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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주구리 모임

백두대간협곡열차[철암~분천] 당일여행 중 <중식~영주 부석사 탐방>-18장

백두대간협곡열차[철암~분천] 당일여행 

 

 

 

 

 2013                        08/5일 (월)요일 
지 역시 간일 정교 통식 사




정암사

수마노탑





협곡열차







부석사
07:00
07:30
08:00
영등포 신세계백화점앞
서울역9번출구 대우빌딩앞
잠실역3번출구 너구리동상앞
차안에서 조식제공 - 찰밥정식
정암사
-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으므로 정암사(淨巖寺)라 이름하였다.
수마노탑
- 정암사에는 금탑, 둘째가 은탑, 셋째가 수마노탑 세개의 보탑이 있는데 그 중에 수마노탑은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 보존하고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감추어져 눈에 띄지 않으니 자장율사께서 후세 중생들의 탐심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했다고 한다.
중식제공 - 산채비빔밥 제공!!
백두대간 협곡열차[철암~분천] - 애칭 아기백호열차

-열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그곳!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인 백두대간 협곡구간을 왕복운행하는 국내최초 개방형 관광열차!!
좁디 좁은 협곡사이로 아래로는 절벽, 위로는 바위산이 보이는 창 밖 풍경을 자연 그대로 오감으로!!
V-train 또는 O-train 이용
※ 협곡열차 탑승시간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영주부석사
- 작가 '최순우'가 극찬한 무량수전과 많은 불교 유적을 가진 우리나라 화엄종의 대표 사찰
현지출발 및 석식제공
출발지 도착예정






전용버스



조식







중식









석식

 

 

[영주 부석사]

 

부석사근처에는 가시는길에 선비촌이 있습니다

▲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의상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및 신림(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惠哲國師)·무염국사(無染國師)·징효대사(澄曉大師)·원융국사·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은 국보제18호입니다.

무량수전이라는 것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는 말입니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원율국사 비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7년(1016년) 원융 국사(스님)가 중창(전에 있었던 건물이 불에 소실되어 새로 지음)하였다고 합니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글에는 공민왕 7년(1358년)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2년(1376)에 원응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내부에는 서쪽 방향에 불단과 닷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제45호)을 모셨는데 서향으로 모신 것은 아미타여래는 서방의 극락 세계를 관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존 상태는 아주 양호합니다.

주소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번지입니다.

 

아래는 부석사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는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융 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깔고 단청을 하였고 1969년에는 번와 보수하였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지어졌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면석과 갑석을 짜맞추어 만든 가구식 기단과 사갑석을 받치는 지대석이 돌출된 계단, 원형 주좌와 고막이를 가진 초석의 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다. 계단 동측면에 선각된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 석수김애선'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유의하여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曲),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 항아리형 보 등의 의장 수법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고안되 고도의 기법들이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하는데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것이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다.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 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의 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이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이 집만의 특징이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호)를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진입하는 정면쪽으로 불상을 모시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는 드문 해결 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집을 만든 대목(大木)의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후대 건물과는 달리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굵고 가늘고 길고 잛은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 조화 있게 짜맞춰진 모습은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무량수전의 천장 가구에서 고저장단의 운율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천장을 노출시키려면 각각의 부재가 아름답게 디자인되어야 하고 또한 정확하게 짜맞추어야 하므로 품이 훨씬 더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목수들은 이러한 건물을 많이 지었다. 특히 고려시대 주심포 집들에는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것이 많다.

원래 내부 바닥에는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을 깔아서 매우 화려하였다. 아미타경을 보면 극락 세계의 바닥은 유리로 되었다고 하는데 녹유전은 이러한 이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장엄 도구의 하나였던 것이다.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번지. 전화번호:054~633~3464.

 


 

 

부석사에 깃든 전설

부석사에는 의상대사와 당나라 처녀 선묘간의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의상은 699년 불법을 닦으러 중국에 도착해 어느 불교신도 집 에서 묵었는데 선묘는 그 집의 딸이었다. 사랑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의상이 불법 정진을 위해 선묘를 멀리하면서 헤어지게 됐다.
의상을 흠모하던 처녀는 의상이 공부를 마치고 10년 후 신라로 건너 갈 때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해주려 했으나 배가 이미 떠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의상이 떠나자 처녀는 자신이 용이 되어 의상의 귀향길을 돕겠다며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만다.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이 다른 종 파의 반발로 부석사를 못짓자 커다란 바위로 변해 이들을 위협해 내 쫓음으로써 의상이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부석사의 부석(浮石)은 바위로 변한 선묘가 땅 위에 내려앉았다는 데서 연유했고, 무량수전 왼쪽의 커다란 바위가 바로 선묘가 변한 바위라고 한다.  
 

