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시조·성가·기도문

오동꽃- 유재영/오동꽃 3장

 

 

오동꽃

 

언제였나 간이역 앞 삐걱대는 목조 이층

찻잔에 잠긴 침묵 들었다 다시 놓고

조용히 바라본 창밖 속절없이 흔들리던

멀리서 바라보면 는개 속 등불 같은

청음도 탁음도 아닌 수더분한 목소리로

해질녘 삭은 바람결 불러 앉힌 보랏빛

누구 삶이 저리 모가 나지 않았던가

자름한 고, 어깨를 툭 치면 울먹일 듯

오디새 울다간 자리 등 돌리고 피는 꽃

 

 

―유재영(1948~ )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조(2012.5.22)이다. 정수자 시조시인이 시평을 썼다.

 

 

오동꽃이 좋을 때다. 큰 잎사귀들이 퍽이나 으늑하던 오동나무. 시골집 앞 오동에 달빛이 내리면 한층 그윽해진 그늘이 서성이곤 했다. 스르렁, 거문고 소리가 스쳤던가. 보랏빛 꽃이 피면 향기도 널리 퍼져 '큰 나무에 큰 그늘'이라는 깊은 맛이 또 좋았다. 거문고, 가야금, 장구 같은 악기에도 최상의 목재라니 오동은 역시 큰 나무답게 크게 풀고 가나 보다.

예전엔 딸을 낳으면 장롱감으로 오동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가꿀 수 있는 환경에서나 가능했던 아름다운 일이다. 불현듯 '는개 속 등불' 같은 오동꽃 들고 우렁우렁 서 있을 오동 동네로 소풍 가고 싶다. 목조 계단 삐걱대는 이층에 앉아 오동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잎 그늘 퍼지는 소리를 농현(弄絃)인 양 느른히 누리며―.

 

 


 

 

유재영
1948년 충남 천안 출생으로 아직 생존해 계십니다.
1973년 "시조문학"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한 그는 서정적인 시보다는 역사 의식에 기초한 현실 인식을 단아한 시적 구조로 형상화하는 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시집으로 "한 방울의 피"와 4인 시조집 "네 사람의 얼굴", "네 사람의 얼굴", "물총새에 관한 기억" 등이 있지요.


 


 

 

 

오동나무 꽃

 

오동나무 꽃

 

오동나무 10월의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