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5월 20일 화요일[(백) 부활 제5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낮은 이든 높은 이든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그리스도의 권세와 권능과 구원이 나타났다. 알렐루야.
본기도
그리스도의 부활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찾아 주시니
저희가 한결같은 믿음과 희망으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나 다 이루어 주심을
의심 없이 믿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내 입은 주님을 노래하며 찬양하리라. 모든 육신은 그 거룩하신 이름 찬미하리라. 영영 세세에.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이토록 큰 기쁨의 원천을 마련해 주셨으니
기쁨에 가득 찬 교회가 드리는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영원한 즐거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믿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열렸나이다.
주님의 죽음으로써 저희가 죽음에서 구원받았고,
주님의 부활로써 모든 이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 믿나이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파스카 신비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부활로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5주간 화요일
4년 동안 쓰던 블루투스 이어폰이 금이 가고, 깨졌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저를 위해서 수고해 준 이어폰이 고마웠습니다. 순간 접촉제로 붙여 다시 사용하려고 했지만, 어려움이 있어서 새로운 이어폰을 구하려고 아마존을 검색했습니다. 전에 사용하던 이어폰은 후배 신부님이 추천했던 정품 이어폰이었습니다. 검색하니 겉모습은 멀쩡한데, 전에 사용했던 이어폰 가격의 십분의 일인 이어폰이 있었습니다. 가성비가 좋아서 선뜻 클릭해서 구매했습니다. 이어폰이 와서 기분 좋게 열었습니다. 소리는 예전 이어폰만 못했지만 그래도 가격이 좋으니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10분만 있으면 꺼지는 문제였습니다. 답답해도 가격이 좋으니 사용하려고 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예전에 후배 신부님이 추천했던 그 제품을 다시 구매했습니다. 가격은 좀 있지만, 역시 소리도 좋았고, 충전하면 오랜 시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싼 이어폰은 회사의 브랜드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종교를 선택하려면 4가지를 꼭 보라고 했습니다. ‘창립자, 경전, 사회성, 내세관’을 보라고 했습니다. 사회성이 없거나, 폭력적인 종교는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내세관이 없는 종교는 친목 모임처럼 변질될 수 있습니다. 경전에서 인류의 지혜를 찾을 수 없다면, 경전에서 참된 진리의 이정표를 찾을 수 없다면 그리고 경전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면 이 또한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창립자의 가르침과 표징이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창립자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가르친다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체계를 부정한다면 이 또한 참된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어서 직장을 잃어버리고, 가족과 헤어지고, 영혼마저 병들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어폰은 새로 사면 되지만 한번 선택한 종교를 다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종교를 선택하려면 오래된 브랜드의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창립자의 가르침과 표징이 보편적인 인류의 지혜와 함께하면 좋습니다. 경전을 통해서 어둠을 벗어나 빛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습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이웃을 사랑하고, 현세의 삶이 마쳐지면 영원한 생명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또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잠깐입니다. 값싼 이어폰처럼, 잠깐은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흔들림을 넘어서는 평화입니다. 불안 속에서도 견디게 하고, 슬픔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평화입니다. 참된 종교, 참된 신앙, 참된 평화는 겉모습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더욱 깊어집니다. 고통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인생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끝까지 비추는 빛이 됩니다. 좋은 이어폰을 선택할 때도 신중했는데, 우리의 영혼을 맡길 신앙은 더욱 신중히 선택해야 합니다. 창립자의 표징을 보고, 경전의 지혜를 살피고, 이웃 사랑의 정신을 찾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내세관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마음속에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은 모든 진실을 드러낸다. 거짓은 덧칠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벗겨진다." 예수님의 진리와 평화는,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참된 진실입니다. 그 빛을 붙들고 우리도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4,27-31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평화!
우리네 인생이란 것, 돌아보니 혼란과 불안, 부침과 우여곡절의 연속이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꿈꾸는가 봅니다.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정말이지 평화로운 상황을 꿈꿔봅니다.
