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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해외풍경·서양역사

가이드 설명 태국이야기③ (2013.9.20.금)/태국 방콕시내 야경 6장

[가이드 설명 태국이야기 ③]

 

태국은 불교의 나라로서 인도와 중국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이암(Siam)으로 잘 알려져 있다....유의사항은 승려들이 굉장히 존경받고 있는 곳이며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태국은 50만 평방km(한반도의 2.3배)의 크기에 6,000만 정도의 인구이며...서쪽과 북쪽으로 미얀마, 북동쪽으로 라오스, 동쪽으로 캄보디아, 남쪽으로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인종은 타이족이 81%, 화교 13%, 말레이족 3%, 기타 2%로 구성되어 있고...공용어는 타이어 이다...종교는 95%가 불교, 회교 4%, 기독교 1%...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느리며...비행시간은 5시간이 걸리며...화폐는 바트이며 '1바트=40원' 이다...열대몬순기후로 하기(3-5월), 우기(7-9월), 건기(10-12월)로 구분할 수 있다...^-^

 

태국은 또한 2006년 군부 쿠테타로 축출된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레드셔츠'와 그를 반대하는 '옐로셔츠'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탁신을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고, 옐로셔츠로 대변되는 도시 지식인들을 이끈 지도자 잠롱 전 방콕 시장은 1일 1식과 채식을 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90년대 한국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청렴한 시장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태국의 87.5%의 차량은 일제차량이며, 한국차량은 0.75% 되지 않는데.....이유는 일본차량의 생산기지는 태국에 있어 세금이 없고, 한국차량이나 타이어 등은 수입하므로 관세때문에 비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콕의 도로 교통체증은 심한 편인데...2층의 고가 순환도로는 일본이 무상으로 해준것이라고 한다...^-^

태국은 지진, 태풍이 없는 대신에...땅의 기반이 약해 지하 65m 까지 파일을 박아  빌딩을 건축하는 관계로 지하가 없는 빌딩이라고 한다...ㅎㅎ...^-^

 

방콕 파타야 3박5일 여행 중 2일째날에 방콕의 챠오프라야 강변풍경과 '왕궁, 에메랄드 사원'을 관광하고...파타야로 이동하는데...관광버스에서 가이드가 태국 고속도로 건설과 현대건설의 사원이었던...이병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설명한다...1966년도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로 해외건설을 수주받아 '파타니와 나리타왓' 고속도로를 3년6개월만에 기반도로를 깔았는데... 그 빠른 속도에 훈장을 받았다고 소개를 한다...^-^ 

 

받아적은 것이므로 미진하고 불안하여...인터넷에서 검색하니 국왕으로 부터 훈장 받았다는 기록은 못 찾았고...현대건설에 이명박대통령이 경리담당 사원으로 있을 때 폭동이 일어났는데...폭도에게 금고를 끌어안고 몸으로 사수하여 지킨 공으로...고 정주영 회장이 이명박 사원을 눈여겨봤다는 기록과 국내 최초 해외진출이므로 기술력 부진과 현지의 후덥지근한 날씨를 고려하지 못하여 공사금액(60억원)의 절반(34억원)에 해당하는 손해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외국에서 최초로 공사를 수주한 것은 태국의 빠따니와 나리타왓을 연결하는 총연장 98㎞의 고속도로 건설 공사였다. 태국정부가 IBRD차관을 받아 1965년 발주한 공사다. 1966년 1월 공사를 시작해 1968년 3월 준공됐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네덜란드 등 16개국 29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현대건설이 공사를 따냈다......당시 현대건설은 구닥다리 국내 건설 장비를 태국으로 갖고 가 공사를 했다. 신식 장비가 있었지만, 기술자들이 사용법을 몰라 무용지물이었다. 국제 규격 공사가 뭔지도 현장에서 배웠다. .....태국의 후텁지근한 날씨를 고려하지 못하고 아스콘을 배합해 공사를 끝낸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 일쑤였다......공사 수주 금액은 522만달러(60억원). 당시로선 큰 금액이었지만 첫 해외공사의 결과는 암담했다. 고생 끝에 공사를 끝냈지만 공사 금액의 절반이 넘는 300만달러(34억원)에 달하는 손해가 났다......그러나 정 회장은 태국 고속도로 공사에 대해 "비록 금전적으로는 거액의 손해로 끝났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사를 끝내 천금을 주고서도 사지 못할 신뢰를 격전의 훈장처럼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은 한 달에 열흘은 태국에서 살았다...^-^

