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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미술관

미국화가가 그린 우리들 어머니 밴댕이 장사그림

미국화가가 그린 우리들 어머니 밴댕이 장사그림|♥ 쉼터 ♧

허경실 | 조회 48 |추천 0 |2006.11.19. 20:04 http://cafe.daum.net/sookmyung61/14Ut/3826

 

 

» 빌리 세일러 <악착같은 장사> 채색동판화 21 x 29 cm 1956 - 1960년 사이 ⓒ 이충렬

남대문시장, 중부시장,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경동시장, 부산 국제시장... 1950년부터 70년대까지 '명

성'을 떨치던 재래시장의 이름이다. 이제는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에 상권을 빼앗기고 겨우 명맥을 이어

가는 재래시장이지만, 6.25전쟁 이후 근 30여년 동안은 모든 국민이 이용할 정도로 우리나라 유통 경제

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 당시 재래시장은 많은 서민들에게 장사터를 제공하였고, 그들은 치열

한 생존경쟁 속에서 성공과 좌절을 맛봤으니, 많은 사람들의 꿈과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그런 50

년대 말, 60년대 초반의 재래시장 모습을 동판화로 만든 미국인 화가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

지 않은 빌리 세일러(Willy Seiler)라는 화가다.

빌리 세일러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1903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후 뮌

헨에서 미술공부 했다. 1928년 독일을 떠나 파리에서 2년을 더 공부한 후 45개국을 떠돌며 그림도 그리

고, 전시회도 하던 역마살 가득했던 화가였기에 그의 정확한 사망년도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2차대

전 종전 후부터 20여년 일본에 거주하면서 주일미군사령부에 근무하였고, 1956년부터 1960년 6월까지

3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여 약 12점의 한국소재 동판화를 남겼다. 위의 작품은 그의 <한국시리즈> 12

점 중의 한점으로, 시장에서 치열하게 장사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오른쪽 아주

머니는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되었는지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5-6남매는 보통

이고 많으면 7-8 남매까지 있었으니, 여인네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으랴. 더우기 남자들에게 일자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아낙네들이 시장에서 좌판이라도 벌여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이 아주머니는 저녁에 집에 돌아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하여 가슴을 드러낸채 장사를 하면서도, 머

리 속에는 집에 두고 온 아기 생각으로 가득한 듯한 표정을 짓고있다.

 

» <악착같은 장사> 부분 ⓒ 이충렬

아주머니가 파는 생선은, 디포리, 띠포리라고 부르는 멸치 종류다. 멸치는 행어, 정어리, 곤어리, 운어리

4종류의 이름을 공통으로 부르는 것인데, 디포리는 곤어리의 일종으로 은빛 색깔이 있다. 그런데 그림

에도 은빛이 보이니 참으로 섬세한 묘사다. 그리고 '밴댕이 소갈딱지'의 밴댕이가 띠포리의 경상도 방언

이니, 아주머니는 밴댕이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다.띠포리는 멸치보다 냄새는 많이 나지만 국물

이 진해 김치를 담그거나 김치찌게 국물 내는데 사용하는데, 그 옆 아주머니 역시 김치 재료를 팔고 있

다. 서로 옆에서 상부상조하며 힘들고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는 여인들의 지혜와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

는 풍경이다...


» <악착같은 장사> 부분 ⓒ 이충렬

이 아주머니의 함지박에 있는 야채는 쪽파로 보이는데, 그냥 밭에서 뽑은채로 파는게 아니라 쪽파뿌리

를 다듬어서 갖고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집에서 쪽파를 깔끔하게 다듬어야 조금이라도 더 팔고,

단골도 생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고, 그런 상인일 수록 악착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돈을 모았으

리라..

» <악착같은 장사> 부분 ⓒ 이충렬

이빨 사이로 꽉 물은 돈 ! 정말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모습이다. 그때는 돈이 없으면 굶어 죽아야 하던 시

절이었고, 그래서 서민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미국인 화가의

작품이지만, 매우 일찌기 우리나라 서민들의 모습을 통해 '민중적 리얼리즘'을 구현한 화가라해도 과언

이 아닐 정도로, 당시의 절박하고도 치열한 삶의 모습을 표현했다.