완만한 흐름의 맑은 강가, 멀리 강 건너 편에는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남향 시골집, 철따라 피고 지며 꽃 잔치를 벌이는 형형색색의 꽃나무들, 비옥한 텃밭,
거기에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나만 생각해주는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수시로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세상 만물의 이치입니다.
장마철에 집중호우라도 한번 내리면 맑고 잔잔한 강물은 어느새 토사가 뒤섞인 흙탕물로 돌변합니다.
계절이 넘어가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화사하던 주변 풍경들은 어느새 쓸쓸하고 삭막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리도 깊이 의지하던 든든하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순식간에 늙고 병들고 약해집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의 평화는 ‘반짝’하며 지나갑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평화, 참된 평화는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참된 평화는 영원한 보루이자 든든한 성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 27)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 지상적인 평화,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평화와는
비교가 안 되는 한 차원 높은 평화, 격이 다른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폭풍우 속에서도 내적인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평화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과 시련, 고통과 슬픔, 다양한 인생의 부정적 경험 속에서도
담담한 표정으로 평정심을 간직할 수 있는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입니다.
우리 인간들 삶이라는 것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때로 잠잠하다가도 어느새 우리는 폭풍우 한 가운데 서게 됩니다.
때로 만사형통하는가 하면 어느새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하느님께서 든든히 자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고 지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그 어떤 외적인 바람에도 좌지우지 되지 않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내면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겁먹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을 이기셨으니 우리 역시 그분과 함께 승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양승국 신부님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4,27-31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를 뒤흔들어 놓기를>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요한 14,27)
주님께서는 단지 ‘평화’를 남기고 가신 것이 아니라,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고 하시며, 분명히 우리에게 상속재산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평화롭지 못하다면, 무슨 까닭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
평화를 뜻하는 ‘샬롬’은 어원상 ‘완전하다’는 뜻으로 부서지거나 흠이 난 상태에서 온전한 상태로 복구되어 가는 상태로 복구되어 가는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고 이 세상에 정의와 진실을 성취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말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더 완전한 정의를 인간사회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219항; '민족들의 발전' 179항 재인용)
성경에서 '평화'란 단지 외적으로 갈등이 없고 내적으로 고요한 상태, 혹은 전쟁이 없는 조약이나 힘의 균형 상태나 평온하고 태평스러운 안정된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반면, 그리스도교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현존의 결과로 나타난 그분 다스림의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는 평화로서,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 있고, 그리스와의 일치 안에 있을 때 충만해지는 평화로, 사랑과 정의와 진리의 실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서 ‘평화’를 선물로 받은 우리는 마땅히 ‘평화’를 지켜야 하고, ‘평화’의 파괴를 막아야 하고, ‘평화’를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지니게 됩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타인을 위해 자신이 죽음으로써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고 비워짐으로써, 타인을 떠받들고 자신이 낮아지고 작아짐으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주신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기에, 오히려 세상의 평화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기만적인 안전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바란다면, 오히려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를 뒤흔들어 놓기를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51)
이처럼 우리가 ‘평화를 얻는 길’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 5,9)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창에 찔리신 당신 가슴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5.19.부활 제5주간 월요일
사도14,5-18 요한14,21-26
주님을 사랑하라
“말씀을 지키는 것이 주님 사랑이다”
“주님, 저희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옵니다.”(시편115,1)
요한복음 14장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거룩한 고별사는 17장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깨우침이 됩니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멀리 밖으로 주님을 만나러 갈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계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독일의 중세기 신비가 마이스터 에카르는 지금 여기 주님을 놔두고 외출해서 주님을 찾는다고
우리의 무지를 질책합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오늘 복음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만납니다.
다음 주님 말씀이 단순 명쾌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이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얼마나 단순합니까? 주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거듭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 말씀을 지킬 것을 당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예외없이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단순 명쾌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지킬 것이고, 그러면 아버지와 예수 아드님께서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아이때부터 가르쳐야할 주님의 말씀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을 들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이 알려준 지름길로만 다닌 아이는 훗날 어른으로 자라지도, 아이로도 남지 못한다.”<다산>
흡사 오늘날 교육의 맹점을 지적하는 듯 합니다.