 

이 대통령이 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5년 현대건설 경리담당 사원으로 있을 때다. 2년간 근무한 곳으로 이 대통령이 난생 처음 밟아본 외국 땅이자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나라이기도 하다......이 건설공사 현장에서 한번은 현장 기능공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간부와 사원들은 몸을 피했지만 이 대통령은 혼자 현장 사무실을 지켰다고 한다....흉기와 각목으로 무장한 15명의 기능공들은 이 대통령을 사무실 벽으로 몰아세운 채 “금고 열쇠를 내놓으라”고 위협했지만 경리사원 이명박은 금고를 끌어안고 엎드린 것. 무자비한 발길이 몸위에 꽂힌 것은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다행히 신고를 받고 출동한 태국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폭도들은 도망갔고 이명박 사원은 생사가 오간 순간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고 정주영 회장이 이명박 사원을 눈여겨봤다는 후일담이 전해졌다...^-^

 

태국에는 늪지대가 있는데..징키스칸도 이 늪 때문에 태국을 정복하지 못했다고 가이드가 소개를 한다...인터넷에서 찾아보니...1990년 10월29일자 연합뉴스에서 태국의 악어농장에서 홍수로 물이 넘쳐 악어가 보호벽을 넘고 흘러나와 태국 주변의 늪을 배회하고 있다고 하며.....또한 이번 폭우기간중 '살인물고기'로 알려진 남미(南美) 아마존産의 '피라나'가 방콕의 젖줄인 차오 파야江에서 한 어부의 어망에 걸려 수산당국에 보고됐다는 기록이 실려있다...ㅎㅎ...^-^

 

한국의 기업 'CJ'가 태국의 '타피오카'전분을 한국에서 판매 할 예정이라고 한다...'타피오카'는 들판에서 자라는데...고구마 줄기 같은 것으로 2m까지 자란다고 설명해준다...ㅎㅎ...^-^

 

태국은 국물없는 문화로 여자들은 체구가 작고 날씬하며 결혼할 때 돈이 안 든다고 한다...남자는 결혼식날 지참금을 내야하며...사위가 장인, 장모를 모셔야 하고...1부다처제로써 3명의 부인까지 허용이 된다고 한다...태국에서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으며...밖에서 사먹는 것으로 식사해결을 한다고 한다...ㅎㅎ...^-^

 

속옷 브랜드로 유명한 '와코루'가 태국의 것이며...수술용 장갑, 분유병젖꼭지, 피임기구 등 천연고무가 유명하며...성형 패키지 관광이 유명하다고 한다...^-^

세계 100위내 의과대학과 병원이 있고...트랜스젠더 수술이 성행하는데다..기술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므로 일찌감치 의료성형관광이 발달되었다고 한다...ㅎㅎ...^-^

 

또한 유럽인의 관광도 많은데...이들의 관광목적은 관광 50%와 다이어트 50%이며...유럽인의 장기체류자는 주로 고령의 연금생활자로서...파타야에서 말년을 보내려고 온 경우인데...젊은 태국 아가씨와 함께 있는 모습들이 많이 목격된다고 한다...^-^

 

태국의 문화는 철저하게 노는 문화로 월요일 부터 금요일가지 5일제 근무인제 오후 4시 퇴근이며...금요일은 12시 퇴근이라고 한다...^-^

회사 보다는 친구와의 약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태국은 '음기'가 강한 나라로써...여자 대 남자의 비율이<4 :1> 인데...25% 뿐인 안된 남성들 중 중성이 또한 많아...트랜스젠더로 전환하기도 한다고 한다...ㅠㅠ...^-^   

