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협곡열차[철암~분천] 당일여행
2013 | 08/5일 (월)요일 |
지 역 | 시 간 | 일 정 | 교 통 | 식 사 |
정암사 수마노탑 협곡열차 부석사 | 07:00 07:30 08:00 | 영등포 신세계백화점앞 서울역9번출구 대우빌딩앞 잠실역3번출구 너구리동상앞 차안에서 조식제공 - 찰밥정식 정암사 -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으므로 정암사(淨巖寺)라 이름하였다. 수마노탑 - 정암사에는 금탑, 둘째가 은탑, 셋째가 수마노탑 세개의 보탑이 있는데 그 중에 수마노탑은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 보존하고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감추어져 눈에 띄지 않으니 자장율사께서 후세 중생들의 탐심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했다고 한다. 중식제공 - 산채비빔밥 제공!! 백두대간 협곡열차[철암~분천] - 애칭 아기백호열차 -열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그곳!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인 백두대간 협곡구간을 왕복운행하는 국내최초 개방형 관광열차!! 좁디 좁은 협곡사이로 아래로는 절벽, 위로는 바위산이 보이는 창 밖 풍경을 자연 그대로 오감으로!! V-train 또는 O-train 이용 ※ 협곡열차 탑승시간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영주부석사 - 작가 '최순우'가 극찬한 무량수전과 많은 불교 유적을 가진 우리나라 화엄종의 대표 사찰 현지출발 및 석식제공 출발지 도착예정 | 전용버스 | 조식 중식 석식 |
적멸보궁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신라 시대의 건축물이다. 신라 시대인 647년경(진덕왕 재위 기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1】적멸보궁의 유래
석가모니가 설법을 펼친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을 뜻하는 전각으로 석가모니 사후에 와서는 그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 탑, 암자 등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보통 절과 보궁을 헷갈려 통도사 절 자체를 적멸보궁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틀린말은 아니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절 자체가 적멸보궁이 아니라, 절에서도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장소를 일컬어 보궁이라 한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진신사리라고 하며, 이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에서는 석가모니, 즉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여 다른 부처님을 상징할 수 있는 불상이나 조각을 절에 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절의 시설은 전(殿)이나 각(閣)으로 나타내지만, (대웅전, 삼신각) 진신 사리를 봉안한 절은 보궁이라 하여 궁(宮)으로 높여 부른다. 적멸보궁은 여러 불교 문화재 중에서도 그 가치가 두드러지는 것[1]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적멸보궁 중 가장 유명한 5개의 보궁을 꼽아 5대 적멸 보궁[2]이라 하는데 경남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상원사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사자산 법흥사 (영월군)(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등이다.
【2】5대 적멸보궁과 관련된 설화와 그 역사
각각의 보궁과 관련된 전설은 모두 자장율사가 승려로 현신한 문수보살로부터 가사, 진신사리 100여과, 경전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해동에 불법을 밝히라는 보살의 말을 들은 후 율사는 친히 신라로 건너와 절을 창건하고 불법을 알리는 일에 앞장 서게 된다. 각각의 적멸보궁마다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비록 용과 봉황 등 전설의 동물들이 나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의 상징과 유래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설화를 설명하고자 한다.[3]
①통도사 (경남 양산시 영축산 )
신라로 건너온 자장율사가 가장 먼저 세우게 된 절이 통도사이다. 통도사의 건립과 관련된 전설은 절 내부에 있는 연못인 구룡지로부터 비롯된다.예로부터 명당 자리였던 영취산 인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궁궐이나 탑을 세우려 했으나, 아홉마리의 용들이 방해를 하는 바람에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후 절을 세울 터를 찾다가, 그가 직접 날린 나무 오리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칡꽃을 물어오는 것을 보고, 겨울인데도 생생한 기운이 살아 있는 명당임을 알아본다. 처음에 율사는 구룡지에서 용들을 설득하여 나가게 하려하지만, 용들이 말을 듣지 않자, 화(火)자를 종이에 쓰고 연못에 넣은 후 진언을 외워 물을 끓게 한 후 용들을 좇아낸다.그 중 3마리는 하늘로 올라가려하다 죽고 5마리는 골짜기로 숨는데 이 5마리 용들이 숨은 곳을 오룡곡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먼 용 한마리가 도망가지 못해 자장율사에게 살려달라고 빌자, 이를 불쌍히 여겨 연못을 지키도록 하니 이것이 구룡지의 유래이며,통도사 내부에 있는 구룡지는 용이 지키기 때문에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고 홍수가 나도 물이 불지 않는다고 한다.이 이후 통도사[4]는 남부의 대표적인 불교 중심지로써의 역할을 하게 되며, 불,법,승, 중 불(佛)을 상징하는 불교의 3대 상징 성지 중 하나가 된다. (법: 합천 해인사, 승: 송광사)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략으로 인해 절 외부의 전각이 손상되는 등 큰 피해를 입지만, 사명대사가 통도사에 있던 진신사리 중의 일부를 정암사로 옮겨놓으면서, 진신사리의 훼손은 막을 수 있게 된다.