이런 이기적 편협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폭넓은 사고를 지닐 수 있는 주님의 진리 말씀 교육이 절실합니다.
“교만과 사치, 탐욕과 방탕은 사람을 사악하게 만든다. 이 네가지는 총애와 재물이 넘쳐서 생긴다.”<좌전>
말씀 공부를 통해서 진리이신 주님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공부가 제일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더욱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아드님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새삼 말씀 사랑이 주님 사랑의 판별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얼마전 교황 선거후 유망한 교황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필리핀 출신의 타글러 추기경의 인터뷰 내용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투표시 레오14세 교황이 된 프레보스트 추기경 옆자리에 앉았던 타글러 추기경입니다.
“당신은 프레보스트 추기경 옆에 있었다. 그가 2/3 이상 표를 얻었을 때 그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미소와 깊은 호흡이 교차했다. 그것은 거룩한 사직과 거룩한 두려움이 결합된 것이었다.
나는 침묵중에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가 2/3 이상 표를 얻는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때처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추기경들은 그들의 형제, 추기경 프레보스트에게 기쁨과 감사를 표현했다.
나도 속으로 말했다. ‘거룩한 침묵이 예수님과 베드로를 감싸소서(Let holy silence envelope Jesus and Peter)’”
또 다음 두 인터뷰 대목도 깊은 깨우침이 됩니다.
“하느님에 의해 교황이 지명되는 순간, 그들은 그들이 갈망하던 것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했다.
“늘 옛 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 아름다움을(Beauty ever ancient, ever new)”,
“모든 것들의 영원한 주님을(Eternal Lord of all things)”
“너희가 보편교회의 선을 추구할 때, 너희는 승자나 패자를 찾지 않는다.
‘이런 지도원리가 정신을 정화하고 평화를 가져다 준다(This guiding principle purifies and bring peace)
무엇보다 추기경들의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들이요, 성령께서 함께 하셨음이
확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기에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켜온 추기경들이었고 성령께서도 그들을 지켜주셨음을 봅니다.
모두가 참 좋은 하느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인 추기경들입니다.
진솔한 인터뷰 내용을 통해 드러나는 타글러 추기경의 영성이요 마지막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내용도 좋았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약한 인간성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리 탐구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그분은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인간이
되었다(in Jesus became fully human).”
이해를 분명히 하고 싶은 마음에 중요 부분은 영문을 추가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곧이 곧대로 한결같이 지킬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보호와
사랑속에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가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제가 날마다 강론을 쓸 수 있음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고 기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성령의 인도따라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의 삶을 살았던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입니다.
이들의 열렬한 선교활동이 이를 입증합니다.
이코니온에서 선교후 리스트라에서 그리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옵니다.
리스트라 선교중에는 바오로는 두발을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구원받을 믿음이 있음을 알고,
“두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명령하여 치유하신후, 군중들의 유혹에 바오로는,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열화와 같은 성령 충만한 단순 명쾌한 감동적 설교로, 이들의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아 주시고 지체없이 떠납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헛된 것들에, 우상들에 빠져 제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문제투성이 사람들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 주님과 함께 성령의 인도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래야 세상 헛것들의 유혹에서 벗어나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5/20(화) [(백)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은 모든 진실을 드러낸다. 거짓은 덧칠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벗겨진다." 예수님의 진리와 평화는,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참된 진실입니다. 그 빛을 붙들고 우리도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조재형 신부)
2.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하느님께서 든든히 자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고 지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그 어떤 외적인 바람에도 좌지우지 되지 않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내면에 간직한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겁먹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을 이기셨으니 우리 역시 그분과 함께 승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창에 찔리신 당신 가슴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 주님과 함께 성령의 인도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래야 세상 헛것들의 유혹에서 벗어나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이수철 신부)
5/20(화) [(백)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요한 14,27)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창에 찔리신 당신 가슴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5월20일(화)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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