가이드의 태국이야기 중 나에게 제일 충격으로 다가온 내용이다...남녀비율이 1:1 비율에서 적당히 프러스 마이너스가 있는 줄로만 알고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지게 하는 팩(fact)이기 때문이다...ㅠㅠ...^-^

이래서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고 하나보다...ㅎㅎ...^-^

 

- 2013년 9월2일 금요일...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 순교자와 동료순교자 축일에...수산나 -

 

[위클리 포커스] 극단적 평가 받는 탁신 前총리

복귀 추진 탁신 “화합 원해”… 정작 태국은 혼돈 예고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국민 화합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정계 복귀 수순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레드셔츠’와 그를 반대하는 ‘옐로셔츠’ 세력으로 양분된 태국 사회가 그의 귀국 시도로 또 한번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졌다.

 


28일 태국 언론들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2009년 방콕에서 탁신 반대 시위를 벌여 공항 운행 등에 차질을 준 ‘옐로셔츠’ 활동가들에 대한 재판을 29일 시작한다. 다음 달 7일에는 의회에서 탁신 전 총리에 대한 사면 법안도 논의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탁신 전 총리는 지난 26일 64회 생일을 맞아 중국 베이징에서 태국 국민에게 단합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태국 수도 방콕 근교의 한 사원에서 셈삭 퐁파닛 교육부 차관이 주도해 열린 자신의 생일 축하 행사에서 약 3분간 전화로 “태국민들의 행복과 화합, 분열 종식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탁신 전 총리는 자신의 아들 판통태(35)가 인터넷에 올린 영상을 통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다”면서 “자신의 귀국 시기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국가적인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생일을 핑계로 자신의 사면과 귀국을 추진 중인 집권 프어타이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탁신 전 총리는 1980년대 이동통신·컴퓨터 사업을 하는 친나왓그룹을 세워 막대한 부를 쌓고 정치에 입문해 2001년 총리로 선출됐다. 2005년 재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다.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저소득층 중심 정책 덕분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친나왓그룹 주식을 팔아 19억 달러(약 2조 1100억원)의 엄청난 차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 등 각종 스캔들에 연루돼 국민적 분노를 샀다. 결국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부정부패로 인한 유죄 선고 직전 외국으로 도피해 해외를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쿠데타로 쫓겨난 뒤에도 2007년 피플파워당을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했고 2011년 총선에는 여동생 잉락 친나왓을 내세운 프어타이당의 압승을 이끌어냈다. 26일 프어타이당 의원들과 각료 100여명이 생일을 맞은 탁신 전 총리를 만나러 전세기로 홍콩을 찾아간 것만 봐도 그의 위력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특권층과 기득권 계층은 ‘탁신이 공식 직책 없이 현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원격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부정부패 전력에 염증을 느껴 그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그의 복귀와 사면 추진은 태국 정국을 불안하게 만들 최대 요소로 간주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서울신문-2013-7-29일 12면-

 

 

 

박세경PD의 카메라 속 세계 등록일 | 2011.07.28 조회수 | 3,487

도시 지식인들을 이끈 지도자, 잠롱 시장과의 하루 1

 

 

 

이달 초 태국에서는 조기 총선을 실시해, 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정치는 해본 적 없는 사업가 출신의 정치 신인, 잉락 친나왓이 그 주인공인데 지난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이다. 정치신인임에도 막강한 오빠의 힘을 등에 업고 태국을 이끌 총리가 된 것이다. 

태국은 지난 몇 년간 정치적 혼돈을 거듭했다. 레드셔츠와 옐로셔츠로 불리는 두 정치세력의 싸움은 국제 시사분야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번에 레드셔츠로 불리는 탁신 진영에서 총리가 탄생했기 때문에 옐로셔츠 진영과 왕실세력을 아우르며 안정을 도모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혼돈이 일어날지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는 듯 하다. 안정되지 않은 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지난 몇 년간 태국을 자주 방문해 취재했었다.



