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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식

[스크랩] 팔상도와 작품 설명

불교문화미술 조각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팔상성도는 부처님의 일대기로, 태어나서 열반하실 때까지의 중요한 행적(行蹟)을 여덟 단계의 그림으로 표현하였기에
팔상(八相)이라 한 것이다. 부처님의 행적 자체가 인생과 우주의 진리를 완전히 깨달은 절대 경계의 보리를 실현한
것이므로 이를 통하여 미혹에 빠진 중생들도 다함께 큰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팔상성도 가운데 첫번째인 ‘도솔래의상’이다. 『본생경(本生經)』에 의하면, 석존께서 인도 카필라라는 나라에
탄생하시기 전에 도솔천에 계셨는데 이름을 호명 보살(護明菩薩)이라고 하였다. 오랜 선정 끝에 호명 보살은 자기가
태어날 시간, 땅, 가계(가문). 심지어 자기를 회임할 어머니까지 결정한다. 호명 보살은 석가족(釋迦族)이 살고 있는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과 마야(Maya) 왕비를 부모로 정하고 이제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겪을 모든 시련을 극복할
마음의 준비를 끝낸다. 그리하여 중생들이 기다리는 ‘법(法)’을 가르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했으므로
호명 보살은 도솔천의 신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고, 기쁘게 하고, 위로하기’위해 법문(法門)을 설한 후 도솔천을 떠난다.
그렇게 해서 이제 역사적 석존의 전기가 시작된다.
카필라는 인도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로 날씨가 따뜻하고 땅도 기름졌으며 사람들은 착하고 순했다.
어질고 훌륭한 정반왕과 착한 백성들은 근심 걱정없이 평화롭게 살았으나 마야 왕비가 40세가 넘도록 태자를 낳지 못한
것이 한 가지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마야 왕비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눈부시게
흰 코끼리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왕비의 옆구리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비가 이 꿈을 정반왕에게 이야기했더니 왕은 “그 꿈이 보통 꿈은 아닌 것 같다”고 기뻐하며 다음 날 정반왕은 유명한
점술가들을 불러 왕비의 꿈을 풀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점술가들은 “왕자님을 낳으실 꿈입니다. 태어날 아기는 전륜성왕(轉輪聖王;고대 인도의 이상적 제왕)이 되거나
만약 출가한다면 만 중생을 구제하는 붓다가 될 꿈이라고 해몽하였다. 마야 왕비의 꿈이 자신의 뒤를 이어줄 왕자의
잉태를 알리는 좋은 징조라는 말을 들은 정반왕과 마야 왕비는 매우 기뻐하였다.
위의 몇 가지 내용 가운데 일반적으로 벽화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마야 왕비의 꿈에 흰 코끼리를 탄 호명 보살이
나타나 마야 왕비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도판 역시 마야궁의 마야 왕비에게 흰 코끼리를 탄 호명 보살이 내려오는 꿈을 꾸는 장면으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벽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필자의 의도를 밝히고자 한다. 즉 전 호까지는 도상명을 밝히기 위해서 선묘(線描)로 도해한
도판을 곁들여 설명하였으나 팔상성도 등의 벽화는 그리 복잡하지 않으므로 굳이 선묘 도판까지 곁들인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선묘한 도판을 같이 싣는 이유는 사불(寫佛)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밑그림 삼아 신행의 방편으로
삼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 본 벽화 초본을 확대 복사를 하여 요즘 행사를 통해서도 소개되는 ‘부처님 그리기(寫佛)의
소재로 활용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의 본당 외부 벽화에서 왼쪽의(오른쪽으로 그려 지기도 한다.) 두 번째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먼저 비람강생상에 그려지는 내용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7세기 경, 히말라야의 남쪽 기슭에 석가족(釋迦族)이 살고 있는 카필라 국이 있었다. 지금의 북부 네팔에 위치한
카필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은 왕비가 40세가 넘도록 태자를 낳지 못한것을
늘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후 태기가 있었다. 해산할 때가 가까워지자
왕비는 그 당시의 풍습에 따라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으려고 콜리야족(Koliya 族)이 살고 있는 데바다하(Devadaha)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룸비니(Lumbimi) 동산에 이르러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우수(無憂樹)나무 아래에서 팔 가까이로
늘어진 무우수 나무의 가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바른편 옆구리로 태자가 탄생하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룸비니 동산에는 서기광명(瑞氣光明)이 비추어 덮이고 사천왕(四天王)들은 공경히 태자를 모시려 할 때 태자께서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니 사색(四色) 연화(蓮花)가 솟아올라 태자의 발을 받드는지라 태자는 즉시 오른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쪽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에서
나 홀로 존귀하네.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헤매이니
내가 마땅히 모두를
편안케 하리라.”

