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남한산성
금년(2014년) 6월22일 카타르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은
“17세기 초 유사시 임시수도로서 당시 일본과 중국의 산성 건축 기술과
군사전술이 종합적으로 체계화 돼있다” 며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산성 축조의 시대별 발달단계와 무기체계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고 있고,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으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로써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치욕에서 벗어나 수원화성, 종묘, 석굴암
등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11번째로 세계가 인정하는 유산이 됐다
남한산성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동문인 좌익문(左翼門)에서부터 성벽일주를 시작하며...
송암정
남한산성 행궁
옹성(甕城)과 통하는 암문(暗門)
장경사신지옹성
암문
북문인 전승문(全勝門)
연주봉옹성
연주봉옹성과 통하는 암문
연주봉옹성에서 본 남산 방향
북한산 방향
서문인 우익문(右翼門)
성안에서 본 우익문(서문)
수어장대(守禦將臺)..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있던 5개 장대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영춘정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제2남옹성치
제3남옹성 암문
망월사
성벽일주를 마치며 하산길에 건너다 본 동문(左翼門)
행이란 왕이 서울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
인조 2년(1624)에 짓기
시작해 인조 4년(1626)에 완성하였다.
행궁 중에서 유일하게 종묘사직 위패 봉안 시설을 갖추었으며, 상궐 73칸, 하궐
154칸 등 총 227칸으로 이루어진
행궁이었으나 1907년 일제가 불을 질러 터만 남게 되었다.
1999년에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시작하고 경기도가
남한산성 복원공사에 착수해 2010년에 완전히 복원했다.(사진은 전시된 자료)
한남루(漢南樓)
외삼문(外三門)
수어장대의 옛모습(전시된 사진자료)
남문의 옛모습(전시된 사진자료)
외행전(外行殿)..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곳
일장각(日長閣).. 광주유수가 지내던 곳
내행전(內行殿).. 왕과 왕비의 침전
행각(行閣).. 수행원들이 머물던 곳
재덕당(在德堂)..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로 추측
좌승당(坐勝堂).. 광주유수의 집무용 건물
이위정(以威亭).. 활을 쏘기 위한 정자
후원(後苑)
좌전(左殿).. 유사시 종묘에 있는 선대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만든 건물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 공연
지수당(地水堂).. 헌종 13년에 지어진 정자로 양반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한 곳
종각(鐘閣)
침괘정(枕戈亭)..정확하게 지어진 시기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1751년에
새롭게 고쳐 짓고 '침괘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다.
영월정(迎月亭)
숭렬전(崇烈殿)..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남한산성을 쌓을 때 책임자였던
이서장군을 모신 사당
연무관(演武館).. 인조 3년에 지은 군사훈련을 하기 위해 건립한 지휘소
남한산성... '얼레지/앉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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