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오피니언/사외칼럼/손철주 미술평론가
입력 : 2012.07.15 23:06
- '이성윤 초상'…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78.4×106.4㎝, 1613년, 국립고궁박물관 기탁 보관.
왕조(王朝)가 아닌 지금도 '상왕(上王)'이니 '대군(大君)'이니 하는 남우세스러운 말이 돈다. 최고 통치자의 집안사람이 검찰에 불려다니는 요즘 꼴을 보면 임금의 친족은 으레 저랬을까 싶다. 조선 중기의 왕실 인물인 이성윤(李誠胤·1570~1620)을 보자. 그의 고조부는 성종이고, 광해군은 그의 육촌 아우다. 그는 이처럼 신분이 높았지만 소박한 선비처럼 굴었다. 임진왜란이 나자 이성윤은 피란길에 죽음을 각오하고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셨다. 전쟁을 지휘하던 세자 광해군을 따라다니며 지킨 공로로 이등공신(二等功臣)에도 올랐다.
이 초상은 공신이 되면서 하사받았다. 이성윤은 높이가 낮은 오사모에 구름무늬의 검정 단령(團領)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손을 마주잡았다. 공신 초상은 이처럼 포즈가 다 비슷하다. 구름과 기러기와 모란이 새겨진 흉배(胸背), 금빛 장식에 빛나는 각대(角帶)로 보면 그의 품계는 문관2품이다. 바닥에 수놓인 깔개는 화려하고, 여덟 팔 자로 벌린 두 발은 의젓하다. 단령의 옆트임 사이로 보이는 청색과 녹색 자락은 속에 껴입는 밑받침 옷이다. 왕손으로 태어난 이성윤은 실생활이 호사롭지 않아 입살에 오를 일이 없었다. 잡기를 멀리했고, 입은 옷을 팔아 책을 샀다는 기록도 보인다.
생김새에서 성품이 얼추 비친다. 가늘게 다문 입술이 단호하다. 짙거나 빽빽하지 않은 수염은 부드럽게 구부러진다. 콧잔등을 보니 살짝곰보다. 속눈썹이 성글어 눈동자가 외려 선명한데, 눈초리가 예리해서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의 의기는 가을서리 같았다. 즉위한 광해군이 이이첨과 더불어 난정(亂政)을 거듭하자 종실 신분으로 마침내 결단한다. 그는 상소문을 썼고 앞머리에 이름을 올렸다. 뒷날 송시열이 "피로 쓴 글에 간사한 자들은 뼛속까지 오싹했다"고 평했다. 이성윤은 그 일로 귀양갔다. 그는 가시 울타리가 쳐진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조선 중기의 왕실 인물인 이성윤(李誠胤·1570~1620)...그의 고조부는 성종이고, 광해군은 그의 육촌 아우다....임진왜란 전쟁을 지휘하던 세자 광해군을 따라다니며 지킨 공로로 이등공신(二等功臣)에도 올랐다....이 초상은 공신이 되면서 하사받았다....^-^
즉위한 광해군이 이이첨과 더불어 난정(亂政)을 거듭하자 종실 신분으로 상소문을 썼고 앞머리에 이름을 올렸다. 뒷날 송시열이 "피로 쓴 글에 간사한 자들은 뼛속까지 오싹했다"고 평했다. 이성윤은 그 일로 귀양갔다. 그는 가시 울타리가 쳐진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
- 2012년 12월24일 월요일 오후 10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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