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 속하며 수난을 겪으신
주 예수님을 통해 실현됨을 봅니다. 다음 주님의 종에 대한 고백이 깊은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주님의 수난의 깊은 신비는 물론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겪는 고난과 병고의 신비로운 의미도 은연중 드러납니다.
주님의 수난에 합류하여 의미를 찾을 때 밝혀지는 고난의 신비요 주님의 위로와 치유도 뒤따를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오늘 주님 수난 금요일 이런 주님의 종 예수님을 만납니다.
첫째, 우리는 주님 수난의 현장에서 만나는 세가지 화두와 같은 근원적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1.“누구를 찾느냐?”
주님의 물음에 오늘 수난 현장의 사람들은 “나자렛 사람 예수요.”대답하자 예수님은 “나다(I AM)”
답하심으로 당신이 신적존재임을 밝히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가 물을 궁극의 평생 질문이요
늘 새롭게 만나야 할 주님입니다.
2.“진리가 무엇이오?”
주님의 고백입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진리는 주님의 존재이유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진리자체이신 하느님입니다.
바로 이 진리이신 주님을 깨달아 가면서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빌라도는 진리이신 주님을 앞에 두고,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 묻지만 우리 역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평생 묻고 확인해야 할 질문입니다.
이래야 진리이신 주님을 만나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진리의 연인’으로, ‘진리의 협력자’로 살 수 있겠습니다.
3.“당신은 어디서 왔소?”
역시 빌라도의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화두와 같은 물음입니다.
역시 주님은 물론 우리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어느 수녀의 참 좋은 답변이 생각납니다.
“I am from nowhere”(나는 아무곳으로부터 오지 않았다)’
하느님은 장소가 아닙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 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어느 고승의 화두와 같은, “온곳이 없으니 갈곳도 없다” 는 답변도 장소가 아닌 하느님을 뜻한다 싶습니다.
둘째, 우리 삶의 자리와 신원에 대한 확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가 바로 우리 삶의 자리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마리아 성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파스카의 예수님은 물론,
마리아 성모님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날로 깊이하는 것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딸)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 모두 마리아 성모님의 아들(딸)임을 밝히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복음의 애제자는 물론 우리 모두가 평생 각자 영적공간에 모시고 살아야 할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두 임종어 역시 평생 화두로 삼아 살다가 마침내 우리의 임종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목마르다”, 평생 진리자체이신 하느님께 목말라 했을 예수님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아마도 “하느님,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고백처럼, 평생 날마다, “목말라 눈떴고,
눈뜨면 목말랐을” 예수님의 삶이셨을 것입니다. 다음 “다 이루어졌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 실천에 최선을 다했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말그대로 진인사대천명의 삶을 사셨던 주님이셨습니다.
“목마르다”,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두 임종어 화두로 삼아 사시면서, 하루하루 ‘파스카의 봄나무들’처럼
늘 하느님을 목말라하는 삶, 늘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바로 요즘 수도원 경내 곳곳에서 활짝 봄꽃들 피어내는 파스카의 봄나무들이 우리 모두 파스카의 봄사람들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깨어 활짝 꽃눈들 열리니
찬미와 감사로
온세상이 환하다
파스카의 봄꽃나무들!
깨어 활짝 꽃눈들 열리니
찬미와 감사로
온세상이 환하다
파스카의 봄꽃사람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계시기에 빛과 생명 가득한 살만한 세상입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이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나갑시다.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의 십자가 경배하오며,
주님의 거룩하신 부활을 찬양하오니,
십자 나무 통해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쁨이 왔나이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4/20(일) [(백) 주님 부활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2025년 4월 20일이 부활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도 분노에 머물고 있다면,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아직도 절망하고 있다면 부활은 전례와 형식 안에 머물게 됩니다. 오늘 희망과 담대함으로 빛을 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 그리스도교는 창시자 예수님의 무덤이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빌리셨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소유의 무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부활을 의미합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만왕의 왕임을 드러내는 확증입니다.
빈 무덤은 참으로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요한 20,4)
주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듯, 목동들이 구유로 달려가듯,
고귀한 경쟁에서 질세라 빨리 달리게 하소서!
무덤을 들여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비어져 나오게 하소서.
비어진 맑은 눈으로 당신 부활을 보게 하시고, 본 바를 믿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계시기에 빛과 생명 가득한 살만한 세상입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이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나갑시다.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이수철 신부)
4/20(일) [(백) 주님 부활 대축일], 오늘의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요한 20,4)
주님!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듯, 목동들이 구유로 달려가듯,
고귀한 경쟁에서 질세라 빨리 달리게 하소서!
무덤을 들여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비어져 나오게 하소서.
비어진 맑은 눈으로 당신 부활을 보게 하시고, 본 바를 믿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4월20일(일)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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