하셨다. 이때에 허공 중에서는 오색채운(五色彩雲)이 일어나고 그 가운데로 아홉 용이 각각 머리를 들어 깨끗한 물을
토하여 태자를 목욕시키고 하늘 사람들은 공중으로 비단옷을 내려 태자를 입혔다.
왕은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Siddhartha;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라고 지었으며 성(姓)은 가우타마
(Gautama)였다.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다음은 태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문유관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싯다르타는 궁중의 안락과 사치
속에서 성장했다.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으로부터 격리되어 왔던 태자는 어느 날 성문 밖에서 늙어서 쇠약한 사람, 병들어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을 싣고 가는 상여의 행렬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태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궁중 생활의 허무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 후 태자가 곧잘 사색에 빠지자 정반왕은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 등은 일체 태자의 눈에 띄지 않게 하였고,
궁중에 갖가지 향락을 베풀어 아름다운 시녀들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로 즐거운 생활만을 하게 하였다.
어느 날 싯다르타는 성의 북문으로 나갔다가 세속을 떠난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평온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그는 수행 생활만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자신과 야쇼다라(Yasodhara) 사이에
라훌라(Rahula;걸림, 장애)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출가를 결심한다.
이러한 사문유관의 내용을 벽화로 그릴 때는 한 화면에 다 그리기도 하고 또는 도판과 같이, 싯다르타 태자는
시종 찬타카와 흰 말이 끄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막 성문을 나서고 있고 그 주위에 죽은 자의 모습과 좀 더 멀리
나무 아래의 수행자 모습만으로 줄여서 그리기도 한다.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유성출가상의 그림을 보면 태자가 종마 칸타카를 타고 시종 찬다카는 칸타카를 잡고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태자가 북문을 나섰을 때 출가 사문의 평온한 모습을 보고 수행 생활만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출가를 결심한 후 부왕에게 아뢰었을 때, 물론 부왕으로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태자로부터 출가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실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달래고
타일렀지만 이미 반석같이 굳어진 태자의 결심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야쇼다라는 아들을 낳았다.
태자 싯다르타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라훌라(rahula, 장애, 속박이라는 뜻)”하고 한탄하였다.
부모나 부부의 은애(恩愛)도 차마 뿌리치기 어려운 고통인데 이제 또 아들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그 정을 끊기가
비할 데 없이 어려움을 혼자 고백한 말이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이미 결정된 태자는 발길을 돌려 시종 찬다카를 불러 성의 모든 권속이나 일체의 석가족들이
알지 못하게 종마 칸타카를 끌고 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태자는 시종 찬다카가 데려온 종마 칸타카에 올라 타고
성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카필라 성을 바라보면서 사자처럼 외쳤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절벽 위에서 이 몸을 던져 큰 바위에 떨어질지언정, 모든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을지언정,
또한 스스로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아 죽을지언정, 만약 내가 마음에 다짐한 대로 중생들을 고통의 바다에서
해탈시키지 못한다면 결코 카필라 성에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하였다. 이러한 출가의 장면을 출가의 의미로
상징화하여 성을 뛰어 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팔상성도 벽화의 여섯 번째는 수하항마상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불퇴전의 다짐을 하면서 목숨을 건 수행에
들어갔을 때, 『과거현재인과경』과 『방광대장엄경』의 내용과 같이 갑자기 마왕의 세계가 크게 흔들렸다.
마왕 파피야스(papiyas)는 욕계에 속하는 천상 중에서 최고의 것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으로
파순(波旬)이라고 음역한다. 이 마왕 파순이 사바세계를 훑어보니까 보리수 밑에서 사문이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 정진의 힘이 대단히 강해서 마왕의 세계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파순은 벌벌 떨면서 그의 대신들과 일천 명의
아들과 모든 권속을 불러 모아놓고서 말하였다.
