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이 가을, 통속하거나 외롭거나…
조선일보/사외칼럼/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 연구소장
입력 : 2013.11.01 03:06
10월이면 듣고 읊조리는 노래와 詩
'목마와 숙녀' '시월의 마지막 밤'… 이 가을 마음 덥혀주는 노스탤지어
먼 훗날 가슴 찡할 기억을 만들어 두자
매년 그렇듯이, 10월 31일이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수없이 듣게 된다. 다소 촌스러운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는 아무리 거지같이 끝난 인연이라도 코끝 찡한 기억이 되게 한다. 참 착한 노래다.
80년대 초반, 휴전선 철책에서는 대북 심리전으로 북쪽을 향해 나긋나긋한 우리 대중가요를 틀어줬다. 흠, 요즘 시끄러운 인터넷 댓글보다는 훨씬 그럴듯했다. 82년 가을, 난 화천 북방 철책에서 매일 밤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당시 담당 심리전 요원이 가진 대중가요 테이프가 오직 그것뿐이었다.
달빛 아래, 가을 산 계곡을 타고 흐르는 이용의 노래는 이십대 초반의 병사들에게 '지금도 기억하느냐'고, 꼭 그렇게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었냐고 밤새도록 물었다. 그 노래가 나오면 고참 쫄따구가 없었다. 다들 멍하니 밤하늘만 바라봤다. 매번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모든 게 안타깝고, 슬프고 그리웠다. 눈앞의 철책과 총구, 분단은 그저 관념이었다. 오히려 이용의 떨리는 목소리가 구체적이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10월이 되면 난 그 노래를 찾아 듣는다. 적어도 그 노래를 듣는 순간만은 아주 착하고 순수한 생각만 하게 되는 까닭이다. 단언컨대, 난 10월의 마지막 날에 음탕한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이용의 노래와 함께 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시구가 있다. '인생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다.
시인이 한 잔의 술을 마시면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는 그 '버지니아 울프'를 당시 난 진짜 늑대라고 생각했다. 여류작가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래서 나도 그 폼 나는 늑대처럼 평생 '론리 울프'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 친구 귀현이는 더 황당한 주장을 한다. 가수 박인희가 박인환의 친척이라는 거다. 이름의 두 글자가 같기 때문이란다. 며칠 전 만났는데 또 우긴다.
박인희는 박인환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을 노래했다. 이 노래도 기막히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숨넘어갈 듯 이어지는 시구를 따라 읽다 보면 막연한 그리움에 진짜 숨이 막혀온다. 당시 식민지와 전쟁을 거쳐 흙바닥까지 황폐화된 나라에 도대체 호수가 어디고, 벤치는 또 뭐였을까. 그래서 같은 시대의 시인 김수영은 박인환을 '그저 폼 잡기에 급급한 시인'이라며 비웃었다.
사실 박인환의 시는 많이 뜬금없다. 부활 김태원의 노래 가사처럼 도무지 맥락이 애매한 이미지의 연속이다. 대학 시절 우리는 그의 시를 김수영의 시와 비교하며 식민지 지식인의 철없는 모더니즘이라고 비웃었다. 그때는 박인환을 비웃고 김수영을 읽어야 폼 났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또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자꾸 박인환의 시가 파편처럼 기억난다. 김수영의 시는 의도해야만 기억난다. 박인환을 중얼거리면 그가 던지는 실존의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통속할 건가, 외로울 건가.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갈 건가, 아니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처럼 혼자 갈 건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과 같이 무어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종류의 기억을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향수' 혹은 '그리움'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노스탤지어는 좀 더 복잡한 심리 상태다.
- /김정운 그림
스위스 용병들은 죽어가며 한결같이 스위스 고향 산골짜기의 풀 뜯는 소 방울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호퍼는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죄다 뇌에 이상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젠장, 의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꼭 그런 식이다. 그 후 '노스탤지어'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현상을 뜻하는 정신병리학적 용어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노스탤지어는 그렇게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노스다코타 주립 대학 심리학과의 루틀리지 교수는 '노스탤지어'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노스탤지어'가 잘 작동하는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며, 자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을 더 잘 견딘다는 것이다. 그는 노스탤지어의 심리적 기능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긍정적 기분, 의미 부여, 관계 형성. 뒤집어 이야기하면 기분이 나쁠 때나 우울할 때 혹은 외로울 때, 아름답고 따뜻했던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작동하여 삶을 의미 있고 즐거운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이야기다.
이 가을에 작동할 만한 노스탤지어가 결핍된 이들은 더 우울하고, 더 외롭고, 더욱 기분 나빠진다. 그래서 며칠 후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에 목에 자꾸 핏대를 세우는 거다. 이 찬란한 가을에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각종 신문 정치면, 사회면만 들여다보며 매번 빤한 이야기에 열 받지 말자는 이야기다. 도대체 몇 명이나 '좋아요' 눌러 주나 하며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온종일 머리 처박지도 말자는 거다.
떨어지는 낙엽에 늙어가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만 기억해야 한다. 또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다.
풍요로운 '노스탤지어'의 가을을 보내야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다. 곧 추워진다.