②강원도 오대산 중대 상원사
자장율사가 오대산을 개산한 이후로, 오대산에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하여 불교 성지로 추앙받았으나, 이 사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아, 신비로운 전설처럼 전해진다. 상원사는 이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호령 역할을 맡는 절이며, 이 상원사의 건립과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자면, 상원사는 선덕왕의 두 왕자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진여원이라 불렀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 그 이름을 빛내면 서 마침내 오류성중,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 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절을 짓고 난 후 두 왕자는 그 곳에서 수행을 했는데, 신문왕이 죽은 후 후계 문제로 다툼이 끊이질 않자, 오대산의 두 왕자를 찾아왔고 그 중 하나가 왕이 된 후 진여원을 상원사로 개명했다.[5] 고려시대에 들어 상원사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국교가 불교이니만큼 불교 성지에 대한 중흥이 일어날 법도 한데,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삼국 시대를 전후로 소실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려 후기 이색의 오대상원사승당기라고하는 기행문에서 나옹스님의 제자로 알려진 영로암 스님이 재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상원사는 적어도 고려 말 이후의 것이다. 그 이후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인해 상원사는 자칫하면 소외된 절이 될 뻔 했으나. 세조와의 인연[6]으로 다행히 그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현재 상원사는 월정사에 포함된 절이다.
③법흥사 ( 사자산 법흥사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는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흥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흥녕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적멸보궁 중 가장 오래 머물던 곳으로 직접 율사가 수행하던 토굴이 그 뒤에 있다. 율사가 절을 세운 후에 신라의 선승들이 모여 사자산에 신라 말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연다. 이 사자산문은 특히 흥녕선원으로 불리며, 한국불교사의 명맥을 이어가는 선원 중의 하나로 자리잡으며, 불법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흥녕사는 고려 의종(1163)년에 중창하였으며,조선 영조,정조,헌종 때까지 적멸보궁, 선문의 역할을 다해왔다.하지만 워낙 오랜 역사를 견뎌왔기에 절의 형태는 폐사지에 가까웠다. 1902년에 대원각사에 의해 법흥사로 개칭되고 재건되었다.
④정암사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方袍)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또,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절 입구에는 일주문(一柱門)이 세워져 있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근년에 완공된 선불장(選佛場)이 있다.
오른쪽에는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중간 도량가에 종루가 있고, 선불장 옆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자장각(慈藏閣)·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이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점은 고목이 옛날 그대로 손상된 곳이 없다는 것인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⑤봉정암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길지를 찾던 도중, 봉황이 한 마리 나타나나서 율사의 눈을 끌었다. 날아가는 봉황을 자장율사는 계속해서 따라갔고, 그러던 중 부처님을 닮은 바위를 찾게 되었다. 봉황은 그 부처님을 닮은 바위의 이마부분으로 사라졌고, 율사는 곧 그 주위가 수려한 산들로 둘러싸인 길지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마 부분에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하고 암자를 세우니, 이 것이 봉정암의 유래다. 봉정암은 말 그대로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특히 봉 정암은 암자나 고승들의 수행처로 이름 높은 곳이다. 자장율사가 봉정암을 세운 이래로, 원효, 보조 등의 국사가 수행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공부를 위해 봉 정암을 찾았다. 워낙 산세가 험하기 때문에 봉정암이 현재의 모습처럼 절의 모양을 갖추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중건에 앞장 선 후 고려 명종에 이르러 지눌국사가 다시 재건하였으며, 6.25이전까지 여러 스님들과 불교 신도들이 7차례에 걸쳐 절을 세우는 것을 돕기 위해 모금 활동을 했다.