잠롱 전 방콕 시장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가 들어선 이후 2006년까지 총 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평균적으로 약 4년에 한 번씩 쿠데타가 발생한 꼴이다. 약 80년 동안이나 군부세력이 정권을 독재하고 있었던 태국의 정치는 한마디로 말해 쿠데타와 군부 정권 독점의 역사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왕가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다보니 왕의 권력과 권위가 상상을 초월해 외국인들의 눈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1년 포퓰리즘을 표방한 탁신이 이끄는 민간정부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시도해 가난한 서민들의 지지를 받지만 온갖 부정부패로 신임을 잃고 구집권 세력과 갈등하게 된다. 2006년 9월 19일 밤, 쿠데타 선언이 일어나고 탁신은 수상 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사건이 대규모 시위의 빌미가 되었다.

2008년 2010년 까지 몇 차례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광등 많은 분야에 쿠데타와 시위가 미치는 영향을 촬영하고자 찾아간 방콕은 생각보다 평온했지만 관광지에서는 다들 울상이었다. 태국인들은 CNN을 비롯한 외신에 상당한 불만이 있는 듯 했다. 사실 시위는 규모가 크지 않고 정치세력들도 극소수인데 외신에는 마치 태국이 전쟁지역이나 되는 듯 보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불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산업 발달한 태국에서 전쟁처럼 보도되는 시위는 그야말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알면서도 탁신을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고, 옐로셔츠로 대변되는 도시 지식인들을 이끈 지도자 잠롱 전 방콕 시장을 만나고 싶었다. 90년대 한국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청렴한 시장으로 유명했던 사람이 어느 날 TV를 통해 투사적 이미지의 정치지도자로 등장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에게 시위대를 이끄는 이유가 듣고 싶어 그를 찾아갔다. 한나절 그와 만나 대화 하면서 그의 삶의 방식과 세상을 보고, 정치를 보고, 국민을 보는 그의 안목은 내게 쉽게 잊히지 않는 깊은 여운과 울림을 주었다.




그를 만나러 소설과 영화로 유명해진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곳 깐짜나부리로 향하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당시 그는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다 구금된 후 풀려나있었고 그를 만나러 가는 날, 잠롱을 포함해 그가 속해 있는 단체의 리더들 21명에 대한 구속 영장신청이 있는 날이었다. 잠롱 시장이나 그 측근들에게는 어수선한 날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 긴박함을 기대하며 그를 찾아갔다. 그는 깐짜나부리 리더십 스쿨의 교장으로 시골마을에 공동체를 짓고 생활하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로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간, 본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된 날임에도 잠롱은 편안해 보였고 내가 알던 그 온화한 미소와 평온하고 느릿한 몸짓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첫 인사부터 나는 구속영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구속영장 청구된 것 알고 계세요? 오는데 신문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것이 옳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압니다. 나쁜 짓을 했다면 죄책감이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한일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무섭지도 겁나지도 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온화하고 순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서 나오는 말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미국의 군사학교에서 유학한 사람답게 영어실력도 상당했다. 간단한 인사를 한 후 그는 그의 공동체와 그가 하는 일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리더십 스쿨을 운영하고, 강의를 하고, 지역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등 학교와 동네의 소일들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도맡아 하고 있었다. 방콕 전 시장 시절부터 해오던 1일 1식과 채식을 하며 검소한 생활 또한 계속 이어오고 있었다. 공무원들의 모범이 되던 예전 방콕 시장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왜 그런 삶을 사는지 궁금해 졌다.