» <악착같은 장사> 부분 ⓒ 이충렬

이 아주머니는 장사가 안되는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당시의 사진이나 그림들을 보면 이렇게 수심

이 가득한 표정이 많은데, 그것은 삶이 피곤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더우기 당시 이승만 정권의 정치

라는게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권력자들의 치부에 급급하고 정적을 제거하는데 골몰하지 않았던

가. 그런 시대였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많던 아픔의 시대였기에, 여인네들의 삶은

더욱 고달플 수 밖에 없었다.빌리 세일러는 그런 우리나라를 3번 다녀가며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표

현한 작품을 남겼는데, 아래의 작품 역시 재래시장의 모습을 동판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 빌리 세일러 <빈틈없는 계산> 채색동판화 21 x 29 cm 1956 - 1960년 사이 ⓒ 이충렬

아주머니가 파는 것은 소금이다. TV 연속극 <주몽>에도 나오듯이 고대국가에서 소금은 전략물자의 하

나로 취급되었고, 인구가 많던 중국에서는 제나라 때부터 소금으로 거상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

지고 있다. 이렇듯 소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식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품목이다. 우리

나라 역사책에서도 소금장수 이야기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부터 나올 정도로 오래되었고, 조선시대

에는 소금이 국가의 전매물이었을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소금섬을 지고

다니며 소금을 팔던 소금장수는 1930년경에 대부분 사라지고, 5일장을 통해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

기 시작했다.소금은 생필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식탁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5일장이나

재래시장에서 소금가게를 하던 사람들은 많은 부를 축적하는 부류에 속했다. 자본을 갖고 소금을 사들

여 박리다매로 팔았기 때문에 영세상인들이 감히 경쟁을 하기 힘든 품목이었고, 소금장사들은 이런 독

점적 위치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기도 하여 '소금값이 금값이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소금

가게 주인인듯 보이는 이 아주머니는 장사는 일군들에게 맡기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며 돈주머니에 손

을 넣어 돈을 세고 있는지도 모른다...

 

» <빈틈없는 계산> 부분 ⓒ 이충렬

재래시장 경기가 활발했던 50년대와 60년대에는 사장통에서 번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큰부자가 된 사람

들이 많은데, 그 대표적인 예가 '전설의 백할머니'다. 평양출신으로 60년대부터 80년 대 초반까지 증권

가와 사채업계에서 '큰손'으로 이름을 날려 TV 연속극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 '백할머니' 백희엽씨(95

년 작고)는 1·4후퇴 때 맨몸으로 월남했다. 그리고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억척스럽게 장사해서 종자돈을

모아 훗날 '큰 손'이 되었으니, 당시 재래시장은 서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 상점 주인들이 부자가 되는데는 일군들의 저임금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

러한 저임금 구조가 결국에는 6,70년대의 노동자 저임금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이 가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 <빈틈없는 계산> 부분 ⓒ 이충렬

5,60년대 가게 일군들의 대부분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월급'이었다. 그러나 특별한 기술이 없던 사

람들은, 오직 굶지 않아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그런 일자리 조차 감사히 생각하며 새벽부터 밤 늦도

록 일을 했다.

 

» <빈틈없는 계산> 부분 ⓒ 이충렬

여자들의 경우도 남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숙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

을 하는 경우 받는 월급이란 매우 미약하였다. 더우기 월급의 액수와 돈을 지급하는 시기가 주인 마음대

로인 경우가 많아, 밀린 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속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전차비나 버스비를

아끼기 위하여 일을 하러 가거나 일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올 때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가는 고달픈 삶

을 살아야했다.빌리 세일러가 남긴 한국소재 작품은 위의 두작품 외에도, 어린아이, 고아원 어린이들,

초등학생들, 할머니, 할아버지 등 주로 인물모습이다. 그리고 그의 한국 소재 작품 몇 점은 아이젠하워

당시 미대통령이 소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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