【3】적멸보궁의 건축적. 미술적 상징과 가치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 그 자체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기에, 불상이나 탱화 등 그 어떠한 부처를 상징하는 다른 대상은 없다. 대신에절의 대들보를 구성하는 공포나 벽면의 벽화, 또는 탑 등에서 다른 전각들과는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특히 다른 절들의 건축 형식, 미술 형식보다 더욱 큰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숨은 상징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불교의 가치[7]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①불뇌보탑 - 봉정암
봉정암의 불뇌보탑은 석가모니불, 즉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탑이다. 이 탑에는 다른 불탑과는 달리 별다른 장식이 없다. 5층 중 가장 밑에 연꽃 모양의 문양이 희미하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탑의 벽면에 다른 문양이 있고 풍화된 것으로 짐작했으나 어떠한 문양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조각된 문양은 밑 부분의 연꽃이 유일한 것이 밝혀졌다. 불뇌보탑은 특이하게 탑의 기단부를 찾을 수 없다. 탑의 기단부는 원래 탑의 맨 밑층과 지반을 구분하기 위해서 만드는 석조물인데, 불뇌보탑은 상징적으로 중요한 탑임에도 불구하고 기단부가 없다. 이에 대한 해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유력한 것은, 설악산의 장엄한 암석들이 탑의 기단부 역할 즉, 탑을 떠받들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라는 설이다. 기단부를 따로 만들지 않고, 부처의 진신사리에 대한 존경까지를 함께 나타내는 것이다.
②불교성지로써의 가치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건립한 이래로 종교적 성지로써의 역할을 해왔다. 큰 불교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행사가 행해졌으며, 주요 선승들과 고승들이 공부를 위해 선택한 장소도 적멸보궁이었기에 자연스레 불법의 전승 장소라는 명맥도 이어갔다.이러한 불교 성지로서의 가치가 극에 달한 것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크게 진흥시킨 고려에 이르러서이다. 물론 고려시대에는 적멸보궁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일반 민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흔한’ 절들이 세워졌지만, 그럴수록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성지로써의 적멸보궁이 가지고 있는 유일함과 특별함은 더욱 빛을 발했다.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적인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많은 불교 신도들이 탄압받았고, 적멸보궁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결국 임진왜란 때, 구국의 기치를 들고, 승병과 의병을 일으킨 중심지가 되었던 것도 적멸보궁의 힘이 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명대사는 전국의 명산, 명승지, 특히 적멸보궁을 중심적으로 돌아다니며, 승려들의 참여를 촉구하였고, 결국 이러한 노력은 적멸보궁의 공부하던 선승들이 구국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임진왜란 때 통도사의 설화를 하나 살펴보면, 사리를 훔치려던 왜군들이 처음에 함을 열어보니 두꺼비가 사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에 놀라 함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니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사리를 지키고있어 사리를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이 두꺼비와 구렁이는 별다른 특별한 전설이나 설화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적멸보궁을 비롯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의 마음이 비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승병들의 궐기로 인해 많은 일반 백성 또한 의병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의병 활동이 확산되게 되었다.이렇듯, 적멸보궁은 그 명맥을 이어오며, 국난 때에는 민족적 운동의 중심지로써의 역할까지 수행하였다.하지만 대부분의 적멸보궁이 6.25 때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는데, 이는 적멸보궁 대부분이 깊은 산 속에 있어, 그대로 놔두면 적군의 결집 장소가 된다고 판단, 없애는 것이 군사작전상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다행히도 6.25가 끝난 후에 재건과 수리가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현재 적멸보궁은 대한민국 불교 신도들의 성지로써 여전히 남아있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당일여행 중 <출발~조식~정암사 탐방>]
계모임(어주구리) 회원 8명이 [백두대간 협곡열차 당일여행]을 떠났다...^-^
마운틴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으로 탐방을 한 것이다...ㅎㅎ...^-^
잠실역 3번출구 쪽... 너구리동상 앞에 오전 8시에 집합하여 마운틴 관광버스를 탔다...^-^
8시에 출발하여 중간에 문막휴게소에 들렀다가...3시간 후인 오전 11시에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의 '정암사'에 도착했다...^-^
강원도 정선군의 정암사에 도착하기전 3시간 동안 버스안에서 찰밥정식을 먹었다...^-^
제일 앞 좌석에서 가이드가 찰밥정식과 3~4가지 반찬을 비닐봉지를 씌운 휴대용접시에 담아 뒷좌석 손님에게 넘긴다...^-^
찰밥정식을 넘겨받은 분은 다음 뒷좌석 사람에게 바톤터치 하듯 넘기는데.....