(요점정리)
82년 가을, 난 화천 북방 철책에서 매일 밤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달빛 아래, 가을 산 계곡을 타고 흐르는 이용의 노래는 이십대 초반의 병사들에게 '지금도 기억하느냐'고, 꼭 그렇게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었냐고 밤새도록 물었다. 그 노래가 나오면 고참 쫄따구가 없었다. 다들 멍하니 밤하늘만 바라봤다. 매번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모든 게 안타깝고, 슬프고 그리웠다....30여년이 지난 지금도 10월이 되면 난 그 노래를 찾아 듣는다. 적어도 그 노래를 듣는 순간만은 아주 착하고 순수한 생각만 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용의 노래와 함께 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시구가 있다. '인생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다....박인희는 박인환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을 노래했다. 이 노래도 기막히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숨넘어갈 듯 이어지는 시구를 따라 읽다 보면 막연한 그리움에 진짜 숨이 막혀온다....나이가 들수록, 또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자꾸 박인환의 시가 파편처럼 기억난다. 김수영의 시는 의도해야만 기억난다. 박인환을 중얼거리면 그가 던지는 실존의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통속할 건가, 외로울 건가.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갈 건가, 아니면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처럼 혼자 갈 건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과 같이 무어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종류의 기억을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향수' 혹은 '그리움'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노스탤지어는 좀 더 복잡한 심리 상태다.
최근 미국 노스다코타 주립 대학 심리학과의 루틀리지 교수는 '노스탤지어'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노스탤지어'가 잘 작동하는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며, 자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을 더 잘 견딘다는 것이다. 그는 노스탤지어의 심리적 기능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긍정적 기분, 의미 부여, 관계 형성. 뒤집어 이야기하면 기분이 나쁠 때나 우울할 때 혹은 외로울 때, 아름답고 따뜻했던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작동하여 삶을 의미 있고 즐거운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이야기다.
떨어지는 낙엽에 늙어가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만 기억해야 한다. 또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다.
풍요로운 '노스탤지어'의 가을을 보내야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다. 곧 추워진다.
['노스탤지어'] 기능
2013년 11월1일 자 조선일보/사외칼럼/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 연구소장의 칼럼 [이 가을, 통속하거나 외롭거나…]을 복사하여 블로그에 올렸다.
시대의 문화현상을 분석하여..."아하! 그렇구나. 그거 말이 되네!"...하고 감탄하게 하는 힘이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의 글에는 있는 듯 하다...ㅎㅎ...^-^
[이 가을, 통속하거나 외롭거나…]칼럼에서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글은 '노스탤지어'에 대한 내용이다...^-^
'노스탤지어'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노스탤지어'가 잘 작동하는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며, 자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상황을 더 잘 견딘다는 것이다. 그는 노스탤지어의 심리적 기능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긍정적 기분, 의미 부여, 관계 형성. 뒤집어 이야기하면 기분이 나쁠 때나 우울할 때 혹은 외로울 때, 아름답고 따뜻했던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작동하여 삶을 의미 있고 즐거운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축약하면...아름답고 따뜻했던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삶을 의미 있고 즐거운 것으로 되돌려 놓으므로...스트레스 상황을 잘 견딘다는 것이다...^-^
환갑나이가 된 나는 요즘...젊을 때에 비해 ' '노스탤지어'가 잘 작동하는 것 같다...ㅎㅎ...^-^
예를 들어, 한정식 식당에서...찹쌀죽 풀어 만든 '열무물김치'에 채 썰어 넣은 붉은 고추를 보고...그 맛 또한 시어머니가 담근 물김치 맛과 비슷하니까...시어머님 생각이 나면서 물김치를 담그시던 그 손이 떠오르는 식 이다...ㅎㅎ
조개젓을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밥 1숟갈에 조개젓 1개...이렇게 밥 3숟갈, 조개젓 3개 정도 잡수시면 식사가 끝나는...소식을 하시던 모습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외할머니는 99세까지 장수하셨다...ㅎㅎ...^-^
미숫가루를 보면...꼬부라진 허리의 외할머니가 찬 우물물에 미숫가루와 신화당(혹은 감미당)섞어 타 주시던 미숫가루물이 생각난다...그 때의 그 맛이 생각나 이리저리 비슷하게 미숫가루물을 만들어 보지만 언제나 실패다...ㅠㅠ...^-^
호떡 굽는 포장마차를 보면...시집오기 전...고등학교 시절이었는지? 대학교 시절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친정 아버지와 포장마차에 들어가 먹었던 호떡 1개가 떠 오른다...왜 거길 들어갔는지...지금도 미스테리이고...아마! 나만 1개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ㅎㅎ...^-^
버스를 타면 문득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버스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시면서...우리 큰애를 사당동 당신 집에서 키우시다가 주말이면 데리고 오시던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경기도 광주 이모집에서 마른고추를 포대 가득 담아 사당동 집까지 버스로 실어나르던 억척맞은 엄마 생각도 난다...^-^
확실히 젊을 때에 비해...옛날 생각이 '향수'처럼 아련하게 피어오르며 떠오르는 경우가 잦아...속으로는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말이야..." 하면서 고리타분한 노인네로 등극(?)하는 징조가 아닐까 해서 말이다...ㅎㅎ...^-^
그러나, '노스탤지어'는 스트레스 상황을 잘~ 견디고...삶을 의미있고 즐거운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고 하므로...걱정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요즘 사회에서 "스토리를 입히자."가 유행이므로......
오히려 피어오르고 떠오르는 노스탤지어를 유의미한 스토리로 바꾸어 볼까!!...ㅎㅎ...^-^
- 2013년 11월2일 토요일...수산나 -
양주 회암사지 1
회암사지 2
회암사지 3...부도탑.
회암사지 4...당간지주.
회암사지 5...당간지주...^-^
회암사지 6
회암사지 7
회암사의 역사 안내문...회암사지 전망대 안내판에서...^-^
회암사 복원 추정도...회암사지 전망대 안내판에서...^-^
회암사지 부도탑 사진...회암사지 전망대 안내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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