“시장님은 어떤 신조를 가지고 계시며, 왜 이런 검소하고, 금욕하는 생활을 하시는 겁니까?”
“제 생활신조는 간단합니다. 조금 먹고 조금 쓰고 일은 많이 하는 거죠. 남는 게 있다면 사회에 환원하구요.(My creed is very simple.  Eat little, spend little, work hard. And if there’s anything left?  Give back to society.) 나도 전에는 술도 좋아하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낭비하는 삶을 살다보니 내가 내 나라를 위해 제대로 된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나는 소비는 최소로 하고 일은 최대한 많이 하는 이런 삶을 택했습니다. 내가 마흔 살쯤 되었을 때부터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깐자나부리 리더십 학교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교장이었다. 이 학교는 그가 방콕 시장 재임시절 세워 2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고자 찾아오는 곳이었다. 그런데 교장의 권위나, 멋진 자동차 보다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가축을 기르고 폐지를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렇게 수익을 창출해 학교를 운영하고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었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당시의 태국 정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했다.

“현재 태국의 정치적 상황 어떻다고 판단하시나요?”
그는 직답은 피했다. 하지만 이렇게 애써 돌려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인이란 정직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인이나 가족을 위해 정치인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절대 정치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태국에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는 2008년 8월과 11월 국민민주주의 연합 시위대(PAD)라는 반탁신파를 이끌며 푸껫은 물론 방콕의 심장공항인 수와나품 공항까지 점거했다. 온화하고 청렴한 이미지와는 달리 시위를 이끈 이유가 궁금했다. 

 

태국 고속도 공사 때 혼자 현장 지켰던 MB ‘인연’
"현장기능공 폭동때 사무실 사수, 정주영 회장 눈에 들어..."

 

[데일리안 동성혜 기자]‘아세안+3’ 정상회의를 참석키 위해 태국 파타야를 참석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태국의 각별한 인연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는 10일 이 대통령의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 대통령과 아세안 국가들과의 인연을 보도자료로 정리, 배포했다.
우선 ‘아세안+3’ 회의장이기도 한 태국이 먼저 소개됐다.

이 대통령이 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5년 현대건설 경리담당 사원으로 있을 때다. 2년간 근무한 곳으로 이 대통령이 난생 처음 밟아본 외국 땅이자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대건설은 당시 16개국 29개 건설업체가 참가한 입찰경쟁에서 길이 98km의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땄다. 이 건설공사 현장에서 한번은 현장 기능공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간부와 사원들은 몸을 피했지만 이 대통령은 혼자 현장 사무실을 지켰다고 한다.

흉기와 각목으로 무장한 15명의 기능공들은 이 대통령을 사무실 벽으로 몰아세운 채 “금고 열쇠를 내놓으라”고 위협했지만 경리사원 이명박은 금고를 끌어안고 엎드린 것. 무자비한 발길이 몸위에 꽂힌 것은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다행히 신고를 받고 출동한 태국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폭도들은 도망갔고 이명박 사원은 생사가 오간 순간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고 정주영 회장이 이명박 사원을 눈여겨봤다는 후일담이 전해졌으며, 이명박은 후에 이 고속도로 공사 도중 숨진 동료 직원의 아들을 20년 뒤 현대건설에 취업시켜 준 일화도 회자됐다.

 


 

[대한민국 제1호] 1966년 태국 해외건설 시장 첫 진출    2010/03/10 10:0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sin0641/4569496 주소복사 트위터로 글 내보내기 페이스북으로 글 내보내기
 원문출처 : [대한민국 제1호] 1966년 태국 해외건설 시장 첫 진출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1/25/2009112501637.html
1966년 1월 태국의 남쪽 끝에 자리 잡은 도시 빠따니의 도로건설 현장. 이곳에 작업복 차림에 제법 덩치가 큰 사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공사 지시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경리장부를 든 20대 사내가 동행했다. 두 사람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훗날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이 된 이명박 현대건설 사원(왼쪽이 당시 현장 직원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외국에서 최초로 공사를 수주한 것은 태국의 빠따니와 나리타왓을 연결하는 총연장 98㎞의 고속도로 건설 공사였다. 태국정부가 IBRD차관을 받아 1965년 발주한 공사다. 1966년 1월 공사를 시작해 1968년 3월 준공됐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네덜란드 등 16개국 29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현대건설이 공사를 따냈다.

