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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7] 俗世 등져 머리 깎았거늘… 왜 시름 담아 두 눈 부릅떴나-'김시습 초상'/ 마이산 탑사~ 탑 축조자 이갑룡 처사 3장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7] 이미 俗世 등져 머리 깎았거늘… 왜 시름 담아 두 눈 부릅떴나

조선일보/오피니언/사외칼럼/손철주 미술평론가 

입력 : 2012.07.01 23:03

 

'김시습 초상'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71.8×48.1㎝, 조선 중기, 부여 무량사 소장.
패랭이처럼 꼭대기가 둥근 갓을 쓴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챙이 있어 햇빛을 가리고, 눌러쓰면 세상을 피하기에 좋다는 그 갓이다. 크고 작은 호박 구슬로 장식한 갓끈이 유난히 까맣다.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은 야인(野人)의 복장인 도포를 걸쳤다.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그가 지금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동자는 또렷한데 흰자위가 차갑다. '백안시(白眼視)'는 바로 저런 시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앞에 상대가 있다면 쌀쌀맞은 눈길에 오금이 저리겠다. 그리 봐서일까, 콧수염과 턱수염도 단정하기보다 뻣뻣한 기운이 드세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읽던 책을 불사르고 출가했다. 그는 중이 되고자 머리를 깎았다. 그러나 수염은 남겨두었다. 누가 의아해서 물었다. 그는 대꾸하기를, "머리를 깎아 속세를 피하고, 수염을 남겨 장부(丈夫)임을 알린다"고 했다.

그의 생애는 그 말 그대로다. 머리는 중이요, 수염은 장부여서 승(僧)과 속(俗)을 오갔다. 그가 겪은 풍상이 오랜 초상화에 남았다. 조선 중기에 그려진 초상이라 세월을 지나며 비단 바닥에 금이 가고 군데군데 긁히고 깎였다. 김시습은 생전에 두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가 숨을 거둔 부여 무량사에서 내려온 이 초상은 그것과는 다른 이름 모를 화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김시습의 얼굴은 은은한 살굿빛이다. 필획과 채색이 희미해졌지만, 잘 들여다보면 눈썹 사이에 잔뜩 찌푸린 주름이 보인다. '내 천(川)' 자가 새겨진 골이 자못 깊다.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했을까. 그의 별명이 '김오세(金五歲)'였다. 다섯 살짜리 신동이란 얘기다. 그의 재주는 한 시절 임금을 기쁘게 했지만, 나라 돌아가는 꼴에 이내 염증을 낸 그는 구름처럼 떠돌았다. 찡그린 미간과 희번덕하는 눈매를 보라. 시속(時俗)에 무젖지 않으려는 고집이 안색에 고스란하다.

 

  우쭈쭈쭈김시습(金時習·1435~1493) 초상화...눈동자는 또렷한데 흰자위가 차갑다. '백안시(白眼視)'는 바로 저런 시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머리는 중이요, 수염은 장부여서 승(僧)과 속(俗)을 오갔다...그의 별명이 '김오세(金五歲)'였다. 다섯 살짜리 신동이란 얘기다. ..나라 돌아가는 꼴에 이내 염증을 낸 그는 구름처럼 떠돌았다. 찡그린 미간과 희번덕하는 눈매를 보라. 시속(時俗)에 무젖지 않으려는 고집이 안색에 고스란하다. ...^-^

 

꿈보다 해몽이라고...해설이 그럴 듯 하다...ㅎㅎㅎ...^-^

 

- 2012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날 오후 1시50분...수산나 - 

마이산 탑사 전경

 

마이산 탑사~ 탑 축조자 이갑룡 처사 존영

 

 마이산 탑사~ 탑 축조자 이갑룡 처사 안내문

이갑룡...효령대군 16대손...신의 계시와 깨달음으로 솔잎을 생식하며 이곳에 탑을 쌓았다...일생을 기도로 살다, 1957년에 향년 98세로 타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