“세간에 있는 사문 고오타마가 지금 보리좌에 앉아 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여 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그의 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달려가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쳐부수어 반드시
그를 항복시켜라.” 이에 마왕 파순은 요염하고 교태로운 아름다움이 모든 천녀들 가운데 으뜸인 세 딸을 보내
유혹하기도 하고, 온갖 마군의 무리를 동원하여 모든 방법으로 사문 고오타마를 향해 공격하였다. 마왕은 아홉
가지 이변(異變)을 일으켜 성도(成道)를 방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벽화의 내용으로 주로 등장하는 장면은, 마왕이 세 딸을 보내 유혹하는 장면과 지신(地神)이 땅으로부터 솟아
증명하는 장면, 그리고 도판과 같이 태자가 마군의 무리에게 “앞에 있는 병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내가 너에게
항복할 것이고 만약 움직이지 못하면 너희가 반역을 깨달아 나에게 항복할지니라.” 하니 파순의 대중이 달려들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 등을 그려서 항마를 상징한다.
싯다르타 태자는 일체의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업장이 소멸되자 오직 청정한 한마음으로 경계의 벽을 허물고
덮이었던 세계를 꿰뚫어 모든 것이 조화롭게 드러나는 생명의 참모습(諸法實相)을 여실히 보게 되었다. 그때에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밝은 새벽별을 보는 순간 무상정등정각을 완성하고 큰 소리로 사자후하였다.“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그래서 수하항마상을 항마성도상(降魔成道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팔상성도 벽화의 여섯 번째는 수하항마상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불퇴전의 다짐을 하면서 목숨을 건 수행에
들어갔을 때, 『과거현재인과경』과 『방광대장엄경』의 내용과 같이 갑자기 마왕의 세계가 크게 흔들렸다.
마왕 파피야스(papiyas)는 욕계에 속하는 천상 중에서 최고의 것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으로
파순(波旬)이라고 음역한다. 이 마왕 파순이 사바세계를 훑어보니까 보리수 밑에서 사문이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 정진의 힘이 대단히 강해서 마왕의 세계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파순은 벌벌 떨면서 그의 대신들과 일천 명의
아들과 모든 권속을 불러 모아놓고서 말하였다.
“세간에 있는 사문 고오타마가 지금 보리좌에 앉아 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여 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그의 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달려가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쳐부수어 반드시
그를 항복시켜라.” 이에 마왕 파순은 요염하고 교태로운 아름다움이 모든 천녀들 가운데 으뜸인 세 딸을 보내
유혹하기도 하고, 온갖 마군의 무리를 동원하여 모든 방법으로 사문 고오타마를 향해 공격하였다. 마왕은 아홉
가지 이변(異變)을 일으켜 성도(成道)를 방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벽화의 내용으로 주로 등장하는 장면은, 마왕이 세 딸을 보내 유혹하는 장면과 지신(地神)이 땅으로부터 솟아
증명하는 장면, 그리고 도판과 같이 태자가 마군의 무리에게 “앞에 있는 병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내가 너에게
항복할 것이고 만약 움직이지 못하면 너희가 반역을 깨달아 나에게 항복할지니라.” 하니 파순의 대중이 달려들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 등을 그려서 항마를 상징한다.
싯다르타 태자는 일체의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업장이 소멸되자 오직 청정한 한마음으로 경계의 벽을 허물고
덮이었던 세계를 꿰뚫어 모든 것이 조화롭게 드러나는 생명의 참모습(諸法實相)을 여실히 보게 되었다. 그때에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밝은 새벽별을 보는 순간 무상정등정각을 완성하고 큰 소리로 사자후하였다.“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며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그래서 수하항마상을 항마성도상(降魔成道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녹원전법상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7·7일 동안 삼매의 힘으로 계속 계시면서 해탈락에 머무시다 제석천과
대범천왕의 지극하고도 간절한 권청을 받고 권청하였던 여러 범천과 세상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방광대장엄경』에 보면, “내 이제 그대들의 원을 받아 마땅히 법비를 내려 감로의 문을 열리라. 청정한 믿음으로
귀를 기울이라. 기꺼이 법을 설하리라.”