자연스레 지그재그로 뒷좌석 손님들에게 넘어가면서 제일 뒷좌석 손님부터 차곡차곡 전달받는 형식이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도 무리없이 전달되고...밥먹기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ㅎㅎ...^-^
식사를 한 후에는 비닐봉지를 뒤집어 잔반 및 젓가락 등의 쓰레기 처리를 하면 되므로 편리하다...ㅎㅎ...^-^
제일 처음 어느 사람이 창안했는지 모르지만...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제대로 될까? 하고 고민 했을 것 같기도 한데...그런대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ㅎㅎ...^-^
찰밥이 따끈따끈하고...반찬도 간이 맞는다...특히 작게 자른 북어조림을 맛있게 먹었다...^-^
김밥보다 먹기가 좋고...물도 한병 주므로 기분이 좋다...ㅎㅎ...^-^
태백산 '정암사'에 도착하기전 가이드가 정암사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정암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라고 한다...^-^
5대 적멸보궁은 통도사, 법흥사, 정암사, 상원사, 봉정암인데.....좀 더 세밀하게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ㅎㅎㅎ...^-^
<경남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강원도 오대산 중대 상원사/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빼면 적멸보궁 4개가 모두 강원도에 있다...ㅎㅎ...^-^
또한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인 삼보사찰은 양산의 통도사(불보사찰), 합천의 해인사(법보사찰), 순천 송광사(승보사찰) 라고 한다...ㅎㅎ...^-^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정암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와 문수보살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위 내용에 가이드의 설명을 덧 붙이면....
문수보살이 "태백산 갈래산 갈반지로 가라!" 하여 갈래산으로 들어가...갈반지를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는데...'갈'이란 칡넝쿨이란 뜻으로 칡넝쿨 많이 뻗은 곳을 보니...구렁이 10여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어...자장율사가 설법을 읽으니 또아리를 풀더라!...자장율사의 그날 밤 꿈에 구렁이들이 나타나 말하길 "원래 승려였는데...물을 낭비하므로 벌을 받아 구렁이가 되었다고 하며...업을 풀어달라고 애원을 함"...자장율사가 일주일간 염불을 외우니 구렁이가 죽게되고...그 밑에 있던 보물로 절을 지었다고 함...ㅎㅎ...^-^
이밖에 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정암사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율사가 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이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11시에 정암사에 도착하였는데... 관람시간을 1시간 40분 주었다...^-^
정암사 일주문을 지나 보물 제410호인 석가모니불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수마노탑을 먼저 보러갔다...^-^
원래 벽돌모양의 마노석으로 지어진 탑을...서해용왕의 도움을 받은(?) 물길따라 마노석이 반입됐다고 하여...수마노탑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수마노탑을 보러 가기위해...가파른 계단을 숨이 헉헉 거리게 힘들게 올라갔다...^-^
산 정상에 벽돌(?)(=마노석)로 쌓은듯한 탑이 세워져 있다...회원 중 한사람은 정성스레 탑 앞에서 기도를 한다...^-^
나는 '수마노탑'을 정갈하게...아름답게 촬영하고 싶은 욕심(?)에 이리저리 옮겨가며 촬영을 했으나 비좁은 공간때문에 여의치 않다...ㅎㅎ...^-^
내려오면서...극락교를 지나...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인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을 탐방했다...^-^
수마노탑에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봉안하고...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으며... 탑이 잘 보이는 지점에 위치한다고 한다...^-^
