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19일 [(녹)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우리들의 묵상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전하는 일꾼이 되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시며,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2-12
복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9-48
오늘의 묵상
“깨어 있어라.”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비유 말씀처럼 잠든 사이에 도둑이 내 소중한 것을 앗아 가지 못하게 깨어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내 생각과 의식을 열어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내적인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영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영적인 ‘깨어 있음’을 한결같이 강조합니다.
영적 태만과 위선, 기회주의적 자기애는 영적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적당히 꾀를 내어 내 편안함과 욕심을 채우려는 종의 모습은, 남이 나의 잘못을 알지 못하는 한 적당히 타협하면서 게으르고 위선적인 내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내 육신의 안락함이나 욕심보다는 주인의 생각과 뜻을 기다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종의 모습이 칭찬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덜어 내고 비워 내는 비움의 영성, 곧 청정한 빈 마음의 ‘무아’(無我)와 ‘무욕’(無慾), 그리고 ‘무위’(無爲)의 삶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욕망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면 삶의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내 힘이나 노력이 아닌,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예수님의 복음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은총을 넘치도록 받은 우리가 십자가의 빈 마음을 익히고, 믿음 안에서 확신을 갖고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가톨릭교회는 누군가가 깨달아서 세운 종교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계시종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계시는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존재’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의 끝에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삼위일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고,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교회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상선벌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옳은 일을 한 사람, 선을 베푼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을 행한 사람,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강생구속’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이 세상에 축복을 받고, 죽은 후에도 영원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지만 부활하심으로써 이를 드러내 주셨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오늘 복음은 주님의 뜻을 잘 알아 합당한 준비를 하고(12,40), 그분의 뜻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 합니다(12,42-43). 주님께서는 주인이 자기 재산 전부를 맡기듯 그런 충실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실 것이며(12,44),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실 것입니다.”(12,48)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과의 일치이며, 그것은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친교를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지요. 주님의 뜻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요, 인간의 행복과 구원이며, 공동선을 추구하여 보기에 좋은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3. 오늘 제1독서의 소제목은 ‘이민족들을 위한 바오로의 사도직’에 관한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맡겨주신 제자리에서 제일인 ‘은총의 직무’에 충실했던 ‘복음의 일꾼’ 바오로였기에
늘 기쁨 충만한 삶을 사셨던 기쁨의 사도 바오로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제1독서인 에페소서가 필리피서, 콜로새서, 필레몬서와 함께 옥중서간이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늘 주님 안에서 깨어 살았기에 옥중에서도 자유를 누렸던 기쁨의 사도 바오로였습니다.
바오로의 겸손한 고백이 감동스럽습니다.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그러한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춰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바오로의 서간들을 통해 밝혀지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우리 또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깨닫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0월19일 [(녹)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뜻을 잘 알아 합당한 준비를 하고(12,40), 그분의 뜻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 합니다(12,42-43).
주님께서는 주인이 자기 재산 전부를 맡기듯 그런 충실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실 것이며(12,44),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님과의 일치이며, 그것은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친교를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지요.
주님의 뜻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요, 인간의 행복과 구원이며, 공동선을 추구하여 보기에 좋은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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