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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주경철 히스토리아]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71] 소년십자군/합천 해인사...팔만대장경을 보관 중인 장경판전 입구 3장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71] 소년십자군

조선일보/오피니언/주경철 서울대교수 서양근대사

입력 : 2010.08.13 23:30

구스타브 도레 '소년 십자군'.

1212년, 프랑스에서 한 소년이 예수가 자신에게 십자군을 이끌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타락한 어른 대신 순수한 어린이들이 십자군운동을 주도하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무슬림들을 개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번의 기적을 보인 덕분에 이 소년은 순식간에 3만명의 어린이들을 끌어모았다. 그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 지중해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면 바닷길을 걸어 예루살렘까지 진군해 갈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사악한 상인 두 명이 접근해서 아이들에게 배를 공짜로 태워 예루살렘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배에 탄 아이들은 모두 튀니지로 끌려가 노예로 팔리거나 난파를 당해 죽었다.

오랫동안 이 이야기가 실제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교과서에까지 실렸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이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해오는 이야기가 100%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첫 번째 사건은 독일의 한 양치기가 7000명 정도의 사람들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제노바까지 간 일이다. 그렇지만 그가 예언한 대로 바닷물이 갈라지지 않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중 일부가 마르세유로 갔다가 노예로 팔려갔다. 다른 사건은 12세의 프랑스 양치기 소년이 예수가 프랑스 왕에게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노라고 주장하며 약 3만명의 사람들을 끌고 파리 북쪽의 생드니까지 갔던 일이다. 이들은 모두 파리 대학 신학교수들의 권고에 따라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아마도 이 두 사건이 혼합되어 소년십자군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해석한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 되어 어떻게 설화와 전설이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꺅    소년 십자군 이야기...오랫동안 이 이야기가 실제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교과서에까지 실렸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이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해오는 이야기가 100%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ㅠㅠ...^-^

 

- 2013년 2월13일 수요일 수산나 -

 

 

 

1212년, 프랑스에서 한 소년이 예수가 자신에게 십자군을 이끌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한 그 즈음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은 무엇인가?

 

1196년-최충헌 집권

1198년-만적의 난

 

1231년-몽골 1차 침입

1232년-강화천도

1234년-금속활자 사용한 《상정고금예문》 간행

1236년-강화에서 《고려대장경》 판각 시작(~1251)......................

 

 

《고려대장경》~ 고려시대에 간행한 불교 성전(聖典)의 총칭.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 경판, 변상도(變相圖)
해인사 장경각 내부에 진열된 팔만대장경
대장경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후대 불교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불교가 동양의 여러 나라로 전래되면서 그 나라 고유의 언어로 번역·보관되었다.

 최초의 한문대장경은 중국 송(宋)나라 때 완성된 송판대장경(宋版大藏經:官版大藏經)이며, 그 이후 2번째로 대장경이 완간된 것은 고려 제8대 현종(顯宗) 때이다.

1011년(현종 2)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이를 부처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시작한 대장경 조조는 만 18년이 소요되었다.

이것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 하는데 송나라 관판대장경의 내용과 체재를 토대로 하여 복각하였다.

그뒤 초조본의 보완작업은 계속되었고, 그 판본은 처음에는 강화도 선원사(禪源社)에 나중에는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봉안·보존되어왔으나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그러나 인본(印本)의 일부가 일본의 쓰시마섬[對馬島]과 국내에 남아 있어서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뒤 이 초조대장경을 보완하는 작업이 계속되었으며, 속장경(續藏經)은 제11대 문종의 넷째아들인 의천(義天)의 주도하에 간행되었다.

 의천은 1085년(선종 2)에 송나라로 가서 14개월 동안 3,000여 권에 달하는 불교 장서를 수집하였다.

정통 경장(經藏)·율장(律藏)뿐 아니라 중국 등에서 유통되던 권위있는 논서들을 총괄하였다.