정갈하게 관리된 정원과 고색창연한 적멸보궁을 바라보니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정원 안의 피나무촬영을 하면서도...그 옆에 있었던 '선장단'나무를 못 본 것이 못내 아쉽다...ㅠㅠ...^-^
'선장단'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나무로 '주목'이라고 하는데...한마디로 오래된 '고목' 이라 하겠다...ㅠㅠ...^-^
가이드가 버스안에서 설명해 주었건만...짧은 시간 내에 이것저것 보고 촬영을 하느라 깜박한 것이다...ㅎㅎ...^-^
돌아 나오면서..생각해보니 1300살 쯤 되었다고 생각하니 척~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살펴보지 않은 것이 원인인듯 하다...ㅎㅎ...^-^
또한 이 절에는 수마노탑 외에 금탑과 은탑이 있는데...자장율사가 후세를 위해 탑을 세웠는데...불심이 없는 중생이 볼 수 없도록 비장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비쳐 보이게 했다고 하는데...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라고 한다...ㅎㅎ...^-^
정암사 계곡은 열목어 서식지라고 한다...그러면 1급수(?)....ㅎㅎ...^-^
- 2013년 8월6일 화요일...수산나 -
사진 첨부 예정 ...^-^
☞ 백두대간협곡열차[철암~분천] 당일여행 중 영주 '부석사' 탐방은 다음 카테고리로.....
☞ 백두대간협곡열차[철암~분천] 당일여행 중 [철암~분천]협곡열차 탑승은 다음 카테고리로...
마운틴 관광버스...'백두대간 협곡열차' 표지가 유리창에 붙어 있네요...ㅎㅎ...^-^
'문막휴게소'에 잠깐 들렀습니다...ㅎㅎ...^-^
'정암사' 입구의 풍경 입니다...'정암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 입니다...^-^
5대 적멸보궁이란 경남 양산의 통도사/강원도의 법흥사(영월군), 정암사(정선군), 상원사(중대), 봉정암(인제군)을 말하는데...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봉안한 사찰로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고 합니다...ㅎㅎ...^-^
정암사 표지석..."태백산 적멸보궁" 이라고 쓰여 있네요...ㅎㅎ...^-^
정암사 일주문...현판에 "태백산 일주문" 이라고 쓰여 있네요...ㅎㅎ...^-^
정암사 유래
신라 선덕여왕 14년(서기 645년)에 '자장율사' 께서 창건...'자장율사' 께서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시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 치아, 불가사 패엽경 등>을 전수하시어 동왕 12년에 귀국하여 14년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부처님의 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였다...^-^
금탑과 은탑은 후세에 귀한 보물에 탐심을 낼까하여 비장하셨다고 한다...^-^
정암사 일주문 지나 경내 전경...^-^
정암사 경내...'달마대사'...^-^
정암사 경내...'이정표'
정암사 전각 배치도
정암사 경내...'관음전' 1...^-^
정암사 경내...'관음전' 2...^-^
정암사 경내...^-^
정암사...'일심교'...'수마노탑(보물 제410호)'으로 가는 길 입니다...ㅎㅎ...^-^
정암사의 <열목어 서식지(천연기념물 제73호-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안내문
열목어는 물이 맑고 오염되지 않으며 산소 함량이 10ppm 안팎의 환경조건에 살 수 있다...^-^
경북 봉화군과 함께 열목어 서식지로 세계 최남단 남한지 이다...^-^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올라가는 길...^-^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올라가는 계단...^-^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올라가는 계단...계단이 지그재그로 많고...가파라서 숨이 찼어요...ㅎㅎ...^-^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올라가는 계단...수마노탑을 바라보고 한컷...예뻐요...ㅎㅎ...^-^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 410호)...^-^
이 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여 '적멸보궁'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답니다.....^-^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안내문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은 7층석탑이다. 기단부는 화강암을 평면이 점점 좁아지게 6단으로 쌓았고, 그위에 돌 벽돌을 2단으로 쌓아 탑 몸체부를 받치고 있다.