부처님께서 대범천왕의 간청을 받고 교화할 중생을 낱낱이 관찰하셨다. 옛날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가 생각났다. 그러나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전에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진리를 설하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이때의 정황을 『불본행집경』 제33권 「범천권청품」
을 통해서 보면,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다섯 수행자가 있으니 그 다섯 수행자들은 전날 나에게 큰 이익을 주었으며 내가 고행할 때 나를 받들어 섬겼도다.
그들 다섯 수행자는 모두 청정하고 지혜가 날카로워 나의 최초의 법바퀴를 굴리며 설하는 바, 묘법을 받들만 하여
나를 어기지 않으리니 나는 이제 그 다섯 수행자들에게 가서 처음으로 설법하리라.
이때 부처님은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그 다섯 수행자들이 현재 저 바라나시 성(城) 녹야원에서 수행하는 것을 보셨다.
그때 부처님은 보리수에 얼마쯤 머무시다가 바라나시 성으로 향하셨다.”녹원전법상은 이렇게 녹야원(鹿野苑:사슴동산)
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법을 처음으로 설하시는 장면을 그리는 것으로 거의 모든 벽화가 구도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으나
내용은 동일하다.
설법하시는 부처님과 법을 듣는 다섯 수행자, 그리고 설법 장소가 녹야원임을 상징하는 사슴이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그려지는 것이다.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쌍림열반상은 열반적정상(涅槃寂靜相)이라고도 한다. 이는 열반이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으로 그 뜻이
‘불어서 끈다.’ 즉 번뇌의 불꽃을 끈다는 적멸(寂滅)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열반은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으로 나누어 이야기 한다.
유여열반은 일체를 극복하고 초월하였으나 육신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육체의 고통은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육신은 죽음을 통해 무상의 진리를 자각케 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사용하신다. 이 육신의 고통 또한 모두
여읜 부처님의 죽음을 무여열반이라 한다. 이는 육신의 허망함을 보이고 존재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구원의
실상이므로 곧 삶의 완성이다. 일대사인연으로 사바세계에 화신으로 나투시고 이렇게 육신의 한계를
버림으로써 진리의 법신으로 온 중생에게 크나큰 광명의 빛으로 가피를 주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마가다
국의 우루벨라 마을에 있는 네란자라 강 가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신 이래 45년 동안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여 주셨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부처님의 마지막 여행은 왕사성에서 시작된다.
80세가 되던 해, 왕사성의 영취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길을 정했다. 나란다에서 잠시 머문 후 바이샬리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보내고 쿠시나가라로 향했다. 그 동안 곳곳에서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부처님은 바이샬리를 떠나면서 아난에게 “이로써 내가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 되리라.”고 하였음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나온다.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사라(沙羅)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난에게 자리를 깔도록 한 후 머리를 북으로 두고 서쪽으로 향해 사자처럼 누워서 정념(正念),
정지(正智)에 머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가르친 법과 계율이 너희들의 스승이
되리라. 비구들아, 나의 가르침에 의문이 있으면 물으라.”
모두 묵묵히 있었다. 그 때 아난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조금도 의문이 없습니다.”
“비구들아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 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무여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심은 하나의 완성으로, 시작이 없고,
변화가 없고, 소멸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영원한 상태이다. 이는 논리나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고 문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이다. 유해는 다비장으로 운구되어 화장용 장작에 불을 붙였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그때
상수제자 가섭 존자가 마갈제국에 있다가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부처님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관 속에서 두 발을 내어 보이신 후 장작에 스스로 불이 붙었다.
팔상전(八相殿 또는 靈山殿)에 모셔지는 팔상탱화의 쌍림열반상에는 쿠시나가라 성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서
열반 하시는 장면, 다비 후 사리를 나누는 장면, 가섭 존자에게 관 속에서 양발을 내어 보이는 모습, 마야 부인이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도솔천에서 하강하여 부처님의 열반 체험에 대한 설법을 듣는 장면, 스스로 화광삼매에
드시어 관을 태우시는 장면 등이 도설(圖說)되어 있다.
그러나 외벽에 그려지는 쌍림열반상 벽화는 그 가운데 가섭 존자에게 발을 내보임으로써 삼처전심(三處傳心)을
완성하는 모습을 소재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나라에 팔상도가 언제부터 그려졌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조선 후기에 그려진 팔상도가 웬만한 전통사찰이면 모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래 전부터 예배 공양을
목적으로, 또는 교화의 목적으로 팔상도가 성히 그려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 여래사
글쓴이 : 혜담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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