[출처]다음 지식

 

[백두대간협곡열차[철암~분천] 당일여행 중 <중식~부석사 탐방>]

 

2013년 8월5일 월요일...계모임 회원 8명이 백두대간 협곡열차[분천~철암]당일여행을 마운틴여행사를 이용하여 다녀왔다...^-^

 

오전 8시, 잠실역에서 출발하여 3시간 후인 11시에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정암사'에 도착하였다...^-^

 

'정암사' 탐방사진은 이미 블로그 2개 카테고리에 올렸는데...국내여행란에 53장, 단상란에 48장의 사진을 올렸다...ㅎㅎ...^-^

국내여행란에는 주로 사진만...단상란에는 글과 사진을 함께 올렸다...ㅎㅎ...^-^

 

지금 올리고 있는 영주 부석사는 단상란인데 ...국내여행란에 사진 61장을 이미 올렸지만...

올린 사진 중에서도 중요한 것만을 글과 함께 올릴 예정이다 ...ㅎㅎ...^-^

 

영주 부석사는 작년 11월15일... 단풍철이 약간 지난 늦가을에 탐방을 한 곳 이다...ㅎㅎ...^-^

작년 가을 영주 부석사를 갔을때...안양루 앞에서 바라보는 태백산맥 능선이...마치 광활한 바다같이 보였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ㅎㅎ...^-^  

일몰시간에 맞추어 부석사를 탐방했으므로...'쑥쑥~ 쑥'하고 사라지는 태양의 일몰모습과 일몰 후에도 찬연하게 퍼져있는 노을의 장광을 보았다...ㅎㅎㅎ...^-^

일몰 전과 일몰 후 원없이 노을빛 속에 취하였고...일몰전의 태양빛과 그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찾아 사진촬영하는 기쁨도 누렸었다....ㅎㅎ...^-^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으로...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가 유명하다...^-^

 

당나라에 유학갔던 의상대사를 짝사랑했던 선묘낭자가 바다용으로 변해 의상대사의 귀국뱃길을 안정하게 보호하였고...부석사를 창건할 때...선묘신룡이 나타나 돌을 들어 반대하는 이교도를 위협하여 물리쳤으며...창건 후에는 석룡으로 변해 부석사를 지키는 뜨는돌이 되었으므로 '부석사'라고 불리어졌다고 한다...^-^

 

부석사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이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국보 제18호이고...무량수전이란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는 말인데...아미타부처님(소조여래좌상) 또한 국보 제45호이다...무량수전 앞의 석등 역시 국보 제17호인데 ...석등 사이로 "무량수전" 편액글씨가 보이며...이 글씨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한다...ㅎㅎ...^-^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한다....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고 한다...ㅎㅎ...^-^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고...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고 한다...ㅎㅎ...^-^

 

이밖에 범종루의 편액글씨 "봉황산 부석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하며...무량수전의 기단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라고 하는데...그 앞에 피어있는 상사화가 인상적이었다...ㅎㅎ...^-^

 

 

- 2013년 8월7일 수요일...수산나 -

 

 

부석사 안양루

 

부석사 일몰 전...^-^

 

부석사 일몰 1

 

부석사 일몰 2

 

부석사 일몰 3

 

부석사 일몰 후 노을...^-^

 

부석사 일몰전 태양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태양빛이 만들어낸 범종루의 음영...^-^

 

부석사 부석...^-^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가 유명하다...^-^

당나라에 유학갔던 의상대사를 짝사랑했던 선묘낭자가 바다용으로 변해 의상대사의 귀국뱃길을 안정하게 보호하였고...

부석사를 창건할 때...선묘신룡이 나타나 돌이 뜨면서 반대하는 이교도를 위협하여 물리쳤으며...

창건 후에는 석룡으로 변해 부석사를 지키는 뜨는돌이 되어 '부석사'라고 불리어졌다...^-^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편액글씨 "무량수전"은 공민왕 친필이라고 합니다...^-^

 

부석사 석등(국보 제17호) 사이로 보이는 "무량수전" 편액글씨...공민왕 친필이라고 합니다...^-^

 

부석사 석등(국보 제17호)... 사이로 보이는 "무량수전" 편액글씨는 공민왕 친필이라고 합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내부...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부석사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제255호) )

 

부석사 범종루...편액글씨 "봉황산 부석사"... 이승만대통령의 친필글씨라고 합니다...ㅎㅎ...^-^

 

부석사 무량수전 배홀림 기둥과 공포...^-^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한다....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고 한다...ㅎㅎ...^-^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고...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고 한다...ㅎㅎ...^-^

 

부석사 무량수전 앞...'상사화'...^-^

무량수전의 기단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라고 하는데...그 앞에 피어있는 상사화가 인상적이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