탑 몸체부를 구성하는 돌 벽돌은 회록색을 띠는 석회암인데, 수마노탑으로 불리어왔다.
1층 몸돌의 남면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문틀을 마련하고, 1매의 얇고 납작한 돌을 끼워 쇠문고리를 단 문짝을 만들었다.
지붕돌의 추녀 밑은 살짝 들려있으며, 추녀 밑 모서리에는 작은 종을 매달았다...상륜부는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거의 완전히 남아있다...^-^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지붕돌의 추녀 밑은 살짝 들려있으며, 추녀 밑 모서리에는 작은 종을 매달았다...상륜부는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거의 완전히 남아있다고 합니다...ㅎㅎ...^-^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은 7층석탑이다.
기단부는 화강암을 평면이 점점 좁아지게 6단으로 쌓았고, 그위에 돌 벽돌을 2단으로 쌓아 탑 몸체부를 받치고 있다.
탑 몸체부를 구성하는 돌 벽돌은 회록색을 띠는 석회암인데, 수마노탑으로 불리어왔다.
상륜부는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거의 완전히 남아있다고 합니다...ㅎㅎ...^-^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은 7층석탑이다...^-^
기단부는 화강암을 평면이 점점 좁아지게 6단으로 쌓았고, 그위에 돌 벽돌을 2단으로 쌓아 탑 몸체부를 받치고 있다.
탑 몸체부를 구성하는 돌 벽돌은 회록색을 띠는 석회암인데, 수마노탑으로 불리어왔다.
☞ "1층 몸돌의 남면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문틀을 마련하고, 1매의 얇고 납작한 돌을 끼워 쇠문고리를 단 문짝을 만들었다." ...쇠문고리 단 문짝을 못 보아서 섭섭...ㅎㅎ.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은 7층석탑이다...^-^
탑 몸체부를 구성하는 돌 벽돌은 회록색을 띠는 석회암인데, 수마노탑으로 불리어왔다.
지붕돌의 추녀 밑은 살짝 들려있으며, 추녀 밑 모서리에는 작은 종을 매달았다...ㅎㅎ...^-^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표지석...^-^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제410호)' 안내문
수마노탑은 '신라 사적기'에 선덕여왕 12년(서기 634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7년 후 건립하였다고 하며...
탑의 내부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성스러운 곳 입니다...^-^
정암사 육화정사(선불도장) 1...^-^
정암사 육화정사(선불도장) 2...^-^
정암사 범종각 1
정암사 범종각 2
정암사 음수대...^-^
정암사 극락교...^-^
정암사 극락교 교명주...^-^
정암사 극락교 준공 교명주...^-^
정암사 극락교 지나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 위치한 기도공간...^-^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안내문
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불상을 모시지 않았으며, 대신에 산 중턱에 석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이 있다...^-^
건물의 양식은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전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정면 1...^-^
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불상을 모시지 않았으며, 대신에 산 중턱에 석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이 있다...^-^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정면 2...^-^
건물의 양식은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전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측면 1...^-^
건물의 양식은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전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측면 2...^-^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측면 3...^-^
건물의 양식은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전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기도공간...'피나무'...^-^
정암사 적멸보궁(지방문화재 자료 제32호) 기도공간...'피나무 가지와 잎'...^-^
☞ '선장단'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나무로 '주목'이라고 하는데...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ㅠㅠ...^-^
정암사 일주문으로 나가는 길...^-^
정암사 일주문 후면...^-^
정암사 계곡 1
정암사 계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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