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9] 배운 자 나약함 다그치는 안경 속 그 눈길
화가는 붓으로 황현의 혼백을 불렀다. 사진에 있던 갓과 두루마기는 드높은 정자관(程子冠)과 깃에 검은 천을 댄 심의(深衣)로 바꿔 그렸다. 초시(初試)에 장원급제하고도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은 황현의 유학자적 면모가 고친 차림새에서 도드라졌다.
안경 속에서 눈은 뚫어 보지 않고 째려본다. 홍채 속의 반점까지 그렸다. 오른쪽 눈이 사시(斜視)라서 눈길이 낯선데, 그 낯섦이 모델을 외려 주목하게 한다. 국록(國祿)을 받은 적 없고 초야의 처사나 다를 바 없으니, 앞에 나서 목숨을 끊을 의무가 없었던 황현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서는 결기가 서있다. '오백년이나 선비를 길러온 나라에서, 국난을 당해 죽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원통치 않은가?' 성글고 버석거리는 수염에서 강퍅함이, 긴 콧날과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 단호함이 엿보인다. 선비의 나약함을 다그치는 저 눈길, 그의 사시는 차라리 여기저기 다 보는 겹눈이다.
조선일보/오피니언/사외칼럼/손철주 미술평론가
입력 : 2012.05.06 22:41
1909년, 전라도 구례에 칩거하던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상경했다. 숨통이 할딱거리는 조선의 사직을 그는 확인했다. 그는 사진관을 찾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독사진을 찍었다. 챙 좁은 갓과 주름진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그 사진이 징조였을까. 두루마기는 빛나도 갓 너머는 낙조가 드리운 듯 얼룩졌다. 그의 얼굴도 암전(暗轉)되고 있다. 1910년, 나라가 망했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년을 돌이키던 황현은 글을 배운 자의 노릇에 통탄하며 자결했다.
1911년, 고종의 어진(御眞)을 그렸던 화가 채용신은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골몰했다. 망국(亡國)의 신록이 구슬프던 5월, 그는 황현의 초상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황현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사진 귀퉁이에 황현이 적어놓은 글귀가 또렷했다. '묻노니 그대 한평생, 가슴속에 무슨 불평이 그리도 쌓였는가'.
1911년, 고종의 어진(御眞)을 그렸던 화가 채용신은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골몰했다. 망국(亡國)의 신록이 구슬프던 5월, 그는 황현의 초상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황현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사진 귀퉁이에 황현이 적어놓은 글귀가 또렷했다. '묻노니 그대 한평생, 가슴속에 무슨 불평이 그리도 쌓였는가'.
- '황현 초상' - 채용신, 비단에 채색, 120.7×72.8㎝, 1911년, 개인 소장.
안경 속에서 눈은 뚫어 보지 않고 째려본다. 홍채 속의 반점까지 그렸다. 오른쪽 눈이 사시(斜視)라서 눈길이 낯선데, 그 낯섦이 모델을 외려 주목하게 한다. 국록(國祿)을 받은 적 없고 초야의 처사나 다를 바 없으니, 앞에 나서 목숨을 끊을 의무가 없었던 황현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서는 결기가 서있다. '오백년이나 선비를 길러온 나라에서, 국난을 당해 죽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원통치 않은가?' 성글고 버석거리는 수염에서 강퍅함이, 긴 콧날과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 단호함이 엿보인다. 선비의 나약함을 다그치는 저 눈길, 그의 사시는 차라리 여기저기 다 보는 겹눈이다.
황현 초상...1910년, 나라가 망했다....황현은 글을 배운 자의 노릇에 통탄하며 자결했다....1911년, 고종의 어진(御眞)을 그렸던 화가 채용신은 황현의 사진을 보고 또 보며 붓으로 황현의 혼백을 불렀다....^-^
오른쪽 눈이 사시(斜視)라서 눈길이 낯선데, 국록(國祿)을 받은 적 없고 초야의 처사나 다를 바 없으니, 앞에 나서 목숨을 끊을 의무가 없었던 황현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서는 결기가 서있다. '오백년이나 선비를 길러온 나라에서, 국난을 당해 죽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원통치 않은가?'
훌륭한 사람들의 의로운 기가 오늘까지 흘러오는 것 아니겠는가...!!
- 2012년 12월25일 화요일 크리스마스날 오후 5시...수산나 -
눈 오는 날 중앙공원~ 한산이씨 사당 '숭모문'과 한산이씨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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