귀국 직후 의천은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1092년부터 속장경 조조사업을 시작하여서 그때까지 수집한 1,010부, 4,740여 권의 불전을

9년에 걸쳐 경판으로 새겼다. 그러나 이 속장경도 언제 병화로 일실되었으며 어디에 봉안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의천이 지은 불경목록집인 〈신편제종교장총록 新編諸宗敎藏總錄〉을 통해서 속장경 안에 어떠한 문헌들이 들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속장경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再雕大藏經)을 만들 때까지 그 판각의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었다.

현재 속장경 판본의 일부는 전라남도 송광사(松廣寺)와 일본 도다이 사[東大寺]에 남아 있다.

 

현재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1236년(고종 23) 당시의 수도였던 강화에서 조조되었다. 일을 주관한 곳은 대장도감(大藏都監)

 이었고, 1251년 9월에 완성되었다. 현재의 판본은 1,516종에 6,815권, 경판의 수는 8만 1,258매이다. 이 가운데에는 명백히 후세에 판각된 15종의 문헌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유판(補遺版)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은 조선 초기까지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언제 해인사로 옮겼는지는 불분명하다.

현재까지는 1398년(태조 7)에 옮겼으리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2,000명의 군인들이 호송하고, 오교양종(五敎兩宗)의 승려들이 독경(讀經)

했다고 한다. 해인사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체재와 내용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관함의 순서는 천자문의 순서대로 배열되었으며,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다. 특히 높게 평가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 때문이다.

첫째, 최초의 한문대장경인 송나라 관판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자료이며, 또 없어져 버린 거란판대장경(契丹版大藏經)의 내용도 짐작할 수 있다.

그 예로 〈대승법계무차별론 大乘法界無差別論〉 1권은 어느 대장경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으나, 오직 고려대장경에만 수록되어 있다.

둘째, 사전류의 저술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

법원주림 法苑珠林〉·〈일체경음의 一切經音義〉·〈속일체경음의〉 등 주요한 전적(典籍)과 〈대승보살정법경 大乘菩薩正法經〉·〈제법집요경 諸法集要經〉 등

중요한 대승경론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고려대장경은 전후 5차례에 걸쳐 간행·유포된 역사적 기록이 있다. ① 고려 말엽에 이색(李穡)이 대장경 1부를 인출하였다. 이것은 여주 신륵사에 봉안되어 있다.

 ② 조선 초기까지 왜구의 침략이 빈번하였는데, 그들은 언제나 해인사의 대장경판을 요구하였다.

1389년부터 1509년까지 사이에만 전후 83차례에 걸쳐 청구한 그들의 요구를 대부분 거절하였지만 간혹 인본(印本)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③ 1410년(태종 10) 경기도·황해도·충청도 등의 관찰사에게 명하여 도내에서 생산되는 인경지(印經紙) 267묶음을 해인사로 보내 인경(印經)하였다. 이때 일에 동원된

승려는 200여명이었다고 한다. ④ 세조는 신미(信眉)·수미(守眉)·학열(學悅) 등으로 하여금 해인사대장경 50부를 인출하여 각 도의 명산거찰에 나누어 봉안토록 하였다.

 ⑤ 조선말 용악(聳岳)이 1898년 4부를 인출하였는데, 통도사·해인사·송광사 등에 각각 1부씩을 봉안하였다.

통상 법보(法寶) 종찰로 손꼽히는 해인사는 이 대장경과 관련된 의례를 지금도 실시하고 있다. 고려 중반부터 장경도량(藏經道場)이라는 법회가 실시되었는데,

당시에는 매년 봄·가을에 6일과 7일씩 거의 정기적으로 집행하였다.

근래에는 1년에 1번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도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장경, 팔만대장경

 

 

 

합천 해인사 일주문

 

합천 해인사...팔만대장경을 보관 중인 장경판전 입구 1

 

 

합천 해인사...팔만대장경을 보관 중인 장경판전 입구 2

 

합천 해인사...팔만대장경을 보관 중인 장경판전 입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