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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년 10월17일 월요일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우리들의 묵상/상수리나무 5장


2016년 10월17일 월요일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우리들의 묵상


이냐시오 성인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는 터키의 안타키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요한 사도의 제자였다고도 하는 그는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역이었던 안티오키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110년 무렵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이냐시오 주교는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 들르는 곳마다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들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초대 교회의 신앙생활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으니 모든 탐욕을 조심하라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10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21


오늘의 묵상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공감 백배 울려 퍼집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통하여 인간의 존재 방식의 명확한 두 가지 형태를 규명한 바 있습니다. 무엇인가 내 것으로 소유하고, 내 뜻이 관철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사는 인간이, 소유적 본능에서 벗어나 ‘존재’, 곧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고, 애초부터 내 소유란 없음을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소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 시대에 경종이 됩니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얻은 부자는 그것이 순전히 자신의 노력의 대가라고 여기고, 더 큰 곳간을 지어 재산을 쌓아 두고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려고 합니다. 분배의 정의보다 부가 부를 창출해 내고, 부의 대물림이 현실화된 우리의 천민자본주의의 현실이 예수님 시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랍기만 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기적 소유의 본능을 이겨 낼 수 있는 나눔의 이타적 삶이 있다는 점입니다. 부자의 어리석음은, 자신이 쌓은 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는, 육의 욕망과 감각에 따라 사는 우리가 결국 하느님께 돌아갈 때 세상 것들을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것임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보다 나를 소유하고 계신 하느님을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하여 우리 모두 부단히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선행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의 모범이 바로 오늘 기념하는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순교자입니다. 

성인께서 로마로 압송될 때 전 교회에 보낸 편지 중 감동적인 대목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나는 온 교회에 이 편지를 쓰면서 모두에게 당부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위해 기꺼히 죽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미숙한 친절을 나에게 베풀지 마시고 내가 맹수에게 먹히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그것은 내가 하느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빨에 의해 갈려져 그리스도의 순수한 빵이 될 것입니다.”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평생 하늘에 보물을 쌓아 온 이냐시오 성인이셨기에 

두려움 없이, 평생 믿고 사랑해온 그리스도를 위해 거룩한 순교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음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선행의 삶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만날 때, 예의를 지키듯이 하느님께 기도할 때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만날 때마다 멀 사달라고하고, 돈을 달라고 하면 짜증이 날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부모를 만날 때마다 길러 주셔서 감사하다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신앙을 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 자녀에게는 더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마련입니다. 기도는 그래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했는데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기도했는데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하느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만 늘어놓은 독백일 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침묵 중에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침묵 중에 있으면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십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모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12,15) 불교에서도 탐욕을 진에(嗔?), 우치(愚癡)와 더불어 근본적인 번뇌요 불도 수행에 장애가 되는 세 가지 독(毒) 가운데 하나로 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돈의 우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우리는 돈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은 봉사해야 하지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복음의 기쁨, 55. 58항) 돈의 우상화는 결국 차별과 소외를 불러일으켜 인간다운 삶을 파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에페 2,10) 따라서 참 행복을 바라거든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고 재물 모으기에 급급하여 인색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겠지요. 탐욕에 사로잡혀 자신의 재물을 쓰거나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악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탐욕 때문에 영혼의 어둠 속을 헤매고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탐욕을 절제하고 선행과 희생,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 정의평화를 위한 노력, 공동선을 위한 연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존재 자체로 살아가고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4.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면 반드시 열매가 맺히는데 그 열매란 사랑, 기쁨, 평화”(갈라 5,22)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와 같은 열매도 맺혀 인간관계 안에서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해 내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을 청하는 기도를 하면 그 효과를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다른 모든 것들까지 더불어 받게 됩니다.(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10월17일 월요일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기적 소유의 본능을 이겨 낼 수 있는 나눔의 이타적 삶이 있다는 점입니다.

부자의 어리석음은, 자신이 쌓은 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는,

육의 욕망과 감각에 따라 사는 우리가 결국 하느님께 돌아갈 때 세상 것들을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것임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보다 나를 소유하고 계신 하느님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탐욕 때문에 영혼의 어둠 속을 헤매고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탐욕을 절제하고 선행과 희생,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 정의평화를 위한 노력, 공동선을 위한 연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존재 자체로 살아가고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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