빠따니의 도로건설 현장.
당시 현대건설은 구닥다리 국내 건설 장비를 태국으로 갖고 가 공사를 했다. 신식 장비가 있었지만, 기술자들이 사용법을 몰라 무용지물이었다. 국제 규격 공사가 뭔지도 현장에서 배웠다. 당시 현대건설에는 아스콘(도로포장재) 제조 기술자가 없어 서울시가 중곡동에서 운영하던 아스콘 공장의 유일한 기술자를 현지로 데려갔다. 하지만 태국의 후텁지근한 날씨를 고려하지 못하고 아스콘을 배합해 공사를 끝낸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공사 수주 금액은 522만달러(60억원). 당시로선 큰 금액이었지만 첫 해외공사의 결과는 암담했다. 고생 끝에 공사를 끝냈지만 공사 금액의 절반이 넘는 300만달러(34억원)에 달하는 손해가 났다.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이 된 이명박 현대건설 사원, 왼쪽이 당시 현장 직원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그러나 정 회장은 태국 고속도로 공사에 대해 "비록 금전적으로는 거액의 손해로 끝났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사를 끝내 천금을 주고서도 사지 못할 신뢰를 격전의 훈장처럼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은 한 달에 열흘은 태국에서 살았다.

이후 대한민국 해외건설의 역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960년대에는 전쟁터였던 베트남 밀림에서 공사를 수주했고, 1970년대 중동 붐 이후에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수로를 깔았다. 이곳에서 벌어온 돈으로 한국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

올해 우리 건설업체들의 해외 건설 수주액(11월 현재 452억달러)은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해 기록(476억달러)을 넘어설 전망이다. 30~40년 전에는 고속도로를 깔고, 수로를 매설하는 토목공사 위주였지만 지금은 부가가치가 높은 플랜트 공사와 초고층 빌딩이 주력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해외건설 현장에서 피·땀을 쏟았던 건설인들에게 조금씩 빚을 지고 있다.

 

 

<토픽> 서식중인 악어 늪지대 배회

연합뉴스 | 입력 1990.10.29 09:27  

 

泰 홍수로 보호벽넘고 흘러나와 (방콕=연합(聯合)) 徐玉植특파원 = 최근 태국(泰國) 일부지역에 내린 집중폭우로 방콕 외곽지역 대부분이 홍수에 잠기면서 악어농장에 서식중인 많은 악어들이 보호벽을 넘고 흘러나와 주변 늪지대를 배회하고 다님으로써 주민들은 물론 낚시관광을 즐기는 외국인들에게 큰 위험이 되고있다고 방콕시와 태국 관광청이 경고.

방콕시는 28일 새끼악어에서부터 길이 3m에 이르는 어미악어들이 수백마리씩이나 방콕근교 늪지대를 배회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시내로 통하는 운하에까지 침범, 보트놀이를 하거나 낚시를 하는 외국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고 밝히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악어와 대결하려는 모험만은 자제해달라고 당부.

한편 이번 폭우기간중 사람과 가축을 물어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물고기로 알려진 남미(南美) 아마존産의 피라나가 방콕의 젖줄인 차오 파야江에서 한 어부의 어망에 걸려 수산당국에 보고됐는데 이 고기가 태국에서 잡히기는 지난 85년이후 처음이라고.(끝)

 

 

태국 방콕시내 야경 1...베이욕뷔페 80층에서 바라보는 야경...^-^

 

태국 방콕시내 야경 2...베이욕뷔페 80층에서 바라보는 야경...^-^

 

태국 방콕시내 야경 3...베이욕뷔페 80층에서 바라보는 야경...^-^

 

태국 방콕시내 야경 4...베이욕뷔페 80층에서 바라보는 야경...^-^

 

태국 방콕시내 야경 5...베이욕뷔페 80층에서 바라보는 야경...^-^

 

태국 방콕시내 야경 6...베이욕뷔페 80층에서 바라보는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